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1, 2011

(우리의 글) 자연이 자연답고,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공간

살다 보면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공간에 대한 평가가 변한다. 예전에 근사하게 여겨졌던 공간이 갑자기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나와 전혀 상관 없을 것 같던 공간에 유난히 자주 발길이 닿는 일도 생긴다. 아이를 낳아 길러본 사람들은 이런 경우를 경험했을 것이다. 암만 멋있고 예술성이 있다고 소문난 곳이라도 데리고 간 아이들에게 불편한 공간이면 금방 자리를 뜨는 수밖에 없다. 별볼일 없는 장소라도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동 시에 남에게도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마음이 편해서 자주 찾게 된다.

십여년 전에 우리 가족은 독일 칼스루에에서 뮌헨으로 이사 왔다. 뮌헨은 내가 소녀시절에 전혜린의 ‘그리고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를 읽은 이후로 줄곳 동경해온 도시고, 유럽에서도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히고 있지만 이사를 결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당시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들 때문이었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면 뭐하나, 아이들에게 좋아야지. 우리 부부는 뮌헨에서 아이들의 교육에 좋은 동네를 알아보러 다녔다. 우리에게 있어서 교육에 좋은 동네란 세칭 좋은 학교가 있는 학군이 아니었다. 어린이 특유의 호기심과 창조력이 발산될 수 있는 공간, 어린이의 타고난 본성이 어른들에게 방해로 느껴지지 않을 만한 공간, 즉 어린이와 궁합이 맞는 공간이 있는 동네였다. 어린이와 궁합이 맞는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 뮌헨이라면 우리에겐 결코 살기 좋은 도시가 될 수 없었고, 궂이 그런 도시로 이사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뮌헨의 도심을 관통해서 흐르는 이자르 강변을 보는 순간 남편과 나는 눈을 마주쳤다. 너르게 깔린 하얀 자갈밭 위를 굽이쳐 흐르는 강물은 여기저기에 모래톱과 웅덩이를 만들어 놓았다. 사람과 동물이 물에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자연형 기슭, 즉 강물이 끌고 내려오는 자갈이나 모래가 쌓인 ‘하얀 강변’이었다. 은버드나무들이 사람으로서 이유를 알 수 없는 위치에 엉거주춤 서 있었고, 잡초와 덤불도 제맘대로 무리를 지었다. 지난번 홍수에 떠내려왔음직한 통나무가 그대로 걸려 있는 이 장소에서는 꼬마들이 마음대로 도랑을 파거나, 나무에 올라가거나, 덤불 가지를 꺾어서 배를 만든다 하더라도 그것을 싫어할 사람도, 그럴 이유도 없어 보였다. 아이들이 타고난 본성에 충실해도 사회에 방해되지 않는 공간, 자연이 자연답고 아이가 아이다울 수 있는 공간이었다. 드디어 우리는 아이들과 궁합이 맞는 공간을 찾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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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르 강의 하얀강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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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사업으로 사라진 남한강의 하얀강변 ©최병성

우리가 먼저 살았던 도시 칼스루에는 라인강 옆에 위치해 있었다. 거기에는 ‘하얀 강변’이 아닌 ‘푸른 강변’이 있었다. 푸르른 수목으로 조성된 둔치는 가파르게 쌓은 돌벽을 경계로 대번에 깊어지는 강물과 반듯한 선으로 맞닿아 있었다.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강이었지만 현대 도시의 강은 오로지 눈으로만 즐기는 대상이려니 여기며 우리는 너르게 넘실대는 강물과 맞닿은 푸른 수목을 보며 좋아했다. 꼬마들이 유난히 즐기는 토목 건설 놀이는 모래밭에 펌프를 설치한 특별한 놀이터에서만 노는 것인 줄 알았기 때문에 나는 라인강을 보면서도 아쉽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이자르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집을 얻은 우리는 시간만 나면 강변으로 놀러갔다. 아이들은 자갈밭에 도랑을 파고 강물을 끌어들여 수로와 호수를 만들었다. 댐도 만들고 배도 띄웠다. 며칠 후에 지나가면서 보면 다른 아이들이 와서 놀았는지 수로가 엄청나게 길게 연장되어 있었다. 강변 숲에 컨테이너 하나만 놓고 유치원 인가를 받아 숲속이나 강가에서 하루를 보내는 고물고물한 꼬마들이 와서 자갈에 정성껏 물감을 칠하기도 했다. 그 옆에선 오리와 새 떼들이 먹이를 찾느라고 고개를 물속에 쳐박고 엉덩이를 하늘로 흔들고 있었다. 지난 홍수에 떠내려온 나뭇가지들을 얼기설기 엮어서 작은 오두막집을 짓고 그 옆에는 해바라기를 심어 놓은 것도 보았다. 우리 딸은 틴에이저가 되더니 저녁마다 이자르 강변으로 간다며 화장을 하고 나갔다. 어느날 보니까 강변 자갈밭에 남녀 청소년들이 미팅하듯이 빙 둘러 앉아서 대화하고 있었다.

어린이나 청소년에게 자연스럽게 장소를 제공하는 공간은 어른들에게도 유용하다. 이자르 강변에는 바베큐가 허락된 곳이 몇 군데 있는데, 날이 좋은 주말에는 자갈밭 곳곳에 생맥주를 통째로 강바닥에 박아놓고 숯불을 피워 소시지를 굽는 파티족들이 진을 친다. 이때 해가 지기 전에 자기가 초대받은 파티를 찾아가야지 안 그러면 이튿날 동이 터서야 모르는 사람의 파티에서 밤새도록 먹고 마시며 놀았다는 것을 알아채는 일도 다반사라고 한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환경에서는 인간의 심성도 너그러워지는 듯하다. 1970년대에 독일에서 최초로 도심 나체족이 출현한 장소가 바로 뮌헨의 이자르 강변인 것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알프스의 얼음물이 녹아흐르는 강물과 뜨겁게 달아오른 자갈밭과 은버드나무가 있는 곳에선 사람도 자연의 일부로 변하는지 어느새 이자르 강변에는 나체로 활보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그런데 사람 사는 곳에는 나체를 부끄러워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인지라 어느새 이자르 강변에는 나체 구역이란 게 따로 생겼다. 무슨 구역이라고 해서 경계선이나 표지판이 따로 있는 건 아니고,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 차원에서 벗고 싶은 사람은 대략 그 장소에서 벗고, 나체를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은 대략 그 장소를 피해서 일광욕을 즐기는 것이다.

자연적으로 형성된 공간은 개인의 특성에 좀 더 관대하다. 어차피 울퉁불퉁하고 불규칙적인 공간에선 꼬마가 풀을 밟던 땅을 파던 웬만큼 개인적인 행동은 남에게 방해가 되기는커녕 남의 눈에 띄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 공으로 조성된 공원에서 그림처럼 가꾸어놓은 화단에 아이가 들어가 꽃을 밟으면 누구라도 금방 눈살을 찌푸리게된다. 그런 공간은 규칙에 맞춰 일률적인 행동을 할 것을 인간에게 요구한다. 인공적인 공간에선 누군가 정돈된 상태를 흐트러뜨리면 다른 사람이 그것을 다시 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공공의 피해로 돌아간다. 하지만 두꺼비도 맘대로 집을 짓는 자연적인 공간에선 아이들이 강변 땅을 파거나 말거나 그것이 질서에 어긋나지도 않을 뿐더러 어차피 다음번 홍수 때에는 자연에 의해 깨끗하게 다시 정리되기 때문에 옆사람이 나서서 흥분할 거리가 되지 않는다.

건축을 하거나 사람을 위한 환경을 만드는 전문가는 인간의 본성을 잘 파악해야 사람에게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는데, 이때 아이들이 본능적으로 편안해하는 공간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면 큰 도움이 된다. 공간이 요구하는 질서를 지키기 위하여 아이들에게 끊임 없이 잔소리하고 감시해야 한다면 그것은 어른에게도 불편한 공간이다. 어른들은 일찌기 적응한 탓에 못 느껴서 그렇지 인간에게 그다지 이롭거나 창조적이지 않은 공간이다.

독일은 어린이를 위한 복지 정책도 잘되어 있고 어린이 인권도 많이 배려하는 나라지만 나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아이를 키우기에 그리 좋은 사회는 아니다. 독일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친절하고 인격적으로 잘해주는 편이지만 이때 늘 ‘아이가 어른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단서가 붙는다. 요즘은 동물원의 동물에게도 고유한 본성에 맞는 환경을 제공하려고 노력하는 세상인데 아이가 아이답게 굴면 별로 안 좋아하고 아이가 어른처럼 굴기를 요구하다니 어불성설이다.

독일에서도 소문난 여피 도시 뮌헨에 이렇게 자연스럽고 자유스러워서 어린이와 궁합이 잘 맞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자르 강변은 사람이 행복하려고 인간의 본성을 연구해서 생겨난 공간이 아니라 도시의 범람을 막으려고 과학기술을 연구해서 만들어진 공간이다. 즉 재산을 지킬 목적으로 만든 공간인데 그 방향이 마침 자연에 부합하기 때문에 인간의 본성과 들어맞은 것이다.

자세히 설명하면 이렇다. 강의 범람은 옛날부터 자연스러운 현상이어서 인간은 강 주변의 땅을 홍수터로 너르게 비워두었다. 강은 원래 수많은 잔가지를 만들며 구불구불 흘렀고, 홍수가 나서 강 주변이 다 물에 잠겼다가 물이 빠지고 나면 엉뚱한 곳에 새로 물길이 나 있곤 했다. 인간은 수만 년 동안 강을 이용하면서도 강의 본성에 적응하며 살았는데 19세기에 유럽에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인간과 강 사이에 변화가 생겼다. 도시의 인구가 급증하자 인간은 강변에 홍수터로 비워둔 땅을 활용할 궁리를 하게 되었고, 산업혁명으로 발달한 과학기술의 힘으로 강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독일에선 이미 150년 전에 갈래진 강물을 한줄기로 모아 둑을 쌓아 안전하게 가두어 뱃길로 활용하고 수력을 이용하고 둑으로 보호된 강변 땅을 경작지나 주택지로 전용했다.

너르고 얕게 퍼져 흐르던 자연하천을 직강화해서 한줄기로 만들면 갇힌 물의 힘이 바닥을 쳐서 강바닥이 점점 깊어지는 현상이 생긴다. 그러면 강물과 수위를 함께하는 지하수위도 덩달아 내려가서 주변 토지가 사막화된다. 그를 막기 위해 인간은 다시 강바닥을 강화하는 공사를 벌였다. 공사 후유증을 인공구조물로 막고, 또 거기서 파생하는 후유증을 좀 더 발달한 과학기술의 힘으로 막다보니 독일에는 보를 짓는 기술, 갑문을 짓는 기술이 축적되었고 독일의 강들은 점차 인공구조물로 얼룩진 인공의 강으로 변했다.

인간이 최초로 강에 손을 대어 자연에 도전한지 100여년이 지난 1970년에 독일에선 지금 인간이 자연을 상대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에 이르렀다. 계기는 라인강의 보 건설이었다. 라인강 상류에 10개의 보를 지은 이후로 100년빈도의 홍수가 이제는 2-3년 터울로 일어난다는 엄연한 과학적 진실 앞에서 독일인은 각성했다.

당 시 보 건설에 자신 있던 한 공학도는 보를 지은 이후로 홍수의 양상이 달라졌다는 주민들의 관찰에 호기심을 가지고 귀를 기울였다. 정부에서는 이상기후를 탓했지만 그 공학도는 보가 자연의 균형을 파괴하여 홍수를 초래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에 이르렀다. 외부의 압력에도 지식을 배반하지 않는 학자들의 도움으로 시민들은 끈질기게 투쟁하여 이미 계획되어 터까지 정해졌던 보 건설을 취소하게 만들었고, 급기야 인공하천을 자연으로 되돌리려는 눈물겨운 노력이 시작되었다. 하천을 인공으로 개조하는 공사는 쉬웠지만 자연으로 되돌리기는 너무 어려웠다. 100년이 지나는 사이에 지하수위가 내려가고 물이 빠진 강변 토지는 이미 임자 있는 땅이 되어 있어서 그 땅을 홍수터로 확보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독일어로 Aue라 불리는 홍수터(범람원)란, 강 양쪽에 있는, 강물이 불고 줄어듬에 따라 물에 잠겼다 말랐다 하는 상태를 반복하는, 강과 운명을 함께하는 땅이다. 강변 땅을 강에게 내맡겨두면 그 땅에는 어느새 300일 이상 뿌리가 물에 잠기거나 150일 이상 바짝 가물어도 죽지 않는 초목이 절로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은버드나무같은 전형적인 홍수터 초목들은 성격에 따라 때로는 깊게, 때로는 넓게 뿌리를 내려 서로를 단단히 얽는다. 홍수가 나도 쓸려내려가지 않고 홍숫물을 거스르며 유연하게 버팀으로써 물의 속도를 줄인다. 그렇게 하여 물이 불어나는 속도를 늦추고 강변 땅이 깎여나가지 않게 보호하며 홍숫물을 머금는다. 홍수기에 그렇게 저장되었던 물은 나중에 갈수기가 왔을 때 서서히 강과 대지로 반환된다. 물에 잠겼다 바짝 마르기를 반복하는 홍수터의 땅속에는 미세한 공기 구멍이 존재하여 지하수에 산소를 공급하기 때문에 지하수의 질 또한 좋아진다.

유럽 최대 물동량을 자랑하는 수로인 라인강과는 달리 산악하천인 이자르강은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 진행된 덕분에 다행히도 일부 구간에 홍수터로 복원할 수 있는 땅이 좀 남아 있었다. 그래서 총 3500만 유로를 들여 10년 동안 계획하고 11년동안 공사를 벌여서 도심구간 8 km 에 걸쳐 홍수터를 복원했는데, 이 홍수터가 바로 아이들과 궁합이 맞는 공간, 최고 놀이터이자 최고 교육의 장인 하얀 강변, 하얀 자갈밭인 것이다.

기술강국 독일에서 최신의 과학기술로 연구해낸 가장 저렴하고 효과적인 홍수 방지법은 결국 자연을 이용한 방법, 즉 홍수터의 복원이었던 것이다. 애초에 홍수를 막으려는 목적이었지만 자연에 부합하다보니 어느새 인간의 본성과도 부합하는 공간으로 태어난 점은 건축을 하는 사람으로서 주목할 만하다.

이자르강 재자연화공사는 세계적인 성공사례로 꼽히며 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 인도에서도 끊임 없이 견학단이 오고 있다. 지난 3월에 심명필 4대강추진본부장도 독일 수자원청을 방문하여 이자르강 복원현장을 견학하고 갔다. 독일에선 이미 30년 전에 무너진 라인강의 신화를 되풀이하는 사대강사업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그는 이자르강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법정에서 정부측 증인이 ‘이자르강은 보를 비롯한 인공구조물 덕분에 수질이 좋고 홍수가 나지 않는다’고 증언한 것이 거짓말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챘을까?

라인강변 주민들의 관찰에 귀를 기울여 보의 폐해를 깨끗이 시인하고 주민들을 도와 라인강에서 향후 보 건설을 영원히 추방한 예의 그 공학도는 훗날 교수가 되었고 라인강을 비롯하여 많은 강의 재자연화공사에 참여하여 오 늘날 세계적인 홍수 전문가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한스 헬무트 베른하르트 교수다. 그는 4대강공사 이전의 남한강, 낙동강의 사진을 보며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이렇게 완벽한 상태의 강을 우리 독일에서는 꿈도 꿀 수 없습니다.” 그는 곧 한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그가 특별히 감탄했던 낙동강의 하얀 강변은 그 사이에 인공적 푸른 강변으로 대체되었다. 자연이 자연다워서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는 공간이 한국에서 하루하루 사라지고 있다.



(공간사에서 출판하는 건축전문지 Space 9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후일담

그 사이에 베른하르트 교수가 한국에 다녀왔다. 한국의 4대강 현장을 돌아본 그는 공개석상에서 눈물을 감추지 못할 정도로 참담해했다. 그는 한국 국민을 향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의 자연 하천 사진을 보여주며) “이렇게 아름다운 강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강을 어떻게 복원한다는 것인지 자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엔 복원할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너무나 아름답던백사장이 사라지고 사석을 설치하고 둔치에 맞지 않는 나무가 심어져있습니다. 환경을 빙자한 돈벌이가 4대강사업의 핵심 문제라고생각합니다.”
“(4대강사업으로 인해) 보가 연쇄적으로 설치될 예정이고 그에 따라 수위도 계단 형식을보여주는데 (이는) 운하의 전형적인 특징입니다.”
“독일에서도 불행하지만 똑같은 잘못을 저지른 적이 있습니다. 다뉴브강에 사석을 쌓고 제방을 덮었습니다. 그때 내걸었던 슬로건이 ‘자연과기술의 조화’였습니다. 4대강이 이를 본뜬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정부가 강을 훼손하는데 왜 막지 못했습니까? 아직도 늦지 않았습니다. 이 재앙을 막기 위해 더 싸워야 합니다.”
“지금 4대강사업의 현실은 12시를 2분 정도 넘긴 상황이지만 바로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나는 4대강공사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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