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제가 존경하는 친구가 제가 메일을 보냈습니다. 엊그제 제가 블로그에 올린 ‘'이정희 의원 소신 있다.''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어요.

암만 읽어봐도 이 친구의 생각이 제 생각보다 좀 더 사려가 깊은 것 같네요. 의견이 다르다고 해도 그 친구가 추구하는 세상과 제가 추구하는 세상은 똑같습니다. 친구의 허락을 얻어 메일의 일부분을 공개합니다. 찬반을 떠나 이 친구의 글이 저의 글보다 민주노동당과 이정희 의원에게 더욱 도움이 되는 글이라는 사실은 명백합니다.

언니야..

언니 블로그에 올라온 글을 보고 이메일을 드릴까 말까 마음을 이리저리 부침개 뒤집듯 뒤집다가 남도 아니고 언닌데 하고 싶은 말은 그냥 해버리자.. 하고 이글을 씁니다.

저는 이정희 의원에 대한 언니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해하시지 말라고 말씀드리지만 전 이정희 의원을 평소에 좋아하고 존경합니다. 그래서 이 의원의 이번 발언에 저는 더욱더 실망하고 가슴이 아팠습니다.

(중략)

3대 세습이라는 봉건주의적 행태를 조금이라도 감싸는 정당은 ‘‘좌파의 입장에서’’ 용납이 안 됩니다. 언니가 die Linke 를 지지할 수 없는 것과 똑같은 이유로. 민노당이 행정부도 이나고 외교부도 아닌데 왜 외교적인 예의를 거론하나요? 정당이 왜요?

미국은 비판해도 되고 북한은 조심해야 되는 이유는 ‘‘북한은 우리 민족이니까? 통일해야 되니까?’’ 바로 그게 민노당의 정체성이죠. 민족과 통일을 앞세워 사회주의나 사민주의와는 거리가 먼 봉건왕조체제를 비난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한다면 민노당은 사회주의 정당이 아닌겁니다.

노동자와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는 진정한 좌파 정당이라면 오히려 한국 우파 정당에 동조하는 것처럼 보일 일을 걱정하지 말고 노동자와 민중을 억압하는 북한정권의 봉건적 행태를 오히려 보수파보다 더 적극적으로 비판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북한정권의 입장에서도 남한의 사회주의/잔보정당의 말은 더 무게 있게 실려오고 쉽게 무시할 수 없을 테니까.

그리고 국민의 표를 바라는 공적인 정당이라면 국민의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한 입장이 뭐냐고 묻는 질문에 (그것도 공안검사가 아니라 경향신문이 물었습니다) 솔직히 대답할 수 있어야 되는 겁니다. 그래야 유권자로서 지지하거나 하지 않기로 결정할 수 있는 거지요.

제 눈에는 이정희 의원은 질문에 명확히 답하지 않기 위해(과연 왜일까요?) 억지로 이유를 만들어 붙이는 걸로 보입니다. 게다가 민노당 울산시당에서 경향신문을 절독까지 했으니 당내 사상의 자유를 얼마나 인정하고 있는지조차 의심되는 대목입니다. 저는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민노당의 외교적 입장이 아니라 ‘‘진심'‘을 알고 싶습니다.

그리고 민노당의 행위는 오히려 좌파들에게 도움이 안 되는 행위입니다. 안 그래도 맨날 친북 빨갱이 소리 듣는 한국 좌파들이 이 시점에서 3대 세습에 따끔한 소리를 해주면 우파들이 더 이상 좌파 전체를 친북으로 매도할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우파의 강력한 무기 하나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거지요. 그런데 이번 일 떄문에 우파는 신이 났어요.거 보라고.. 안그래도 입지가 좁아서 대중들에게 한발 더 다다갈 방법을 고민해야 하는 한국 진보정당과 진보세력 전체가 이런 일로 또 이미지를 상하게 되는 겁니다.

제가 느끼는 바를 그냥 이렇게 두서없이 끄적끄적 적어 메일 드립니다.

다음은 손호철 교수님이 이정희 의원에게 드리는 글입니다. 제가 좀더 글재주가 있었다면 바로 이렇게 썼을 겁니다.

편안한 하루 보내셔요, 언니.

이 글을 보내준 친구에게 저는 감사의 답장을 썼습니다. 글 잘 읽었고 생각 많이 해봤으며 특히 손호철 교수님의 글은 아주 유익해서 고맙다는 내용이었구요, 그래도 나 미워하지 말라고 애교를 부렸습니다. 손호철 교수님의 글이 친구의 글 만큼이나 좋아서 링크와 함께 몽땅 퍼왔습니다. 되도록 많은 분들이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北 세습비판은 공안논리이고 오리엔탈리즘인가?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에게 보내는 공개서한 - 손호철 교수

이정희 민주노동당 대표님, 잘 지내시지요.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가 없어 당대표 취임을 축하할 기회도 없었습니다. 뒤늦게 축하드립니다.

이렇게 펜을 든 것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북한의 3대 세습’’ 때문입니다. 이 대표도 잘 아시듯이, 이 문제는 진보진영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습니다. 혹 읽으셨는지 모르지만, 저는 “프레시안"에 기고한 “남한의 진보여,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라”(관련기사 보기)라는 글을 통해 진보운동이 더 이상 북한의 세습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 한 바 있습니다. 참여연대, 진보신당, 사회당 등도 비판적 논평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이는 북한이 스스로 결정할 내부문제라는 입장을 내놓았고 이를 “경향신문"이 비판했습니다. 그러자 민주노동당의 새세상연구소가 긴 반박문을 내놓았고 울산시당이 “경향신문"의 절독을 위협하고 나섰습니다. 이에"경향신문"은 이대근 논설위원의 글을 통해 반비판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 대표가 블로그에 쓴 글을 통해 다시 북한의 3대 세습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올바른 선택이라는 주장을 하고 나섰습니다. 이 위원의 글이 많은 것을 이미 지적했지만 이 대표의 주장은 그 후에 나와 새로운 주장들을 하고 있어, 이를 보면서 몇 가지 고언을 드려야 할 것 같아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이 대표의 주장은 크게 보아 다음과 같은 주장들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 “북의 권력구조 문제를 언급하기 시작하면 남북관계는 급격히 악화된다”, 2) 금강산 관광을 갈 때 “북한의 지도자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사전에 주의를 받는데 이것은 정치권과 언론의 대응에서도 지켜져야 한다, 3)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라는 일부 진보언론의 주장은 “국가보안법 법정안의 논리가 일부 변형되어 진보언론 안에도 스며들어 온 것"이다, 4) 보수정당과 언론이 북한세습에 대한 비판에 경쟁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보정당까지 북은 비이성적인 행동을 했다는 말을 덧붙여 갈등상황을 더해야 하나?”, 5) “진보임을 인정받으려는 생각으로 시류에 맞춰 말을 보태기보다, 자기행동의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 진보이다.”

이 같은 주장들을 하게 된 고민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문제가 많습니다. 우선 남북관계 악화설입니다. 그렇습니다. 만일 대한민국 정부가 북한 세습을 비판하고 나선다면 그럴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경향신문>도 진보세력 보고 세습비판을 하라고 한 것이지 정부 보고 세습 비판을 하라고 주장하지는 않았습니다. 나아가 북한의 세습비판과는 별개로 대북정책은 이명박 정부식의 냉전적 노선을 벗어나 햇볕정책으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 역시 반역사적인 냉전적 노선에도 불구하고 북한세습을 비판하지 않고 있습니다(사실 이 대표는 아니지만 민주노동당에서 북한세습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논거로 들고 있는 6.15선언과 10.4선언의 남북간의 체제인정 조항도 양쪽 정부가 서로 체제를 인정하고 내정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시민사회세력이나 정당이 상대방의 잘못을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문제는 정부가 아니라 진보정당이나 진보적 사회단체들이 북한의 세습을 비판한다고 이 대표의 주장처럼 남북관계가 급격히 악화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렇다고 보지 않습니다. 진보신당과 사회당, 참여연대가 북한 세습을 비판했지만 그 결과로 남북관계가 급속히 악화됐습니까? 그렇다는 징후는 아직 없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물론 진보신당이나 사회당보다 의석이 많고 영향력이 큰(참여연대보다 영향력이 큰지는 모르겠고) 민주노동당이 세습비판에 동참한다면 북한의 충격이 조금 더 클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남북관계가 급속히 악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민주노동당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한 것이라고 말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대표는 정말로 민주노동당이 북한세습을 비판하면, 남북관계가 급속히 악화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오히려 북한이 매우 섭섭하겠지만 그동안 민주노동당이 보여준 북한에 대한 ‘‘우호적'‘인 태도를 고려할 때 남북관계를 악화시키고 나서느니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참거나 “애정어린 비판 정도"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둘째, 물론 우리는 금강산 갈 때 북한지도자 이야기를 하지 말라고 교육을 받습니다. 아니 설사 교육을 받지 않더라도 당연히 이야기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비판을 했다가는 당연히 북한당국에 의해 체포되거나 문제가 생길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나 <경향신문>이 요구한 것은 이 대표나 민주노동당 관계자가 북한에 가서, 아니면 휴전선에 가서, 북한을 향해 확성기를 대고 세습을 비판하라고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금강산 관광시의 주의사항을 예로 들어 북한세습 비판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입니다.

셋째, 국가보안법 논리의 내면화주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나 <경향신문>이 언제 북한 세습을 비판하지 않는 진보세력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시키라고 했습니까? 북한의 세습비판과 국가보안법이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저는 국가보안법 폐지에 앞장서 왔고 광화문에서 “김정일 만세"를 외쳐도 절대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해 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공산당까지도 합법화해서 보호해주고 있는 수많은 문명국가들이 국가보안법과 반공주의를 내면화해서 권력의 세습제도를 반민주적 제도라고 부정하고 비판하고 있는 것일까요?

나아가 제가 지난 번 글에서도 인용했듯이 강정구 교수가 “권력이 너무 개인에게 집중되고 세습되는 상황에서 벗어나 자정노력을 해야 한다. 미국의 압박 등 나쁜 조건 아래 있다고 할지라도 3대 세습까지 가는 등 인류보편적 흐름에 어긋날 경우 남과의 화해 협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북한에 대해 정말 용기 있고 애정 어린 고언을 한 것도 그가 국가보안법 논리를 내면화했기 때문인가요? 삼성의 3대 세습, 유명환의 외무부 자리세습을 우리가 비판하는 것이 국가보안법 논리를 내면화했기 때문인가요?

이 대표의 주장이 국가보안법 논리 일반의 내면화주장이 아니라 국가보안법 사범에게 “진보라면, 북한 비판은 왜 안 하냐? 북한을 비판하면 너의 무죄를 인정해줄께"라는, 좁은 의미의 국가보안법 법정의 논리의 내면화주장이라고 해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저나 <경향신문>이 주장한 것은 북한을 비판하지 않으면 진정한 진보가 아니니 국가보안법으로 구속시켜야 한다거나 진보진영이 국가보안법상 무죄임을 국민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북한 세습을 비판해야 한다는 주장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강조하지만, 국가보안법의 폐해는 엄청나지만 역으로 그것이 북한의 모든 잘못을 용서하고 이에 눈을 감게 만드는 면죄부로 악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넷째, 보수세력이 너도나도 북한을 비판하고 있는 상황에서 진보까지 이에 가세해야 하느냐는 주장은 일리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프레시안> 글에서 밝혔듯이 저 역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사르트르 논리’'(“우리의 실천현장은 ‘‘여기'‘이며 소련이나 북한 비판이 넘치는 상황에서 진보까지 이들을 비판하면 자본주의는 그래도 괜찮은 것으로 치부되어 우리의 문제를 은폐하는데 이용될 수 있다"는 논리)에 의해 그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문제는 몇 년전부터 사르트르의 논리를 넘어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같이 생각하게 된 중요한 계기 중의 하나는 몇 년 전 뉴스를 보다가 받은 충격이었습니다. 뉴스에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강재섭 의원이 회의를 주재하는 한나라당 회의장이 나오는데 강 대표 뒤에 ‘‘인권’’, ‘‘반핵'‘이라고 크게 써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글씨를 보며 망치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었습니다. 언제 한나라당이 우리의 인권을 위해 싸워 본 것이 있습니까? 그리고 반핵은 원래 진보의 담론이 아닌가요?

그런데 그 두 단어가 한나라당과 냉전세력의 담론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이유는 북한 때문이지요. 북한의 인권이 더욱 악화되고 북한이 핵개발을 하면서, 나아가 우리 진보운동이 이에 대해 침묵하거나 이를 옹호하면서, 엉뚱하게도 인권과 반핵이 한나라당과 뉴라이트의 담론으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많은 대중들이 진보진영을 “허구 헌 날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심각한 인권침해인 북한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이중인격자들"이라는 색안경을 쓰고 보게 된 것입니다.

제가 북한문제에 대해 진보진영이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된 것은 그 이유 뿐만은 아닙니다. 또 다른 이유는 북한의 현실입니다. 만일 북한에서 정말 ‘‘최소의 최소의 최소의 최소한의 인권과 민주주의'‘만이라도 지켜진다면 진보진영의 커밍아웃은 불필요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북한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구식 민주주의나 자유권이 아닙니다. 민중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권도 제대로 지켜주지 않으면서 왕조식의 세습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괴테의 표현대로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살아있는 것은 푸릅니다”. 문제는 이론이 아니라 살아있는 현실입니다.

물론 평화체제와 탈냉전이 북한민중의 인권 개선에 매우 중요합니다. 따라서 이것을 위해 우리는 투쟁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한참 부족합니다. 진보라면 한 체제를 그 체제의 다수 민중의 입장에서 봐야지, 지배계급이나 지배자의 입장에서 봐서는 안 되는 것 아닌가요? 북한의 민중들이 언젠가 “우리들이 그토록 고통 받을 때 진보를 자청하는 당신들은 무엇을 했었느냐"고 물을 때 이 대표는 뭐라고 대답하실 것입니까? “남북화해를 위해 북한내부문제는 침묵하는 것이 최선이라 침묵했다"고 이야기하면 그들이 뭐라고 할까요?

이 대표와 민주노동당은 북한세습을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로 계속 남북 평화와 화해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북한세습이 남북 평화와 화해에 도움을 줄지도 매우 의문이지만, 이 대표가 말하는 남북 평화와 화해가 단순히 세습지도자들과의 평화와 화해인지 북한민중과의 진정한 평화와 화해인지 자문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꺼낸 김에 귀당의 새세상연구소의 주장에 대해서도 한마디만 하려고 합니다. 연구소는 세습을 비판하는 것은 우리 제도만 맞고 북한은 틀린 것이라는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이라면서 이 같은 오리엔탈리즘이 서구의 식민주의를 불러왔다고 경고했습니다.

맞습니다. 아무리 마야의 인신공양 등이 잘못된 것이라도 이를 우리가 지배해서 고쳐줘야 한다는 서구 식민주의는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저 역시 지난 글에서 아무리 세습이 틀린 것이라 하더라도 뉴라이트의 북한 민주화운동처럼 “우리가 북한을 민주화해줘야 한다"고 나서서는 안 되고, 오히려 이 문제는 기본적으로 북한의 민중스스로가 해결해야 하며 따라서 진보진영은 북한민중이 스스로 민주역량을 키우도록 어떻게 도와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의 세습을 잘못된 것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서구중심주의이고 오리엔탈리즘인가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제가 2003년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송두율 사건 당시 송 교수를 옹호하며 한 일간지에 쓴 글을 다소 길지만 인용해보고자 합니다.

과거 아프리카를 여행한 서구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이들의 문화를 보며 ‘‘야만'‘이 지배하는 현실에 충격을 받곤 했다. 그러나 인류학자들은 “이 같은 인식은 서구중심주의의 반영이며, 아프리카의 문화를 서구의 기준에 의해 평가하고 비판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 속에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송두율 교수가 80년대 북한연구를 위해 주장한 ‘‘내재적 접근법'‘이란 주장 역시 정확히 이 문화적 상대주의와 유사한 문제의식에 기초한 중요한 학문적 기여다. 즉, 북한사회를 객관적으로 연구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잣대가 아니라 북한의 작동원리와 가치체계를 알고 이에 기초해 북한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이 같은 내재적 접근법을 따를 경우 문화적 상대주의와 마찬가지로 상대주의가 갖고 있는 문제점에 빠질 수밖에 없다. 보편적 가치에 기초한 비판이 불가능하고, ‘‘사실상 존재하는 것은 모두 정당하다'‘는 논리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송 교수가 내재적 접근법을 제기한 역사적 맥락, 이론사적 맥락이다. 당시 우리 사회는 북한에 대한 비판은 과잉이고 이해는 부재한 상황이었다. 특히 아프리카를 야만이라고 경멸했던 서구인들처럼, 우리의 기준에 의한 북한 비판은 흘러 넘쳤지만 북한을 북한의 눈으로 보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부재했다. 이 같은 맥락을 이해하지 않고 송 교수의 내재적 접근법을 이렇다 저렇다 논하는 것은 잘못이다.

이 글의 주장처럼 저 역시 북한을 무조건 서구식, 우리식 기준으로 비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북한비판이 과잉이었던 상황에서 내재적 접근은 이를 반대로 휘는 ‘‘정세적 진리 효과’'(진리=정세의 효과)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를 넘어서야 합니다. 이제 진보진영에는 북한에 대한 옹호와 침묵이 오히려 과잉입니다. 그리고 송교수 옹호 글 중간에 지적했듯이 문화적 상대주의론은 서구중심주의 비판의 의미는 있지만 “보편적 가치에 기초한 비판이 불가능하고, ‘‘사실상 존재하는 것은 모두 정당하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는 치명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산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을 비판하는 것이 오리엔탈리즘일까요? 일부다처제를 비판하는 것, 비인간적인 노예제도를 비판하는 것은 오리엔탈리즘이라, 우리를 일부다처제와 노예제를 비판하지 말고 그 사회가 스스로 결정하도록 내버려 둬야 하는 것인가요? 삼성의 3대 세습을 비판하는 것, 유명환의 외무직 세습을 비판하는 것은 한국의 기업문화와 한국외무부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 서구중심주의이고 오리엔탈리즘인가요? 북한의 3대 세습 비판을 오리엔탈리즘이라고 비판하는 것은 이 같은 주장들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북한 세습문제로 그나마 대한민국은 살만한 나라라는 분위기속에 삼성의 3대 세습을 비롯한 재벌그룹의 세습문제로부터 심각한 사회적 양극화, 반생태적인 4대강 사업, 민주주의의 후퇴 등 우리의 현안들이 은폐되지 않도록 이 대표가 눈을 부릅떠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사안이 사안인지라 글이 길어졌습니다. 건강하시고 앞으로 정치적으로 도약하시기를, 나아가 제대로 된 ‘‘진정한 진보정치'‘를 위해 투신해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이 대표가 스스로 내린 결론(“진보임을 인정받으려는 생각으로 시류에 맞춰 말을 보태기보다, 자기행동의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 진보이다”)을 이 대표에게 돌려드리는 것으로 제 고언을 마치고자 합니다.

“북한 옹호내지 비판 거부가 진보"라는 진보진영의 오래된 관성(‘‘맹목적인 반공주의의 미친 역사'‘의 반작용으로 생겨난) 속에서 “진보임을 인정받으려는 생각으로 (진보진영의 북한옹호내지 비판거부) 시류에 맞춰 (북한옹호나 묵인에) 말을 보태기보다, 자기행동의 일관성(민주주의와 인권의 옹호라는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 진보"입니다.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출처 링크: 2010-10-11일자 프레시안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