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살아온지 어언 40년, 이젠 독일말이 더 편하다. 욱할 때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욕도 독일말이다.

그러나 청소할 때는 예외다. 나는 청소할 때마다 한국말로 중얼중얼 하염없이 욕을 한다. “이 먼지 쌓인 것 좀 봐. 이게 사람 사는 집이냐? 니가 인간이냐?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지. 인두껍. 인면수심.” 이렇듯 오래간만에 모국어로 단어 찾아내는 흥에 겨워 점점 화려해지는 욕을 퍼붓는 대상은 다름아닌 남편이다.

남편은 욕을 먹어 싸다. 남편은 실천하는 환경주의자, 평화주의자로서 사람이 신념이 있는 건 좋은데 그걸 너무나도 당당하게 마누라에게 강요한다. 다른 건 몰라도 환경보호에 관해선 자신의 신념이 절대적인 기준이며 절대적인 선이라 믿는 사람이다. 에너지 절약을 일상에서 자기만큼 철저하게 실천하지 않는다하여 나를 어디가 좀 모자라거나 파렴치한 사람 취급한다. 참 고약하다.

우리 부부의 지난한 싸움의 발단은 진공청소기였다. 남편은 언제부터인가 진공청소기를 싫어했다. 전력낭비가 심하고, 시끄럽고, 미세먼지를 날려 건강에 해롭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곧 EU에서도 작금의 진공청소기를 금지할 거라고 했다. 그러나 난 진공청소기 없는 우리집을 상상할 수 없었다. 발명가가 꿈이었던 남편의 벼라별 기계와 공구들이 바닥에 널려 있고, 굵고 가는 전선들이 구석구석 또아리를 틀고 있는 집구석을 진공청소기 없이 어떻게 청소한단 말인가?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은 청소의 원칙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했다. 눈에 보이는 곳만 대강 청소하면 집이 90% 정도는 깨끗해지는데, 마지막 10%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그 두 배, 세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걸 수학에서 로그의 법칙이라고 한단다. 내 참 기가 막혀서. 눈에 보이는 곳만 빗자루로 슬슬 쓸어 90%의 청결을 이루는 것이 구석에 있는 먼지까지 제거하느라 두세 배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보다 경제적이고 합리적인 일이라 했다. 고로 진공청소기는 없어도 되는 물건이란다.

게다가 남편은 자기가 청소의 대가라고 여긴다. 그는 젊은 시절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로서 대체복무를 했는데, 이때 독거노인들을 돌봐주는 일을 했다. 청소를 어찌나 빨리 하는지 노인들이 전부 놀랐다고 자랑한다. 저렇게 날림으로 청소하니 빠를 수밖에. 민폐가 따로 없었겠구만.

나는 로그의 법칙이고 뭐고 청소를 했으면 일단 깨끗해야지, 구석에 먼지를 남겨두는 게 찝찝하고 싫다. 그래서 나는 남편에게 각자 자기 식대로 청소하자고 제안했다. 난 당신이 빗자루로 대강 청소하는 거 봐 줄 테니 당신도 내가 진공청소기 돌리는 거 봐주시오. 그런데 내가 청소 한번 할 때마다 남편은 내게 시비를 걸었다. 그는 내가 자기를 화나게 하려고 일부러 진공청소기를 돌려 전기를 낭비하고 미세먼지를 날린다고 생각했다.

궁여지책으로 남편이 집에 없을 때만 살짝 진공청소기를 돌렸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하니 둘 다 집에 있는 시간이 비슷해서 남편 몰래 진공청소기 돌리는 일이 여간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남편도 눈치챘는지 외출에서 돌아오면 킁킁거리며 진공청소기 냄새가 난다고 창문을 있는 대로 열어젖히며 심술을 부렸다.

남편의 심술에 지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아내로써 남편의 신념 정도는 지켜줘야 하는 건 아닐까 싶어서 나는 어느날 과감하게 진공청소기를 없앴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심술이 나는 것이다. 빗자루로 구석구석 청소 한번 하려면 반나절이 후딱 지나갔다. 솔이 부드러운 독일 빗자루는 먼지를 쓰는 물건인지 먼지를 묻히는 물건인지, 한번 쓰고 나면 먼지가 소복하게 붙어서 꼭 손으로 손으로 뜯어내야 한다. 기분 나쁘다.

어느날 우리는 전자상가에서 청소로봇이 저 혼자 돌아다니며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을 보았다. 신기하고 기특했다. 첨단기계를 좋아하는 남편도 솔깃한 모양이었다. 청소로봇은 밧데리를 충전해서 작동하는 방식이라 전기도 덜 들고 미세먼지도 덜 날린다고 마음에 들어했다. 야호, 난 인제 살았구나.

집에 돌아와 청소로봇에 대해 조사하던 남편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 중 쓸 만한 메이커는 이스라엘의 살상무기 업체에서 만든 제품이라 안 되겠다고 했다. 나는 너무나 실망해서 소리 질렀다. “세상 사람들이 다 쓰는 청소로봇을 또 나만 못 쓰는구나.” 남편도 지지 않고 버럭댔다. “그럼 사람 죽이는 무기 만드는 업체에서 생산한 제품을 사라는 거야?” 내가 생각해도 그건 좀 심했다. 남편이 군대를 거부하고 대체복무를 신청할 당시는 독일이 동서독으로 갈려 살벌한 냉전을 벌일 때여서 그 시절에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 받기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살상무기를 손에 쥐지 않겠다고 끈질기게 항소했던 것이다. “알았어. 사지 말자.” 나는 다시 독일 빗자루를 들었다.

이렇게 남편의 환경주의적, 평화주의적 신념을 존중하고 양보하며 살아온 시간이 쌓일수록 나의 중얼중얼 한국말로 욕하는 버릇도 깊어졌다. 이제는 독일 빗자루만 보아도 욕이 나왔다. “니가 인간이냐?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지. 인두껍. 인면수심.” 그러다보니 청소를 기피해서 우리집은 점점 더 더러워졌다. 당신이 청소의 대가라며? 혼자서 다 해보시지?

그러다가 어느날 터졌다. 집이 너무 더러운데 자기만 청소를 한다고 억울해하는 남편이랑 한바탕 붙었다. 꼭 자기가 원하는 방식을 내게까지 강요하는 게 나는 싫다고 했더니 남편은 환경보호니, 로그의 법칙이니 그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은 일장연설을 또 시작했다. 그가 오만한 말투로 “내가 당신에게서 진공청소기를 빼앗은 것은…” 어쩌고 했을 때 나는 뒤집어졌다. 빼앗긴 뭘 빼앗아? 내가 양보했지. 우리 가족이 평생 자가용 없이 살고, 겨울에는 실내온도 18°C를 유지하고, 자전거로 출퇴근하고 자전거로 장거리 여행을 다니는 일이 나의 의지 없이 이루어진 일이라 생각하느냐? 남이 시작한 일에 기꺼이 동참하는 일도 신념이란다. 네게 환경보호의 신념이 있다면 내겐 자유의 신념이 있다. 왜 맨날 나만 네게 맞춰줘야 하는데? 나 너랑 살기 싫다, 젖은 낙엽아. (일본에선 마누라가 늙은 영감이 귀찮을 때 젖은 낙엽이라고 한단다. 오우 겁나라.)

남편은 내가 왜 갑자기 뒤집어졌는지 감을 못 잡았지만 뭔가 심각하다는 것만은 이해한 모양이었다. 마누라가 가전제품이 너무 가지고 싶어서 머리가 돌았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그는 진공청소기와 청소로봇을 살 소소한 핑계거리를 만들어냈다. 본격적인 시장조사를 벌인 끝에 미세먼지를 강력히 차단하고, 소음이 적은 에너지 절약형 진공청소기를 사왔다.

가볍고 작아 끌기도 편한 나의 하얀 발발이는 먼지를 금새 깨끗하게 먹어치운다. 남편도 이젠 자기 앞에서 진공청소기기 돌아가도 화내기는커녕 자기가 고심해서 고른 제품을 마누라가 애용하니 가슴을 쑥 내밀고 뿌듯해한다. 나도 인제는 진공청소기 있다고 여기저기 자랑하고 다녔더니 사람들이 나를 애잔한 눈으로 보는 것 같다.

청소로봇에 관하여 고무적인 소식을 들었다. 그 사이에 이 분야에 많은 발전이 있었는데 특히 한국의 기술이 세계적으로 뛰어나다는 것이다. 독일제 밀레 로봇의 소프트웨어를 한국팀이 개발했다고 한다. 우리는 국산 로봇 아니면 독일제 밀레 로봇을 사기로 하고 가격대비 품질을 조사하고 있는 중이다. 계산해 보니 발바리와 청소로봇의 전기소비량을 합쳐도 기존의 보통 진공청소기 하나에 드는 전기보다 훨씬 덜 든다.

우리가 생활용품 하나 사면서 이렇게 꼼꼼하게 따지는 이유는 “소비자는 왕”이기 때문이다. 우리 소비자들은 경제 위에 군림하는 왕으로서 지구의 환경과 평화를 지킬 신성한 의무가 있다. 물건 하나 잘못 사면 생산에너지를 낭비하고 쓰레기를 양산한다. 소비자들이 무심해서 전쟁으로 돈 버는 무리들을 지원하는 한 지구상에선 전쟁이 사라지지 않는다.

한편, 왕도 행복할 권리가 있다. 고심해서 장만한 물건을 아끼고 사랑하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하다. 내게 이렇게 좋은 물건을 만들어 바친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이 절로 솟는다. **** 넘쳐나는 물질 속에서 갈피 못 잡고 허우적거리면 왕이 아니라 노예지.

발바리가 왔는데도 우리집 여왕님은 청소할 때마다 여전히 욕을 하신다. “휴지통이 바로 옆에 있는데도 코 푼 휴지를 침대 밑에 이렇게 잔뜩 늘어놓다니. 우엑. 니가 인간이냐?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이지. 인두껍. 인면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