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내가 아주 능숙한 이중언어자일 것이라고 상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한국어와 독일어 두 언어를 어눌하게 사용하는 편이다.

그런 사실이 남 앞에서 말을 해야할 때 다소 불편하기는 하지만 나는 언어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것보다 정확하게 사용하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불만은 별로 없다. 단지 이제 나는 유치원 선생님이 되려고 하기 때문에 그 분야의 독일어만큼은 준비를 철저히 해서 잘 하려고 한다.

외국에 살고 있는 분들이나 이제 막 외국생활을 시작하려고 하는 분들과 나의 경험을 공유하고 마음의 위로랄까 동병상련이 정을 나누기 위하여 내가 예전에 한겨레신문의 “[독일]사람사는이야기” 칼럼방에 써놓은 글을 찾아 보았다.

독일어로 꿈꾸고 한국어로 글쓰고

나는 내가 한국에서 산 시간의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세월을 독일에서 보냈다. 가끔가다 한 몇 년씩 한국말을 하나도 안 쓰고 독일어만 하며 살 때도 있다. (우리 아이들의 한국어 교육을 포기하게 된 경위는 앞으로 올릴 교육이나 여성주의에 관한 글에서 설명할 것이다.) 요즘 나의 형편이 바로 그렇다. 한국말이라고는 한 달에 두어 번쯤 전화통화를 하는 게 전부이다.

물론 꿈도 독일말로 꾸고 욱하면 튀어나오는 욕도 독일말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내가 어디 아플 때에는 “아우아!“하고 독일식으로 비명을 지르고 놀랐을 때에는 “앗 뜨거!” “아이 깜짝이야!“하는 한국말이 나온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쓰기 위해 다시 한번 관찰해 봤더니 냄비가 끓어 넘칠 때에는 “엄마야, 마인 곳!(나의 하나님)” 이렇게 한국어와 독어를 섞어서 소리지른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유를 생각해 보았더니 독일어에는 아플 때에 쓰는 단어는 있지만 뜨거울 때나 놀랐을 경우에 특별히 따로 쓰는 단어가 없으므로, 어려서부터 한국말을 통해 그런 것을 구별하여 비명을 지르는 습관이 들은 나의 뇌세포가 보다 섬세한 비명의 차별화가 가능한 한국말을 선택하는 것 같다. 단 냄비가 넘칠 때에 내가 왜 두 언어를 섞어서 비명을 지르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독일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가 하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독일어로 편지라던가 아이들의 결석계를 쓰고 나선 독일사람인 남편의 검사를 받아야 안심이 된다. 아직도 가끔씩 맞춤법에서 소소한 실수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신문 읽는 속도도 느리고 같은 영화를 보고도 다른 독일인보다 이해하는 폭이 좁다. 말도 무심코 할 때에는 곧잘 하다가도 막상 잘하려고 들면 유난히 부자연스러운 문장을 만든다. 나의 발음에도 외국인 특유의 억양이 있는지 전화로 나를 처음 대하는 사람들 중에는 가끔 나를 프랑스인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내가 그만하면 독일어를 잘한다고 생각한다. 사소한 맞춤법의 실수나 억양은 나의 뜻을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는 데에 별 지장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의 말을 유난히 잘 알아듣지 못하는 독일사람을 좀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이들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직도 소소한 맞춤법의 실수 때문에 남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이 불편하긴 하지만 교정을 받은 후의 나의 문장이 무난하고 의사전달을 정확히 하고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스럽게 생각한다. 맞춤법이 다 맞는데도 뜻이 모호한 문장보다는 훨씬 낫기 때문이다. 또한 언어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공적인 일을 할 경우에는 여러가지 예문을 만들어 두었다가 짜깁기를 하면 감쪽같이 해결이 되므로 얼마든지 보완될 수 있는 핸디캡이다.

나는 남편의 독일어 편지를 수정해주기도 한다. 문법도 봐주지만 무엇보다도 표현이 정확한지 검토하고 대안을 제시해준다. 여러 독일인들과 고심해서 함께 문장을 만들 때에 가장 적절한 단어를 가장 빨리 찾아내는 사람은 바로 나다. 근래에 독일어의 문법이 대폭 수정이 되었는데 변화를 싫어하는 독일인들이 항의하고 불평하는 사이에 나는 학원에 등록해서 새 문법을 다 외워버렸다. 구 문법보다 훨씬 합리적이고 논리적이어서 배우기도 쉬웠다. 그러나 나는 독일인 친구들 앞에서는 새 문법에 대한 평가를 삼가고 있다. 자기네들은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내가 잘하는 건 배가 아파서 내가 구 문법에 서툴러서 새 문법을 빨리 습득했을 거라는 둥 엉뚱한 소리를 하기 때문이다.

몇 년 전에 나는 가족과 친지들의 만류를 무릅쓰고 발음학원에 등록한 적이 있다. 나를 프랑스인으로 오해받게 만드는 나의 독일어 억양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녹음기를 이용하여 전문가의 발음과 나의 발음을 비교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외국인과 본토인의 억양의 차이는 무엇보다도 장음과 단음의 정확한 구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외국인의 귀는 처음에는 독일어의 장음과 단음의 차이를 듣지 못한다. 그래서 나중에 그 차이를 들을 수 있는 귀가 뚫리더라도 습관에 의해서 획일적으로 발음하게 되는 것이다. 그 점에 신경을 써서 발음했더니 몇 십 년 간 나를 따라다니던 나의 억양이 정말로 하루아침에 깨끗이 사라지는 기적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피곤하면 옛날의 억양이 다시 살아난다.)

발음학원에서 나는 또한 나의 발음이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나쁘지 않고 나의 목소리가 의외로 듣기 좋다는 것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마이크에 대고 발음연습을 할 때 옆 사람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목소리를 낮추어 소곤거리듯 말해서 목소리가 보통의 상황보다 부드러웠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으로 기계를 통하여 내 목소리를 들었을 때의 흐뭇했던 기억이 두고두고 남아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독일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목소리가 영감 목소리로 변했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내 생각에 독일말에는 목의 깊은 곳에서 나오거나 목젖을 떨며 나오는 발음이 많아서 목의 긴장을 풀고 저음으로 차분하게 깔아야 매끄럽게 나오기 때문에 은연중에 음성을 낮추는 습관이 드는 것 같다. 일반적으로 독일어가 딱딱하고 불어가 부드럽게 들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나의 경험에 의하면 독일어로 하는 대화가 듣기에는 훨씬 더 나긋하고 부드럽다.

나의 독일어실력은 독일에 거주하는 시간에 비례해서 꾸준히 발전하는 것만은 아니어서 잠깐 사이에 눈에 띄게 퇴보했던 적도 몇 번 있었다. 한번은 장난삼아 독일 남서부지방의 사투리를 배웠을 때 그랬었고(이것이 가장 치명적인 실수였다), 독일 땅을 두 달 이상 떠나 있거나, 몸은 독일에 있더라도 발표나 작문 등 한국말을 심도있게 쓰고 나면 꼭 그랬다. 그래서 나는 독일어로 복잡한 작문을 해야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한글 읽기를 멀리하고 한국인과의 대화도 피하곤 하였다. (사람마다 다 나와 같은 건 아니다. 나의 친구들 중에는 한국어와 독일어를 항상 유창하게 쓰는 한국인도 있다.)

그렇게 몇 년 동안 독일어만 집중적으로 쓰다보면 나의 한국어 실력은 바닥을 기게 된다. 아주 일상적인 단어마저 금방 생각나지 않아서 갑자기 한국사람과 대화하려면 당황한다. 말이 어눌하고 어휘가 빈약하니 무시당하는 일도 간혹 있고 또 나 스스로 창피하기도 해서 한국사람을 피하는 일까지 생기게 된다. 이런 때에는 독일어 실력이 다시 줄 것을 각오하고 한글로 작문을 하거나 한글로 된 인쇄물을 많이 읽으면 한국어가 되돌아오게 된다. 말하는 연습을 따로 하지 않더라도 한글로 읽고 쓰기를 적극적으로 연습하면 말도- 유창하지는 않을지언정- 의사전달에 지장이 없을 정도로는 된다.

재미있는 일은 한동안 쓰지 않았던 한국어나 독일어를 연습을 통해서 다시 잘 할 수 있게 되면 이전에 멈추었던 수준보다 좀 더 나은 작문실력을 보인다는 것이다. 즉, 나의 경우엔 한글 쓰기를 멈춘 후에 독일어 작문을 통해서 얻은 배움이 나중에 한글로 작문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어떤 언어로건 상관없이 부지런히 글을 쓰는 것이 나중에 다른 언어로 글쓰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는 뜻이겠다.

이렇게 두 언어 사이를 다소 불안하게 왔다갔다하면서 양 나라말을 번갈아 가며 사용해온 내가 이번에 인터넷한겨레에 독일칼럼을 쓰면서 매우 특이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머리 속에 있는 추상적인 생각을 끄집어내어 형상화시키는 작업에 이제는 두 나라의 언어를 동시에 사용하게 된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의 대부분은 독일에 사는 동안 독일어를 통해 정리되었으므로 나의 머리 속에 있는 독일어 서랍 속에 저장되어 있다. 이를 그냥 그 서랍에서 꺼낸 고대로 한글로 번역하면 생동감이 떨어진다. 이를 한국어의 사고체제를 통하여 다시 한번 겪고 느끼는 과정을 거쳐서 한국어 서랍 속에 일단 저장해 두었다가 따끈하게 꺼내야 한국인 독자와 주파수가 맞아서 독자의 마음에 동요를 일으킬 수 있다. 왜냐면 언어는 바로 정서이기 때문이다.

나의 한국어 서랍 속에서 나오는 이 생각들은 독일어 서랍 속에 들어있던 시절의 원본보다 내용이 좀 더 깊고 풍성하다. 독일어로는 잡아낼 수 없었던 생각들이 한글을 거치는 과정에서 새로이 발견되기 때문이다. 언어는 이미 완성되어있는 어떤 생각을 서술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바로 그 생각을 만들어가는 도구이다.

이렇게 좀 더 풍성해진 내용을 한글로 적어나가는 과정에서 나는 뜻밖에도 독일인인 남편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왕왕 있다. 한글로 적어놓고 나면 문장은 그럴듯한데도 어딘지 내 마음 속에 있는 상과 일치하지 않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때 그 내용을 독일어로 설명을 하다보면 논리의 빈약이나 비약이 선명히 드러난다. 이런 허점이 금방 눈에 뜨이지 않는 것이 한국어의 특성이라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견해이다. 심지어는 문법이 틀려도 문장 자체로는 틀린 표가 안 나기도 하고, 아예 내용이 없는데도 글쓴이의 의도가 글의 분위기를 통해서 전달되는 경우도 있다.

내가 탄핵에 관한 글을 올렸을 때에는 상황이 달랐다. 나는 한국소식을 대부분 인터넷을 통하여 한글로 읽고 있으므로 이에 관한 모든 생각들이 이미 나의 머리 속에 있는 한국어 서랍속에 저장되어 있었다. 칼럼을 쓰기 전에 논리를 검증받기 위하여 남편을 스파링파트너로 이용하려고 했더니 도무지 제대로 된 독일어가 나오지 않았다. 독일어로 생각해야 독일어가 나오는 법인데, 생각은 한국어로 하면서 독일어로 직역을 하자니 알던 단어도 갑자기 생각이 나지 않았다. (작문은 언어를 통하여 생각을 만들어 가는 과정인지라 이미 완성되어 있는 생각을 옮기는 작업인 번역과는 다른 문제이다.)

문법이고 어휘고 매우 위태스러운 나의 독일어를 들으며 남편은 내가 이 주제에 대한 확실한 지식이 없고 사고가 정확하지 않아서 그러는 거일 거라고 지레짐작을 하고서는 마구 구박을 했다. 그는 나더러 그렇게 자신 없는 테마에 대해서 칼럼을 쓰면 어떻게 하냐고 잘난 척까지 해서 내 자존심을 긁었다. 말을 못한다고 생각까지 없는 바보 취급을 하다니. 나는 오기가 나서 부부싸움도 뒤로 미루고 혼자서 열심히 썼다. 글의 앞뒤가 맞는지를 건물을 설계할 때 단면도와 입면도를 비교하는 것처럼 검토하였다. 써놓고도 사실은 자신이 없었다.

이렇게 독일어의 도움을 받아가며 한글로 글을 쓰고 나면 칼럼에 올리기 전에 마음이 참 불안하다. 과연 나의 글이 한국사람들에게 편안히 읽혀지는, 한국 정서를 담은 글인지 아니면 국적불명의 번역문인지 자신이 없어진다. 구성에 신경을 써서 설계는 제대로 되었지만 마무리가 매끄럽지 못하여 여기저기에 못이 삐죽 튀어나오는 을씨년스러운 집의 꼴이다. 며칠을 두고 수 없이 반복해서 읽으며 다듬기를 거듭한다.

이때쯤이면 다른 대륙에 사는 내 친구에게서 메일이 날아온다. “언니, 칼럼 올릴 때가 다 되어 가는데 쓰셨으면 제게 빨리 보내세요.”

그녀는 내가 인터넷의 게시판을 통해서 사귄, 글을 쓰는 친구이다. 그녀의 글이 좋아서 게시판을 기웃거리다가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내가 한겨레에서 칼럼 제의를 받고 자신이 없어서 망설였을 때 나에게 용기를 준 사람도 그녀이고, 내가 실험삼아 써 본 몇 편의 글을 검토하여 칼럼에 올릴 순서를 정해준 것도 그녀이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여태까지 독일칼럼에 올린 나의 모든 글들을 일일이 교정해주었다. 그녀는 나의 문장이 능동형으로 시작하였다가 수동형으로 끝나는 점을 바로잡아주기도 하고, 시제가 오락가락하거나 단어가 부정확한 곳이 있으면 이를 지적했다. 그녀는 내 문체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서 항상 최소한의 수정만을 가했지만, 그녀가 조사만 바꾸어 주어도 문맥이 매끄러워지는 것을 보며 나의 한글실력은 눈에 보이게 발전해갔다. 나는 그녀의 교정본과 나의 원본을 꼼꼼히 대조해가며 토씨 하나로 인해서 뉴앙스가 달라지는 한국어의 신비성을 새록새록 깨달아갔다.

교정을 통해서 문체가 편안해지자 애초의 나의 의도가 더욱 선명하게 노출됨으로써 그로 인해 새로운 생각이 꼬리를 물고 새끼를 치는 일도 종종 있었다. 삐져나온 못을 뽑고 벽을 깔끔하게 미장한 후에는 그 벽에 걸고 싶은 그림이 저절로 떠오르는 것처럼. 그래서 교정을 받은 후에 새로이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다보면 애초에 단독주택으로 지으려던 집이 연립주택이 되어있는 경우도 있다.

또 나는 나의 어떤 사고체계가 독일식인지도 알게 되었다. 내가 “나는 철거의 최대의 수혜자가 되었다”라고 지극히 사실적으로, 또는 독일어식 냉소를 섞어 담백하게 써놓은 문장이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내가 철거를 은근히 기뻐하는 느낌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그 친구로부터 배웠다. 작문할 때 뿐 아니라 한국사람과 교제하는 일에 있어서도 이런 점에 신경을 쓴다면 앞으로는 쓸데없는 오해를 피할 수 있게 되리라.

그녀의 글을 처음 접했을 때 인터넷 초보자였던 나는 글을 말하듯이 쓰는 그녀의 글투가 낯설었었다. 그래서 그녀가 자기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말을 그대로 믿었었다. 그러나 그녀의 이렇듯 섬세한 교정을 받으며 나는 그녀가 쓰는 글이 사실은 뛰어난 언어감각에 기초하고 엄청난 자기검열을 거쳐서 그렇게 한달음에 우당탕탕 써내려간 듯 보이는 글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경쟁의식을 가지고 나를 견제할 수도 있는 처지의 사람이, 동분서주 바쁘게 사는 와중에도, 내가 미안해하는 마음까지 헤아려서 때마다 잊지 않고 글 독촉을 하고 정성스럽게 교정해 주고 나서도 항상 “언니, 이번에도 고칠 게 별로 없었어요. 이렇게 좋은 글을 읽게해 주셔서 고마워요”라고 말하는 그녀의 우정에 감사 드린다. 그녀가 사소한 일이라며 나의 손에 쥐어진 작은 조약돌이 나에게는 바위같은 위력으로 다가왔다는 것을 그녀는 상상하지 못할 것이다. 독자들에게서 내가 글을 잘 쓴다는 칭찬을 들을 때마다 꼭 알려드리고 싶었던 사실이다.

이 칼럼을 쓰면서 나는 독일어만으로 생각할 때보다 사물을 더 세밀히 관찰하게 되었고 더욱 폭 넓고 깊은 사고를 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칼럼을 읽고서 각기 다른 반응과 감상을 표현해주는 독자들도 나의 사고의 지경을 넓혀주었다. 나의 부족한 글을 너그러이 감싸주면서 늘 읽어주심으로써 내가 또한번의 허물을 벗고 나비가 될 수 있도록 독려해주시는 독자들께 이 기회를 빌어 마음 깊이 감사를 드린다.

(2004년)

원문 출처http://world.hani.co.kr/board/kc_kpoll/71
[독일]사람사는이야기 http://world.hani.co.kr/board/list.html?board_id=kc_kpo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