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키가 자꾸 클까봐 걱정이야.”
“걱정 마. 넌 친할머니 닮아서 더 클 거야.”
“지금 누구 약 올리는 거야?”


“키 큰 게 어때서?”
“남자보다 클까봐 그러지.”
“키 큰 남자 사귀면 되잖아?”
“엄마는? 가무잡잡하고 키 작은 남자가 내 취향이란 말이야.”
“어머머, 너도 그러니? 나도 그런데. 나도 허여멀건하고 길쭘한 남자 별로야.”

딸은 나와 눈을 맞추고 킥킥 웃다 말고 핼끔 누구 눈치를 봤다. 아차! 얼굴이 하얗고 목이 긴 남자가 내 옆에서 빙그레 웃고있었다. 나는 시침을 뚝 떼고 말을 이었다.
“거 봐. 결혼은 외모를 보고 하는 게 아니야. 엄마는 결혼을 이렇게 이성적으로 했다구. 엄마는 양질의 후세를 위해서 너희아빠를 선택한 거야. 봐라, 너희들이 얼마나 잘났나?”

아들은 “구린내~” 하며 코를 쥐고 웃더니(자화자찬은 구린내가 난다는 독일 속담이 있음) 괜히 제 동생을 골렸다.
“양질의 유전자가 우리 남매 사이에 좀 불평등하게 분배되었지? 특히 지능유전자가.”
“아니야, 나는 건강해서 우량한 유전자이고 오빠는 아토피에 천식이니까 불량 유전자야.”
이번엔 우리 부부가 애들을 보고 구린내 난다며 코맹맹이 소리로 웃었다.

갓 태어난 첫 아이가 아토피 피부염에 천식을 앓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다. 무턱대고 억울한 마음이들었고, 신혼시절 신랑을 가운데 두고 암투를 벌이느라 가뜩이나 깔끄러웠던 시어머니가 아토피라는 걸 알았을 때의 그원망스러움이란. 밤에 자다가 박박 긁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깨어보면 아기가 잠결에 자기 몸을 피가 나도록 긁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잠옷의 소매를 꿰매어 손가락이 안 나오게 만들어줬다.천기저귀 위에는 방수커버 대신에 내가 손으로 뜬 양모 팬티를 입혀서 피부의 통풍이 잘 되도록 했다.

건조한 아토피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목욕시킬 땐 비누 대신 목욕오일을 썼다. 목욕 후에는 벌겋게 염증이 난 부분은 헤어드라이어의 미지근한바람으로 말린 후 되도록 오래동안 벗겨두었다. 염증 부위엔 타르연고를 바르고 그 위에 와셀린연고를 발라 보호막을 쳤다 (요즘은 타르연고 대신에 요소연고를 많이 쓴다). 자주 재발하는 곳에는 염증이 사라진 후에도 와셀린연고로 보호했다. 염증이 아주 심할 때는 일단 가라앉히는 일이 우선이라는 의사의 말을 받아들여 코티손 연고를 쓰기도 했다.

그러던 중 자기 자녀 역시 아토피를 앓았던 경험이 있는 우리 소아과 주치의가 북해에서의 요양을 적극 권했다. 북해의 기후는 독일어로 라이쯔클리마, 즉 자극성 기후라고 불린다. 거센 바람과 파도로 인해 공기에는 항상 소금물 방울 떠돌아다니고, 이것이 호흡기를통해 면역기관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사람의 신체가 이런 기후에 새로 적응하는 데 약 1주일이 걸린다는데, 아닌 게 아니라 처음엔아무것도 안하고 산보만 다녀도 피곤하다. 4주일 정도가 지나면 면역기관이 이 거친 기후에 맞설 만한 수준으로 작동된다고한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면 잔병치레가 적고, 신체의 자가치료능력으로 인해 지병이 낫거나 호전되기도 하는 것이다.

atopykorb15.jpg 북해의 해변에는 모래바람이 거세서 바구니 의자가 요긴하다. 해변에서 아이들을 놀리기만 해도 휴양효과가 있다.

atopystrand15.jpg 북해의 갯벌은 우리나라 서해안과 선두를 다투는 세계적인 생태해안이다.


어려서 북해의 섬으로 두 번 요양을 다녀온 후 감쪽같이 사라졌던 아들의 알레르기는 사춘기를 기해 재발했다. 그래서 우리는 근년에 또 한번북해의 노더나이 섬에 다녀왔다. 의료보험에서 적은 비용을 보조해 주고 있으나, 요양지로 선정된 곳은 숙박비가 비싸서 허리가 휘청였다. 그것도 모르는 아이들은 신이 나서 윈드서핑과 파도타기를 배웠다. 폭풍우가 무섭게 몰아치는 날 옷을 단단히 껴입고해변에 나가 보면, 저 멀리 집채 만한 파도 속에 보였다 말았다 하며 널빤지를 타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정신나간 마조히스트들이야!” 하면서 망원경으로 보면 우리 아이들도 그 속에 있더라는… 그런 기후에 차가운 물에서 수영까지 한다면 면역기관의 모터가 무시무시하게 돌게 된다.그래서 이 기후에 얼마나 적응이 되었느냐에 따라 해변에 있는 사람들 옷차림이 오리털 파카에서 나체까지 천차만별인 것이다.

atopywellenreiten15.jpg 파도가 치고 추운 날에도스포츠를 즐기던 아이들. “정신나간 마조히스트들이야!”


북해의 갯벌은 그 생태적 값어치가 우리나라 서해안과 더불어 세계 최고라고 자랑하는 독일 학자의 강연을 들으며 나는 새만금 개발이 생각나서 속이 쓰렸다. 조금 있으면 독일은 자기네 나라만이 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값진 갯벌을 가졌다고 자랑하게되는 건 아닐까?

북해로의 여행 때문인지 다행스럽게도 아들의 아토피는 다시 가라앉았다. 물론 피부가 땀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것을 깨닫고 땀을흘리자마자 금방 샤워를 하는 등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또한 우리나라 서해를 여행했을 적에 수영을 하고 나면 암만 심하던 아토피증세라도 당장 가라앉았던 점에 주목해서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꼭 소금물목욕을 했다. 미네랄이 풍부한 서해 천일염을 독일에서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약국에서 파는 사해소금을 사서 사용했는데 그 또한 효과가 괜찮았다.

유아 아토피는 독일에서도 많은 엄마들이 고민하는 “현대병” 중의 하나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에는 서독에서만 만연하던 지역병이었던것이 통일 후에는 동독 지역에서도 나날이 증가해서 오늘날엔 거의 같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독일 엄마들은 백설탕과 흰 밀가루,흰 쌀을 피하는 식이요법으로 자녀들의 아토피에 대처하기도 한다. 그러나 가정의식생활이 완전히 바뀌고, 아이들이 어디 갈 때마다 음식을 따로 챙겨야하는 수고에 비해서 그 효과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나는가공음식과 인공조미료를 피하고 신선한 재료의 가정요리를 먹이는 것으로 식이요법을 대신하고 있다.

전체 미취학 아동의 8-16%가 앓고 있는 아토피는 독일에서 가장 흔한 어린이 만성질병이다. 그중 70%가 나이를 먹으면서 완치된다지만 사춘기나 노년에 재발할 수도 있다. 현대의학은 아직까지도 아토피의 정확한 원인과 치유법을 밝혀내지 못했다. 그저 증세를 호전시키는 방법으로써 피부에 보호막을 형성해주고, 염증을 가라앉히고, 바닷가나 고산지대에서 요양을 하고,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요소를 찾아내서차단하라고 권할 뿐이다. 그러니 이렇게 아픈 자식을 위해 최대의 노력을 기울이며 초조한 마음으로 동분서주했던 엄마로서 후배엄마들에게 조언해줄 수 있는 것은 단 한가지다. 바로 엄마의 초조함에 아이의 평화로운 마음씨가 물들지 않게 하는 것.

인공암벽타기 학교 대표 선수였던 아들은 어느날 갑자기 재발한 아토피와 천식 때문에 벤치로 물러났다. 3년 연속 주챔피온을 목표로 열심히 연습했지만 증세가 도져서 결국 출전을 포기한 것이다. 시합 전날 아들이 내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다른 친구들은 다 건강한데… 나는 운이 나빠.”
나는 차마 아이의 얼굴을 볼 수 없어서 도마질을 계속하면서 대답했다.
“그래. 하지만 건강한 친구들도 평생 못 해보는 챔피온을 너는 잠시 안 아픈 틈을 이용해서 해봤잖아? 그러니 얼마나 다행이니?”

그 이후로 아들은 훈련에는 꼬박꼬박 임했지만 경기에 다시는 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시합 날이면 자기 대신 출전하는 친구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행사를 주최하는 선생님을 도와 팀 내에서 선수보다 더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들은 앞으로도 몸 뿐 아니라 마음도 잘 다스리며 열심히 살 것이다. 핸디캡을 억울해하는 대신 핸디캡에 평화스럽게 적응함으로써 오히려 적극적으로 극복할 것이다. 본인이 이렇게 의연할진데 옆에서 괜시리 측은하거나 억울한 마음을 품는 것은 엄마로서 예의가 아니겠지요?



(소금물 목욕 방법: 욕조에 섭씨 37도 물을 받아 바닷소금 500 g을 넣고 잘 저어서 15-20분 동안 몸을담근다. 피부에소금기가 남도록 샤워나 비누질을 하지 않고 그냥 나온다. 목욕 후 당장은 아토피 부분이 빨개지지만 다음날 아침에는 사라진다.목욕 후 이불을 따뜻하게 덮고 누워서 30-60 분 쉬면 좋다.)

(레몬트리에 송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