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할 때 공이 오는 쪽으로 무작정 몸을 날려 팔을 뻗듯이, 에스칼레이터에서 비틀거리는 낯선 할머니의 외투자락을 무작정움켜쥐듯이, 운명에게 내가 속아주는 기분으로 길을 떠났다.

두고두고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하지만 나의 고생이 세상을 바꾸지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때때로 마음이 헛헛했다.

이런 일은 내가 개인적으로 별로 즐겨하지 않는 일이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최고의 열정을 바쳤다. 내가 객관적으로 완벽하게 일한 건 아니지만 내가 정한 목표는 다 달성했고 난 내게서 더 이상 바랄 바가 없다.

멋진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대부분 평생 한 우물을 판 사람들이었고 다른 건 몰라도 그 분야에서만은 신념으로 번쩍였다. 그런사람들을 만나서 그들과 교감하고 그들의 응원을 받는 것으로서 고된 일정은 충분한 보답을 받았다고 스스로 위로했다.

마지막 날에 그들 중의 한 사람이 말했다. “그때 나는 내가 패배하리란 걸 처음부터 알았다. 그래도 투쟁한 이유는 우리가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다는 것을 후손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이 말 한 마디가 그간 나의 헛헛한 마음을한 순간에 날려주었다.

이 말 한 마디를 가슴에 새기고 코 앞의 푼돈을 세는 쫀쫀한 실용주의의 그물을 벗어나기를 기원한다. 인생의 성공은 승리나 패배에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인간의 품위를 지키는 일은 어떤 경우에도 실속 없는 헛수고가 아니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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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에 나오는 로렐라이 한 컷\

텅빈 블로그를 지켜주시는 친구들께 인사드립니다.

잠시 집에 들어와 부랴부랴 몇 가지 일 마치고 가방 바꿔 들고 다시 나가는 상황이어요. 정장 걸어놓고 작업복 챙겼습니다. 몇백년 묵은 먼지구덩이에서 일할 거라서 제일 낡은 청바지 두 벌 빨아서 넣었지요. 일 주일 후에는 집에 다시 돌아옵니다.

그간 저 없는 사이에 아들은 고등학교 졸업시험이자 대입시험에 해당하는 아비투어를 시작했어요. 제가 돌아온 이튿날 마지막 시험을치뤘는데 마지막 도시락으로 돈까스를 만들어줄 기회가 되어서 행복했습니다. 또 그 다음날이 딸의 생일이어서 저는 미니 케익을50개쯤 구웠다지요. 유치찬란한 케익인데 얼마나 사랑받는다고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매년 두 번씩 구워요. 자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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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씩 드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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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촐한 생일상이지만 딸은 무척 기뻐했어요.\

남편이랑은 그간 좀 안 봤다고 데면데면. 전 어디 갔다오면 좀 그러네요. 댁은 뉘셔?^^ 올해의 역마살 한바탕 지나가고면 날개옷 다시 벗어야지.

건강하게 돌아와서 즐겁게 다시 만날 때까지 모두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