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 딸의 아비투어 시험기간이다. 아비투어는 독일 고등학교 졸업시험이자 대학 입학 자격시험이니 한국으로 치면 수능쯤 될라나?

아비투어 최종 점수의 반 이상은 지난 2년 동안 치른 시험 성적이 차지하고 그 나머지는 지금 치루는 아비투어 본고사 성적이 좌우한다. 대학평준화인 독일 학제에선 소숫점 이하 자리 따져서 대학이나 학과가 결정되는 게 아니니까 성적에 대한 허영심이 없는 한 별로 크게 떨릴 일이 없는 시험이지만, 그래도 학생들에게 아비투어 시험이란 일생일대의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1-2 주일 간격으로 한 과목씩 치르는데 딸은 이제 막 한 과목 치렀다. 내가 보기에 수험생치고 참 편안하고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본인 입장에선 안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딸이 엊그제 한 말이 참 가관이다. “하루에 6시간을 꼬박 앉아서 외웠더니 머리가 이상해져서 이틀이나 휴식을 취해야 했어.” 그래서 한국 드라마를 잔뜩 보시고 (역시 아비투어 준비하는) 친구들하고 밤 늦게까지 춤추러 가서 심신의 휴식을 취하신 덕분에 머리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셨단다.

그래도 지금은 양반이다. 아비투어 성적에 포함되는 기말고사를 두 번이나 지각한 사연은 어떻고? 한번은 늦잠을 자서 20분이나 늦게 시험장에 도착한 탓에 시험을 약간 망쳤단다. 그래도 약간만 망쳤으니 다행이라고 하더라. ‘‘다시는 이런 불상사가 없으리라’’ 다짐하셨다는 이 아가씨, 그 다음 시험에서는 아예 학교가 파한 시간에 잠에서 깨어났다. 부랴부랴 병원에 가서 머리가 아파서 학교에 못 갔다고 병과를 끊어서는 학교에 제출했다. 그리고 며칠 후에 저 혼자서 재시험을 치렀다. 그런데 그게 행운이었다고 하더라. 시험 보는 날 늦잠을 잔 이유는 그 전날 친구 생일이라고 새벽까지 클럽에서 술 마시고 춤추며 놀다가 온 탓이고, 그날 아침에 정상적으로 시험을 봤으면 아주 망쳤을 텐데 다행히 늦잠을 자서 그날은 시험을 피하고 훗날 시험을 치렀기에 성적이 더 좋았다고 한다.

그날 아침에 우리 부부는 딸이 시험 보는 날인데 방에서 안 나오는 것을 좀 이상하게 생각하기는 했다. 아마도 시험 시간이 늦춰졌겠거니, 늦게까지 공부하고 푹 자고 적당한 시간에 자기가 알아서 일어나겠거니 하고 우리는 각자 출근해버린 것이다. 그날 저녁에 자초지종을 들었을 때 난 다른 말은 안 하고 공공의 재산인 의료보험을 그렇게 악용하는 것에 대해서 좀 투덜거렸다. 독일 기준으로 봐도 우리 딸의 품행이 그렇게 반듯한 것은 아니어서 남편도 나도 딸의 장래가 좀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남의 일에 부모라고 함부로 간섭하지 말자고 서로를 단속했다. “건강하고 똑똑하고 착한 이 아이가 자기 인생을 오죽 잘 알아서 챙기겠소?“라며 서로서로 위로했다.

지금은 날씨가 화창하고 평화로운 일요일 정오. 잘난 따님은 방에서 피아노를 치고 계시고, 현관에서 딸그락 열쇠 소리가 나더니 아드님이 피곤한 얼굴로 들어오신다. 어머, 아직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제 밤에 안 들어왔구나. 어디 가서 밤새도록 뭐 하셨을까? 이 아자씨 요즘 외박이 좀 잦으신 듯. 엄마가 다 큰 아들에게 어디 가서 뭐했냐고 물어보면 자존심 상하실까봐 나는 그냥 상냥하게 인사만 한다. “안녕하세요.? 피곤해 보이시네요. 안녕히 주무세요.”



PS 제 블로그를 찾아주시는 많은 분들께 안부 인사 드립니다. 귀엣말에 덕담 남겨주시고 제게 용기를 주시는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려요. 제가 웬만해서 일일이 따로 답장을 드리곤 했는데, 요즘 제 시간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이렇게 단체로 인사를 드리니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