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살인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급기야는 법무부 장관도 사형 집행을 거론하기에 이르렀다. 아무리 정치가 인기 사업이라지만법무부 장관의 공식적인 발언은 보통 미심쩍은 일이 아니다.

지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일부 흥분한 국민들이 사형을 요구하며 떠들어도 행여 밖에서 누가들을세라 쉬쉬하며 말려야 할 일을 왜 정부에서 먼저 나서서 설레발을 치는지 참으로 의아하다. 문명국의 장관이 나서서 사형에 관해공개적으로 고민하는 사실이 의아한 게 아니라 “아, 그러면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들도록모든 일이 잘 짜여진 각본같은 사실이 의아한 것이다.

언론이 살인범에게 지나친 관심을 부여한다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청와대의 “홍보지침설”이 흘러나왔다. 일부 언론에선 의외적으로 살인범의얼굴을 공개하는 오버액션까지 했다. 여태까지는 살인이 괜찮아서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나? 살인범의 얼굴을 공개하면 그의 어린자식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라는 말인가? 문명국의 언론치고 매우 무식하고 파렴치하다. 인권의 마지노선이 줄줄이 무너져내리는 느낌이다.거기에 타이밍을 맞추어 사형 집행을 고려한다는 장관의 발언이 뒤따랐다. 환호하는 군중과 침묵하는 지성인. 이제 남은 것은무엇인가? 고문의 허용인가? 이적단체에 대한 도청을 허하라?

정부와 언론이 합작해서 국민을 선동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정부와 언론이 국민을 선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청와대에서 경찰청에 보냈다는 이메일이 그 대답을 하고 있다. “용산사태를 통해 촛불시위를 확산하려고 하는 반정부단체에 대응하기위해 “군포연쇄살인사건”의 수사내용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바랍니다”

용산에서 무슨 일이 있었길래? 용산에서 참혹하게 죽은 6인의 목숨이 무엇을 의미하길래? 내가 살고 있는 유럽의 시각으로 보자면다음과 같다.

첫째, 용산참사는 공권력에 의한 폭행치사 행위이다. 의도적인 살인은 아니더라도, 진압하는 과정을 보면 그러다가 사람이 죽어도괜찮다는 인명경시 의식이 뚜렷이 드러난다. 추워서 모닥불을 피웠다는 용역이 경찰의 지시를 받았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시위 진압에 사설업체를 동원하는 것이 불법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용역의 지휘권은 경찰에 있기 때문에 일단 경찰의 책임이다. 만약에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용역의 지휘권이 경찰에 있지 않았다면 그것은 무정부상태에 준하는 엄청난 사건이 될 것이다. 그 모닥불이화재의 직접원인이 되었는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인화물질이 있는 건물에서, 위층에 사람이 있는데도 아래층에서 고의적으로 불을피웠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독일에서 내가 직접 목격한 일이다. 앞집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거리에 경찰이 소리없이 깔렸다. 그들은 쥐죽은 듯 조용하면서도부산하게 움직였다. 드디어 몇 사람이 방탄복을 입기 시작했다. 멀리서 조용히 엎드린 저격수의 모습도 보였다. 그렇게 건물 안으로들어간 경찰은 아주 한참 만에 어떤 남자를 앞세우고 나왔다. 설득에 성공한 모양인지 수갑도 채우지 않고 나란히 걸어나왔다. 서너 시간이나 걸린 작전치고는 결말이 너무 싱거웠다. 그 남자가 권총을 가지고 있었기때문에 자칫 살상자가 생길까봐 그렇게 신중을 기한 것이라 한다. 이 사건은 독일에서도 인권의 수준이 지금에 한참 못 미치던30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둘째, 용산참사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검찰과 경찰은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무슨 공권력이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지.그러다가 들켜도 위증에 대해 책임을 지는 일도 없고, 책임을 지기는커녕 다른 거짓말로 대처하고, 그러다가 또 들통나고. 만약개인이그랬다면 위증이나 사기죄로 기소되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 국민은 정부를 믿지 못할 것이다. 믿지 못하는 세상에선 유언비어가돌기 마련이라 정부는 앞으로 암만 잘 해도 억울한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세째, 용산참사의 희생자들을 알카에다에 비교하거나 범죄자로 몰아가는 정치인들은 필시 뭔가 구린데가있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정치가들이라지만 오버액션도 도를 넘으니 별 의심이 다 든다. 재개발하는 과정에서 뭔가 부조리가 있고 억울한일이 있으니까 시위를 하는 것인데, 그것을 조사해서 도와줘야 할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일할 생각은 안 하고 무조건 덤탱이부터씌우는 모습을 보니,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선 벼라별 생각이 다 든다.

용산참사를 역사에 부끄럽지 않게 마무리하려면, 진압하는 과정과 진압 후의 뒷처리에 대한 솔직한 반성과 개선의 의지가 있어야 할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인식하는 일이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서민의 주거권이경시되어왔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 다같이 인식하는 일이다. 부지런히 일하고 정직하게 사는데도 자꾸만 쫓기듯 이사다니는 일이 당연한일이 아니라 억울한 일이라는 사실을 다같이 인식하는 일이다. 언론은 그의 해결을 정부에 요구해야 하고, 정부에선 해결하겠다는 의지를보여줘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싫으니 별 꾀를 다 내서 이제는 연쇄살인범까지이용하여 국민을 선동하고 주의를 환기시킨다.

2차대전의 막바지에 독일이 패배하고 있는 시점에나치의 선전장관 괴벨스는 베를린에서 불꽃 튀기는 연설을 했다. 남자들은 이미 다 끌려나가서 총알받이로 죽거나 포로가 되었고, 이제 남은 어린 소년들마저 불쏘시개로 던져넣으려는 괴벨스의 선동에 독일 국민들은 정신을 잃을정도로 열광했다. 독일의 패배가 확실했던 전쟁말렵에 대부분의 독일인 전사자가 나왔다. 선동에 넘어가 이성을 잃는 것은 독일 국민의 특성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언제 어디서나 빠질 수 있는 함정이다.

정권은 늘 바뀐다. 또 가끔은 바뀌어야 균형이 맞고, 부정부패를 줄이고, 독재를 막는다. 문제는 국민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에휘둘리지 않고 양심과 자질을 지키는 일은 국민의 몫이다. 일꾼이 앞에 나서서 뭐라고 선동하든 주인이 문명국 국민으로서의존엄성과 자긍심을 지키는 한 아무도 이를 앗아갈 수 없다.


독일인들이 나치의 선동에 넘어가는 과정을 그린 제 글이 인터넷한겨레 칼럼방에 있습니다.
링크: 독일, 역사청산의 계기와 과정 (역사청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