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남편은 알레르기가 있어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 여는 파티에는 술이 없다.

독일에선 정식으로 식사를 할 때 와인이나 맥주를 마시는 습관이 있어서 나는 손님을 식사에 초대하면 술도 준비하고 싶지만 남편이 늘 반대한다. 암만 좋은 음식을 차려놓고도 술이 없으면 불완전하다고 여기는 식사 문화, 그럼으로써 은근히 술을 권하는 음주 문화에 동조하기 싫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집에 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술 없이도 잘 먹고 잘 놀다 가지만, 한국 음식처럼 근사한 정식에 와인이 빠지면 아깝다고 자기가 마실 술을 들고 오는 손님들도 종종 있다.

매년 12월 31일 저녁을 우리는 친하게 지내는 가족들과 함께 보낸다. 도합 네 가족, 아이들까지 합치면 열댓 명이 되는 인원이다. 우리는 동네 교회에서 공연하는 헨델의 ‘‘메시아'‘나 바흐의 ‘‘b단조 미사'‘를 감상한 후에 어느 한 집에 모여 조촐한 식사를 하며 새해를 기다리곤 한다. 지난해에는 내가 노상 바빠서 그 친구들을 별로 만나지 못했으므로 이번에는 우리집으로 초대해서 한국 음식을 대접하기로 했다. 한국 음식이 손이 많이 가는 줄을 잘 아는 그 친구들은 뻔질나게 전화해서 ‘‘뭘 도와줄까, 디저트라도 해가지고 가랴’’ 물었다. 나는 다른 건 필요 없으니 새해맞이 건배를 위해서 샴페인이나 한 병씩 들고 오라고 했다.

내가 잡채를 버무리는 동안 상을 차리던 남편이 비명을 질렀다. 샴페인잔이 모자란다는 거였다. 우리집에서 유일하게 음주하시는 따님께서 가끔 친구들이랑 자기 방에서 샴페인을 드시는 눈치던데 그새 잔을 몇 개 깨먹은 모양이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럼 와인잔도 같이 꺼내지.“
“뭐라구? 어떻게 와인잔에다 샴페인을 마시냐?“
“왜 못 마셔? 와인이나 샴페인이나 그 맛이 그 맛인데.“
“안 마시면 안 마셔도 이왕 마실 때는 격식이 있어야지, 당신은 손님한테 창피하지 않아?“
“어머, 미치겠다. 하루종일 요리해서 맛난 음식 해준 주인이 그까짓 잔 때문에 창피해야 한다면 말이 되냐? 내가 손님이라면 사발에다 샴페인을 따라줘도 감지덕지하겠구만.“
내가 팔짝 뛰자 남편은 툴툴거리며 전화통으로 둘둘 달려가더니 조금 있다가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부엌으로 들어왔다. 오늘 오기로 한 친구에게 고자질을 하고 샴페인잔을 좀 들고 오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나는 “잘했슈” 그랬다. 그래서 그날 밤 우리는 격식을 갖추고 새해를 맞을 수 있었다.

Glas 포장째 빌려온 샤페인잔, 결혼 선물로 받은 샴페인잔, 이케아에서 산 와인잔


손님을 초대해 놓고 술을 준비하지 않겠다고 고집부리는 거 보면 남편이 나보다 더 괴팍한 사람인것 같은데, 잔이 틀리면 어떠냐고 배짱 부리는 거 보면 내가 더 괴팍한 사람인 것 같다. 이렇게 사람은 소심한 부분과 대범한 부분이 각기 다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남편은 알코올 알레르기로 직접 고생을 하는 사람이니 술을 권장하는 분위기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는 사람이고, 난 남편에 대한 배려로 술을 안 먹는 것일 뿐이니 어쩌다 못 이기는 척하고 마셔도 괜찮은 사람이다. 그리고 남편은 술잔마다 용도가 다른 것을 보며 자란 사람이고, 그에 반해 나는 주전자에다 보리차도 끓이고 막걸리도 받아오는 것을 보며 자란 사람이다. 개인의 경험에 따라 소심과 대범이 갈릴 뿐이다.

지금 대학생이 된 아들이 아장아장 걸어다니는 아기였을 때니까 근 20년 전의 일이다. 북반구의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햇살이 제법 따사로운 일요일 아침에 우리는 아이를 통해 막 사귀기 시작한 다른 가족들과 함께 옛날에 영주가 살았던 성의 공원으로 산보를 나갔다. 오래간만에 화창한 일요일을 맞아 나들이 옷을 잘 차려입은 산보객들로 너른 공원 길이 제법 붐볐다. 독일은 종교적 전통이 깊은 나라여서 우리 윗세대 때만 해도 일요일에만 특별히 꺼내어 쓰는 ‘‘일요일 그릇'‘이 따로 있었고, 성당이나 교회에 가지 않더라도 일요일에는 ‘‘일요일 옷'‘을 단정하게 입었다.

‘‘일요일 옷'‘을 입은 점잖은 사람들 틈에 끼어서 걸어가다 말고 남편이 호주머니를 부시럭거리더니 뭔가를 꺼냈다. 으악, 두루마리 화장지가 통째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남편은 유유히 두루마리를 풀어서 팽하고 소리도 요란하게 코를 풀었다. 아무리 알레르기가 있어서 휴지가 많이 필요하기로소니 호주머니에 두루마리 화장지를 통째로 넣고 다니는 사람은 난 태어나서 그때 첨 봤다. 순간 나는 창피한 마음이 들어서 남편에게서 한 걸음 살짝 떨어져서 걸었다. ‘‘요렇게 약간 떨어져서 걸어가면 남들은 우리가 부부라는 것을 모르겠지? 외국인도 보는데 길에서 두루마리 화장지를 쓰면 어떡하냐고 다른 독일 사람들이 부끄러워해야지 뭐 외국인인 내가 부끄러울 일 있나?’’

그날 집에 가서 물어봤다.
“독일에선 다른 사람들도 두루마리 화장지를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코 풀어?“
“몰라.”
“근데 자기는 왜 그래?“
“편하고 싸고 종이를 절약하니까.“
아직 새댁이었던 나는 나의 미래가 고단할지도 모른다는 예감으로 살짝 풀이 죽었다. 한편으론 그의 거침 없는 성격이 무척 신기하고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그 이후로 우리집에서는 두루마리 화장지가 두루두루 애용되었다. 이젠 부엌이건 거실이건 침실이건 어디나 두루마리 화장지가 버젓이 놓여 있고, 손님이나 오셔야 손님용이라고 생색을 내면서 내프킨을 따로 드린다. 내프킨이나 키친롤 대신에 두루마리 화장지를 쓰면 용도에 따라 양을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종이의 소비가 훨씬 줄어든다. 굶어 죽는 사람이 있는 지구에서 어떻게 돈 좀 있다고 자원을 마구 낭비할 수 있나? 배고픈 사람 앞에서 나 혼자 밥을 먹으려면 적어도 쩝쩝 소리 덜 내고 냄새 덜 피우며 조신하게 먹는 게 인간의 예의지. 독일에서도 우리가 좀 유난스러운 건 사실이다. 두루마리 화장지를 우리처럼 이렇게 대놓고 예뻐하는 집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남편이 원시림 보호에 대한 신념을 이렇게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이유는 그가 적어도 두루마리 화장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과거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나는 한국에서 두루마리 화장지에다 털실로 옷을 떠서 입혀놓고 거실이나 자가용을 장식하는 것이 신식 문화로 떠오르는 것을 보며 자랐고, 조금 더 있으니까 화장실에서 쓰는 물건이 식탁에 올라와 있으면 서양 사람들이 흉본다고 외국에서 살다 온 사람들이 가르쳐주는 것도 경험했다. 그래서 난 다른 건 몰라도 두루마리 화장지의 용도 변경을 실천에 옮기는 데는 과거의 경험을 극복해야만 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나는 남편이 이해할 수 없는 수고를 바쳐야 했다.

그래도 누가 나보고 문화적 차이 때문에 국제결혼이 어렵지 않느냐고 물으면 난 그렇지 않다고 대답한다. 문화적 차이는 같은 나라에서 태어난 사람들끼리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도리어 국제결혼의 경우에는 다름을 인정하기가 쉽기 때문이고, 술잔이나 두루마리 화장지의 용도처럼 문화적 습관에 기인하는 콤플렉스는 대화를 통해 이성적으로 극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의 표면에 잔잔한 무늬로 남아서 건드리면 껄끄럽기는 해도 아프지는 않다.

그러나 고유하고 개인적인 상처는 다르다. 무의식 속에 깊숙히 수놓인 개인적인 상처에서는 아직도 건드리면 피가 난다. 각기 다른 부위에 상처를 가진 두 사람이 만나서 몸을 비비다 보면 내 상처를 상대방이 건드릴 때도 있고 상대방의 상처를 내가 건드릴 때도 있다. 상대방에게 그런 상처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그가 아파하면 난 그가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다. “성격 파탄자 아니야?“ 또한 나도 모르던 상처를 그가 용하게 찾아내어 쿡쿡 자꾸 건드리면 분하고 억울해서 증오심이 하늘을 찌른다. “넌 인간도 아니야!“ 매력은 양날의 칼이라고, 하필이면 나를 반하게 만든 그의 매력이 같이 살다 보면 바로 내 상처를 찌르는 요소다. 이런 무뢰한에 깜빡 눈이 멀었던 나까지 이젠 미워질 판이다.

이성적인 대화로 풀 수 없는 오해는 필경 그와 상관 없는 ‘‘나만의 상처'‘와 나와 상관 없는 ‘‘그만의 상처'‘에 기인한다는 생각이 슬슬 들기 시작한 것은 앞으로 살 날이 여태까지 살아온 날보다 확실히 적어진 시점에서였다. 기필코 진실을 밝혀 오해의 실타래를 풀겠다고 칼 들고 설칠 일이 아니라 그냥 부드럽게 덮어주었어야 될 일이란 것을 진작에 알았더라면 너와 나의 상처가 자꾸 드러나고 덧나서 우리 아이들에까지 옮아가는 것쯤은 막았을 텐데.

이왕 엎질어진 물이니 그 물에 코 박고 앉아서 애석해할 일이 아니라 두루마리 화장지 풀어서 쓱쓱 닦고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죄 없는 자식들에게 상처를 옮겨준 부족한 사람일수록, 나 스스로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순간 부끄러운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모범이라도 보여줘야지.


(레몬트리 2월호에 이 글의 축약본과 사진들이 실렸습니다.)

PS
이 글을 읽고 캐나다에 사시는 독자분께서 법륜 스님의 말씀이 생각났다고 메일을 주셨습니다. 맞아요. 저는 갈등이 생길 때마다 늘 법륜 스님의 말씀을 떠올려요. 그러면 사리가 이해되고 마음이 참 편안해집니다.

법륜스님 영상법회 (드라마보다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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