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에 저질렀던 죄를 반성하고 있는 독일과 유럽
18세기 후반부터 유럽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의 바람을 타고 독일은 흐르는 강을 막거나 변형시키는 공사를 대대적으로 벌였다. 강을 막아 배를 띄우고 전기를 일으켜 공장을 돌렸다. 독일연방공화국을 구성하는 16개 주의 하나인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는 2차 대전 이후 독일의 정치, 경제, 사회를 이끌어 온 중요한 지역이다. 독일 뿐 아니라 유럽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이 주에는 냉전시대 서독 수도 본과 대성당으로 유명한 쾰른이 위치해 있고, ‘라인 강의 기적’으로 한국에 알려진 독일 경제부흥의 대명사 루르 공업지대가 한때 라인 강을 따라 늘어서기도 했다. 현재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 정부는 독일연방정부의 정책에 따라 강의 생태계를 해치는 요소들을 제거하고 강을 자연상태로 되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독일 정부에서는 수력발전용 댐과 보를 강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가장 위험한 ‘테러 분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전에는 몰랐지만 뒤늦게라도 환경을 파괴하는 원인이 파악된 이상, 이를 철거하고 강을 자연상태로 복구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정부와 정부 측 주장을 지원하는 연구자들은 4대강에 보(사실상 ‘댐’이다)를 설치하는 길만이 선진국 치수 스타일을 모방하여 홍수를 방지하고 온 국민이 잘살게 되는 길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박석순 이화여대 환경공학 교수는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은 오래 전부터 강의 기능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하는 것을 국토관리의 최우선으로 삼았다. 강을 준설하고 정비했으며, 수많은 보를 세웠다. 현재 미국 미시시피•오하이오 강 등에는 186개의 보가 있으며, 유럽에는 다뉴브 강에만 69개나 있다. (서울신문2009년 11월 11일자)”고 소개하며 선진국 스타일로 가자고 주장한다.
또 박재광 미국 위스콘신대학 건설환경공학과 종신교수는 정부 4대강사업 홍보 블로그 지식인 칼럼에서 “유럽의 하천은 70~80%가 이미 인간에 의해 변형되어 왔기 때문에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국민의 욕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라인강, 다뉴브강 등은 과거와 같이 제방과 준설을 통해 홍수를 통제하고 있다.”고 썼다.
두 박 교수 말마따나 선진국들이 오래 전부터 강을 준설하고 강에 수많은 보를 세운 것은 사실인 모양이다. 그러나 두 교수가 모르고 있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다. 독일에서라면 준설과 보에 관한 일을 이미 ‘오래 전’부터 반성해 왔고 더이상 제방과 준설을 통해 홍수를 다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 독일 정부에서는 뒷날 닥칠 재앙을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강물을 막아서 편한 대로 이용하기만 했던 것을 반성하고 강물에 가로 놓였던 보를 터뜨리고 있다. 그것만이 자연의 복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인식, 인간이 자연을 지배할 수 있다고 믿은 구시대의 착오에서 벗어나 자연과 공존하는 것만이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사실 이는 독일 뿐 아니라 유럽 전체의 인식이자 깨달음이며, 유럽공동체 EU의 하천정책으로 굳어져 있다.
<번역연대>에서는 지나치게 구식 정보에 의존해서 ‘선진국 스타일’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는 한국 4대강 ‘전도사’들에게 현재 독일 정부가 어떤 반성과 결단을 하고 있는지 알려 주고 싶어서 독일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 환경•자연•농업•소비자보호부가 2005년 발표한 보고서 「가로물막이와 수력발전용 구조물이 강의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http://hanamana.de/dul/post/151/ 를 번역했다. 이 보고서는 재독한인아고라에서 익명의 네티즌들이 참여하여 초벌번역한 후 번역연대가 검토하고 다듬었다. 시민들의 협동작업으로 번역글이 탄생한 것이다.
####강물이 흐르지 못하도록 막아 가두면 강과 강변 생태계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막아놓은 강이 일으키는 피해를 적나라하게 정리한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 정부의 보고서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한국의 현실과 미래를 제대로 들여다 보기를 기대한다. 보고서 내용은 특별하면서도 특별하지 않다. 특별한 것은 정부가 생태계 복원에 발 벗고 나서서 보고서를 내면서까지 반성하고 연구하는 태도이다. 특별하지 않은 것은 ‘고인 물은 썩는다’는 상식을 증명한다는 점이다. 그럼 보고서의 내용을 검토해 보기로 한다.
####강물이 막히면 더 썩고 더 넘친다
흐르던 강을 보나 댐으로 막아 놓으면 물속에서 여러가지 변화가 일어난다. 보고서는 먼저 강물이 고였을 때 생기는 생태계 변화를 설명한다. 어떤 이유로든 강물을 가두는 순간 강물이 흐르는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울도 없어지고 깊은 데도 없어져 강바닥은 편평해지니 물이 잘 흐를 수 없음은 물론이다. 물살은 약해져 자갈과 모래를 운반하는 힘이 약해진다. 강바닥이나 강변 등에 형성되던 소규모 미소서식지(Micro-habitat)와 강의 구간별로 나타나거나 여울 단위로 형성되던 중간서식지(Meso-habitat) 생태계도 파괴된다.
강물이 잘 흐르지 못하면 토사는 ‘고이는’ 물속에 쌓이고 강바닥은 높아진다. 이렇게 되면 처음보다 많아진 토사를 시간 맞춰 퍼내야 한다. ‘준설’이라는 이름으로 강바닥을 청소하는 것이다. 그런데 강바닥을 준설하면 이전에는 강물에 떠내려가던 온갖 더러운 물질이 함께 파헤쳐져 강물은 형편없이 더러워진다. 그러나 흐르던 강물과 떠내려가던 토사는 죄가 없다. 가로막으니 멈출 따름이다.
강 하류에서는 기다리던 토사가 떠내려 오지 않으니 강물이 하릴없이 강바닥을 깎아낸다. 이 문제는 다시 장마철 홍수와 관련되지 않을 수 없다. 깎여나간 강바닥 부피만큼 강물이 쏠려 더 빠른 속도로 흐르기 때문이다.
####고인 물에서 일어나는 물리•화학적 변화
보고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흐르는’ 강을 ‘고인’ 물로 만드는 온갖 장치 중에서 가장 많은 것이 ‘가로물막이’와 ‘수력발전용 댐’이었다. 보고서는 규모에 관계없이 강물을 가로막은 ‘가로물막이’나 ‘수력발전용 댐’이 강물에 화학적 변화를 일으킨다고 경고한다.
물이 역동적으로 흐를 때보다 잔잔하게 고여 있을 때 수면은 햇볕에 더 쉽게 데워진다. 따라서 물을 막으면 수면 온도가 올라가 찬 물에 살던 생물은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다. 고인 물은 흐르는 물보다 오염처리능력이 떨어진다. 따라서 비료나 축산오물이 흘러들어 부영양화된 강물이 보에 막혀 고이게 되면 pH 수치가 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고여 있던 탓에 수온과 pH 수치가 모두 높은 물이 보를 벗어나 하류로 흘러가도 수질은 금방 회복되지 않는다. 보로 막은 윗구간에서 일어난 물리•화학적 변화가 보를 넘어 흘러내린 후 정상화되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심지어 땅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차가운 물로 채워진 상류 계곡의 댐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나 강물이 보를 넘어 하류에 이를 때까지 악영향을 미친다. 게다가 강물이 비료나 축산오물로 부영양화되면 가뜩이나 산소가 부족한 물이 방출되어 보 너머 하류구간의 산소결핍은 더 악화된다. 산소결핍으로 죽음과 멸종을 부를 수 있다.
강물이 소용돌이치며 역동적으로 흐르면 대기와 접촉하는 표면적이 늘어나 산소를 많이 품을 수 있지만, 고인 물에서 대기와 접촉하는 표면적은 고정되기 때문에 산소를 대량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물이 산소를 머금지 못하면 어느 정도의 오염물질을 극복하고 스스로 맑아지는 자정능력이 떨어진다. 설상가상으로 고인 물 바닥에 가라앉아 쌓이는 오염물이 썩는 과정에서 대량의 산소가 소모된다. 이 모든 현상이 한꺼번에 나타나면 강물은 급성산소결핍현상을 일으킨다.
즉, 보로 막힌 강물은 심한 경우 생물이 살 수 없는 죽음의 공간으로 변하게 되고 물고기는 서서히 또는 갑작스럽게 죽음으로 내몰린다. 더 큰 문제는 심하게 오염된 강에 홍수가 일어날 때 발생한다. 보에 막혀 강바닥에 쌓여 있던 오염된 진창이 홍수를 타고 이동하면 수생동물을 멸종시킬 만한 급성산소결핍현상을 대규모로 퍼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에서만 발생하는 문제일까? 그렇다면 이 보고서에 실린 문제는 독일의 강에서만 발생하는 것일까? 그럴 리가 없다. 보나 댐으로 막은 한국의 강에서도 똑같은 문제가 생길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강도 마찬가지다. 독일 정부의 이 보고서는 선진국의 체험 사례로, 다른 나라보다 먼저 자연을 해쳤으나 그 이유를 과학적으로 관찰하고 연구함으로써 자연과 화해하여 자연의 복수를 벗어나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보고서 내용이 우리에게는 낯선 첨단지식일까? 물이 고이면 썩는다는 사실을 한국에서는 모르고 있을까? 그렇지 않다. 4대강 공사를 반대하는 수천 명의 지식인들과 전문가들이 처음부터 목 아프게 말해왔다. 대한하천학회가 만든 만화 「강은 흘러야 한다」에도 이 내용이 나온다.http://www.albummania.co.kr/gallery/view.asp?seq=120210&%20path=100426090706 독일 주 정부의 보고서를 소개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상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재광 교수는 정부 4대강사업 홍보 블로그 지식인 칼럼에서 “비전문가가 전문가 행세를 하면서 국가 정책을 비판하고, 진실과 관계없는 주장이 일방적으로 매스컴에 보도되는 국가는 한국밖에 없을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그리고는 막대한 세금을 들여 흐르는 물을 고인 물로 만드는 시대착오적 공사가 밤을 새며 진행 중인 것을 “21세기의 번영된 한국을 만들기 위한 초석을 마련하는 과감한 시도”로 찬양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또 이런 공사는 독일을 비롯한 선진국에서 지금도 계속 하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있다.
<번역연대>에서 뒤늦게 독일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주정부에서 이미 2005년에 발표했던 보고서를 소개하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박재광 교수가 “반대측은 보다 논리적인 반대를 해야 한다. 연관성이 없는 외국의 사례를 들면서 마치 4대강 사업이 망국의 길이라는 식의 선동적 반대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고 한 것에 대해 정부와 정부 홍보 도우미 교수들이 좋아하는 ‘외국’의 최신 사례를 통해 박재광 교수야말로 선동에 불과한 이야기를 하고 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것이다.
‘고인 물은 썩는다’는 매우 간단한 진리와 ‘자연의 복수는 자연의 섭리이자 과학이다’라는 매우 현실적인 진리가 상식으로 통하는 사회가 조만간 오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싱그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