루체른을 떠나 바젤에 도착했다. 바젤은 라인강을 경계로 반은 스위스, 반은 독일에 속한 고도이며 프랑스와도 인접해 있다.

스위스쪽 바젤에서 우리는 마리오 보타, 헤르쪽과 드메롱, 렌쪼 피아노, 이렇게 건축계의 큰 별들을 한꺼번에 만나는, 일정이 굵직한 하루를 보냈다.


ubskeub.jpgBIZ 은행 (BIZ, Mario Botta, 1995년 건축)
바젤 시내에 위치한 6층짜리 은행건물은 마리오 보타의 특징을 고스란히 함유한 건축이다. 마치 성곽같이 육중한 외형이지만,자연석의 색상을 변화 있게 이용한 덕분에 경쾌한 느낌을 준다. 층층으로 올라가며 깊숙히 파여진 “음각 층계” 가 이 건물의상징이다.

누가 보아도 이 건물은 전형적인 서양의 가옥과는 거리가 먼 건물이라 하겠지만, 그 주위에 있는 고전주의 옛 건물과 비교해 보면 공통된 미학의 원칙을 발견할 수 있다. 기단, 본체, 지붕으로 구성된 서양식 가옥의 형식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의 눈은 오랜 습관에 따라 자신의 집을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감지하고, 거기서 안정감을 느낀다. 이 건물에서 마리오 보타는 창문의 모양과 크기에 변화를 줌으로써 이 세 부분을 확실하게 구별하였다. 바로 이런 점으로 인해서 그의 건물은 크기에 상관 없이 안정감과 무게감을 풍긴다.

bottaklein.jpg마리오 보타 (Mario Botta)
1943년 스위스 출생. 15세에 제도사 교육을 거쳐 밀라노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공부하면서 카를로 스카르파, 르코르뷔제,루이스 칸, 루이지 스노찌와 교류했다. 샌프란시스코 MOMA, 토교 현대미술관, 다수의 교회와 은행 건물을 지어 세계적으로명성을 얻었다.

마리오 보타는 내가 독일 칼스루에 공대 건축과 학생이었던 시절에 열광했던 건축가이다. 25년 전에 마리오 보타가 우리 학교에서특강을 했을 때 나는 “건축”보다 “그”에게 더 관심이 있었던 듯, 그가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하나도 생각나지 않고 그가 둘렀던목도리만 기억난다. 그 당시 나만 그랬던 게 아니라, 또 서양에서 뿐아니라 동양에서도 마리오 보타는 인기 절정이었다.

그의 건축의 특징은 기하학적이고 합리적인 형태이다. 자연석, 벽돌, 콘크리트 등 무거운 재질로 쌓아올린 단순명료한 건물은 마치성곽처럼 자칫 둔중하게 보이기 쉬우나 마리오 보타는 빛과 그림자를 이용하여 오히려 가볍고 우아한 느낌을 창출한다.

그는 로마네스크 건축의 신봉자이다. 이는 그가 옛 건축을 본따서 설계한다는 말이 아니다. 로마네스크 건축의 원리와 장점을 십분 이해함으로써 현대가 요구하고 현대인에게 기쁨을 주는 건물을 짓는 일에 활용할 줄 안다는 뜻이다.

이제 육순이 넘은 노장은 자신의 건축철학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설계한다는 행위는 평화를 설계한다는 뜻이고, 평화를 조성하고 삶의 터를 창조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근본적으로 건축가들은 파괴하는 힘에 항거한다.”

바젤 시내에는 건축계의 또다른 거장인 헤르쪽 & 드메롱의 작품들이 있다. 바젤 뿐 아니라 이번 여행에서 집중적으로 다루게 될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이들의 건축은 어떤 성격을 띌까?

herzogklein.jpg 헤르쪽 & 드메롱 (Herzog & De Meuron)
헤르쪽과 드메롱은 1950년에 스위스에서 태어나 동갑내기 소꿉친구로 함께 자랐다. 이들이 1978년에 문을 연 설계사무소는오늘날 동서양 대도시에 지사를 두고, 23개국 출신의 직원 220명을 고용하여, 뮌헨의 아레나 경기장, 북경올림픽 주경기장 등요즘들어 가장 큰 프로젝트들을 수주하는 건축팀으로 성장했다.

왕성한 건축활동 외에도 취리히 대학과 하버드 대학에서 강의하고 있는 이 두 건축가는 2001년에 다양한 건축자재를 사용하여 건축예술을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아 건축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수상하였다.

아름다운 건물은 주변환경을 변화시킨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건축은 특이하고 획기적인 외양으로 유명하다. 이를 두고 혹자는 “건물의 내실보다는 사람의 눈을 홀리는 시각적 효과에 의존한다”고 비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헤르쪽과 드메롱은 “아무리 미녀라도 피부를 벗겨 놓으면 아름답게 보이겠느냐?“라는 말로서 가볍게 반박한다.

이들이 실현하는 건축의특징을 요약하자면 청교도적으로 단순하고 깔끔한 건물형태, 화려한 외양, 다양한 재료, 디테일의 리드미컬한 반복, 조립식 공법을들 수 있다. 이들의 건축은 보수적인 동시에 획기적인 면모로 인해 간혹 모순성, 양극성을 띈다. 이에 대해 그들은 현실의모순성이 건물에 반영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elsssertorklein.jpg엘제써토어 복합건물 (Elsässertor, Herzog & De Meuron, 2003-2004년 건축)
역전에 위치한 5층짜리 복합상가는 날카롭게 각이 지어 반짝이는 유리 건물이다. 건물의 각 면은 각각 빨간색, 파란색, 흰색유리로 형성되어 프랑스 국기인 트리콜로레를 상징한다. “알자스로 가는 문” 이라는 뜻의 건물주소가 시사하듯이 인접국 프랑스로가는 기차가 이 곳에서 떠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stellwerkklein.jpg 시그널 복스 (Signal Box, Herzog & De Meuron, 1994-1998년 건축)
시그널 복스는 역에서 기차들의 교통정리를 담당하는 신호통제탑이다. 선로 위에 설치된 고압전선들은 강한 전자파를 발산하기 때문에신호통제탑 안에 있는 전자기기를 바깥의 전자파로부터 차단하는 것이 관건이다. 전자파는 전기가 통하는 물질로 형성된 그물망이나 막으로 막을 수 있다.

헤르쪽 & 드메롱은 전자파 차단장치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적극적인 방법을 택했다. 바젤역의 시그널 복스를온통 감싸는, 수평으로 촘촘히 엮여진 구리막대의 발은 전자파를 차단하는 구실을 한다.

이때 납작한 구리막대를 부분적으로 살짝 비틀어 시각효과를 꾀한 것은 건축가의 센스이다. 뿐만 아니라 창문이 있는 부분의 막대를수평으로 비틀어줌으로써 밖을 내다볼 수 있게 한 것은 미에 기능이 합쳐지는, 건축의 원리를 실현한 것이다.

rehabklein.jpg재활병원 (REHAB, Herzog & De Meuron, 2002년 건축)
척추부상, 뇌손상을 입은 환자들을 위해 바젤에 새로 지어진 재활병원은 헤르쪽 & 드메롱이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작품이다.건축주와 건축가가 이 건물을 통해 지향한 목적은 환자들이 치료를 받으면서도 사적 영역으로 도피할 수 있는 가능성, 대중의시선에서 보호되면서도 사회적인 교류의 가능성, 사회생활로 되돌아가는 과정에서 아름답고 편안한 공간의 제공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기존 병원의 공간개념을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모델을 개발하는 것을 숙제로 삼았다. 1층에선 진료와 치료가 행해지고, 2층엔 입원실이 있으며, 3층엔 휴식과 오락 등의 여가선영을 위한 공간, 방문자를 위한 호텔시설, 퇴원하기 전에 자립을 연습하는 아파트 등이 갖추어져 있다.

부드러운 톤의 가느다란 참나무 봉들이 수평을 강조하는 외양을 따라 빙 돌자면 깔끔하고 개성있는 다섯 개의 중정들이 엿보인다.이를 보며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일본식 가벼움”은 필경 재활병원이라는 암울함을 상쇄하기 위한 건축가의 의도였으리라.

지붕 곳곳에 뚫려 있는 천창들은 걸을 수 없는 환자들이 침대에 누워서도 날씨와 계절을 느낄 수 있는 커다란 눈의 구실을 한다.

가옥과 정원이 얽히고 설킨 시골마을처럼 유기적인 첫인상과는 달리 각 공간들은 합리적이고 엄정한 원칙에 따라 배치되어 있다. 또한 병원 건물의 수명이 의학의 발달보다 길다는 것을 고려하여, 앞으로 변화하는 상황에 유연하게 맞출 수 있는 평면구성을 하고 있다. 얼핏 들으면 “엄정한 원칙에 따른 공간배치”와 “유연한 평면”은 서로 모순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다채롭고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는 평면구성은 단순하고 규칙적인 구조역학이 받쳐주는 건물에서만 가능하다.

명품건축으로 인정받아 답사객들이 줄을 잇는 이 재활병원은 공사비가 다른 신축건물보다 적게 들었다는 점이 또하나의 특징이다.합리적인 구조역학과 저렴한 재료를 이용한 덕분이다. 사람들은 돈탓을 쉽게 하지만 사실은 돈보다 실력이 우선일지도 모른다.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인 바이엘러 미술관을 향했다.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였는데 신기하게도 우리가 버스에서 내렸다하면 비가반짝 그쳤다. 하늘에게 들키면 또 비를 뿌릴까 봐 우리는 렌쪼 피아노가 설계한 바이엘러 미술관의 붉은 담장을 따라 종종걸음으로걸어들어갔다.

pianoklein.jpg렌쪼 피아노 (Renzo Piano)
1937년 이태리 제노바에서 태어나 피렌체와 밀라노에서 건축을 공부했다. 공부가 끝나자 루이스 칸의 설계사무소에서 실습을 했다.건설회사를 운영하는 집안 분위기 덕분에 새로운 재료와 새로운 기술을 건축에 도입하는 일에 겁이 없었던 그는 혁신적인 설계로퐁피두센터의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대가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에펠탑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건축기술의 장을 열어 파리의 상징으로 불리는 퐁피두센터 외에도 피아노 렌쪼는 일본 오사카의 간사이국제공항, 뉴욕타임즈 본사, 유럽에서 가장 높은 런던 브리지타워(306m) 등 굵직한 작품을 만들었다. 그가 설계한 바이엘러미술관과 파울 클레 미술관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관이라 인정받고 있는데 이번에 둘 다 보게된 것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렌쪼 피아노는 빛을 살리고, 주변환경을 존중하여 건물과 자연과의 동화를 가능하게 하려고 노력한다. 건설기술과 설비의 대가로인정받는 렌쪼 피아노는 첨단기술을 활용하지만 기술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편안하고, 견고하고, 환경친화적인 건물을만드는 데 필요한 도구일 뿐이라고 말한다. 많은 건축가들에겐 늘 선호하는 디자인이 있기 마련인데 렌쪼 피아노는 기능에 따라디자인의 성격이 판이하게 바뀌는, 다양한 양식의 건축을 창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건축이라는 직업은 모험적인 행위이다. 예술과 학문, 새로운 것의 발명과 지나간 것의 기억, 현대성에 대한 용기과 전통에 대한 겸손 사이에 존재하는 경계의 직업이다.“라는 그의 어록은 이날 많은 분들의 공감을 샀다.

렌쪼 피아노의 곁에는 그에게 영감을 주고 함께 건축활동을 하는 여성들이 항상 있다.

beyelerklein.jpg바이엘러 미술관 (Fondation Beyeler, 렌쪼 피아노, 1997년 건축)
바젤 근교의 리헨에 있는 바이엘러 미술관은 바이엘러 노부부의 개인적인 소장품 180점을 보관하기 위해 건축되었다. 소장품은 드가, 모네, 세잔, 고호, 피카소 등의 20세기 작품이 주를 이룬다.

신록의 공원 속에서 반투명 유리지붕 아래 길고 납작하게 뻗어 날아갈 듯 세련된 느낌을 주는 건물이었다. 길쪽으론 소음을 방지하기위하여 붉은 자연석을 쌓아올린 벽을 두었고, 공원쪽 외벽은 대부분 유리창으로 마감하여 대담하게 열어보였다. 투명한 벽체가 날렵한지붕과 조화를 이루어 마치 옥외 가건물처럼 가볍고 경쾌했다.

자그마한 연못이 건물 전면에 바짝 붙어 있는데,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연못에 핀 연꽃과 전시실의 벽에 걸린 모네의 연꽃이 눈인사를 나누고 있어 소장품에 대한 건축가의 높은 일가견과 섬세한 배려를 느낄 수 있다.

유리지붕은 날씨에 따라 자동적으로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하여 전시실의 조명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다.

munchklein.jpg유럽의 미술제가 겹치는 기간이었기에 특별전시로 “에드바르트 뭉크” 전이 있었던 것은 우리의 행운이었다. 20세기 직전, 제 2차 산업혁명으로 물질문명과 정신문명이 괴리되는 격동의 시기에, 영혼을 바쳐 항거하는 고독한 예술혼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전시회였다.

100년 후인 오늘, 21세기 초반의 상황은 어떠한가? 오늘날 우리의 영혼은 앞서 달아나는 과학기술의 속도를 따라잡고 있는가? 그래서 그들을 우리의 하인으로 부리고 있는가? 과학기술이 제공하는 물질문명의 노예로 전락하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얼마나 큰 노력을 바치고 있는가?

첨단의 기술을 동원한 현대건축의 최고수준을 만나서하루종일 들떠 있던 마음 한 구석에서 뭉크가 입을 동그랗게 벌리고 절규하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으며 우리는 숙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