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는 이름에서부터 왼쪽을 뜻하는 디링케(die Linke) 라는 정당이 있다. 중도좌파 정당인 사민당(SPD) 당수였던 라폰테인(Lafontaine)이 당시 독일 수상이었던 슈뢰더(Schröder)와 다투고 나와서 새로 만든 정당인데, 정부의 치적을 경제수치로만 따지는 세상에서 그래도 약자를 배려하는 철학을 고수하는 정통좌파 정당이다.

나와 철학이 비슷함에도 나는 절대로 이 디링케 정당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라폰테인이 이 정당을 설립할 때 구동독 공산당을 영입해서 그들의 지지세력을 흡수했기 때문이다. 구동독 공산당이 국민을 상대로 어떤 비열한 감시체제를 만들어 독재정치를 폈는지 통독 후 역사청산 과정에서 낱낱이 드러난 이상 동독 공산당은 정치세력으로서 이 땅에 설 염치가 없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고, 그런 단체를 영입한 정당이 지금은 아무리 입바른 소리를 하더라도 그들이 나중에 권력을 잡았을 때를 신뢰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믿음이다.

같은 이유에서 나는 국민을 감시하고 억압하는 북한 정부를 지지하지 않는다. 출생의 불공평을 타파하기 위해서 주지, 지배 계급을 무자비하게 숙청한 체제 안에서 국가 지도자가 대를 이어 세습되는 행위는 있을 수 없는 불의로서 더더욱 나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냉전 시절에 동구권 공산국가 출신의 친구에게서 “세습왕조와 공산사상의 결합에 성공한 북한은 전세계 공산국가의 꿈의 모델”이라고 비꼬는 말들 들었을 때 내 얼굴이 다 화끈해지던 기억만 되살아날 따름이다.

다른 나라 사람도 그럴진대, 대한민국에 사는 사람들 중에서 다른 건 몰라도 북한의 3대 세습을 찬양하거나 거기에 동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는 아이 깨워서 물어봐도 반대할 것이다.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하고 표현하는 마당에서는 목소리를 크게 낼 수록 이익이고 침묵하면 의심을 받는다.

며칠 전에 민주노동당 대표 이정희 의원은 “제대로 말 못하는 진보는 진보가 아니다. 진보는 왜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지 않느냐?“라는 질문에 “진보임을 인정받으려는 생각으로 시류에 맞춰 말을 보태기보다, 자신 행동의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 진보이다.“라고 대답하며 말문을 열어서 “지금은 진보임을 인정받기 위해 북의 권력승계를 비난하다가, 뒤에 그 후계자와 대화의 상대방으로 마주앉게 되면 “능력 있는 사람”이라며 이전의 비난을 거둬들일 치사를 만들어내야 하는 궁박한 입장에 스스로 빠져 들어갈 생각이 나에게는 전혀 없다.” 며 끝을 맺었다.

북한 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강력하게 비난해온 인사들도 언젠가 북한 지도자와 “대화의 상대방으로 마주앉게 되면 “능력 있는 사람”이라며 이전의 비난을 거둬” 들이는 일은 어쩌면 예의에 속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지 않고 계속해서 비난만 하려면 대화하려고 마주 앉지도 않을 것이다.

통일을 생각하면 머리부터 아픈 사람들이 좀 있기는 해도 통일은 대한민국의 당면 과제임에 틀림없고, 지금 전쟁을 통한 무력통일을 주장하는 정당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평화통일은 모든 국민이 합의하는 대세임에 틀림없다. 평화통일이란 큰 목적을 앞에 두고 있는 이상 대화의 기회가 왔을 때 이전에 인정하지 않았던 북한 정부의 지도자를 “능력 있는 사람”이라며 추켜줘야 하는 민망스러운 **** 입장을 이해해주는 것은 제삼자의 마음이지만, 그런 행위를 치사하게 생각하고 부끄러워하는 것은 당사자의 일이다.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대한민국에서 정치를 전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북한 정부의 지도자와 마주 앉아 대화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야 하고, 그때 인간적으로 부끄럽지 않을 만한 정치철학을 평소에 실천하겠느냐, 아니면 정치가가 말 바꾸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실력있는 일이라고 여기는 대세에 편승하겠느냐는 문제도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다. 어떤 정당이나 정치인의 그런 개인적인 결정을 보면서 이 정당이나 정치인을 믿고 권력을 맡길 수 있겠느냐를 결정하는 것은 국민이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종북주의 의심의 눈길이 채 가시지도 않은 마당에 일어난 일치고는 당돌한 사건이지만, 나는 이정희 의원의 글에서 잘못된 논리를 발견할 수 없다. 민주노동당 안에 실지로 종북주의가 존재하는지 아닌지는 내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번 민주노동당의 북한 세습에 대한 입장표명으로서 종북주의를 유추할 수는 없다. 정치가들은 대중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골라서 하는 속성이 있는데, 그렇게 쉬운 길을 두고 지금 욕을 먹더라도 언행일치의 길을 가겠다는 고집을 두고 이들을 나무랄 마음이 내게는 없다.

그에 반해서, 말로는 평화통일을 외치면서 행동은 평화통일의 반대방향으로 치닫는 다수 정치인들의 언행불일치야말로 위험하게 느껴진다. 평화통일을 바란다면 평화적인 관계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던가, 무력통일을 바란다면 군대라도 가던가 해야지, 통일에 대한 특별한 철학 없이 주류의 흐름에 거품으로 얹혀서 동동 떠내려가며 언행불일치로 우왕좌왕하는 정치인들이야말로 평화통일을 가로막는 위험한 인사들이다. 더군다나 남한과 북한의 독재정권을 지탱시켜준 힘이 바로 두 체제의 적대적 대립관계였다는 역사적인 교훈을 우리 세대는 아직 잊지 않고 있다. 경박한 언어로서 아무런 이유도 없이 북한을 자극하여 위기상황을 초래하는 정치인을 보면 미안하지만 난 저 사람이 지금 혹시 독재로 한발짝 다가가기 위한 어떤 정책을 준비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부터 든다.

사람마다 한 사건에서 얻는 바가 다르다. 나는 독일의 통일을 내부에서 겪은 사람으로서 공산당에 대해 특별한 반감을 가진 사람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대강공사를 둘러싼 정치권의 염치없는 말바꾸기에 매일 놀라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대운하를 한다 그랬다가 또 언제는 안 한다 그랬다가, 사대강공사를 한다 그랬다가 또 언제는 운하로 연결한다 그랬다가, 사대강공사에서 독일을 본받는다 그랬다가 또 언제는 독일에서 일어난 하천공사의 후유증을 어떻게 한국에 적응하느냐고 그랬다가, 아무튼 한 입으로 두 말하고, 어제 한 말도 기억 못하고, 보통 사람 같으면 감옥에 갔을 사기성 발언이 들통나도 정치생명이 끝나지 않는 이상한 상황을 보면서 매일같이 놀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는 한 입으로 두 말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평화통일을 추구한다고 국민에게 약속한 이상 진정한 평화와 화해로 나아가기 위해서 지금 남들이 던지는 돌에 하나 더 보태지 않겠다는 이정희 대표의 소신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다음 글“이정희 의원 소신 있다? 아니다.”도 꼭 함께 읽어주실 것을 부탁드려요.)

이정희 대표의 글 전문 (출처: 경향신문)

진보임을 인정받기 위해 한 마디만 해 보라고? -경향신문 9월 31일자 사설에 대해

진보가 왜 비판하지 않느냐. 제대로 말 못하는 진보는 진보가 아니다. 북의 후계 문제를 둘러싸고 최근 민주노동당에게 경향신문이 내세운 논리이다.

이렇게 답한다. 내가 생각하는 진보는, 현실에서 출발해 한 걸음이라도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세력이다. 그것을 위해 말을 꾹 누를 수도 있는 판단력을 가진 것이 진보이다. 진보임을 인정받으려는 생각으로 시류에 맞춰 말을 보태기보다, 자신 행동의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 진보이다.

현실은 어떤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악화되고 권력승계가 이루어지는 시기에 급변사태가 올 것이라며 미국과 한국 정부는 작은 군사적 충돌에도 곧장 평양으로 진격해 북의 최고위층을 생포하는 시나리오를 공공연하게 발표하고 올 여름 이후 지금까지 서해와 동해에서 끊임없이 군사훈련을 벌이고 있다. 보수정당과 대다수의 언론이 비이성적인 국가라는 여론을 만들어내기 위해 경쟁적으로 비난을 쏟아낸다. 이 시점에서 진보정당까지 북은 비이성적인 행동을 했다는 말을 덧붙여 갈등 상황을 더해야 하나.

몇년 전 3.1절 행사 때, 북에서 공연단으로 온 젊은 여대생과 한 식탁에서 저녁을 먹었다. 고작 스무 살, 얼마나 많은 것을 알 나이겠는가. “남쪽에 오게 되어 떨리지 않았어요?” 한 분이 물었다. 이 여대생이 그 고운 목소리로 “오기 전에 어머니가, 장군님이 계시다는 것만 생각하면 된다고 하셨단 말입니다”하고 답했다. 아무도 말을 더 잇지 못했고, 굳이 이어가려고 하지도 않았다. 평양에 사는 그 여대생이 선택받은 고위층이니 그렇게 말했을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이 시각을 굳이 부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 여대생이 보여준 정서가 옳고 그름이나 변화의 조짐이 있는지 없는지를 떠나 아직까지는 북의 사회를 특징짓는 정체성의 하나인 것이 현실인 이상, 북의 권력구조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하면 남북관계는 급격히 악화된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우리가 아무리 북의 권력구조에 대한 입장과 남북관계에 대한 입장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하더라도, 북의 권력승계를 왕조세습이라고 비판하더라도 대화는 그대로 추진해야한다고 생각하더라도, 남북관계에서 이 문제는 완전히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것이 현실이다.

미국과 북한이 오랜 대결 관계에 있다. 미국이 관계 개선의 가능성을 보이는 시도는, 북의 지도자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내놓는 것에서 시작한다.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회담에 동석했던 미국 관리가 왜 “무척 실용적이고 사려 깊으며 유머감각이 출중하다”는 말을 언론에 대서특필되게 했겠는가. 미국 정부가 ‘대결에서 대화로’ 정책을 바꿨기 때문에, 대화의 분위기를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그러했다. “자기 국민들을 굶기는 사람”이라는 부시대통령의 말이 나왔을 때 북미관계가 어떠하던가. 갈등을 최고조로 높이는 방법은, 북의 지도자를 날선 언어로 비판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남쪽 관광객들만 가는 금강산을 여행할 때도, 여행객들에게 주의사항이 미리 알려진다. “북의 지도자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말라”는 것이다. 비록 북쪽 사람들은 우리 앞에서 북의 지도자를 칭송하고 찬양하더라도, 우리는 반박하고 싶어도 아예 말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는 것이다.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온 오랜 경험에서 생긴 대응방식이다.

이것은 금강산 관광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권과 언론의 대응에서도 지켜져야 한다고 본다. 금강산에서 평범한 여행객들에게도 요구되는 이 대응방식이 이 시점에서 아무런 절제 없이 포기될 뿐 아니라, 특히 민주노동당에게 진보정당이라는 이유로 포기할 것이 사실상 강권되는 것이 정당한가.

나는 국가보안법 법정에 변호인으로 선 일이 있다. 검사의 가장 주된 공격 방법은 “우리 정부를 그렇게 비판하는 피고인이, 진보를 자처하면서 왜 북의 독재를 비판하지 않느냐”, “왜 북의 인권침해를 거론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한 마디만 해 봐, 그럼 너의 사상이 불온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 줄 테니, 진보면 그 정도는 해야지”라고 유인한다. 그러나 그 법정에서 피고인이 검사로부터 법원으로부터 진보로 인정받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는 단 한 번도, 피고인에게 “북에 대해 한 마디만 하세요, 그러면 정당성도 인정받으면서 무죄판결 받으실 수 있어요”라고 조언한 적이 없다. 내가 변호하기로 약속한 피고인의 한평생의 노력이 시험에 들었을 때, 피고인의 행동이 그 자체로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 나의 임무였다. 피고인에게, 남북의 화해를 갈구하며 그가 쌓아온 내면과 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안심시키는 것이 나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진보임을 인정받기 위해 우리가 남북관계에서 수많은 의견대립과 충돌을 겪으며 끌어낸 대응방식을 포기해야하나? 남북관계가 평화와 화해로 나아가도록 노력하는 것이 진보정당의 임무이다. 그 대응방식을 어떤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지금 그것은, 금강산에서 그러했듯, 북의 권력구조에 대해 말하지 않아온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라고 본다.

국가보안법 법정 안의 논리가 일부 변형되어 진보언론 안에도 스며들어 온 것이 안타깝다. 말하지 않는 것이 나와 민주노동당의 판단이며 선택이다. 이것 때문에 비난받아야 한다면 받을 것이다. 지금은 진보임을 인정받기 위해 북의 권력승계를 비난하다가, 뒤에 그 후계자와 대화의 상대방으로 마주앉게 되면 ‘능력 있는 사람’이라며 이전의 비난을 거둬들일 치사를 만들어내야 하는 궁박한 입장에 스스로 빠져 들어갈 생각이 나에게는 전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