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 1장 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한다. 그에 반해 독일의 헌법은 “인간의 존엄성은 침해할 수 없다”로 시작하여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모든 국가기구의 의무다.”라고 밝힘으로써 독일 연방은 인간의 존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선언한다(1). 국민의 인권을 무시하다 폭삭 망한 나치시대의 경험이 있는 나라로선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인간의 존엄성에는 “교육을 받을 권리”가 속한다. 사회의 모든 어린이, 청소년들은 태생과 출신 또는 부모의 재력에 상관 없이 교육을 받을 권리를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다는 것을 뜻하며, 국가는 그것을 지켜주기 위하여 존재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독일의 현실은 어떠한가? 그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2011년 5월 24일 독일 바이에른주 보육교사 자격증 국가검정고시 <사회학> 시험 문제를 소개하기로 한다.

“위의 텍스트를 바탕으로 사회적 불평등에 관하여 논하라.”

가난하거나 가정이 불화하거나 이주민 출신의 저소득층 중학생 연령의 청소년들의 대화를 소개하는 텍스트에는 부모에 대한 불만과 자신들의 미래에 관한 회의가 주를 이루고 있다.

내가 쓴 답의 일부를 발췌해서 요약한다.

사회적 불평등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분배의 불평등과 기회의 불평등이다. 먼저 분배의 불평등에 관하여 논하자면, 오늘날 독일에선 빈부의 차이가 점점 커지고 있다. 상위 20%가 독일 전체 재물의 63%를 소유하며 이는 독일 평균의 7배에 달한다(2006년 통계). 평균소득의 60% 이하를 벌면 빈곤층이라고 정의하는데, 2008년 통계에 따르면 독일 국민의 13%가 빈곤하고, 다른 13%는 국가의 보조를 통해 빈곤층을 가까스로 벗어났다. 즉, 국가의 보조가 없다면 독일의 빈곤층은 전 국민의 4분의 1이 될 것이다.

세계화의 영향으로 가계 수입의 성격이 바뀌고 있는 것이 그 원인이다. 오늘날 독일 국민이 벌어들이는 돈의 40%만이 직업을 통해 본인이 직접 벌어들이는 돈이고, 나머지 60%는 유산이나 주식 등으로 일하지 않고 들어오는 수입이다. 독일 상위 3분의 1에 속하는 사람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에는 “일 하지 않고 벌어들이는” 불노소득이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부자는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점점 더 돈이 많아지고, 가난한 사람은 암만 열심히 일해도 개인의 노력과 능력으로 빈곤을 극복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능력 있는 사람이 열심히 일해도 댓가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현상이 바로 분배의 불평등이다.

분배의 불평등은 계속해서 기회의 불평등으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예가 교육 분야에서 나타난다. 독일에선 1970년대 이후로 부모의 재력이 아닌 학생 개인의 능력에 따라 교육 받을 수 있는 기회의 평등을 현대 사회의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다. 그 이유는 교육 수준에 따라 미래의 수입과 사회적 신분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독일 교육의 현실을 보자면, 독일 상류층의 81%가, 하류층의 8%가 대학에 진학한다. 이런 불공평한 현상은 현재 독일 교육시스템에 원인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벌써 대학진학과 직업교육의 길이 갈리는 독일 교육시스템의 맹점에 첫째 원인이 있다고 나는 본다. 그리고 부모의 도움을 전제로 하는 교과 내용에도 맹점이 있다. 독일에서 어린이들의 학업 능력은 부모의 뒷받침에 크게 영향 받는다. 부모의 교육수준과 재력에 따라 아이들은 처음부터 정해진 길을 걷는 셈이다.

이는 시스템의 문제만은 아니고 계층별 교육철학의 문제이기도 하다. 대학출신의 가정의 자녀들은 대학은 꼭 가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부모가 고등교육을 받지 않은 가정의 자녀들은 공부를 굉장히 잘 할 경우에만 대학에 진학할 것을 고려한다. 독일의 교육비는 다른 나라에 비하면 거의 무상에 가깝지만 그래도 가난한 가정의 자녀들은 16세 이후에 학업을 하면서 용돈을 버는 직업교육을 선택함으로써 대학 진학을 쉽게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그에 더하여 몇년 전에 역사상 처음으로 도입된 대학교 등록금 제도는 기회의 불평등에 크게 기여했다. 그 이후로 가난한 자녀들의 대학 진학율이 눈에 보이게 줄었다. 사회 전반에 걸친 반발과 반대 끝에 몇 개의 주에서는 이 제도를 철회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독일에서 교육 관련하여 기회의 불평등은 아직 커다란 숙제로 남아 있다.

사회적 불평등은 국가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로서 그 원인을 찾아 적극적으로 물리쳐야 한다. 분배가 공정한 사회만이 시민의 노력과 협력을 유도해서 발전할 수 있다. 기회가 평등한 사회만이 그 사회에 주어진 모든 가능성을 활용하여 발전할 수 있다. 사회적 발전은 그 사회의 경쟁력과 직결되며 동시에 개인의 행복과 직결된다.

보육교사가 될 사람들에게 저런 시험을 치르게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미래 사회의 이익을 위해서다. 모든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교육의 기회를 평등하게 누리는 사회만이 발전할 수 있다. 그것은 부모와 국가가 공동으로 이루어야 할 임무다. 부모 세대는 안정적으로 발전하는 사회를 물려주어야 할 도의적인 책임이 있는 동시에 그를 통해 안락한 노후를 보장받는다. 국가는 헌법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기 위해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실현할 의무가 있고, 보육교사들은 유아시절부터 교육의 기회가 평등하게 실현되도록 노력할 임무를 국가에서 위탁받았다.

요즘 한국에선 대학생들이 1년 평균 800만원의 등록금을 반값으로 줄여달라고 촛불을 들고 있다. 독일에서 대학을 다니는 내 아들은 1년에 1000유로 하는 등록금을 철회하라고 며칠전에 현수막을 들었다. 한국 대학생들은 도저히 그 돈을 내면서 학업을 계속할 수 없다고 호소하고 있지만, 독일 대학생들은 개인적인 얘기를 별로 하지 않는다. 기회의 불평등을 고발하며 이런 사회적 부조리를 바로잡을 것을 당당하게 주장하고 있다.

한국의 대학생들은 “대학이나 다니는 너희들은 그나마 잘 사는 층 아니냐. 돈이 없어서 아예 학교에 못 다니는 사람도 있데 염치 없게 더 깎아달라고 하느냐”는 비난에 맞서야 하지만 한국식 반값 등록금의 반도 안 되는 액수를 내는 독일 대학생들은 “미래를 책임질 내가 돈 때문에 공부를 못하면 궁극적으로 사회 전체의 손해”라고 당당하게 주장하며 주 정부를 하나 둘씩 굴복시켜나가고 있다. 대학생들 뿐 아니라 고등학생들과 학부모들도 적극적으로 시위에 나서고 있고 자식이 없는 사람들도 국가 발전을 위해서 이들을 응원하고 있다.

비싼 등록금은 부모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라는 의식으로 촛불을 든 우리나라 대학생들 정말 똘똘하다. 어려서부터 호된 경쟁에 내몰려 따로따로 경쟁하는 연습에만 익숙할 당신들이 이제 손에 손을 잡고 어른들을 향해 치켜든 옐로카드는 젊음의 건강한 직관이련가? 이들의 등록금 인하 요구는 바로 한국 사회에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아주겠다는 믿음직스러운 결의다. 대견하고 자랑스럽다.

반값 등록금? 돈이 어디 있냐고 묻는 인사들에게 되묻는다. 말 많고 탈 많은 사대강사업은 누구 돈으로 하는 거냐고. 사대강사업만 중단하고 원상복귀 시켜도 앞으로 끝없이 들어갈 국민돈이 굳는다.

초등학생에게 들어갈 예산을 빼서 대학생들을 지원하겠다는 식으로 국민을 이간질하지 말라. 학생들에게 등록금 받아서 주식투자하고 땅투기하는 사학부터 투명하게 개혁하고나서 돈 얘기 하라. 여당이고 야당이고 함부로 예산 움직여 일단 학생들의 비위부터 맞출 생각 하지 말라. 사회의 부조리와 부정을 바로잡아 음지로 새는 돈을 건질 궁리부터 하라. 사대강사업을 추진하거나 묵인하고 부패한 사학정책을 옹호하는 정치인들을 가슴에 손을 얹고 그 많은 돈이 대체 누구에게로 가고 있길래 학생들이 원해도 공부할 수 없을 지경으로 국민이 가난해졌는지 생각해보라.

교육복지 운운하며 복지가 국가경제 거덜내어 나라 망한다고 거짓말하지 말라. 교육은 복지가 아니라 국가의 생존이다. 지금은 세계화시대다. 공부는 자신의 권리라는 것을 유치원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배워서 그 권리를 당당하게 행사하면서 자란 일꾼들과 등록금 때문에 대학가는 게 미안할 정도로 주눅이 든 일꾼들이 경쟁한다면 과연 누가 이길 것인가?



(1) 한겨레21에 실린 안수찬 기자의 문장이 좋아서 이용했습니다. 원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