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쓴 글을 즐겨 읽는다. 두고두고 문장을 손보고 다듬는 재미도 재미지만, 마치 남의 내면을 훔쳐보듯이 그 글을 썼던당시의 내 심리를 엿보는 맛도 새삼스럽다. 나는 독일어로 작문하다가 실수로 글이지워지면 암만 많은 양이라도 똑같이 그대로 다시 쓸 수 있지만,

한글로 썼던 글은 도저히 재현할 수 없다. 다 커서 배운독일어는 이성으로 도달할 수 있는 뇌의 한 부분에 저장되어 있고, 최초의 언어로 자리잡은 한국어는 뇌의 좀 더 깊은곳에 자리잡고 있어서 글 쓰는 당시의 순간적인 감성이 보다 큰 영향력을행사하는 것이라고 나름대로 진단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가끔 이 곳에서 내가 예전에 쓴 글을 읽으며 남의 글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내 얘기라는 걸 깜빡 잊고 누군지 참 재밌게도 산다고 선망을 품기도 한다.그러다가 후딱 제정신이 들면 내가 현재 느끼는 삶과는 다르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서 어딘가 글에서 내 삶을 미화한 부분이 있는지 다시 한번 엄중하게 검토한다.

하나하나따져보면 거짓으로 쓴 것은 없는데 왜 전체적으로 실지보다 더 낫게 보이는지 고개를 갸우뚱하지만 사실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내가 공개하는 글은 내 삶의 일부분만을, 행여 나쁜 일일지라도 내가 명쾌하게 소화한 부분만을 조명하기 때문이다. 가까운사람들에게 내 일상을 진솔하게 보여주는 일기 용도의 블로그가 아니라 불특정다수를 향해 말을 거는 블로그의 속성이겠다.

하지만 문제는 그 불특정다수의 일부가 내 친구로 변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정기적으로 이 블로그에 들러 내가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사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은 나와 한번도 귀엣말(연락처)이나 메일을 나누지 않았더라도 나와 공감대를 형성하는 친구들이다. 나와꾸준하게 교류하는 친구들이 내 삶에 대해 위선적인 정보를 가지게 되는 일은 찜찜한 일이 아닌가?

그렇다고 우짠댜? 춤추다가 플로어에서 신랑한테 등짝 얻어맞은 얘기를 풀어봐? 마초를 짝사랑하는 딸아이 미행기? 구구절절 환상을깨줄만한 얘기거리는 많구만. 문제는 테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글의 성격에 있는 것이다. 내가 관찰자의 입장에서 진지하게 고민하며 쓴글에선 평범하게 구질구질한 내 인생도 그럴 듯하게 보이는 것이다. 천지사방에 널려 있는 들꽃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름답듯이.

“완벽한 삶 - 좋아하는 일, 이해하는 남편과 정다운 가족, 살기 좋은 환경 - 을 살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정말 부럽습니다.저도 그런 삶을 꿈꾸지만 그 어느것 하나도 갖추질 못해서 슬플 뿐입니다. 제게 용기를 북돋아 주세요.” 이는 오래동안 내 글을읽어오신 분이 보내준 메일이다. “아이고, 오해입니다. 저는 그렇게 완벽한 삶을 살지 않는데요.” 식의 대답보다는 좀 더 진지한 답장을드리고 싶었다. 왜냐면 객관적으로 성공한 인생은 아니지만 나 스스로는 만족하는 삶이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진중하게 생각해보고,남과 나눌 수 있는 일이면 나누고 싶어서 이 글을 쓴다.

내 인생이 편안한 이유는 돈이 없다는 데 있다.

세계를 누비며 왕성한 활동을 벌이는 커리어우먼 친구가 몇 년 전에 내게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알렉산더 폰쇤부르크 지음)“이란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며 추천했다. 그때 나는 “혹시 나한텐 필요없는 책 아니야?” 물었고 그 친구는 좀생각해보더니 “맞아, 자기는 벌써 그렇게 살고 있어.“라고 대답했다. 그후에 남편도 그 책을 거론하길래 난 똑같은 질문을 했고, 남편도 똑같이 대답했다.

20년 전의 일이다. 남편 친구의 부인이 한달 생활비 3000마르크(1500유로~약 225만원 )로는 두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어서 부부싸움을 했노라고내게 하소연했다. 그때 나는 우리 가정의 총수입은 월 1600마르크(800유로~약 120만원)이고, 그 돈에서 다달이 700마르크씩 집세를내고 아기를 기르면서도 돈이 남아서 저축까지 한다고 대답했다. 그때 우리는 큰 돈은 아니지만 기부도 하며 살았고 남에게 돈도 꿔줬다. 물론 외식이나비싼 문화생활은 당연히 생략했고, 꼭 필요한 물건만 샀다. 다행히 환경보호에 대한 신념과 맞아떨어져서 평생 자동차 없이사느라고 큰 돈이 절약됐다. 옷, 가구, 기구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 쓰면서도 구차스럽단 생각은커녕 오히려자랑스럽게 여겼다.

학생 부부에게 아기가 생긴 것이 그 계기였다. 핵가족 안에서 아이들을 사랑으로 기르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부모의 시간이 귀중하다고생각했으므로 우리는 항상 돈 대신 시간을 선택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모험이었고, 우리는 간혹 휘청거렸다. 하지만 이 선택은 오늘까지이어졌다.

wedding12\_15.jpg

몇 년 전의 일이다. 남편은 일 주일에 36시간 근무를 40시간으로 늘이는 문제로 회사의 제안을 받았다. 아이들도 다 컸으니 하루에 30분 더 일한다고 사생활에 지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맘대로 해. 일이 재미있으면 더 해. 하지만 돈 때문에 더 하지는 마. 우린 지금 버는 돈도 다 못 쓰는데.”
“집에 일찍 와봤자 신문이나 읽고 노는 걸.”
“신문이나 읽고 노는 건 안 중요해? “
그래서 그랬는지 남편은 일을 더 하지 않았다. (몇 달 후에 회사에선 남편을 일 주일에 40시간 이상 일해야 하는 위치로 승격시켰다. 그것은 또다른 책임감과 성취감이 따르는 일이었으므로 나는 남편을 위해 기뻐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는 돈 벌기를 포기해서 그렇다. 버는 돈의 액수로 일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만족도로 평가하기에 난 항상 좋은 일만 하며 사는 것이다. 어쩌다 돈의 액수로 나의 값어치와 자존심을 매겨보는 실수를 범할 때도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항상 초라한 패자가 된다. 내가 암만 돈을 많이 받아도 내 위에는 승자들이 층층계처럼 존재하기때문이다. 자본이 층층시하를 이루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평가의 기준을 돈에 두는 한 나는 항상 패자로서 우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소중한 존재이고 내노동력 또한 소중하기 때문에 나는 그 평가를 남에게 맡기지 않고 돈으로 재지도 않는다.

그 댓가로 우리 부부는 학력에 비해서 적은 보수와 실력에 비해서 낮은 사회적 위상을 떳떳하게 감수한다. 또한 무섭게 절약한다. 아직도 크로와쌍 하나를 온전히 먹는 법이 없이 꼭 둘이서 나눠먹는다. 물 한 방울, 토마토 한 알도우리는 헛되게 쓰지 않는다. 세 정거장 전철 탈 일이 있으면 한 정거장은 걸어감으로써 단거리 요금을 내는 일을 당연하게실천한다. 내 옷장에는 20년 넘은 옷들이 대부분이다. 옷을 새로 사지 않기 위해서 내 몸도 알아서 살이 찌지 않는다. 기본생활비가 우리도 모르는 새 야금야금 올라가지 않도록 조심하는 일에 습관이 들었다. 다달이 기본적으로 드는 생활비가 높으면 높을 수록 사람은 생존이 부담스럽고, 선택의 자유가 좁아지고, 물질의 고마움을 모를 것이라 믿고 있다. 우리는 항상 돈이 남는다.돈 쓸 일이 생기면 편안하게 쓸 여유가 있어서 오히려 남보다 부자라는 기분으로 살고 있다.

자유를 구하기 위한 검약의 습관은 20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 부부 사이에서 유별난 동지의식을 키웠다. 그 누구 앞에서도 당당하게 크로와쌍을 둘로 가르는 순간 우리가 은밀하게 주고 받는 교감이라니. 그 자신감과 자긍심이라니. 파트너를 향한 존경과 신뢰를 담은 이 동지의식은 우리 가정의 버팀목이다. 남편은사랑에 시쿤둥하고 나는 사회적 관습에 시쿤둥한 사람이기에, 이 동지의식이야말로 우리의 결혼생활을 지켜주는 유일한 울타리인 셈이다.

zimmer15.jpg


(그런데 근래에 이 울타리가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제가 날개옷을 만지작거리며 날아가버릴 궁리를 할 만큼 절실한 일이지요. 일단락난 후에 쓰려던 계획을 변경해서 고민의 중간과정을 적기로 했습니다. 영혼의 한 부분을 공유하는 여러분들과 좀 더 생동감 있게나누고 싶어서요. 나중에 차분하게 정리하면 기승전결이 산뜻하기는 하겠지만 인간적으로 너무 우아하잖아요? 친구 사이에\^\^… 요 위에 보시다시피 밀린 청소랑 숙제 좀꺼놓고 와서 중계방송 해드리겠습니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