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추적 60분>에서 누락된 내용
지난 9월 홍수에 남한강으로 흘러드는 몇몇 지천에서 제방 등 강변시설들이 휩쓸려 내려가고 여주읍 연양천의 신진교가 무너졌다. 정부는 다리가 노후한 탓이라고 발표했지만, 어째서 그 지역 너덧 개 지천에서 비슷한 유형의 피해가 동시에 났는지, 어째서 예전에 더 많은 비가 왔을 때는 괜찮을 수 있었는지 설명하지 못했다.
그런데 그 이유를 한 독일인이 설명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4대강공사의 모델로 삼았다는 독일의 공무원으로 평생 국책 하천공사의 후유증을 진단하고 예측하는 일을 해 온 헨리히프라이제 박사다. 박사는 작년 가을 4대강공사 현장을 직접 조사했다. 그는 KBS <추적 60분> 취재진에게 그 조사결과와 지난 9월 홍수 자료(유속, 수심, 홍수위, 강우량)를 종합하여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그러나 그 내용은 방송되지 못했다. ‘윗선’의 방해로 결방을 거듭하다 가까스로 방영된 <추적60분> “사업권 회수 논란, 4대강의 쟁점은?”편의 최종 편집에서 박사의 인터뷰 대부분이 누락되었기 때문이다.
“강을 준설해서 깊게 만들면 강은 스스로 변형하여 사람이 통제할 수 없게 됩니다. 다음 번 대홍수로 인한 수해는 이미 예정되어 있는 셈입니다”며 말문을 그는, 매우 위험한 ‘역행침식’ 현상이 한국의 4대강 본류를 통해 지천들로 거슬러 올라가며 현재 진행중이라고 진단했다.
‘역행침식’이란 강바닥과 강기슭이 끊임없이 저절로 무너져 내리는 침식이 상류 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확산되는 현상을 말한다. 강 본류의 수위가 어떤 이유로든 낮아지면, 본류로 흘러드는 지천 수위와 낙차가 커져서 물이 더 빠르고 세차게 떨어지면서 강바닥과 강기슭을 파괴하게 된다. 일단 파괴가 시작되면 또 다른 낙차와 파괴를 유발한다. 결국 이런 침식현상이 강 상류 쪽으로 서서히, 모래강일 경우 빨리, 퍼져나가게 된다. 결국 지천과 본류가 합류하는 지점에서 일어난 침식은 본류와 지천을 타고 올라가며 전국적으로 퍼진다.
붕괴된 신진교는 지천(연양천)과 본류(남한강)가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했다. 동시에 근처에 있는 네 개 지천의 본류 합류지점에서 다리와 제방을 받치는 지반이 허물어져 떠내려갔다. 강바닥에 축구장 두 개 크기로 새로 깔았던 돌무더기 하상보호공도 그 아래 지반과 함께 쓸려내려갔다. 4대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지천은 전국적으로 367개가 된다고 한다.
역행침식의 독일 사례
150년의 하천공사 역사를 가진 독일에는 역행침식 현상과 관련하여 어떤 경험이 축적되어 있을까?
10대 시절 나는 라인강 중류에 위치한 본(Bonn)의 교외에서 살았는데, 집 앞에 작은 시내가 졸졸 흘렀다. 시내는 폭이 1m쯤 되고 종아리가 잠길 정도로 얕아서 나는 껑충 뛰어넘기도 하고 옆집 아이와 물장난 치며 놀기도 했다. 그런데 그 작은 시내가 라인강으로 흘러들면서 큰 사고를 냈다는 사실을 헨리히프라이제 박사의 인터뷰에서 알게 되었다. 지엽적인 집중호우로 그 시냇물이 몹시 불어난 상태로 라인강에 흘러들었는데, 마침 라인강 상류 지방에 비가 오지 않아 라인강 수위가 낮았기 때문에 낙차가 생겨 물이 폭포수처럼 떨어졌다고 한다.
박사는 “소용돌이치며 떨어지는 거대한 물의 힘에 의해 역행침식 현상이 느닷없이 순식간에 조용히 발생”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라인강변에 쌓은 돌벽과 산책로가 바로 붕괴되어 떠내려갔고 인근 주민들도 긴급히 대피했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낙차는 1.8m에 불과했다. 신진교가 무너질 당시 그 지역 남한강 수위는 4.91m 낮아져 있었다. 4대강공사로 준설했기 때문이다.
역행침식 현상은 주민의 생명과 재산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재앙이다.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본 시는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을 라인강 깊숙히 설치해 그 합류지점을 보강했다. 그 작고 얕은 시내가 본류로 유입되는 지점을 보강하는데 거의 50만 유로(7.5억 원)의 건설비가 들었다고 한다.
박사가 소개하는 또 다른 사례 역시 라인강에서 발생했다.
라인강 중류 라인가우(Rheingau) 구간의 뱃길 수심을 약간 깊게 하기 위해 뱃길을 좁히는 구조물을 만들었는데, 그 결과 물이 강바닥을 깎아내는 침식이 일어나 20-30cm 정도 깊어졌다. 그 결과 라인강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강바닥과 강기슭이 붕괴되기 시작했고 수많은 라인강 지천에서도 침식이 일어났다. 역행침식 현상은 무려 수십km에 걸쳤다. 수많은 강변도로, 다리, 마을이 위험에 처하자 독일정부는 당장 시설보강공사를 벌였고, 큰 돈이 들었다.
“역행침식은 대단히 위험한 현상”이라고 말하는 박사는 그러나, 독일에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확신했다. 이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독일“강의 강바닥 높이를 유지하고 강바닥을 좀 더 높이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추척 60분> 취재진이,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왜 4대강공사를 시작하자마자 침식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는지 물었을 때, 그는 4대강사업의 공법에 문제가 있다고 답했다.
“강 에 보를 설치하기 이전에 먼저 강바닥을 준설했기 때문에 재앙이 일어날 준비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순서가 매우 좋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런 재앙이 공사 중에 벌써 일어나는 것입니다. … 강바닥을 준설하여 강을 깊게 만들고 나면 공사가 끝난 후에도 침식작용은 저절로 계속 진행됩니다. 이것이 강이 스스로 변화하며 발전하는, 매우 위험한 자가역동 현상입니다.”
비현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공법
그는 보를 연달아 설치하는 공법도 비현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 공법이 초래할 홍수 위험을 강력하게 경고했다.
“홍수가 나서 보에서 물을 방류하게 되면 그 물은 홍수로 지류에서 내려온 물에 추가되기 때문에, 역사에 없었던 홍수위 상승효과가 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현대적인 가동보로 인해 홍수 위험이 오히려 증가합니다.”
홍수가 나면 보가 연달아 설치된 강(본류)은 보가 없는 강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흘러내린다고 한다. 즉, 중·하류 구역 지천에서 불어난 물이 본류를 통과해 바다로 채 빠져나가기도 전에, 본류 상류의 홍수로 불어난 물이 높은 속도로 합류해버린다. 더구나 보를 건설하면서 자연상태인 강변과 범람원이 물을 흡수하고 저장하는 효과는 사라져버렸기 때문에 홍수의 위력은 여러모로 겹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보가 건설된 4대강 주변의 수해는 특히 하류지역을 강타할 텐데, 서울, 부산, 창원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와 공업지대가 집중적인 피해를 입을 것으로 그는 내다봤다. 그리고 그는 4대강공사가 완공된 후 한국에서 일어날 후유증을 감당하기에는 독일의 경제력 정도로도 턱 없이 부족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독일인들은 스스로 저지른 실수를 값비싸게 복구한 경험을 한 덕분에 보 건설은 역효과를 낸다는 사실을 인식했습니다. 우리는 절대로 보를 건설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보를 건설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입니다. 지난 홍수와 같은‘경고 사격’을 받은 즉시 4대강공사를 그만두어야 합니다. 국민경제와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서는 당장 중단해야 합니다.”
이런 헨리히프라이제 박사의 의견은 미국 버클리대의 콘돌프 교수 및 일본 교토대 야마모토 교수의 의견과 일치한다. 하천공사의 후유증을 경험한 나라들의 외국 전문가들 뿐 아니다. 한국의 박창근 교수, 박재현 교수를 비롯한 많은 국내 전문가들도 그간 꾸준히 같은 주장을 해왔다.
나는 4대강사업의 계획과 홍보에 참여하는 국·공립 연구소의 수많은 전문가들도 속으로는 헨리히프라이제 박사의 의견에 동의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3년 전까지만 해도 강을 자연으로 되돌리는 개념에 근거해서 이수와 치수를 연구하고 추진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4대강사업과 정반대였다. 그들은 이명박 정부 아래에서 갑자기 말을 바꾸었지만, 과학기술의 원리가 바뀔 수는 없다.
박사는 한국의 유능한 인재들에게 실력을 발휘할 시간을 주지 않은 채 4대강사업이 너무 성급하고 경솔하게 진행되었다고 안타까워했다.
가난한 사람에게 가혹한 환경재앙
대다수 국민들도 4대강사업을 불안하게 보고 있다. 어떤 이들은 다음 선거에서 보자고 벼르고 있다. 하지만 4대강공사의 피해는 선거를 통해 되돌릴 수 없다. 나중에 책임자들에게 아무리 많은 벌금을 물리고 아무리 오래 징역을 살려도 전국적으로 변질되고 파괴되는 환경은 결코 되살릴수 없다.
그나마 독일의 하천공사는 150년에 걸쳐 진행되었기 때문에 부작용이 생길 때마다 그때그때 대책을 세워 막을 수 있었지만, 전국에 걸쳐 단기간에 밀어부치는 4대강공사는 이 모든 부작용을 한꺼번에 초래할 것이다. 부작용과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독일인들은 150년 전에도 역행침식의 무서움을 알아서 절대로 피했던 대규모 준설까지 겹친 4대강공사. 이 공사가 불러일으킬 재앙의 수준을 예측할 경험치가 지구상 단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도 시시각각 변형되어가는 한국의 강을 생각하면, 시간 가는 것이 무섭다. 의사가 오진으로 환자를 마구 해치고 있는데 얼른 메스부터 빼앗아 환자를 살려야지, 나중에 고발하겠다고 인증사진만 찍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사람들은 자기 돈 10만원만 빼앗겨도 억울해서 잠을 설치지만, 미래의 환경재앙에 대해서는 별로 위기감을 느끼지 못한다. 모두에게 골고루 분포되는 어떤 추상적인 현상이라고만 상상한다. 그러나 환경 재앙은 물, 공기, 음식 등 생존에 필요한 기본 품목의 질을 떨어뜨리고 값을 올려 개개인의 삶이 고단하고 피폐해지는, 개인에게 직접 피해가 가는 현상이다.
더구나 홍수 같은 재앙은 불공평하고 무작위적으로 닥치기 때문에 당한 사람의 입장에선 무척 억울하다. 더욱 억울한 점은, 환경 재앙을 유발하는 사업으로 돈을 번 부자들은 재앙이 일어나도 돈의 힘으로 피해갈 수 있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속절없이 피해자가 된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돈을 번 부자들은 재앙을 이용해 또 돈을 벌면서 세력을 더욱 탄탄히 키운다. 돈과 권력에 대한 중독성이 강해서 자기 물건이 아닌 국토를 팔아 공짜로 돈 먹는 이런 사업은 아무도 자발적으로 그만두지 못한다.
사대강사업의 역사청산
국민은 세금과 국토를 좀 먹는 4대강공사를 막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논리가 아닌 힘에 밀려 미리 막는데 실패했다. 국민의 자긍심에 커다란 상처가 남았다
환자의 생명을 무시하고 엉터리 수술을 집도한 의사를 고발하고 벌해야 한다. 복수가 아니라 재발방지 차원에서 반드시 해야 한다. 그래야 뻔뻔한 한탕주의가 대한민국 역사에서 사라진다.
수술을 도운 수련의들도 책임을 져야 한다. 오진인 줄 알면서 동조했건 모르고 복종했건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정말 몰랐다면 그들에게 의사로서 자질은 없다. 그래야 그때만 잘 넘기면 되는 기회주의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사라진다.
독일의 학교는 히틀러 시대 침묵하고 동조했던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나치 범죄의 주요 공범이라고 가르친다. 6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강제수용소 하급간수처럼 하찮은 역할이라도 그 죄질이 인정되면 세계 어디서든 찾아내어 90세 노인이 되어도 법정에 세워 책임을 묻는다.
이렇게 개인에게 자기 행위에 대한 실질적인 책임을 지워야만 그런 역사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부도덕한 행위에 동참하여 이익을 보고도 당시의 적법성이나 사회분위기를 핑계로 면죄받는 나라에서는 그런 역사가 계속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전국토에 역행침식 현상이 퍼지고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한다. 언론 탄압에 앞장서는 인사들과 4대강사업에 엉터리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학자들 때문이다. 훗날 이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학자들이 권력기관에 맞춤형 연구결과를 제공한 댓가로 받은 연구비를 환수하는 법을 청원하자는 정인걸 교수의 제안에 나는 적극 찬성한다(정인걸 교수 블로그 보기).
지금 현재도 한반도의 크고 작은 강들이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며 무너져내리는데, 한편에서는 중장비가 이에 질세라 열심히 강을 파헤치고 있다. 이 절박한 순간에 나는 무기력하게 앉아서 과거와 미래를 논하는 글이나 쓰고 있다. 착잡하다. 그리고 무섭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 환경과 미래를 팔아 정권을 유지하는 토건국가의 고리를 결단코 끊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정당은 없는가?
(번역연대에서 수일 내에 헨리히프라이제 박사의 인터뷰 전문을 공개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