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경의 거시기
나는 한글로 글을 쓰지만 한국말로 대화할 기회가 별로 없는 편인데 이번 여름에 한국에 갔을 때 많은 사람들과 얘기를나누었다.
내가 여성의 몸과 마음에 대해 쓰는 글이 같은 여성들에게 많은 위로와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엊그제 새로 나온 책 ‘‘고등어를 금하노라 ‘‘의 마지막 장을 장식한‘‘완경의 섹스’' 는 완결형 글이 아니라 두고두고 보완하고발전시켜야 하는 글이다. 내 몸이 점차 변하고 있으니까. 이번에 한국에 가서 만났던 동갑내기 친구들의 성화에 힘입어 새소식을알려드린다.
나는 지난 겨울에 몸이 좋지 않았다. 감기인지 뭔지 몸에 늘 염증이 있는 것 같았고 여기저기 뼈마디가 쑤셔서 가만히 누워만있어도 입에서 저절로 아야 소리가 나왔다. 영하의 날씨에 높다란 성당 지붕 밑에서 사다리 타거나 습도가 90%나 되는 동굴을 실측조사하는 강도 높은 작업 탓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늘 하던 일이니까. 나는 갱년 여성의 주적인 골다공증 탓이라고 내 맘대로해석해놓고,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며 살기로 했다.
그러던 중에 팬티에서 매일같이 갈색 분비물이 발견되었다. 생리가 끊긴지 오래니 자궁 계통은 아닐 테고 필경 다른 장기에 이상이있나 보다 싶어서 일반의에게 가 봤다. 소변에 피가 섞여 있다는 검사 결과가 나와서 신장을 검사했고, 신장에는 문제가 없다는결과가 나오자 방광을 검사했고, 방광염도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 그래도 산부인과에 가볼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완경과 함께 그쪽계통의 크고 작은 염려에서 벗어났다는 믿음이 커서 그랬나 보다. ‘‘신장염도 아니고 방광염도 아니라니 언젠가는 저절로없어지겠지'‘하고 포기하고 살기로 했다. 그런데 ‘‘죽을 병인가? 혹시 암?‘‘하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자궁암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며칠 더미적거리다가 산부인과에 갔다.
의사는 내 말을 듣자마자 심증이 잡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진 후에 의사는 그럴 줄 알았다는 투로 질의 점막이 건조해서 염증이 생긴 거라고 말했다. 암은 아닌 것 같다니 다행이로구만, 근데 건조하다고 염증이 생기나?
“완경 후 에스트로겐 호르몬의 부족으로 오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제가 지난 번에 호르몬 좌약을 처방해드리려고 한 겁니다."
의사는 ‘‘너 그때 그런 거 필요 없다고 괜히 고집부리더니 쌤통이다'‘라는 표정으로 빙글빙글 웃었다.
그때 나는 완경으로 인해 질이 건조한 현상을 성교할 때 불편한 현상으로만 이해했기 때문에 의사가 추천하는 예의 호르몬 좌약을윤활제 러브젤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명색이 부부인데 그 정도의 불편은 우리의 애무로 해결할 수 있어야지 그런 일로 호르몬을 써서야 되겠냐?
나는 내 정신력으로 통제할 수 없는 내 몸의 화학반응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예전에는 달마다 생리 증후군을 심하게겪었고, 임신 했을 때 약으로 인한 갑작스런 우울증 을 경험해 본 나로서는 지금 편안한 상태의 내 호르몬 수위를 건드리고 싶지않았다. 그런데 완경으로 인해 질이 건조한 자연적 현상이 가만 있어도 염증까지 일으키는 범인인 줄은 몰랐다. 왜 몰랐지? 완경에대해 책도 읽고 그랬는데 이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잖아? 나는 의사에게 꼬치꼬치 캐물었다.
“이건 저만 겪는 특별한 현상인가요? 다른 여성들도 다 겪는 건가요?"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근데 왜 선배 여성들이 다른 얘기는 다 써도 이 얘기는 안 쓰지요?"
나의 원망 섞인 질문에 남자 의사는 그걸 내가 어떻게 아느냐는 표정으로 어깨만 들썩해 보일 뿐이었다. 속으로는 ‘‘어쩌라고? 넌 의사 말도 안 듣고 혼자 잘난 척하더니 별 원망을 나한테 다 하냐?’’ 그랬을 것 같다.
나는 처방 받은 호르몬 좌약으로 인해 생리와 젊음이 다시 돌아오지는 않는다는 다짐을 받고 또 받았다. 의사는 국소 치료제라고까지말했다. 집에 와서 처방대로 사용했더니 오래동안 팬티를 더럽히던 분비물이 정말 며칠만에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리고 또 하나의콩고물도 떨어졌다. 남편과 잘 때 예전처럼 아프지 않아 쾌적한 것이다.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 나 혼자만 호르몬 도핑으로 성욕이 늘면 남편과의 밸런스가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기우가 있었지만 특별히 더 그런 것 같지는 않으니 다행이다. 하지만 통증이 사라짐과 함께 밤놀이에 대한 부담이 사라져서 예전보다 즐거운 건 사실인 듯.
이번에 한국에 갔을 때 동갑내기 친구들에게도 시시콜콜 얘가해줬다. 한 친구가 ‘‘노인성 질염'‘이라는 단어가 있다는데 그게 이건가하길래 “아, 그런가 보다. 근데 하필이면 노인성 질염이 뭐냐? 어감이 기분 나쁘다이가?“하며 사춘기 소녀들처럼 까르르르웃었다.
나의 호르몬 좌약에 대해서 남편에게 말했냐고? 아니지. 쓸데 없이 장군의 평정을 어지럽히는 소리는 뭣하러 혀?
부록: 내가 처방받은 좌약의 성분은 에스트리올(Estriol) 0.5mg 이다. 첫 3일은 매일 밤 1정씩 투약하고 그 후로는1주일에 두 번만 투약했다. 그렇게 처방받은 15정을 다 쓴 후에 병원에 가서 검사 받고 다시 15정 처방 받았다. 아무래도미심쩍어서 나는 체구가 작으니까 1주일에 한번씩만 투약해도 괜찮냐고 물어봤더니 의사가 그러라고 하면서 상태를 스스로 관찰하라고했다. 모든 약이 다 그렇듯이 이 약에도 고혈압, 복통, 두통, 유방이나 국부 통증, 하혈, 다리 통증, 붓기 등의 부작용이따를 수 있으니 꼭 의사와 상담하시고 의사의 감독하에 투약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