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시간이 난 일요일 밤, 독일에 있는 한인 커뮤니티 베를린리포트에 올린 글입니다.


저 밑에서 노엘리님이 쓰셨죠.

대학 신입생 시절에 녹색당이 바덴 뷔르템베르그 주를 지배하는 총리가 나올 거란 학우의 말에 모두 배꼽을 잡고 쓰러졌다고… 또 환경보호를 위해 기름값을 5마르크로 올려야한다는 녹색당의 현수막을 본 시민들이 분노해서 “Ziral 하네"하고 욕했었다고…

저도 노엘리님과 같은 주에서 대학을 다녔는데요, 제가 대학 졸업한 지 얼추 30년이 되어가니 아마 제가 한 세대 전에 학창시절을 보내지 않았나 싶습니다. 노엘리님 연세가 어찌되시는지 모르겠지만 지레짐작으로…

그때 저는 녹색당 지지자였어요. 그래서 노엘리님이 위에 쓰신 대로 시민들의 비웃음과 분노를 개인적으로 경험했지요. 경제관념 없고 개념 없는 낭만주의자 정도 취급 받으면 다행이고, 미쳤다는 소리도 들었습니다.

그로부터 한 세대가 지난 오늘의 독일은 어떤가요? 그 당시 미친 취급 받던 녹색당의 환경정책이 지금은 독일의 보편적 진리이자 평범한 생활이 되었습니다. 독일의 석기시대로의 환원과 동일시되던 탈원전이 보수 집권당의 손으로 이루어졌지요? 왜? 민의가 그것을 원했으니까요. 왜 민의가 그것을 원했을까요?

바덴 뷔르템베르그 주에선 녹색당이 제 1당이 되었지요. 이 주가 어떤 주입니까? 독일에서 가장 부자이자 구두쇠, 첨단산업의 역군이지요. 경제관념 투철해서 계산기 두드리는 데는 1등이지 싶습니다. 이 주의 주민들이 올해 갑자기 낭만적으로 변해서 녹색당을 지지했을 리는 없지요. 계산기를 두드린 결과 녹색당의 정책이 자신들이 사는 지역을 더 살기 좋게 만들 비젼이 있다는 결론이 나온 겁니다.

이제 다른 주에서도 계산기를 두드려 녹색정책을 선택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꼭 녹색당의 집권으로 이루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민의가 그렇게 흐르는 것을 깨달은 기민당이나 사민당 같은 거대당에서 재빨리 녹색정책으로 선회하겠지요. 탈원전도 그렇게 이루어졌으니까요. 타이밍에 따라 녹색당이 크게 뜰 수도 있고 소수당으로 남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게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녹색당은 선각자, 선구자의 역할을 충분히 해냈고 독일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으니, 일관되게 독일 녹색당을 지지해온 저로서는 대단히 뿌듯합니다.

한국의 녹색당도 지금 선구자의 역할을 매우 잘하고 있습니다. 환경정책 뿐 아니라 독일 녹색당처럼 인권, 노동권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니 녹색당이 내 건 공약이 조목조목 제 맘에 다 듭니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녹색당의 최고가치는 공생, 상생이니 당연한 일이겠지요. 자연과 인간이 상생하자는 주의 아래, 인간과 인간이 상생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어요?

당장 집권할 당을 뽑는 것만이 선거의 의미는 아니라고 봅니다. 국가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잡은 정당을 선택해 민의를 보여주는 것도 대단히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독일에서 거대정당이 결국 녹색당의 정책을 가로챘지만 그럼 어떱니까? 그래서 독일이 살기 좋은 나라가 된다면야. 한국의 정치인들이 패권주의에 사로잡혀 녹색당에 출마했을 리는 없으니 그들이 지금 바라는 바는 단 하나,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향을 잡아주는 선구자의 역할일 것이라 믿습니다.

지금 선거기간을 맞아 자기가 지지하는 당을 위해 한 마디 보태는 시민의 의무를 다하고자 자판을 두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