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투르 복원
한국과 지형이 비슷한 스위스에서는 현재 하천복원이 한창이다. 2011년 제정된 <하천보호법>에 따라 향후 수십 년간 총 4,000km의 강과 개천을 자연상태로 복원할 예정이다. 이미 복원된 하천구간도 400km나 되는데 가장 돋보이는 프로젝트는 ‘투르 복원’이다. 투르 강은 취리히, 상트 갈렌 등 스위스 주요도시를 거쳐 라인 강으로 유입되는 길이 125km의 중형 하천이다.
1874-1893년 투르 강 직강화 공사 이후 갑자기 토사가 많이 쓸려내려와 곳에 쌓이자 강물이 넘쳐나며 홍수가 증가했다. 이후 제방강화 공사와 홍수의 힘겨루기 역사가 시작되었다. 급기야 1977과 1978년 대홍수가 연달아 일어나 곳곳에서 제방이 무너져내리자 정부와 국민은 기존 하천정책를 바꿀 필요성을 절감했다. 1983년부터 투르 강 복원사업은 30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진행되었고 완공구간은 성공적이란 찬사를 받고 있다. 사업은 2020년 완전히 마무리될 예정이다.
‘투르 복원’의 모토는 뮌헨의 ‘이자르 플랜’과 마찬가지로 강이 자유롭게 흐를 공간을 마련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강을 좁게 가두었던 일직선 인공호안을 철거해서 강기슭의 자연스러운 침식을 유도했다. 그러자 강은 넓게 펼쳐져 구불구불 흐르며 여울과 못 등 다양한 모습을 변화무쌍하게 만들어 냈다. 비가 많이 와도 유속이 빨라지지 않고 너른 강폭 안에 머물게 되었고 홍수방지효과는 월등했다. 강변 생태계도 회복되었다. 150년 전 멸종된 것으로 보고된 조류가 되돌아왔다. 복원된 투르 강은 시민들의 생태체험공간이자 휴식공간이 되었다.
투르 복원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기술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였다. 강물이 범람하며 흐를 수 있게 하려면 강변 땅을 확보해야 하는데, 강변에는 이미 사유지가 들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국가에 압수 당한다는 기분이 들어 땅주인들의 반발은 만만치 않았다. 날로 증가하는 홍수의 대위험에서 국민을 지키려는 복원사업의 취지를 국가가 땅주인에게 설명하며 설득하는 일은 긴 시간에 걸쳐 어렵사리 성사되었다. 땅 주인들은 땅을 국가에 팔거나 다른 땅으로 변상받기 보다는 그대로 소유한 채 국가에 한시적으로 빌려주는 방식을 가장 선호했다고 한다.
독일의 라인 프로그램
이런 사회적 쟁점이 더욱 두드러지는 곳은 독일의 라인 강이다. 라인 강은 1,239km에 이르는 서유럽 최대 하천이자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내륙수로다. 옛날에는 라인 강 역시 여러 갈래를 내고 자유롭게 굽이치던 강이었으나 1817년 하천공사 이후 좁고 깊은 통로에 갇혀서 직선으로 흐르게 되었다. 이후에도 줄기차게 이어진 하천개발 및 수로공사로 라인 강은 독일의 경제부흥에 일조했지만 그 반대급부로 홍수 위험은 날로 커졌다.
사행하천을 직선화한 바람에 라인 강 길이가 짧아지며 상류 강물이 중류까지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짧아졌다. 예전에는 홍수가 나면 샛강에서 불어난 물이 한바탕 먼저 내려간 후에 라인 강 본류의 상류에서 불어난 물이 뒤따랐는데, 이제는 샛강과 본류의 홍수가 겹쳐졌다. 합수지역에 사는 내 친구 말에 의하면 주민들은 홍수경보가 나면 모든 가구를 이층으로 옮기고 지하실과 1층을 아예 홍수에게 내주는 생활에 익숙해져버렸다고 한다.
보와 제방의 건설해서 강변 범람원이 사라진 것도 홍수 증가에 한몫했다. 예전에는 물이 불어나면 상류부터 범람하며 물살이 기운을 잃었는데, 이제는 수로에 갇혀 곧바로 흐르는 물에 가속이 붙어 중하류에서 제방을 넘거나 파괴했다. 라인 강 홍수는 1970년대를 기점으로 급증했다. 상류에 줄줄이 10개 보를 건설한 이후 100년만에 한번씩 오는 정도 규모의 홍수가 최근에는 겨우 몇 년 간격으로 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도 홍수를 부추기고 있다.
라인 강 중하류의 수많은 도시, 산업시설, 쾰른 대성당 같은 문화재, 그보다 더 소중한 시민의 재산과 생명을 홍수위험에서 지키는 일은 더 미룰 수 없는 급선무가 되었다. 1982년 라인 강에 면한 국가들은 라인 강변에 되도록 많은 범람지를 조성하는 국제협약 ‘통합 라인 강 계획(IRP)‘을 맺었다. 90%나 사라진 자연 범람원 대신 강 상류에 인공범람지(폴더: Polder)를 조성해서 유사시 많은 강물을 서둘러 빼돌려 중하류 홍수를 막는다는 취지다. 총공사비 7.75억 유로가 드는 대형사업으로 독일쪽 강변에 23개, 프랑스쪽 강변에 2개의 인공범람지가 계획되었다. 그러나 독일 역시 스위스와 마찬가지로 강변 사유지 처리문제에 부딪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 겨우 8개 완공했을 뿐이다.
교훈 -하천복원은 시간을 끌수록 어렵다
몇년 전 내가 라인 강 상류를 찾았을 때 오월의 강변 숲에서는 까맣게 마른 나무가지들이 손만 갖다대도 두두둑 부서져내렸다. 보와 운하 건설의 후유증으로 지하수계가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인근 마을에는 인공범람지 조성을 반대하는 대형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독일 다뉴브 강에서도, 오스트리아의 인(Inn) 강에서도 상류지방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현수막이었다.“범람 반대”, “땅 팔지 않음”.
투르 복원과 라인 프로그램에서 공통된 어려움은, 아니 유럽의 모든 하천복원사업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강변 사유지를 취득하는 문제다. 19세기 중반 직강화 이후 상류쪽 강변에 살아온 사람들이 중하류쪽의 다른 주, 다른 지역 사람들을 위해 자기 땅을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들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며 강력하게 맞서고 있다.
그들은 소유지가 아니라도 인공범람지가 자기 지역에 들어서는 것조차 반대하기도 한다. 인공범람지는 자연범람원과 같은 조건을 동식물에 적응시키기 위해 1년에 도합 25일간 물에 잠기도록 유도한다. 때문에 인근 주민들은 이 주기적 범람이 피해를 줄까봐 걱정한다. 지역의 지하수가 상승하여 건물에 곰팡이가 피거나 농사를 망치는 것은 아닐까, 부동산 값이 떨어지지 않을까, 하류에서 날 홍수를 상류에 불러들이는 것은 아닐까 등등. 정부가 안전을 보장하고 만일의 손해에 보상을 약속해도 믿지 않는다. 평생 지녀온 사유재산을 지키려는 의지는 본능에 가까운데다 지역감정과 도시인-농민의 위화감, 경관 변화에 대한 정서적 거부반응까지 겹쳐서 문제를 풀기는 매우 어렵다.
독일연방정부의 환경부 장관이 나서서 “라인 강에서 200년 빈도의 홍수가 나면 70만 독일 인구의 재산과 생명이 위험에 처하고 60억 유로의 피해가 난다”며 상류지역 주민들에게 호소해도 인공범람지를 계획대로 모두 완공할 날은 요원하다. 현재 2015년 완공 계획도 틀어져서 일단 2028년으로 다시 잡았지만, 무사히 완공될 지는 미지수다.
국민의 안녕과 국가의 재정을 지속적으로 위협하는 잘못된 하천공사를 했다면 이를 되돌리는 복원을 해야만 한다. 돈과 기술이 있으면 가능하다. 그러나 시간이 너무 흘러 잘못된 상황에 사람이 길들여지면, 스위스와 독일 사례에서 보듯 복원이 가능하다고 장담하기는 매우 어려워진다. 강변을 사유재산으로 내준 결정이 초래하는 재앙이 아닐 수 없다.
2010년 한국 정부는 4대강사업과 병행해서 <친수구역특별법(일명 친수법)>을 제정해서 국가하천의 양쪽 각 2㎞ 이내 지역을 개발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4대강의 복원을 서둘러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