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남편은 참 이상한 사람이다. 도무지 질투라는 걸 모르는 사람 같다.

내 전공 탓인지는 몰라도 내가 밖에서 따로 만나는 사람은 대개 다 남자들이다. 우리 남편은 내가 외간남자를 만나러 나가서 암만 늦게 들어와도, 심지어는 독신남성인 동료 집에서 일하다가 자고 와도 한번도 불편한 기색을 한 적이 없다. 동료에 대해서만 그런 게 아니다. 옛날에 내가 좋아했던 남자가 독일의 다른 도시에 들른다기에 내가 한번 가서 만나볼까 했더니, 남편은 비싼 차비 들이고 먼 길 가서 그 날로 되돌아오는 건 비합리적이니 그 일행이 머무는 호텔에서 하루 밤 묵고 오라고 그럴 정도였다. 그리고는 나 없는 새에 비싼 후라이팬을 하나 새로 장만해서 나중에 나한테 혼났다.

그런데 더 이상한 일은, 내가 좋아하는 연예인에게는 불같이 질투한다는 것이다. 남편은 율 브린너, 험프리 보갓같은 옛날 배우의 흑백 영상이 어른거리기가 무섭게 나를 확 나꿔챈다. 발레 공연에 갔다가 내가 남자 주연에게 너무 열광하면 내 손을 꼭 잡고 박수를 못 치게 만든다.
“아, 놔. 왜 그래?“
“저 남자 너무 좋아하지 마. 나 기분 나빠.“
”당신 참 이상하네. 실제 존재하는 남자들에게는 질투 안 하면서 왜 실현의 가망이 전혀 없는 대상에게만 질투하지?“
”세상 남자들은 다 거기서 거기야. 나보다 못 할 것도 없고 나보다 잘 할 것도 없는 남자들이라구. 그래서 그들은 내 라이벌이 될 수 없어. 하지만 당신의 불합리한 정신세계에 떠 있는 이상형과 경쟁한다면 난 가망이 없어. 미화된 허상을 이길 수 있는 실제의 남자가 어디 있어? 그 얼마나 불공정한 게임이냔 말야?“
“누가 자기보고 그 허상이랑 경쟁하래? 괜히 남의 정신세계까지 참견하고 야단이야.“

게다가 이 남자는 나를 몰라도 한참 모른다. 나는 보통의 자존감과 보통의 열등감을 가진 평범한 여성으로서 보통 수준의 질투심을 가졌다. 내가 나의 질투심에 대해 얘기하면 남편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당신도 질투해? 당신이 질투를 알아?“
“오모낫, 그럼 그때 내가 바가지 긁은 건 뭐게? 그게 질투가 아니면 뭐겠어?“
“그땐 내가 당신한테 불친절했다고 당신이 화낸 거잖아?“
“그래, 그때 당신은 왜 나한테 그렇게 못되게 굴었는데? 그 여자가 맘에 들면 들었지 왜 나한테 못되게 굴었냐구? 당신 말이야, 참 나쁜 버릇이 있어요. 다른 여자가 맘에 들면 조용히 떠나란 말이야. 괜히 나한테 모욕 주지 말구.“
옛날 고리짝 일을 돌이키니 다시 화가 솔솔 올라서 내 목소리가 따따부따 날카로워진다. 남편은 자기 평생에 절대로 그런 일이 없었다고 딱 잡아뗀다.

얼른 보면 우리 남편이 참 괴짜같지만, 이치를 곰곰히 따져보면 남편이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내가 이상한 사람이다. 사랑의 감정은 아무도 참견할 수 없는, 개인의 고유한 영역이라 생각하고, 결혼이란 제도와 이혼이란 제도를 똑같이 이롭고 합리적인 제도로 보는 내가 질투심을 가진다는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슴에 손을 얹고 나의 질투심에 대해서 연구를 좀 해봤다. 젊어서의 질투심은 사랑을 확인하려는 뜨거운 몸부림이었던 것 같다. 고유한 가치관이 확립되지 않았던 젊은 시절에 나는 돈이나 명예같은 기존을 가치관에 맞서기 위하여 사랑이라는 순수한 감정에 크게 기댔다. 사랑이라고 다 순수하고 고상한 것은 아니건만 그래도 그 중 가장 떳떳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중년을 넘어 노년으로 접어드는 시기의 질투심은 나의 노후보장이 아직도 건재한지 확인하는 사무적인 성격을 띄기도 한다. 가정을 보다 원활하게 꾸리기 위해서 부부 사이에는 어떤 형식이던 노동분업이 형성되기 마련이고, 오랜 세월 그런 분업에 습관이 들다보면 나중에 혼자 살기가 두려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막상 파트너가 나를 버린다고 상상하면, 남자는 남자대로 여자는 여자대로 자신은 상대방에게 이용당했다는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십 년전에 독일의 테니스 스타 보리스 베커가 이혼했을 때 나는 처음으로 연예인의 사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주목했다. 내 아이 또래의 자식을 둔 동갑내기 내 친구 때문이었다. 그 친구는 보리스 베커의 젊은 연인이 조강지처가 젊었을 때의 모습을 빼닮았다는 사실에 유난히 상처를 받았다. 그의 자식들을 낳아주고 키워주느라고 젊음을 바친 조강지처를 버리고 젊은 여자와 놀아났으니 부인 쪽에서 보면 얼마나 억울하겠냐는 것이었다. 그런데 얼마 안 가서 그 내 친구가 비슷한 사연으로 남편과 헤어졌다. 나는 보리스 베커의 일이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 나이가 그럴 나이라서 그런지 주변에서 비슷한 일이 또 일어났다. 직장에서 만난 중년의 기혼 남녀가 서로의 능력을 흠모하다가 눈이 맞았다. 평생 남편의 커리어를 위해 내조하며 집에서 자녀들 교육에 힘쓰고, 이웃들을 초대해서 바베큐 파티를 열고, 가족 모임을 주선하는 등 가정사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조강지처를 자랑스럽게 여기던 남자가 직장에서 만난 커리어우먼의 매력에 눈이 멀어버린 것이다. 그 커리어우먼은 자녀가 없는 대신 돈이 많으니까 풍부한 문화생활과 취미생활을 즐기고, 외적 내적으로 자신을 가꾸는 일에 많은 투자를 하는 여성이었다. 다재다능하고 반들반들하게 가꾼 여인과 함께 음악회와 미술관에 다니기 시작한 남자의 눈에는 자기 부인이 갑자기 펑퍼짐한 아줌마로 보이기 시작했고, 부인이 주관하는 바베큐 파티가 무식하게 느껴졌다.

남자는 새로 불붙는 사랑을 마음껏 즐기고 싶은 염원과, 평생 이룩해온 가정 역시 잃고 싶은 염원 사이에서 고민했다. 어느 하나도 잃지 않고 둘 다 취할 야무진 꿈을 가지고, 조강지처에게 진심으로 호소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존중하기 때문에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다. 나는 그녀도, 당신도 포기할 수 없다. 내 마음을 받아주소서.” (떽!) 그러나 평생 남편 하나만을 바라보고 살던 조강지처는 뜻밖에도 남편에게 당장 집에서 나가줄 것을 요청했다. 전혀 예기치 않았던 단호한 반응에 남자는 짐을 싸는 수밖에 없었다. 가방을 들고 애인네 집으로 갔다. 커리어우먼은 자기 집 앞에 트렁크를 들고 서 있는 남자를 보고 당황했다. 커리어우먼네 부부는 주말부부였으므로 그녀는 마음이 정리될 때까지 일단 이중생활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숭고한 감정에 충실하기 위하여 가정까지 버리고 나왔다는 연인의 진정성에 감복했다. 커리어우먼은 자기 남편에게 변심을 통고하고 연인과 함께 동거를 시작했다.

신발을 벗어놓는 습관이라던가 신문을 접는 방법 등등 자잘한 일상의 덫이 조여와 정열의 빛이 바래기 시작할 무렵에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커리어우먼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독일의 크리스마스는 대가족이 만나는 명절인데, 결혼한 여자가 이제 막 사귀기 시작한 동거남을 데리고 부모님 집에 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커리어우먼은 저 혼자만 부모님께 가서 적당히 둘러대기로 결정했다.

크리스마스에 홀로 남게 될 위기에 처한 동거남은 당황했다. 이 나라 최대 명절인 크리스마스를 혼자서 쓸쓸하게 보내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래서 조강지처를 만나서, 아이들을 위해서 크리스마스는 집에서 쇠겠다고 생색을 냈다. 그러나 기뻐할 줄 알았던 조강지처는 뜻밖에도 난색을 표했다. 자기는 크리스마스를 친구들과 함께 카리브 해안에서 보내기로 했다며, 아이들에게나 물어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청소년인 아이들도 친구들과 이미 선약이 있었으므로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자는 아버지의 제안을 정중하게 거절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커다란 트리를 세우고 고소한 과자를 굽는 가정의 전통을 이어온 조강지처가 자기가 집을 나가자마자 그렇게 쉽게 새생활에 적응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남자는 쇼크를 먹었다. 갑자기 외로움을 느낀 그는 친하게 지내던 이웃, 친지들이라도 오래간만에 만나보려 했으나 그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대놓고 뭐라고 하는 건 아닌데 아무도 그를 반겨 맞아주지 않았다.

평생 패배라는 것을 모르고 살아온 자존심 강한 남자는 갈 데가 없어지자 과감한 승부수를 던졌다. 부랴부랴 반지를 사서 커리어우먼에게 청혼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열렬한 사랑에 다시 한번 감동한 커리어우먼은 대결정을 내렸다. 크리스마스 휴가에 커리어우먼은 그를 부모님에게 데려갔다. 부모님은 사위가 바뀐 걸 보고 처음엔 놀랐으나 잘난 자기 딸에게 잘 어울리는 잘난 남자라는 걸 인정했다. 온가족이 평화스럽고 만족스러운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크리스마스 휴가가 지나간 후, 커리어우먼은 동거남과 결혼하기 위해서 남편에게 이혼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나 며칠 뒤에 커리어우먼은 남편의 품에 머리를 파묻고 흐느껴 울었다. 자기에게 청혼했던 동거남이 크리스마스 휴가가 끝나자마자 갑자기 짐을 싸서는 조강지처가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렇게 자존심이 강한 남자가 조강지처에게 자기를 다시 받아달라고 싹싹 빌며 무조건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다시 합쳐진 조강지처네 부부는 다시 친구들을 초대해서 바베큐 파티를 하고, 크리스마스가 오면 커다란 트리를 세우고 과자를 구우며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잘 살고 있다는 소문이다.

역시나 펑퍼짐한데다 매력도 없고 돈도 별로 못 버는 나는 그 남자의 조강지처에게 딱 감정이입이 되었다. 나는 이를 갈며 내 남편에게 이 사건을 시시콜콜 실시간 중계방송 해줬다. 왜냐면 직장 동료! 내 남편에겐 컴퓨터 잘 하는 여자를 좋아하는 나쁜 버릇이 있는데, 새로 입사한 여자 동료의 컴퓨터 실력이 뛰어나다고 어찌나 칭찬을 하는지 안 그래도 내가 신경을 곤두세우던 참이었다. 우리집 티비를 엄청나게 복잡하게 연결해놔서 그걸 한번 켤 때마다 거의 프로그래밍 수준으로 작동을 많이 하게 만들어놓고는 내가 순서를 잊어버려서 쩔쩔매면 도리어 나를 구박하는 남편에게 나는 날카로운 의심의 눈초리를 날렸다. 저게 분명히 나를 그 여자랑 비교하는 게야.

내가 먼저 독기를 품어서 그랬던 건지는 몰라도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내게 적대적으로 대하기 시작했고 나는 나름대로 그 이유를 짐작했다. 결혼생활 중에도 우리 가슴엔 간혹 남몰래 다른 이성을 향해 설레는 감정이 싹틀 때가 있는데, 남편이 늘 들키는 이유는 나를 대하는 그의 태도가 불량해진다는 데 있고, 내가 절대로 들키지 않는 이유는 남편에 대한 내 태도가 변함없다는 데 있다. 나의 태도가 변함없다는 말은 다른 이성을 선망하는 감정이 일어도 남편을 향한 나의 마음이 변함없다는 뜻이고, 남편의 태도가 불량해진다는 말은 그가 나를 다른 여자에 견주어 우습게 본다는 뜻으로 나는 해석한다. 그러던 어느날 내가 남편 회사로 전화했더니 이 잉간이 받으면서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 여자 이름을 부르는 거시어따. 질투심과 배신감에 떨며 나는 조용히 원자폭탄을 날렸다. 자세한 사연은 부끄러워서 생략한다.

결혼 22년차에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어낸 우리 부부가 이제와서 이해관계나 성격차이로 이혼할 확율은 극히 적다. 그러나 인간은 화학공장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누구라도 사랑 벼락을 맞아 원자의 조합이 흐트러지면 기상천외한 애정행각이 가능하다는 것을 믿는다. 얼굴에 난 검버섯을 화운데이션으로 가리면서 “이러다가 혹시 연애라도 하게되면 화장한 채로 침대에 드나 어쩌나, 아이고 바람이고 뭣이고 귀찮아라.”하고 망상하는 나도, 정신적인 손실을 귀찮아하고 경제적인 손실을 무서워하며, 결정하는 걸 기피하고 변화를 싫어하는 남편도, 일단 벼락을 맞으면 물불을 가리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 남편이 아직도 대단히 매력있는 사나이라고 굳게 믿는 나로서는 가끔 걱정이 안 드는 건 아니나, 번개 치고 벼락 맞는 건 내 의지와 능력으로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이라고 생각한다. 언제 벼락이 칠지 모르니 서로 인연이 닿은 시간만큼이라도 애틋하고 살뜰하게 즐길 뿐이다. 마치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이기에 하루하루를 더욱 기쁘게 살아내듯이.

나처럼 너의 약점까지 다 감싸서 좋아하고, 네 새끼들을 헌신적으로 사랑하며, 춤 출 때의 보폭이 너랑 똑같은 여자가 이 세상 천지에 또 어디 있겠냐마는, 그런 나를 두고 다른 여자가 더 좋다면 그 큰 사랑을 내가 어떻게 막겠니? 그러니까 행여 내가 벼락 맞으면 너도 내 큰 사랑 막지 마라, 앙?


(이 글의 축약본과 사진이 레몬트리 7월호에 실렸습니다. 남편에게 허락 맡느라고 이 글의 내용을 설명해줬더니 “우리 마누라 또 혼자 제 흥에 겨워서 소설을 썼구만.”하고 피식 웃네요.^^ 자기랑 전혀 상관 없는 얘기라고 자꾸 우기는데, 아무래도 그 머리론 내 가슴을 이해하지 못 하는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