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숭례문 화재보다 슬픈 시청 철거
시청의 일부분이 기습적으로 헐려나갔다는 기사를 보고 설마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고, 잠시 후 다른 일을 하는 사이에
나는 분명히 내가잘못 본 것이라고 믿어버렸다. 독일의 시골에서 문화재를 관리하는 책임자가 밤에 자다가 소음을 듣고 잠옷 바람으로 뛰어나가서문화재로 지정된 헛간을 몰래 철거하는 농부를 잡았다는 소리는 들었어도, 엄연한 법치국가에서 공권력에 의해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보1호인 숭례문이 불에 탔을 때도 이렇게 절망스럽지 않았고, 시청보다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는 중앙청을 철거했을 때도 이렇게 실망하지는않았다. 그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배운 사람의 의무이라는 생각이 들어, 끓는 감정을 다스려 글을 쓴다.
숭례문이 어이없이 주저앉는 모습을 보며 내가 받았던 감성적 상처와 상실감은 지금보다 훨씬 더 컸다. 그렇지만 숭례문의화재는 인재였을망정 분명한 사고였다. 전쟁과 화재는 건축의 역사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의 흔적이다. 문화재의 가치는 인간이살아온 흔적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사람보다 수명이 월등히 긴 건물을 수선하고 보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건축 당시의 자재가얼마나 많이 보존되어있느냐가 문화재의 가치를 매기는 최고의 잣대는 아니다. 돌로 지어 원형보존이 잘된 서양의 문화재와 나무로지어 정기적인 보수와 교체를 겪은 동양의 문화재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서 동등한 가치로 평가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초기 건축의 양식과 기술이 보수와 중축과정에서 고스란히 계승되었으면 오리지날과 같은 효용이 있다.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건물을 조사하며 건축사를 연구하는 학자라면 한 시대의 양상 뿐만 아니라 후대의 발전상을 함께 보여주는 건물의값어치를 인정할 것이다. 참다운 문화재보전의 비결은 원형의 건축원칙을 고수하면서도 시대의 변천을 반영하는 보수의 기술에 있다.우리나라에는 평생 한 우물만을 파온 전통건축의 전문가들이 있고, 그들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만 만들어진다면 숭례문은예전과 같은 가치로 태어날 것이다.
시청의 기습철거는 문화재가 국가기관에 의해 고의적이고 계획적으로 파손됐다는 점에서 숭례문 화재보다 더 우려스러운 사건이다. 이로 인해우리나라 지배층의 문화적 역사적 소양이 졸부 수준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나마 문화재청에서 서울시에 동조하지 않고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시작함으로써 정부의 체면을 세워주었다. 문화재청은 특정기관이나 특정 사업에 공조하려고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라 스스로의 목적에 충실하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임을 증명한 것이다.
물론 특정인의 이익을 위해 문화재가 밀리는 일은 (국가기관의 기습철거라는 사실만 빼면)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나 역시 독일에서 이와 비슷한 문화재 철거 사건의 한 중심에 있었던 적도 있고, 학생 시절에 사무실에서 일할 적에는미국에서라면 철조망을 쳐놓고 지킬 수준이라는 문화재 건물 자리에 싸구려 호텔을 짓는 설계도면을 그린 적도 있다. 독일 문화재청은 문화재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신념으로 항거했고, 시민들은 여론을 형성하여 문화재청을 응원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안 되는 문화재를 지키려고애쓰는 사람들은 사회의 수준이 돈에 끌려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지키는 사람들이다. 행여 실패하더라도, 항거했다는 사실만으로도후세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위로를 주는 사람들이다.
서울시의 새 청사 조감도. 서울시 제공 (한겨레신문)
시청 신축공사의 조감도를 보니 현 시청 건물을 헐고 싶게도 생겼다. 우아하고 세련된 신축건물 앞에 흉물처럼 붙어있는 저런구닥다리라니. 그러나 이것은 현 시청 건물의 문제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서 있는 역사적 건물을 그렇게 우습게 보이게 만드는 새 건물은, 그 자체는 명품일지 몰라도 위치의 선정이 잘못 되었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다. 유서 깊은도시에서 가장 어려운 설계의 기술이 바로 스스로는 현대성으로 빛나면서 주변의 역사성을 폄훼하지 않는 기술이다.
서울의 매력은 600년의 굴곡 있는 역사성에 있다. 세계화의 시대에 돈만 있으면 누구나 다 근사한 현대식 건축물을 지을 수 있지만, 고유한역사는 천금을 주고도 사올 수 없다. 서울의 매력은 전통과 현대성이 극단적이고도 천연하게 공존하는 데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디가나 볼 수 있는 신도시를 보기 위해서 일부러 한국까지 관광 올 외국인은 하나도 없을 것이라는 것을 외국의 여론에 조금이라도밝은 사람들은 알 것이다.
엄청난 관광수입을 벌어들이는 파리, 런던, 뮌헨같은 유럽의 대도시에는 첨단의 현대성과 고유의 전통성이서로 지지 않으려고 팽팽하게 대치한다. 그러나 어느 한쪽도 지지 않기 때문에 조화를 이룬다. 양극이 이루는 긴장과 화합의 매력은시민들의 정체성과 경쟁력을 확인시켜주는 자긍심이자 실지로 돈을 벌어주는 자산이다. 그래도 독일사람들이 늘 하는 소리가 있다.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은 복구였다고. 즉, 폭격 맞아서 파괴된 건물보다 전후에 복구하는 상황에서 함부로 철거한 건물이 더 많았다는 소리다. 그때 함부로 버린 옛날 건물들이 이제와서 생각하니 아깝다는 말이다. 돌이킬 수 없는 실수다.
우리나라 전통건축의 매력은 건축물과 배경이 한몸으로 화합하는 데 있다. 경치의 아름다움을 완성하기 위해서 정자를 짓는 우리선조들의 건축관은, 주변 경관을 이용하여 돋보이는 서양식 건축관과는 차이가 난다. 훗날, 물질만능의 경쟁시대가 가고 상생의 정신을숭상하는 시대가 왔을 때, 서양에서 다퉈서 배워갈 덕목일 것이다. 배경에 있는 옛 건물을 모욕하는 새 건물은 우리의 전통에 맞지않고, 전통을 비하하는 도시설계는 세계화의 시대에 맞지 않는다.
시청 건물이 일본에 의해서 지어졌다는 사실은 지금의 우리에겐 기분 나쁜 일이지만 우리 후손들에겐 매우 요긴한 정보이다. 몇백 년후에, 한국에서 서양 문명을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고 응용했는지를 건축사를 통해 알아보고자 하는 후손들에게 시청 건물은 생생한 자료를 제공할 것이다. 우리 후손들은 지금의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호기심과 기술을 가지고 과거를 조명하려 들 것이고, 그렇게하라고 우리가 남겨준 문화재를 감사히 여길 것이다. 이미 우리 역사의 한 단원으로 자리잡아서 다음 단계의 기초가 되어버린문화재를 없애는 것은 후손들이 그들의 정체성을 연구할 수 있는 가능성 하나를 앗아가는 행위다.
그렇다면 1995년에 일어난 중앙청의 철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옛 조선총독부 건물은 당시 동양에서 서양건축의 진수를보여주는 모델이었을 것이다. 또한 남의 나라 왕궁을 가로막는 오만함은 당시 일본이 얼마나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천박한영혼이었는지를, 그리고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왕궁에서조차 그런 작태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이 더 낮은 곳에 있는 우리 백성들을얼마나 모욕했을지를 알려주는 산 증거일 것이다. 그런 증거를 없앤 것은 우리가 문화재를 보존하는 의의에 반대되는 일일 것이다.그러나 중앙청의 철거는 민족자존심 회복의 문제를 떠나 또 하나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바로 다른 문화재, 즉 경복궁의복원이다. 경복궁을 훼손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 자리에 지은 옛 조선총독부를 그대로 놔둔 상태에서 어떻게 경복궁을 복원할 수있을지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 나로서는 철거된 중앙청 건물에 대한 상세한 기록이 남았기만을 바랄 뿐이다.
마지막으로, 서양건축사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언급하고 싶은 것이 있다. 중앙청과 시청의 평면이 일본이란 글자에서 나왔다는 소문이돌지만, 사실 이 두 평면은 서양에서 아주 오래전부터 흔하게 사용되어온 보편적인 구조다. 내가 공부한 칼스루에 공대 건축과건물은 중앙청보다 약 30년 먼저 건축되었는데, 중앙청처럼 중정 두 개가 있는 건물이다. 캠퍼스 옆에 있는 칼스루에 성은 시청같은 평면을 하고 있다. 중앙에 몸체를 두고 경계를 따라 양쪽으로 날개를 낸 평면은 서양에선 아주 흔한 구조에 속한다. 서양건축의 기초를 닦은 르네상스 건축가 팔라디오의 건축사서에도 나온다.
일본이란 글자를 따서 중앙청과 시청을 짓겠다는 의도를 밝힌편지나 문서가 발견되었다면 모를까 그냥 막연히 추측하기에는 학술적으로 근거가 없다. 검증되지 않은 낭설을 정부기관을 이끄는 공인에게서 들으니 참으로 민망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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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상트 블라지엔 성당(St. Blasien), 1768-83년에 초기 고전주의 건축가 딕스나 (d´Ixnard). 중앙청과 비슷한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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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리 비첸자의 사라체노 저택(Villa Saraceno), 1545년에 르네상스 건축가 팔라디오. 시청처럼 몸체 양쪽으로 날개가 있는 구조.\
참고 글:
링크: 숭례문의시계는 느리간다
제가 쓴 책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에 제가 문화재 철거사건을 경험한 글과 우리 건축과 서양 건축을 비교하는 글이 들어있습니다. 제 책을 읽지않으신 분들은 한겨레 칼럼 ‘‘독일, 사람 사는 이야기'‘에서 44-47번 글(문화재 철거사건)과 63번 글(우리 건축과 서양건축 비교)을 참고하시면 됩니다.
링크: 한겨레 칼럼 ‘‘독일, 사람 사는 이야기’'
이 글은 2008.9.1일자 인터넷 한겨레에 실렸습니다.
링크: 인터넷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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