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의 김대중 선생님께!

안녕하십니까? 저는 독일에서 막 대학에 들어가려는 아들과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을 키우고 있는 학부모입니다.

8월 24일자조선일보에 실린 선생님의 칼럼 “금메달과 평준화”를 읽고 우려되는 점이 있어 적습니다. 선생님의 견해와는 달리 저는 우리나라의어린 학생들이 심한 경쟁에 노출되어 있고, 이런 현상은 장기적으로 국가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독일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 독일에선 교육개혁이 몇 가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유럽공동체 안에서 우수한 두뇌의 유동성을 도모하기 위해 대학의 학제를 통일하는 사업(볼로냐회의 1999년)의 일환입니다. 디플롬이었던 대학과정이 베츨러와 마스터로 나뉘어정비되는 작업이 지금 활발하게 진행중입니다. 또한 독일의 초중고교 학과과정이 13년제에서 12년제로 바뀌고 있습니다. 세계화의 시대를 맞아 독일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선 한 살이라도 젊은 고급인력을 하루라도 빨리 배출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마지막 하나는 아직 의견을 나누는 단계에 있는데, 이것 역시 세계화의 시대를 맞아 독일의 경쟁력을 강화하자는 취지지만 접근하는 시각이 좀 다릅니다. 이 글의 주제이므로 상세히 설명하겠습니다.

독일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그렇다할 천연자본이 없이전적으로 인적자본에 기대어 과학기술의 힘으로 먹고 사는 나라입니다. 그런데 작금의 상태로는 우수한 인적자본을 지속적으로 확보하기힘들겠다는 조사결과가 나와서 온 나라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저조한 출산율에 따르는 인구의 감소와 불합리한 교육제도로 인한 인재의낭비가 그 원인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현재 독일에서 일어나는 인재의 낭비는 두 가지 현상에 기인합니다. (사실은 하나 더 있는데 주제에서 벗어나기에 생략합니다.)

기회의 불평등

첫째는 재능이 꽃필 기회를 얻지 못하고 미리 탈락되는 “기회의 불평등” 현상입니다. 독일에선 초등학교 4학년 성적에 의해서대학교육을 받을 학생과 직업교육을 받을 학생들의 진로가 결정되지요. 아이들의 성장 속도가 얼마나 제각각이라는 것을, 열 살 짜리아이가 주변 환경의 영향을 얼마나 많이 받는지를, 아이를 키워본 사람이면 알 겁니다. 약 30%의 어린이들이 대학진학을 목표로하는 김나지움에 선발되는데, 이때 부모들의 능력과 관심이 크게 작용합니다. 무상교육에 공교육 위주의 나라인지라 따로 사교육비가드는 건 아니지만, 돈 버느라고 바쁘거나 학력이 낮은 부모들은 늦된 자녀들을 독려하여 상위 30%에 들 수 있도록 도와줄 여력이없습니다.

부모의 생활수준과 교육수준에 따라 자녀들의 진로가 일찌감치 결정되는 현상은 통계에서 나타납니다. 부모가 대졸학력인 가정에선83%의 자녀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그 이하의 학력을 가진 부모 밑에서 자라는 자녀들은 23%만이 대학에 진학합니다. 여기에부모의 경제력까지 합치면, 대졸출신 공무원의 자녀들은 학력이 낮은 노동자의 자녀들보다 5.5 배나 높은 대학 진학율을 보입니다.

가난과 무지를 대물림하는 “기회의 불평등”은 하류층 자녀들이 고급인력으로 클 수 있는 기회를 막아막대한 국가적 낭비를 초래합니다. 이것은 인권운동가들의 주장이 아니라 경제, 교육, 행정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돈 한푼 안들이고도 공부시킬 수 있는 독일에서도 이럴진데, 선행학습과 사교육에 막대한 사유재산을 쏟아부어야 하는 우리나라에서 “기회의불평등”은 얼마나 크며 또한 그에 따르는 국가적 손실은 얼마나 클는지요? “능력의 평등”과 “기회의 평등”은 구별되어야 합니다.일을 잘하는 사람과 못하는 사람이 똑같은 댓가를 받는다면 일에 대한 의욕을 잃겠지만, 기회가 평등하게 주어지는 사회에선 구성원모두가 열심히 노력하게 됩니다. 자칫 세금으로 연명했을 사람도 세금을 내는 사람으로 성장합니다. 지금 독일사회는 그 잠재력에눈독을 들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은 논쟁의 단계에있습니다. 현재의 교육제도를 독일의 성공과 결부시켜 고수하고 싶은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지요. 어려서부터 산업계 일꾼과 학문계일꾼을나누어 양성하는 기존의 학제는 패전 독일의 산업이 급성장하는 과정에서 효용성이 컸습니다. 그때도 학력의 대물림은 있었지만경제성장기에는 이것이 가난의 대물림으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크게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고속성장의 시대도지나갔고 세계화의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독일 산업의 양상도 (제조에서 정보로) 바뀌었고, 사회가 양극화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교육제도를 시대에맞게 개선하지 않으면 양극화현상은 심화되고 국가 경쟁력도 약화될 것이라 전망합니다.

학부모로서 이 사회에 깊숙히 관여하며관찰하는 저의 판단으로 보건대, 이제 독일에서 “기회의 평등”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개혁이 실행되는 것은 시간문제입니다.“기회의 평등”이 국가의 경쟁력과 직결된다는 것은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떠나서 독일의 미래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다공감하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향성 평준화

두번째 인재의 낭비는 김대중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하향성 평준화” 현상에 기인합니다. 독일에선 초중고교와 대학이 공립이고평준화인 까닭에 수재들을 따로 모아 가르치는 영재교육이 대단히 미진하거든요. 독일 내에서도 불만이 없는 건 아닙니다. 그래서영재학급을 운영하는 학교도 있고, 실력이 특출한 고등학생이 대학 과목을 미리 수강할 수 있는 제도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가장 결정적인 것, 독일 대학의 평준화를 풀자는 의견은 나오지 않습니다. 독일 대학들이 평준화인 까닭에 어떤 대학도세계적인 명문대학의 랭킹에 들지 못하지만 독일인들은 개의치 않습니다. 한두 개 대학의 실력이 국력은 아니기 때문이죠. 독일의 대학에서 여태까지 훌륭한 인재를 충분히 배출해냈다는 것을 과학기술 강국이란 명칭이 증명합니다.

경험으로 볼 때, 독일에서 대학 공부의 특성은 자율성과 창조성입니다. 옆사람과의 경쟁이 아니라 자기 자신과 싸우는시스템이랄까요? 자율성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공부와 연구를 하는 일은, 층층시하의 경쟁시스템에서 옆사람 눈치를보면서는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일이죠. 볼로냐 회의에 따라 요즘 새로 도입된 베츨러와 마스터 학제는 실용성이 있긴 하지만 이런진득한 공부가 불가능하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학교마다 랭킹을 매겨 수재들을 따로따로 경쟁시킴으로써 국가의 경쟁력을 확보하는 미국을 모델로 삼자는 사람들도 있겠지요.그러나 미국은 필요한 고급인력을 외국에서 조달하는 이민국입니다. 자국민의 공교육이 시원찮아서 고급인력을 스스로 배출하지 못해도괜찮은, 그래도 국가 경쟁력에 지장이 없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독일이나 한국에서 이민국으로 노선을 바꾼다 해도, 아무리 그린카드를남발해도, 미국에 가려고 하는 해외의 고급두뇌들을 끌어들일 수 없습니다. 끌어들이기는커녕 상위권 국내 인력을미국에 빼앗기지만 않아도 다행일 것입니다.

선생님께서 걱정하시는 “하향성 평준화” 현상을 독일 고등학교에서 극복하는 모습을 제가 바로 옆에서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제아들이 들어간 수학 전공반에서 학생들의 실력이 최상과 최하로 딱 나뉘는 드문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성적 분포도를 보면 마치장구처럼 최고점수와 낙제점수가 양쪽으로 몰려있는 형국이었지요. 이럴 때는 선생님의 신념에 따라 우등생들이 희생되기도 하고열등생들이 희생되기도 합니다. 선생님은 열등생들을 위하여 반복과 복습에 기반하는 수업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전공반에 들어와 앞서가는 공부를기대했던우등생들은 실망스럽기도 했고, 이러다가 진도가 늦어져서 아비투어 시험(우리나라 수능에 해당)에 지장이 있을까봐불안했습니다. 자식들의 진로가 달린 중요한 문제라 학부모회의가 열렸습니다. 우연스럽게도 우등생들의 부모만 참석한 그 회의에선그간 쌓였던 불만인 하향성평준화에 대한 성토가 터져나왔습니다.

잠시 후, 대학에서 물리, 수학 선생이 될 대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는 한 아버지가 입을 열었습니다. “내 아이의 발전을 위해선 실망스럽지만, 열등생들을 버리고 가지 않는 선생님의신념을 존중한다. 만약 진도가 늦어질 기미가 보이면 내가 따로 가르쳐서 모든 우등생들이 좋은 점수를 받는 일에 차질이 없도록돕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우등생들과 부모들은 일단 안도했습니다.그렇지만 그 아버지가 가르칠 필요도 없게 일이 돌아갔습니다. 아이들은 자기네들끼리 먼저 시도해보다가안되면 도움을 청하겠다며 함께모여서 공부하면서 스스로 해결했습니다.

졸입식날 부모들은 그 말썽 많았던 수학 전공반의 평균점수가 2점(미국의 B에해당)이란 소리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낙제점수로 시작한 열등생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상위권의 성적을 낸 것이죠.또 이 사건에서 자칫 피해자가 됐을 수도 있는 우등생들은 협동작업을 통해 스스로의 힘으로 창조적인 공부를 경험하고 좋은 점수를 유지했습니다. 그자신감과 자부심을 무엇으로 살 수 있을까요? 그런데 만약에 학생들에게 등수를 매겨 친구들끼리 경쟁시키는 시스템에서라면 이런자율적이고 창조적인 공부가 가능했을까요?저는 여기서 독일의 국력을 보았습니다. 선생님과 학생, 학부모가 손을 잡고 이룬 합작품입니다.

우리나라 어머니들의 치마바람만거센 게 아닙니다. 자식 사랑은 어느 나라나 똑같지요. 단지 시스템에 따라 다르게 나타날 뿐입니다. 부모들이 각자 자기 아이를위해 바치는 정성이 연대의식으로모아질 수 있는 나라에선 정치적 견제세력으로 부상합니다.

예를 들면, 독일 학교의 교육기간이 13년에서 12년으로 줄었는데 교과내용은 줄지 않아 학생들의 수업시간표가 길어졌습니다. 부모들은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 집에 와서 숙제하는 시간, 자유시간을 비교해가며 어린이의 건강과 인권과 창조적인 교육이 보장되고 있는지 검토합니다. 교과과정 중에서 구시대의 유물로서 아이들에게쓸데없는 부담만 준다고 여겨지는 내용은 과감히 삭제할 것을 요구합니다. 선진국의 일꾼에게필요한 실력은 남보다 빨리 땅을 파는 부지런한 삽질이 아니라 빛으로 가는 자동차를 상상할 수 있는 풍부한 상상력과 창조력이란 걸 부모들이 알기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부모들은 존엄한 인간이 시장의 인적자원으로만 취급되는 기현상을 초반에 알아채는 파수꾼이고, 연대해서 막아내는 든든한 보루입니다.

새로운 학제에 해당되지 않는 고학년 학생들의 부모들도 적극적으로 힘을 보탭니다. 내 아이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아이들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 부모들의 의식구조가 잘못되어서 개인적이고 이기적인 치마바람이 부는 게아닙니다. 따로따로 경쟁하는 사회구조 속에선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밖에는 자식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없어서그런 겁니다.

제가 남의 나라 소식에 불과한 글을 굳이 드리는 이유는 이런 남의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의 경쟁국이라는 사실입니다. 유럽공동체는또 어떻습니까? 독일과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나라들이 서로 경쟁하는 대신 더욱 효율적으로 뭉치려고 교육까지 개편해가며 힘을기르고 있잖아요? 이런 유럽공동체에 대항하여 우리 학생들은 앞으로먹이싸움을 벌이게 됩니다.

이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선 우리 학생들도 협동하는 기술부터 먼저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상생관계에 있는 친구들을 경쟁상대로 보게 만드는 교육제도는 얼마나 비현실적인가요? 나의 안위를 위해서 절대로 쓰러져서는 안되는 옆의 동지를, 내가밟고 지나가야 하는 적으로 오해하게 만드는 교육제도를 가지고 앞으로 우리나라가 국제사회에서 경쟁력이 있겠습니까? 사람을 쓸데없이초조하게 만들어 창조적인 사고를 배워야 할 귀중한 시점을 놓치게 만드는 등수와 경쟁은 과연 누구에게 이익이 될까요? “분할하라.그리고 지배하라. (divide etimpera)” 이것은 기원전부터 서구사회에 전래하는, 널리 알려진 병법입니다. 적을 따로따로 경쟁시켜 자기네들끼리 힘을 빼게만든 후에 효율적으로 잡아먹으란 뜻이지요. 그런데 우리끼리 자진해서 경쟁이라뇨?

다른 의견을 말씀드리는 제 글이 선생님께 결례가 아니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선생님과 논쟁하기위함이 아니라, 여러 경험에서 나오는 다양한 의견을 종합함으로써 우리나라 학생들을 진정한 경쟁력으로 이끄는 길을 찾는 일에 우리함께 힘을 합쳐 숙고해보자는 부탁을 드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독일 뮌헨에서 임혜지 드림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금메달과 평준화”

이번 베이징올림픽을 통해 새삼 확인한 것이 있다. 그것은 한국인들이 금메달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금메달을 좋아하지 않는 나라나국민이 없겠지만 유독 우리는 금메달에 올인하며 금메달만이 메달인양 대접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 스포츠 관계자는 텔레비전에 나와”은메달을 딴 선수가 마치 죄인인 양 고개 숙이며 눈물을 글썽이는 나라는 아마도 우리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올림픽의 정신은 참여에 있다고들 하고 패자(敗者)도 아름답다고 하지만 그것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은 없다.

금메달은 일등을 말한다. 올림픽의 금메달은 세계최고를 의미한다. “세계최고”는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금메달의 뒤에는 그선수의 땀과 눈물, 역경을 이겨내는 인내, 그리고 관계자들의 헌신과 노력이 있다. 무엇보다 같은 종목에 참가하는 수십,수백명과의 경쟁에서 이겨낸다는 의지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삶의 상당부분을 투자한 긴 여정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그들은 어떤 교육을 받고 있으며 어떤 인생훈련을 치르고 있으며어떤 사회적 제도적 틀에 묶여 있는가? 우리의 어린 세대, 젊은 세대는 평준화에 길들여지고 있다. 그들의 교육을 가로지르는중심축은 평준화이고 그들을 지배하는 교육적 덕목은 평등이다. 경쟁은 못하는 사람을 밟고 넘어서는 “나쁜 것”이고, 돈 있는계층에게만 유리할 수 있는, 반(反)인간적 장치라는 것이 평준화를 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다.

인생이, 인간의 삶이 언제까지나 평등하게 가고 너·나의 차별 없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라면 좋다. 경쟁은 힘들고 평준화는편하다. 경쟁은 때로 각박하고 남을 밟고 넘어서는 작업이다. 비인간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경쟁 없이 살 수 있는 평등한 세상은그야말로 낙원이다.

그러나 세상은 그렇지 않다. 평준화에 익숙해진 우리의 청소년들은 곧 경쟁이 판치는 엄혹한 세상에 내동댕이처지게 된다. 경쟁이아닌 배정(配定)에 길들여진 학생들은 학교를 나오자마자 금메달만을 숭상하는 세상의 인심에 직면하게 된다. 경쟁을 나쁜 것으로여기는 전교조 선생에게서 교육을 받은 우리의 차세대들은 세상에 나오자마자 평준화가 통하지 않는 살벌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때로는 “너 죽고 나 사는” 투쟁에 아무런 훈련이나 준비 없이 나서야 하는 것이다. 경쟁도 훈련해야 한다. 경쟁에 익숙해져야한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은 우리의 젊은이들을 비무장인 채 세상에 내보내는 것이다.

이것은 죄악이다.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그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식을 가르쳐야 한다. 경쟁 없는 세상을 끝까지 보장할 수 없다면아이들을 덮어놓고 무장 해제해서는 안 된다. 끝까지 평준화를 신봉할 것이면 금메달에 목숨 걸듯이 매달리는 세상을 만들지 말았어야한다. 왜냐하면 메달은 바로 경쟁이고 금메달은 최고의 경쟁이기 때문이다. 평준화로는 금메달을 딸 수 없다.

전쟁의 폐허 위에 오늘의 경제를 만들어낸 전후(戰後)세대들은 오로지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만 배웠다. 형제끼리도 경쟁했고 친한친구끼리도 경쟁했다. 때로는 치열하고 때로는 비열하기까지 했던 경쟁 속의 삶이었다. 오늘의 세계는 여전히 경쟁체제로 가고 있다.경쟁을 부도덕한 것으로 치부하고 평준·평등을 지고의 가치로 여기는 전교조식(式) 교육으로는 세계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

문제는 우리의 의식구조에 있다. 지금 우리는 모순되는 의식의 단면들을 여기저기서 목도한다. 교육제도는 평준화에 머물면서 경쟁의최고치인 금메달에 환호하는 이중구조가 대표적이다. 입으로는 반미(反美)를 부르짖으면서 자녀들은 미국에 못 보내 안달인 경우를우리는 자주 본다. 자유와 인권을 얘기하면서 북한 주민의 인권에는 눈을 돌리는 이율배반의 현상이 버젓이 존재한다. 명색이법치국가라면서 준법정신은 땅에 떨어진 세태가 판을 친다. 너무나 위선적이다.

경쟁이 사람을 잘못 인도하는 경우가 없을 수 없다. 경쟁에는 여러 부작용이 있다. 그러나 부작용은 그것대로 극복해야지교각살우(矯角殺牛)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올림픽에도 3·4위전이 있고 패자부활전도 있다. 금메달이 안 되면 3·4위전으로 가야하고 패자부활전에도 나설 수 있다. 거기에도 경쟁은 있다. 앞서 가는 사람, 뒤처지는 사람이 각각 분수에 맞게 윈-윈하는 방법을모색하는 것이 옳지, 앞선 사람을 끌어내려 뒤처진 사람에 맞추는 것은 양쪽 다 죽이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 “금메달과 평준화”**

참고 자료
독일 TAZ 신문
Deutsche Bildung
볼로냐 회의
Divide et impera

이 기사는 2008. 8. 28일자 뷰스앤뉴스에 실렸습니다.
링크: 뷰스앤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