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프스 산자락에 위치한 뮌헨은 자연 경관이 아름답다. 독일 여느 지역과는 달리 남방의 분위기를 풍기는 이 도시에는 인간이 만든 볼거리 또한 많다.

그런 이유에서 세계 각지로부터 관광객이 구름같이 몰려드는 여름철이 되면 시내 도처에서 한국말이 자연스럽게 들린다.

허허벌판에 수도원 하나만 덩그러니 서 있어, 수도사라는 뜻으로 ‘무니헨’이라 불린 이 장소가 역사의 장이 되기 시작한 것은 12세기이다. 이 지방을 하사받아 새 주인이 된 영주가 이웃 영토에 있는 다리를 몰래 불태워버리고 그 대신 몇 킬로미터 떨어진 자기 영토, 수도원 부근에 새로운 다리를 건설했다.

옛날부터 독일과 이탈리아를 연결해온 무역로는 이자 강을 건너는 다리를 통해 이어졌으므로 무역상들은 불가불 새 다리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다리통행세라는 제도가 있어 영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무력으로 쟁탈한 셈이었고 덕분에 나날이 부강해졌다. 이것이 일개 수도원이었던 뮌헨이 훗날 바이에른 왕국의 수도로 자리 잡게 된 계기이다.

알프스 산맥의 계곡에서부터 물을 모아 도심을 통과하는 이자 강은 멀리서 보아도 가까이서 보아도 부드러운 초록빛을 띈다. 강변을 따라 수면에 커튼처럼 머리를 드리운 수목과 하얀 자갈밭이 이어진다. 야외를 유난히 좋아하는 뮌헨 주민들은 해만 났다 하면 강변으로 모여들어 일광욕을 즐긴다. 여름이면 거리를 메우는 관광객들이 다리 위에서 구경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홀라당 다 벗는 사람도 있다.

저녁이 되면서부터 강변 자갈밭 중 일부 허용된 구역에는 모닥불을 피우고 소시지를 구워 먹는 무리들로 붐빈다. 해가 꼴딱 넘어가기 전에 자신이 초대받은 파티의 주인을 찾아가야지, 그렇지 않으면 밤새도록 맥주를 마시며 놀다가 이튿날 아침 동이 터서야 생판 모르는 사람의 술과 고기를 축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일도 종종 있다고 한다.

이자 강을 끼고 도심 깊숙이 들어와 있는 영국 공원은 자연과 대도시의 활력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너른 잔디밭과 울창한 숲, 백조와 보트가 떠다니는 호수, 가냘프게 생긴 아가씨들도 1리터짜리 맥주 조끼를 거뜬히 손에 들고 앉아 있는 비어가르텐(독일식 야외 맥주집)이 함께 어우러진다.

영국 공원 내에도 몇 개의 비어가르텐이 있는데, 나는 마로니에 나무 밑에 7,000개의 좌석이 놓인, ‘중국탑’(Chinesicher Turm)이라는 비어가르텐을 좋아한다. 가죽 바지의 전통의상을 입은 악단이 올라가서 전통음악을 연주하는 중국탑을 볼 때마다 나는 18세기에 유럽인들이 중국의 건축을 어떻게 상상했는지 보는 듯해서 빙그레 웃음이 나온다.

뮌헨대학에서 걸어서 5분 거리인지라 공부하다 나온 대학생, 관광객, 그리고 뮌헨 주민이 골고루 섞여서 먹고 마시는 곳이다. 친구들과 유쾌하게 떠드는 와중에도 한쪽 발로 유모차를 흔드는 젊은 엄마, 아이들과 카드놀이를 하는 중년부부, 혼자서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노트북을 가져오면 무선인터넷이 가능하고, 뮌헨 비어가르텐의 전통에 따라 집에서 싸온 음식을 먹는 것도 허용된다. 예전에 전혜린의 책에서, 이끼가 부드럽게 깔린 잣나무숲을 걸어 소풍을 가다가 비어가르텐이 나오면, 차가운 흑맥주와 함께 자기가 싸온 김밥을 먹었다는 글을 읽고 나는 고개를 갸웃했던 적이 있다.

영국 공원에도 나체로 일광욕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는데, 나체족들이 뮌헨의 관광수입에 일조한다는 설이 있다. 라디오방송의 인터뷰에서 영국 공원의 책임자에게 ‘요즘은 나체족이 줄어드는 추세라서 관광수입에 지장이 올까 솔직히 좀 걱정이 되지 않느냐.’고 질문했더니, 그는 ‘나체족보다는 두더지에게 더 마음이 쓰인다.’며 노련하게 화제를 돌렸다.

두더지는 잔디밭을 마구 파헤쳐서 미관상 고약하지만, 흙을 뒤섞어주므로 토질 개선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영국 공원엔 하도 많은 인파가 오가며 잔디를 밟다보니 두더지들의 생명이 위협을 받게 되고, 그래서 해마다 구역을 정해서 막아놓고 두더지를 보호한다고 했다.

영국 공원 입구에 있는 다리에는 봄에서 가을까지 관광객들이 포도송이처럼 운집하여 아래를 내려다보는 곳이 있는데 아이스바하라는, 급류의 개천이다. 젊은이들이 조그만 널빤지 위에서 곡예사처럼 파도를 타는 배경에는 ‘파도타기와 수영 금지’라는 팻말이 붙어 있다. 하지만 여름에도 이곳은 수영하는 청소년들로 붐빈다. 중고등학생들이 떼 지어 거센 물살을 타고 하류로 떠내려가서는 전차를 타고 이 자리로 돌아와 다시 떠내려가는 놀이를 한다.

수영복 차림으로 물을 뚝뚝 흘리며 떼거지로 무임승차하는 청소년들을 태워주는 뮌헨의 전차 운전수가 난 참 마음에 든다. 그러나 군데군데 위험한 곳이 많아 해마다 사상자가 끊이지 않으니, 어디에 무슨 장애물이 숨어 있는지 모르는 관광객들은 물에 들어가지 말 것을 간곡히 권한다.

이자 강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다 보면 영국 공원은 어느새 울창한 숲으로 변해서 도시 밖까지 한없이 이어진다. 도심을 벗어나서부터는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우거진 숲이 원시림에 와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뮌헨에서 아름다운 것은 자연경관만이 아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도심에는 각 시대를 대변하는 옛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고, 사이사이 현대 건축물이 때로는 순응하듯 때로는 경쟁하듯 들어서 있다. 전체적으로 고풍스러운 옛 시가지를 보고 있노라면 히틀러의 집권도시였던 뮌헨이 제2차 세계대전 때 융단폭격을 맞아 잿더미로 변했다는 사실을 상상하기 힘들다. 폭격의 피해가 적었던 독일의 다른 도시들도 제2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얼굴을 확실히 바꾸었기 때문이다.

뮌헨의 건물들을 자세히 관찰하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많은 건물들이 외형만 오리지널인 ‘쭉정이’이고, 철거 후에 현대식 자재로 완전히 다시 지으면서 겉모양만 옛 것을 본 딴 ‘모조품’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북독일의 베를린에서 폭격으로 파괴된 빌헬름황제기념교회당의 복구 문제를 놓고 격렬한 논쟁 끝에, 폐허는 폐허로 살려두고 그 옆에 파란색 유리로 된 육각형의 최신식 교회 건물을 지은 경우와 상반된다. (분단 베를린의 상징이 되었고, 전쟁을 경고하는 기념비 역할을 함으로써 많은 베를린 시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는 이 교회는 폐허와 새 건물이 붙어서 과거와 현재라는 절묘한 앙상블을 이룬다.)

뮌헨이 속한 남독일의 바이에른 주는 독일에서도 소문난 보수성향인데, 아마도 그래서 외형이라도 눈에 익은 옛 것을 고집하는지 모른다. 또는 원리원칙을 철저하게 따지는 북독일에 비해 자유롭고 융통성이 있는 남독일의 성향이 모조품이나 쭉정이에 대해서도 너그러운 건지도 모르겠다. 독일의 다른 도시에서 건축을 공부하면서 ‘시대를 반영하는 건축’, ‘안과 밖이 일치하는 솔직한 건축’을 추구하는 교육을 받은 나에게는 쭉정이나 모조품 건물이 좀 낯설게 보인다. 그러나 쭉정이와 모조품을 통해서라도 옛날의 영광을 엿볼 수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뮌헨을 찾는 관광객들이 빠짐없이 다녀가는 마리엔 광장의 구청사 건물은 쭉정이이다. 전후에 외형만 원상태로 보수했을 뿐 내부는 완전히 새 건물이다. 구청사는 원래 15세기에 지어진 고딕식 건물이었지만, 그 외형은 시대가 바뀔 때마다 유행하는 양식으로 재단장되곤 했고, 폭격될 당시에 입었던 마지막 유행복이 신고딕이었다. 그 옆에 서 있는 탑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폭격으로 무너진 것을 1970년대에 뮌헨올림픽을 기해 15세기 때의 원형을 본따 완전히 새로 지은 모조품이다.

앗, 이때 신청사를 구청사와 혼동하지 말길 바란다. 한번은 아는 분에게 시내 안내를 해드리면서 신청사 앞에서 역사를 설명해드리고 있었는데, 그분은 그 유명하다는 신청사는 어디에 있느냐고 자꾸만 물으셨다. ‘신청사’ 하면 현대식 건물을 연상하기 쉽지만, 마리엔 광장의 한 면을 다 차지하고 있는 100미터 길이의 거대한 신청사는 19세기에 지어진 고색창연한 석조건물이다.

더구나 밝은 빛의 페인트로 새 단장을 한 구청사에 비교하면 세월의 옷을 고스란히 입고 있는 신청사는 확실히 더 오래돼 보인다. 매연과 산성비에 의한 그을음 제거 작업이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청소된 부분은 돌이 하얗게 빛나서 시꺼먼 나머지 부분을 더욱 나이 들어 보이게 만든다.

마리엔 광장은 오전 11시와 정오를 기해 유난히 붐빈다. 관광객들은 고개를 뒤로 꺾은 채 신청사의 시계탑에서 열리는 인형극을 카메라에 담기에 여념이 없다. 종을 이용해 연주되는 음악은 군중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다. 기마경기와 전통춤을 주제로 한 이 인형극은 시간이 맞으면 봐도 그만이지만 일부러 기다릴 가치는 없는 것 같다.

신청사는 오늘날에도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다. 둥그런 창가를 빨간 제라늄 꽃으로 푸짐하게 두른 3층의 왼쪽 모퉁이 방이 시장의 집무실이다. 바이에른 주에선 중도우파인 기독교사회연합이 내내 판세를 잡고 있지만, 유일하게 바이에른 주의 주도인 뮌헨에서만은 중도좌파인 사회민주당이 항상 패권을 고수하는데, 이 사회민주당을 이끄는 뮌헨 시장 크리스티안 우데는 시민들의 압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한번은 새로운 건축 프로젝트 때문에 시내 한복판에 서 있던 오래된 보리수나무 몇 그루가 잘려나가게 되었다. 이에 반발한 녹색연합의 한 시의원이 그 보리수나무 위에 올라가 단식투쟁을 벌였다. 구름같이 몰려 있는 주민들과 보도진 사이로 뮌헨 시장 우데가 나타났다. 그는 핸드폰으로 시의원에게 내려와서 협상하자고 설득했으나 시의원은 보리수를 베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기 전에는 절대로 내려가지 않겠다고 했다. 이는 이미 많은 돈을 들여 공모전까지 마친 대형 프로젝트를 취소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인기 시장 우데는 즉석에서 흥정을 벌였다. 여기서 잘리는 나무 수의 두 배만큼의 보리수를 도심의 다른 곳에 심겠다고 약속했다. 환경정화의 효과를 계산해본 시의원은 이를 수락했다. 나무 위에 번듯이 누워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는 시의원과, 역시 전화를 하며 위를 올려다보고 있는 시장의 사진이 신문에 나란히 실렸다. 정말로 다른 곳에 식수를 했는지는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뮌헨에 모조품이나 쭉정이 문화재만 있는 건 아니다. 유서 깊은 도시인 만큼 격조 높은 문화재 건물들이 원형대로, 또는 적절하게 복원된 상태로 산재해 있다. 오래된 건물이 일부 파괴되었다가 복구되었다고 하여 문화재적 가치가 무조건 줄어드는 건 아니다. 건물이란 박제해서 감상하는 물건이 아니라 보수해가면서 사용하는, 세월이라는 변수가 포함되는 4차원적 물건이기 때문이다.

뮌헨의 주요 문화재들은 도심의 보행자 구역을 중심으로 군집해 있어서 걸어다니면서 관광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마리엔 광장에서 몇 걸음만 가면 뮌헨의 상징이 된 성모교회(Frauenkirche)의 쌍둥이탑과 맞닥뜨리게 된다. 16세기에는 20년에 걸쳐 이렇게 웅장한 건물을 짓는 일이 순조롭지만은 않았기 때문에 건축가가 결국은 악마의 힘을 빌어 완공시켰다는 전설이 있는데, 그 전설을 교회 현관 바닥에 악마의 발자국으로 남긴 후손들이 나는 정말 재미있다.

여기서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역시 16세기 산물인 미하엘교회(Michaelskirche)가 있는데,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문화유산이다. 세계에서 성베드로대성당 다음으로 큰 원통지붕이 있는 이 교회의 내부 공간은 차분하다. 지하에는 왕족의 관을 모셔두었는데, 말로만 듣던 역사의 주인공들이 누워 있는 화려한 관 사이로 심심찮게 아기 관들이 끼어 있어 기분이 묘하다. 특히 살아생전엔 철천지원수들이었을 수도 있는 이들이 사후에 나란히 누워서 후손에게 돈을 벌어주는 모습에서 인생무상이 절로 느껴진다.

실내 분위기가 좋기로는 여기서 가까운 시민실(Bürgersaal)을 따를 곳이 없다. 이 역시 기도하기 위한 공간이다. 늘 개방되어 있고 어두운 1층 말고, 정오를 전후로 2시간만 개방하는 2층의 예배 공간은 예술적인 가치가 높은 내부장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고요하게 만들어주어 나는 한번 들어가 앉았다 하면 다시 일어나기가 싫다.

이런 분위기와 극을 이루는 공간으로는, 걸어서 10분 내에 위치한 로코코 양식의 아삼교회(Assamkirche)를 들 수 있다. 병을 낫게 해준 감사의 뜻으로 조각가가 봉헌한 개인 교회인데, 상징적이고 유희적인 장식으로 터져나갈 듯한 실내에 앉아 있자면, 시민실보다 단 몇 십 년 후에 지어진 건물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

수백 년간 바이에른왕국의 궁전이던 레지덴츠(Residenz)도 도심을 걸어다니다보면 우연처럼 나타난다. 겉보기와 달리 내부는 대단히 화려하고 수장품은 오스트리아 빈 황궁의 수준을 웃돈다고 한다. 적어도 반나절은 돌아야 내부를 다 둘러볼 수 있는데, 시대에 따라 건축 양식과 실내장식이 변화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새 왕이 권좌에 오를 때마다 부모 세대가 쓰던 공간을 마다하고 각자 취향과 유행에 맞도록 자신의 공간을 새로 지었기 때문이다.

레지덴츠 근방에는 테아티너교회(Theatinerkirche)와 오페라를 비롯하여 귀중한 문화재들이 셀 수 없이 산재해 있다. 레지덴츠에서 슈바빙으로 가는 레오폴드 거리를 양쪽에서 호위하는 건물들은 19세기의 값진 유적이다. 대학 본관이나 주립도서관 같은 공공건물 안에 들어가보면 밖에선 상상하지 못했던 웅장함에 마음이 숙연해진다.

이밖에도 시내에서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하는 뉨펜부르그 성은 공원의 경관이 아름답기로도 유명하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바로크 건축의 정수라고 여길 만큼 완숙한 건물이다. 1970년대에 지은 올림피아공원은 독특하게 생긴 경기장 건물들이 푸른 수목과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그물로 만든 듯한 유기체의 경기장 건물들은 당시 혁신적인 실험적 건축으로 세계 건축계의 새 장을 열었다.

문화예술의 도시인 뮌헨에서 꼭 가보길 권하고 싶은 곳은 3대 미술관(Pinakothek)이다. 중세, 근대, 현대로 나누어 전시하는 세 미술관 건물은 가까이 위치해 있고 수장품은 가히 세계적이다. 일요일에는 입장료가 1유로밖에 안 돼기 때문에 우리 가족은 주로 한산한 일요일 오전에 가서 한 가지 테마만 집중해서 보고 온다. 그밖에 내가 좋아하는 미술관은 렌바하하우스(Lenbachhaus)이다. 청기사파를 망라한 수장품도 상품이지만, 독일의 도심에 이탈리아 시골 귀족의 저택 같은 대지에 첫발을 들이는 순간 마음이 고요해지기 때문이다.

뮌헨에서는 크고 작은 콘서트가 끊임없이 열린다. 여행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것은 음악대학(Musikhochschule)이나 가스타익 문화센터(Kulturzentrum Gasteig)에서 자주 열리는 무료 음악회다. 음대생들이 실기시험에 대비해 연습 겸 연주회를 하는데 수준이 높다. 게다가 그다지 붐비지 않아서 갔다가 허탕칠 염려가 없고, 무엇보다도 평상복 차림으로 가도 실례가 아니라는 이점이 있다.

이왕에 음악대학까지 갔으면 근처의 쾨닉스 광장(Königsplatz)의 잔디밭이나 조각관 건물의 계단에 앉아서 전형적인 고전주의 공간의 아름다움을 감상하기를 권한다. 또 가스타익 문화센터까지 갔다면 바로 보이는 독일박물관에도 가서 과학의 역사를 그야말로 오리지널로 감상해보자. 이 나라에서는 후세의 과학 교육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지하실에 마련된 유아 놀이터에서 구경해보기를 권한다.

마지막으로 이자 강변을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산책하다 보면 그날의 계획을 다 잊어버리고 그냥 하염없이 걷게 될 것이고, 문득 뒤돌아보면 어느새 하늘과 물을 물들이는 저녁노을에 가슴마저 붉어질지도 모른다.

뮌헨의 연례적인 문화행사로 ‘박물관의 밤’(Lange Nacht der Museen)과 ‘음악의 밤’(Lange Nacht der Musik)을 빼놓을 수 없다. 15유로의 저렴한 가격으로 이른 저녁부터 새벽까지 시내의 유명 박물관, 미술관, 전시관은 물론 사설 갤러리까지 전부 관람할 수 있고, 셔틀버스도 무료로 운행한다. 음악의 밤에는 필하모니가 연주하는 각종 음악회장뿐 아니라 레스토랑이나 호텔, 카페에서도 연주가나 밴드를 초청해서 별의별 종류의 음악 잔치가 벌어진다.

관광중에 바이에른 지방의 전통음악과 전통무용을 감상하려면 호프브로이하우스가 적격이다. 3층 축제홀(Festsaal)의 19유로짜리 입장권을 사면 저녁 7시부터 흥겨운 쇼와 함께 푸짐하고 맛깔나게 차린 전통음식 뷔페를 즐길 수 있다. 1층에는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이 길다란 테이블에 함께 앉아 생음악과 함께 40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양조장의 맥주를 마시고 식사도 하며 금세 친해지는 1,300석짜리 홀이 있고, 2층에는 비교적 조용히 식사를 할 수 있는 레스토랑식 홀이 있다. 이 역시 마리엔 광장 근처에 있다.

뮌헨의 특징은 대도시이면서 대도시의 단점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인구 130만의 뮌헨은 독일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유럽의 어느 도시보다도 깨끗하다. 돈이 많아서 감시하는 일꾼들을 많이 풀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공공질서도 잘 지켜지는 편이고 범죄율도 아주 낮다. 시의 홍보물에는 ‘마을 같은 대도시’라고 자랑하는 선전문구가 빠지지 않는다.

실제로 도시 곳곳에는 옛 마을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대도시의 도로를 지나다 우연히 옆길로 빠지면 난데없이 일곱 난장이가 튀어나올 것 같은, 처마가 낮은 오두막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기도 하다. 문화재로 엄격하게 보호되고 있는 도심의 오두막집들은 인기가 아주 좋아서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또 마리엔 광장 바로 옆에 있는 재래시장에서도 ‘마을 같은 대도시’를 느낄 수 있다. 많은 관광객들이 이 재래시장을 쓱 한번 바라보고 사진이나 찍고 발길을 재촉하는데, 그러려면 차라리 그냥 건너뛰는 게 낫다. 여기에는 찬찬히 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물건들밖에 없기 때문이다. 원래는 서민들의 평범한 장터였던 이 시장은 어느새 미식가들을 위한 최상급 공급처로 변해서, 독일의 산해진미가 모여든다.

비싼 만큼 최상품을 보장하는 이 재래시장에 한번 가게 터를 잡은 상인은 상권을 절대로 반납하지 않고 대를 물릴 만큼 장사가 잘된다고 한다. 눈요기만 제대로 해도 배가 부르고 마음이 넉넉해지는 이 재래시장은, 마로니에 그늘에 앉아서 시원한 맥주에 곁들여 소시지나 족발을 먹기에도, 샴페인에 곁들여 새우구이나 생굴을 먹기에도 분위기가 잘 어울리는 곳이다. 이 시장에 단골로 다니는 뮌헨 주민들은 가격도 싸고 품질도 좋은 가게들을 잘 파악해서, 간이카페에서 3유로 안팎의 돈으로 커피 한 잔과 갓 구운 케이크를 즐기기도 한다.

관광을 하다 몸이 지쳤을 때, 시가지에 빙 둘러선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세계 각지에서 온 길거리 예술가들의 수준 높은 음악 공연이나 퍼포먼스를 즐기는 것도 별미다. 해가 진 후 왕궁의 정원(Hofgarten)이라도 거닐라치면 동화같이 앙증맞게 가꾸어놓은 꽃밭 너머로 음악 소리가 들려올지도 모른다. 정원 가운데 있는 동그란 정자에 희미하게 불 밝혀놓고 나지막한 카세트 음악에 맞춰 탱고나 살사를 추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평생을 여러 대륙의 대도시들을 전전하며 살아온 한 유럽인은 자신의 노년을 보낼 도시로 뮌헨을 택했다고 한다. 독일사람들은 보면 볼수록 매력이 없지만 뮌헨은 살면 살수록 정이 든단다.

[한겨레출판의“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 2부 “도시 이야기”에 실린 글입니다. 뮌헨에 여행 오시는 분들을 위해서 올려드립니다. 원작자인 제게 지적재산권이 있다고는 하지만 출판사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일단 이것 하나만 올리면서도 무척 망설였네요. 어울리는 사진도 함께 올려드리고 싶은데 제가 지금은 시간이 없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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