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추억과 기억을 더듬에 베니스에 대한 설명을 드리는 사이에 우리를 태운 버스는 어느덧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어 보덴제라는거대한 호숫가에 위치한 브레겐츠 미술관에 닿았다.

브레겐츠 미술관 (Kunsthaus Bregenz, Peter Zumthor, 1990-1997 건축)
담백한 육면체 전체가 뿌연 간유리로 구성된 건물은 스위스 건축가 페터 쭘토어의작품이다. 대형유리를 달랑 매달아서 건축자재로 쓰는 공법은 유리기술이 발달한 근자에 와서야 가능하게 되었다. 외벽 전체가 두 겹의 유리로 구성되었고, 표면을 산으로 부식시켜 반투명으로 만든 유리벽 사이에 색상 형광등을 비추어 밤에는조명효과를 낼 수 있다.

단순명료한 외형은 내부에서도 정직하게 반영된다. 건물의 하중을 받치는 육중한 내벽 세 개는 어느층에서나 뚜렷하게 드러나고, 이음새 없이 한 판으로 깔려 흑진주처럼 반짝이는 바닥은 벽과 천정을 통해 여과되는 은은한 빛과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 바닥은 서구에서는 테라조, 우리나라 공사판에서는 도끼다시라 불리는 물갈기마감공사이다. 이 물갈기마감공사는 기원전 6000년의메소포타미아 유적지에서도 발견되는, 매우 오래된 바닥 공법이다. 석회에 열을 가하여 시멘트로 만들어서 이를 자갈과 섞어 바닥에깔아 굳힌 후, 물을 부어가며 꾸준히 갈아서 반들반들하게 만드는 것이다.

미술관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명이다. 작품이 어디서나 환하게 잘 보이되 그림자나 반사광이 없도록 부드러워야 하고,변화하는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고 일정해야 하며, 자외선으로 인한 미술품의 손상을 막아야 한다. 브레겐츠 미술관에서는 벽과천장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을 감지하고, 인공적으로 가감함으로써 항상 일정한 조도를 유지하는 일에 컴퓨터를 비롯한 첨단의 기술을사용하고 있다.

이 미술관이 아니라면 전시가 불가능할 정도의 대형 작품들은 아주 넉넉한 품으로 전시되어 있었다. 예술가 자신의 피와 거울을이용하여 실상과 허상, 삶과 죽음을 다룬 작품, 고래의 뱃속에서 나온 내용물과 고래의 지방을 소재로 한 작품, 1571년의참혹했던 해전을 다룬 회화 시리즈 등이다. (Joseph Beuys, Matthew Barney, Douglas Gordon,Cy Twombly)

브레겐츠 미술관에서 또 하나 인상적이었던 것은 각 층마다 배치된 안내원들의 소양이다. 이들은 관람객을 감시하기 위하여 서 있는게아니라, 학예사 수준으로 전시 작품과 미술관 건물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자료를 구비하여 모든 질문에 성실하게 설명해 주었다.

우리는 디테일이 깔끔한 화장실과 엘리베이터, 층계를 눈여겨 보고 나왔다.

zumthorklein.jpg페터 쭘토어 (Peter Zumthor)
1943년 스위스 출생으로 15세에 목공을 배우고 수공업학교에서 디자인을 공부했다.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에서건축과를 청강한 후 귀국하여 건축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다수의 수상경력과 함께 국제적으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주로 독일어권에서 많이 활동하는 그는 현재이태리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대표작으로는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미술관을 비롯하여 스위스 온천센터(Felsentherme Vals)을 들 수 있다.

쭘토어는 설계할 때 작품이 자신의 마음에 완변하게 찰 때까지 손을 놓지 않는 치밀성을 강조한다. “건축가는 건축주의 이익을대변하는 서비스업자냐, 예술가냐?“라고 질문을 한다면 쭘토어는 “건축가는 예술가”라고 단언할 것이다. 그는 주변환경에 자신의건축물을 잘 맞추는 건축가이다. 건축가는 건물이 들어설 장소를 먼저 좋아해야 하고, 자신의 건물로 인해 그 장소의 경관이나빠지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가져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루체른
다시 버스를 타고 스위스로 넘어가 루체른의 호텔에 짐을 풀었다. 루체른은 알프스와 호수가 절경을 이루어 1840년부터 유럽의관광도시로 소문난 곳이다. 사방이 산맥의 실루엣으로 겹겹이 둘러싸였는데도 시야가 널리 트인 것이 신기하고, 땅과 하늘이 맞닿는희끗희끗한 경계는 비 온 후의 맑은 공기 속에서도 구름인지 만년설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중세의 옛 분위기가 곳곳에서 풍기는구시가지는 지도 없이 마냥 걷기에 좋았다.

kapellbrklein.jpg카펠교
도시를 관통하는 로이스 강에는 다리가 여러 개 있는데 그 중 카펠교(예배당 다리라는 뜻)가 유명하다. 지붕이 달린 다리다.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교로서 1365년에 지어졌다.

전시에 호수쪽으로부터 도시를 수비하기 위한 방어벽으로 축조되었으므로바깥쪽, 즉 호수를 향한 난간의 높이가 더 높다.

이 다리는 1993년에 화재로 일부 소실되었으나 원형과 같은 상태로 복원될 수 있었으므로 문화재로서의 가치에는 손상이 가지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이 건축물에 대한 정확하고 세밀한 실측도면이 존재했기 때문에 이를 바탕으로 완벽하게 원상복구하는 일이가능했다.

양쪽으로 꽃이 걸려 하늘거리는 다리를 걷다 위를 보면, 지붕 밑 공간에 세모난 그림들이 열지어 있다. 스위스와 루체른의 역사를설명하는 17세기의 작품으로, 종교개혁 시대를 맞아 카톨릭을 고수하려는 지배층이 프로파간다 목적으로 걸어놓은 그림이다.내용인즉슨, 신실한 스위스인이라면 군대에 종사하여 용병으로 이름을 떨침으로써 개인적인 행복을 찾으라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헛웃음이 나오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loewenklein.jpg빈사의 사자상
루체른의 또 하나의 명물은 빈사의 사자상이다. 옛 채석장 벽에 조각해 놓은, 다 죽어가는 사자의 형상은 1792년에 파리에서 전사한 스위스 용병의 넋을 기리기 위해 1821년에 제작되었다.

용병으로 품을 파는 것이 스위스의 주요 수입원이었던 시절, 프랑스 왕 루이 14세의 신변을 보호하는 친위대는 당시 용맹으로이름을 떨치던 스위스 용병이었다. 프랑스혁명을 맞아 성난 민중들이 파리의 성으로 몰려들었을 때 왕과 왕비는 비밀리에 그 성을빠져나와 국회로 피신한 후였으나, 이를 알 리 없는 1100명의 스위스 친위대는 성난 폭도들을 상대로 목숨을 바쳐 싸웠다. 그결과 760명이 장열한 전사를 했다.

사자상 위에 새겨져 있는 알파벳은 사망자 760과 생존자 350을 뜻하는 라틴어 숫자이다. 미국 작가 막 트웨인이 “세상에서가장 슬픈 돌덩이”라 칭하여 유명해진 이 사자상은 내게도 질문을 던진다. 너는 무엇을 위해 목숨을 바치니?

몇 년 전에 북한 정부에서 제작한 영화를 뮌헨의 영화박물관에서 상영했다. 폭풍우가 쏟아지는데 서서히 밀려오는 산사태 속으로용감히 뛰어드는 여주인공. 당에서 하사한 양 한 마리를 구하고 죽는 장면과 함께 영웅적인 음악이 흐르고 영화가 끝났다. 불이환히 켜지자 난 독일사람들 보기가 민망스러웠다. 어휴, 빨리 나가야지. 아무리 세뇌를 당해도 그렇지, 저런 일에 목숨을 걸다니?다른 사람들이 설마 날 북한 여자라고 생각하지는 않겠지? 고개를 숙이고 영화관을 나서는데 남편이 나를 툭 치더니 빙글빙글웃었다. “주인공이 어쩜 그렇게 너랑 닮았니? 사소한 일에 목숨 거는 거 하며, 꼭 너를 보는 것 같았어.” 떽!

kklaussenklein.jpgKKL-루체른 문화학술센터 (KKL Luzern, Jean Nouvel, 1995-2000 건축)
잔잔한 호반에 처마를 깊게 드리우고 서 있는 루체른 문화학술센터는 2000년에 완공된, 프랑스 건축가 장누벨의 작품이다.장누벨은 애초에 호수에 배가 떠 있는 모양으로 계획했으나 호수를 범하지 못한다는 도시설계법과 환경법에 걸려 포기해야 했다. 이에그는 “내가 물로 가지 못한다면 물이 내게로 오게 하리라”라는 모토로 수로 두 개를 건물 안으로 깊숙히 끌어들이는 컨셉을택했다. 두 개의 수로로 인해 건물은 삼등분이 되었고, 콘서트홀, 학술대회홀, 다용도홀, 이렇게 세 개의 독립된 대형 홀이수로를 끼고 나란히 서 있는 형상은 배 세 채가 항구에 정박해 있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 건물에서 가장 특기할 만한 점은 첨단의 음향시설인데, 이는 뉴욕의 음향전문가 러셀 존슨(Russel Johnson)의 기술에의해 완성되었다. 세계의 교향악단들이 가장 연주하고 싶어하는 장소라는 이 콘서트홀은 구스타프 말러의 장중한 교향악에도,아마데우스 모짜르트의 경쾌한 음악에도 각기 섬세하게 적응하여 완벽한 음향효과를 낸다. 러셀 존슨은 자신이 지난 삼십년간 전세계에지은 40-50채의 콘서트홀에서 얻은 경험이 전부 이 콘서트홀 하나에 녹아 있다고 말할 정도이다.

두 개의 문을 거치는 출입구는 음향차단실의 역할을 하여 관중석에선 “완벽한 고요”에 해당하는 18데시벨이 보장된다. 벽의 표면에음각, 양각처리를 한 수많은 석고판으로 형성되어 소리를 흡수하고, 무대 위에 가로로 떠 있는 음향판은 연주자들이 자신들이 내는소리를 실시간으로 들을 수 있게 하며, 음악의 종류에 따라 벽체가 열리어 메아리실이 형성된다. 이 첨단의 콘서트 홀은 폭,높이, 길이가 1:1:2의 비율로 이루어졌는데, 이 공간비율은 옛날부터 음향을 중요시하는 연극관이나 오페라하우스에서 선호하는수치이다.

kklklein.jpg건축가는 경치가 아름다운 장소라는 특성을 십분 이용하여 경관을 건물의 내부로 끌어들였다. 즉, 안에서 창문을 통해 보이는, 또는테라스에서 보이는 경치의 컷을 건축가가 미리 정해 놓았다고나 할까? 건축가가 선정해서 창틀을 두르고 내게 권장해 주는 경치는한 장의 잊지 못할 그림엽서이고, 밖에서 보았을 땐 그냥 순하게 가슴에 안기던 경치도 테라스에서 보면 상하의 여백이 과감하게잘려버린, 극적인 파노라마로 변한다.

금방 콘서트홀을 나와 저녁 바람을 맞으며 이 자리에 선 사람을 상상해 보자. 그의 혈관속에 아직 살아 있을 라하마니노프의 선율이 이 컷과 만난다면 어떤 화학반응을 일으킬까?

jeannouvelklein.jpg장 누벨 (Jean Nouvel)
1945년에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이미 설계사무소를 열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프랑스 건축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그의 설계사무소는 유럽의 여러 도시와 미국에 지사를 두고 140명의 직원을 거느려 현재 40개의 국내외 설계를 맡고 있다. 다수의 박물관, 미술관, 음악회관을 설계했고 수상경력이 다분하다. 그는 다양한 앙식을 적절하게 이용하는 건축가로 통한다.


zugklein.jpg쭉 역의 조명 (Bahnhof Zug, James Turrell, 2003)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려 루체른 근교에 있는 도시 쭉(Zug)의 역으로 나갔다. 제임스 터럴의 조명예술을 보기 위해서이다.우리는 역 옆의 광장에 서서 어스름이 지는 밤하늘에 불빛이 번지는 광경을 오래오래 구경하였다. 유리건물이 초록에서 보랏빛으로, 보라에서 붉은 색으로 서서히 물들며 중간중간에 이름을 붙일 수 없는 깊은 빛을 냈다. 가끔씩 내 마음을 물들이던, 형용하기어려운 심연의 색깔을 다시 만나는 기분이 들었다. 어디론가 떠나기 위해 분주히 오가던 사람들이 사라지고 적막해지기 시작할 무렵의역은 다시 이렇게 빛으로 채워졌다.

제임스 터럴 (James Turrell)
1943년생 설치예술가. 미국 아리조나 거주. 화산의 분화구 지하에 전망대를 설치하여 밤에도 낮에도 지구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하는 야심찬 프로젝트를 1974년부터 시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