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에너지기구(IEA), 독일 탈핵정책 지지로 돌아서
독일 탈핵을 반대해왔던 IEA, <2013년 독일보고서>에서 입장 바꿔
2013년 5월 22일자 독일의 유수 시사잡지 슈피겔 인터넷판은 그동안 독일 정부의 탈핵정책을 강하게 비판해온 IEA가 <2013년 독일보고서>에서 독일정부의 탈핵 에너지정책을 지지했다고 전했다. 슈피겔이 보도한 기사 내용을 요약해서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IEA는 <2013년 독일보고서>에서 독일이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정책을 통해 탈핵에 성공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IEA는 에너지 관련 기술의 연구, 발전, 응용을 위해 28개 경제선진국이 참여하는 국제기구다. IEA는 그동안 재생가능에너지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고 원유가격은 크게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그러나 이번 보고서를 통해 “독일이 2000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재생가능에너지 기준가격 매입제도(FIT)‘가 독일 전역에서 성공을 거두면서 재생가능에너지원에서 생산된 전기의 생산단가를 낮추는 결과를 이끌어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독일의 탈핵정책을 찬성하는 쪽으로 입장을 급선회한 것이다.
지난 2000년 독일정부(사민당-녹색당 연정)는 2020년까지 독일의 모든 핵발전소 가동을 중단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이 결정에 대해 당시 IEA는 ‘정상적인 기후 유지’와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 및 ‘낮은 단가의 전기생산’을 위협한다는 이유를 들어 독일정부에 탈핵정책을 재고하라고 촉구했다.
2010년 독일정부(기민당-자민당 연정)는 지난 정부의 정책을 뒤집어 핵발전소 수명연장을 단행했으나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직후 독일 국민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고, 2022년까지 모든 핵발전소 가동을 중지하는 수정안을 마련했다. 이때도 IEA 사무총장인 마리아 판데르후번(Maria van der Hoeven)은 “독일의 탈핵이 유럽 전역의 전기 생산단가를 높인다”며 반대의사를 밝혔다. 지난해 2012년에는 IEA의 수석 경제전문가 파티 비롤(Fatih Birol)이 “독일의 탈핵 수정안은 합법적 의사 결정과정을 거친 정책이지만, 독일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늘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런데 이 IEA가 <2013년 독일보고서>에서 “독일은 2015년까지 전력 예비율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1990년 기준 독일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20년까지 40% 감소시키는 훌륭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며 독일의 에너지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지금까지의 입장을 뒤바꾼 것이다. 이 보고서에서 IEA는 “독일의 전기요금이 상승할 가능성”을 여전히 우려하고 있지만, “독일정부가 에너지전환 정책에 소요되는 예산을 확보하는 동시에 이 정책으로 발생하는 이익을 독일국민에게 돌려줄 수 있다면 탈핵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이상 슈피겔 기사 요약)
한국정부의 탈핵정책은?
위의 슈피겔 기사가 전하는 IEA의 입장변화는 크게 두 가지 시사점을 갖는다. 우선 탈핵에 비판적이었던 IEA가 독일 탈핵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국제사회에서 국제에너지기구(IEA)는 국제원자력기구(IEAE)와 한 몸이나 마찬가지며 매우 보수적이고 핵에 우호적인 집단이기 때문이다. 이는 탈핵선언 이후 지금까지 독일의 행보가 IEA조차 인정할 수밖에 없을 만큼 성공적이라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그런데 IEA는 독일정부의 에너지정책 중 ‘산업용 전기요금 우대제도’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독일에서 에너지소비량이 가장 큰 분야인 산업분야가 전기요금에 대해 세금감면을 받는 현재의 정책을 수정해서 산업용 전기 소비자가 에너지전환 정책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독일정부에 건의한 것이다.
이 보고서의 두 번째 시사점은 바로 이 비용부담에 관한 것. 지금 독일에서도 쟁점이 되고 있는 재생가능에너지의 비용을 누가 부담할까라는 문제에 대해 IEA가 올바른 답을 한 것이다. 현재 독일에서 에너지 다소비 산업체는 재생가능에너지 확대에 따른 부담을 면제받고 있다. 에너지를 많이 쓰는 기업일수록 혜택이 큰 것이다. 우리나라의 ‘산업용 전기요금 제도’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대기업이 져야 할 부담이 주택용 소비자에게 고스란히 전가되었고 올해 독일의 전기요금은 kWh당 5.27센트 인상되었다.
독일 탈핵정책에 대한 IEA의 결정적인 입장 변화는 한국정부의 탈핵정책 수립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상자글>
‘재생가능에너지 기준가격 매입제도’란 무엇일까?
‘기준가격 매입제도(FIT: Feed-in-Tariff)‘는 ‘발전차액 지원제도’라고도 불린다. 한 마디로, 재생가능에너지의 기술별 생산단가를 법에 명시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누구든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소를 만들 수 있고 안정적으로 전기를 생산하고 판매할 수 있다.
이 기준가격 매입제도가 2000년 이후 독일의 성공적인 재생가능에너지 보급을 견인했다.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햇빛과 바람을 이용하는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시설은 원료비가 안 드는 장점이 있는 반면 설치비가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이런 특성을 고려해서 법(독일의 경우 <재생가능에너지법: Erneuerbare Energie Gesetz>)에서 각 기술별로 전력 매입가격과 의무 매입기간을 명시함으로써 재생가능에너지 발전시설을 설치한 누구도 경제적인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배려한 것.
이 제도는 1978년 미국에서 처음 시행되었다. 독일은 재생가능에너지법에서 태양광 발전을 비롯한 다양한 재생가능에너지 발전기술에 차등을 주어서 여러 종류의 재생가능에너지가 고루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현재 국제사회는 독일의 이 재생가능에너지법을 기준가격 매입제도의 모범사례로 인정한다.
이와 대조적인 제도로 ‘의무할당제(RPS: Renewable Portfolio Standard)‘가 있다. 법에 재생가능에너지의 기술별 매입가격과 매입기간을 명시하는 대신, 이 모든 내용을 정부가 지정한 발전사업자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발전사업자에게 재생가능에너지 비율 의무를 할당하는 형식을 취하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는 목표치 예측이 가능하고 좀 더 저렴한 재생가능에너지 기술이 빠르게 확대될 수 있는 장점이 있는 반면, 정부가 발전사업자를 강제하지 못하면 의무 비율을 달성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2년부터 ‘발전차액 지원제도’라는 이름으로 독일식 FIT 제도를 시행했다가 2012년부터 의무할당제인 RPS 제도로 변경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RPS 시행 첫 해인 2012년, 정부가 부과한 의무량의 64.7%만 달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IEA조차 독일식 FIT가 재생가능에너지를 보급하는 데 비용도 덜 들고 훨씬 효과적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슈피겔 기사 출처
Länderbericht zu Deutschland: Internationale Energieagentur gibt Kritik an Atomausstieg auf.
Von Stefan Schultz
Mittwoch, 22.05.2013 – 19:35 Uhr
http://www.spiegel.de/wirtschaft/soziales/iea-gibt-kritik-an-deutschem-atomausstieg-in-laenderbericht-2013-auf-a-90127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