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로 돌아가기 싫다고 투덜대는 딸내미를 이끌고 비행기를 탔다.

한국이 좋고 독일이 나쁜 게 아니라 한국에서는 놀기만 했으니좋을 뿐이고 독일에선 학교도 다니고 세척기도 비워야 하니 싫은 것일 뿐이라고 말했더니 딸은 괜히 나한테 화를 냈다.

한동안 떨어져 있던 남편과 딸은 만나자마자 쌈박질이다. 처음에는 말로 싸우다가 그것으론 성이 안 차는지 이제는 이메일까지 동원해서 싸운다.

엊그제는 딸이 저녁 해준다고 해서 남편이 감지덕지해서 부엌을 싹 치워줬다. 그리고는 나랑 산책을 나갔다 왔더니 딸애는 자기친구를 초대해서 지네들끼리 냠냠 저녁을 먹고 있었다.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도 상냥하게 인사만 하고는 같이 먹자는 소리를 안하길래 자기네 먼저 먹고 우리는 따로 부르려나 싶어서 우리는 방에 가서 마냥 기다렸다. 밤 9시가 넘도록 오라는 소리가 없어서남편이 부엌에 가서 물어봤더니 딸은 친구랑 방에 들어가면서 남은 것 먹으라고 하더란다. 남은 것? 별로 없었다!!!

남편이 화가 나서 뭐라 그랬더니 딸애가 음식 양을 맞추지 못해서 그랬다고,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근데 남편이 교양 없게도 계속해서 화를냈다. 안 그래도 무안했던 딸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어린 딸이 요리에 서툴러서 양을 좀 맞추지 못했기로서니 그게 그렇게 화낼일이냐고 되려 큰 소리를 쳤다. 남편 말을 들으면 남편 말이 옳은 것 같고 딸아이 말을 들으면 딸애 말이 옳은 것 같다. 나는박쥐다.

슬슬 수세에 몰리기 시작한 남편이 “네가 사춘기라서 그렇다”는 말로 마무리 멘트를 날린 것이 되려 사단이 되었다. 딸은 제아빠의 사춘기 운운이 대화 상대를 모욕하는 발언이라고 펄펄 뛰었다. 애구, 내가 들어도 내 남편이 좀 실례하기는 했다마는,하지만 제 아빠 실수를 그렇게 물고 늘어지는 넌 또 뭐냐? 앙?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지하던 자식들이 나이를 먹어 부모와 대등하게 가사의 의무를 나누어져야 할 나이가 되니 집안이 참 여러모로삐걱삐걱이다. 우리만 그런 게 아니라 집집마다 난리도 아니란다. 자식을 키운다는 것은 끊임 없는 변화에 늘 적응해야 한다는뜻이다. 성인이 된 자식들과 동등하게 노동분담을 하며 함께 사는 일, 즉 오랜 습성으로 편안하게 굳어버린 배역을 해체해서 판을 다시짜는 일에 성공한 가족도 있기는 한 모양이다.

그러나 난 별로 그러고 싶지 않다. 그 작업이 너무나 수고스러운 것을 보아하니성인이 된 자식들이 부모 집에 같이 산다는 그 자체가모순인 것 같다.몸과 마음이 다 커버린 십대 후반이 되면 자식들을 집에서쫓아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고 현명한 방법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위해서,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식의 행복을 위해서.

우리 아이들이 잔소리하고 감시하는 부모의 품을 떠나서 진정한 자유와 독립을 만끽하며 인생을 즐길 상상을 하면 괜히 내가 행복해서입이 헤벌어진다. 아이들 내보내고 우리 부부 둘이서 집안 정리 잘 해놓고 오손도손 사는 상상을 하니 기분이 더 좋아진다. 막상아이들이 나가고 나면 엄청 허전하다고 하더라마는 그건 그때 가서 허전하면 될 일이고…

내가 이 글을 쓰는 사이에 부엌에서 이변이 일어났다. 그간 서로 말 안 하던 남편과 딸이 어느새 죽이 맞아서 낄낄깔깔 난리도 아니다. 어이, 거기 두 분네들, 입 놀리시는 동안 손도 좀 놀려 설거지라도 하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