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주말에 공휴일이 연이은 황금연휴를 맞아 장을 보러 갔다. 주말의 식단을 계획하지 않았으므로 대강 이것저것주워담았다. 마침배추가 나왔길래 반갑게 집어들었다.

독일에서 파는 배추치고 제법 통통하니 먹음직스러웠다. 배추는 국에도 넣고, 찌개에도 넣고,고기랑 볶아 먹을 수도 있고, 급하면 생크림에 버무려 샐러드처럼 먹을 수도 있는 고마운 다용도 야채이다.

내가 하는 짓이 늘 그렇듯이 이번에도 짐이 미련하게 많았다. 자전거에 잔뜩 싣고 무거운 배낭까지 매고 비틀비틀 페달을밟았다. 비까지 와서 돌을 깐 옛날 도로가 미끌미끌 위험했다. 번잡한 사거리를 아슬아슬 지나가는데 웬 동양 여인이 나를 보고마구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사거리를 간신히 넘어가서 뒤를 돌아보았더니 도로 위에 내 배추가 떨어져있었다.

자동차들은 무섭게 오가지, 짐을 잔뜩 실은 자전거가 넘어지지 않도록 잘 세울 자신도 없지, 나는 배추를 그냥 버리고 가고 싶었다. 멀리서 보니 길 위에 나동그라진 배추가 앙상한 것이 그다지 아쉽지도 않았다.

동양 여인은 계속해서 절박하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때 사거리 한복판을 둥그렇게 쉼터로 만들어 놓은 곳에서놀고 있던 노숙자들이 단체로 고함을 질러대기 시작하였다. 모든 자동차들이 일시에 멈추었다. 나는 자전거를 간신히 세워놓고 얼른뛰어가서 나의 배추를 주워왔다.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자전거에 올랐다.

떨어진 물건이 배추가 아니라 소시지였으면 남들이 그렇게 도와주지 않았을 것 같은 생각이 괜히 들었다. 타국에서배추를 본 동병상련의 정으로 나의 배추를 악착같이 지켜준 동양여인이나, 저 여자가 저렇게 절박하게 소리지르는 것을 보니 저배추가 없으면 다른 여자는 이번 주말에 굶어 죽을 거라고 믿고 도와준 노숙자들이 참 고마웠다.

그들은 인생을 살맛나게 해주는 양념같은 순간을 내게 선물한 것이다.집에 와서 남편에게 얘기했더니 그도 재미있어 했다. 내가 노숙자들에게 맥주라도 한 박스 사다 줘야겠다고 했더니 남편이 놀라면서 뭐 한 박스씩이나 어쩌고 하면서 김을 뺐다.

아으, 내 양념에 초치는 인간.

나는 그날 노숙자들을 위해서 맥주를 사러 가지 않았다. 차가운 장대비가 와서 그랬다. 맹세코 맹세코 남편 때문은 아니었다.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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