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할까 봐?
즐거운 편지를 받았다. 내가 쓴 책이 칼스루에 시의 문화재관리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며 그 도시에 사는 한 주민이 신문기사를 스크립해서 내게 보내주었다.
기사를 보니 문화재에 관한 많은 토론과 결정이 내 책을 근거로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는 ‘‘실속 없는’’ 책을 쓴 것에 대해 깊고 고요한기쁨을 느꼈다.
요즘 내가 왜 별로 행복하지 않은지 생각해 곰곰 보았다. 내게 중요한 것은 모두 잘 되고 있는데 왜? 내가 모든 것을 다 가지려고욕심을 부려서 그런 거구나. 나는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참 큰데, 그러기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것들을 내가 포기할 수 없는입장이라는 걸 깨달았다.
무엇에 몰두하면 난 자폐성을 띈다. 현실감각이 떨어지고 가족을 비롯한 주변사람들, 그리고 일상이 귀찮아진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내가 독일에살면서 한글로 글을 쓴다는 데 있다. 한글로 글을 쓸 때는 독일어로 책을 읽는 것도 삼가고 라디오도 듣지 않기 때문이다.나는 완전히 고립이 된다.
무엇보다도 불행한 일은 내가 한글로 글을 쓰는 동안은 독일에서 받아들이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생활이 계속된다면 난 언젠가는 아는 것 다 팔아먹고 동이 나면 거짓말을 쓰겠지.
게다가 나는 남편과 함께 늙어죽을 확율이 점점 더 커지는데, 우리가 이렇게 각각 딴 세계에서 오래 살면 앞으로도 교감이 가능할것인가? 남편은 나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다. 영감을 교신하는 송수신기구도 잘 가꾸지 않으면 먼지가 쌓여 막히지는 않을까? 이러다간내가 내 발 밑에 있는 나뭇가지를 잘라 먹는 건 아닐까?
그렇다면 독일어로 글을 쓰는 방법밖에 없지 않나? 그것도 참 뜻있는 일이겠다. 그래, 해 보자. 마음 먹자마자 독일어로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 전에 나는 한글로 써놓은 원고들을 빨리빨리 출판하기로 했다. 내가 독일어로 책 쓰면서 한국어를 바보 수준으로 잃어버렸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나의 언어체계가 독일어 모드로 돌아가기 전에 한국에 관한 일을 마무리를 짓고 싶었다.
그래서 서둘렀다. 여기저기 출판사에 문의를 넣었다. 일이 생각보다 순조롭지 않고 시간을 끌었다. 우편으로 보내는 일도, 전화로 확인하는 일도 다 수고스러웠다. 시간이 갈 수록 회의와 자괴감이 밀려왔다. 일의 성패가 나의 의지가 아니라 남의 손에 달렸다는 사실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사람이 무기력해지니글쓰기가 힘들어졌다. 기쁜 마음으로 몰입이 안 되고 글 쓰는 일이 노동으로 변했다.
이렇게 무기력하게 기다리는 와중에 엉뚱한 곳에서 반전이 왔다. 내 전공분야에서 대부라고 할 수 있는 독일인 노학자가 나에게공동으로 책을 내자고 제안해온 것이다. 내 마음 속 한 구석이 ‘‘이건 아닌데…난 소설을 쓰고 싶은데…‘‘하는 소리를 들으면서도나는 누군가가 나를 과대평가 해주는 게 황송해서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무턱대고 수락부터 한 후 나는 한국에서의 출판 때문에 마음이 더 초조해졌다. 뭐야, 하나도 달라진 것도 없이 일만 늘었잖아?
내 인생에서 모든 일이 다 괜찮은데도 내 마음만 무거운, 이상한 나날이 계속되었다. 이 시점에 미국에서 글쓰는 친구와 통화를 했다. 건축을 접고 글만 쓰고 싶다던 바램을 전화 한 통에 저버리는 내가 싫다고 징징거렸더니 그는 내가 독일어로 전공책 쓴 후에 그 김에 몰아서 독일어로 소설 쓰면 되지 않느냐고 오히려 잘 되었다고 좋아했다. 친구가 좋아하니까 대책은 여전히 없었지만 기운이 났다.
그러다가 여름방학이 끝나서 나는 내가 맡은 장애아이 모모를 돌보러 유치원에 다녀왔다. 모모는 나를 알아보고 벙글벙글 웃었고, 다른 꼬마들도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일 주일에 두 번씩 모모와 유치원 아기들을대하는 것은 내 마음을 항상 환하게 해준다. 화창한 날씨에 이자 강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고 다녀오며 나는 행복을 느꼈다.
그리고 내가 고민하는 것이 참 하찮은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만수산 칡덩굴만큼이나.
나는 앞으로 무슨 커다란 반전이 생기리라고 막연히 기대함으로써 현재의 행복을 비하하는구나. 남과 함께 살며 영감을 주고받기를 선택한 사람이 혼자 사는 삶의 형태를 갈망한다는 것은 허황된 욕심이구나.
출판에 목을 매지 말자. 내가 명예를 추구했다면 진작에 다른 길을 갔어야지. 내가 부를 추구했다면 하고 많은 것들 놔두고 하필이면 글을 썼겠나, 이 사람아?
나는 이렇게 하기로 했다. 소설은 탈고한지 1년이 넘었으므로 이제는 풀어놓아야겠다. 그래야 내가 행복할 것 같다. 출판을 기다리며 막연히묵히는 것보다는 인터넷으로 독자를 찾아가는 게 났다고 생각한다. 출판을 해도 대부분 초판 3000부 찍고 말 텐데인터넷으로 3000명 읽으면 성공 아니겠는가?
에세이집 ‘‘독일에서 온 편지’'(가제)도 세 꼭지 정도 더 쓰면 완성된다. 독일어로 공동집필에 들어가기 전까지 부지런히 써서 일단책 한 권 분량이 되면 그때 가서 보기로 했다. 출판사를 못 찾으면 소설처럼 다른 방법으로 독자를 찾아가면 되니까. 출판사에 연연하지 않으니 좀 더진솔하고 괴팍한 글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그러는 사이에 다른 에세이집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가제)도 출간되겠지. 그건 이미 계약금까지 받았는데.
집착을 내려놓으면 일이 오히려 수월하게 풀리기도 하거니, 혹시 아는가?
나의 다음 프로젝트는 탐정소설이다. 이미 구성도 큰 얼개로 짜놓았고 독일어로 처음과 끝의 몇 문장을 써놓았다. 플롯이 건축사에 얽히는 사건이라 그 전에 전공서적을 집필하는 게 그리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학술 연구결과를 일반인들이 탐정소설로 따끈하게 접하는 재미도 괜찮지 않을까? 그러다가 실속 없는 전공책까지 잘 팔릴라. 올랄라.
나는 최근에 생전 처음으로 블로그를 하나 만들었다. 바로 이 블로그이다. 이번 여름에 좋은 사람들과 건축답사를 다녀왔는데 함께 다닌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때 공부한 내용이 깊이 스며들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여행기를 써서 전달하려는, 사적인 용도로 만든 것이다.
이 블로그에 방을 몇 개 더 만들어 보았다. 여행기 외에도 매일 조금씩소설도 올리고, 사는 소식도 가끔씩 전하면 어떨까 궁리하는 중이다.
어쩜 지금 나는 한글을 다시 잊어버릴까 봐 겁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와 함께 한국어로 교류하던 친구들도…
PS: 묵은 짐을 훨훨 털어버리고 가볍게 길 떠나자는 의도로 블로그를 계획한 건데, 왜 자꾸만 한국과의 작별을 준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