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독일 교포사회는 박정희 대통령 동상을 건립하고자 하는 의견과 그를 반대하는 의견이 부딪쳐 팽팽하다. 동상의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단체는 파독 광부들의 단체인 글뤽아우프이다.

나는 이 사안에 대하여 독일 루르지방 한인성당 주임신부님의 글을 보게 되었다. 다 같이 생각해보면 좋을 글이라서 소개하고 그 밑에 내 의견을 썼다.

 

조영만 세례자 요한 루르 한인성당 주임신부 (베를린리포트에 최정규 님이 올린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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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디에서 우리 자신을 찾고 있습니까?

자식들이 부모에 대하여 고맙고 감사함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먹여주시고, 입혀주시고 공부시켜주시고 길러주신, 그렇게 우리를 이만큼이라고 머고 살게 해주시니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제가 부모라면 그것만으로는 좀 섭섭할 것 같습니다.

먹고살기위해 무수히 땀방울 쏟아낸 것은 맞지만 그것은 오직<사랑> 때문이었음을, 나는 나의 땀보다 훨씬 더 너희들을 사랑하였기에 다른 무엇보다 그 ‘사랑’에 대하여 알아주면 좋겠는데, 어느새 ‘사랑’은 쏙빠져버리고 그저 ‘먹고 살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만 하면 좀 섭섭하지요.

한 인간이 성장하고 자라는 것 속에는 단지먹고 사는 ‘경제’만 들어있지 않습니다.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절대기준이 되어버리면 우리는 인격, 최소한 고집해야할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과연 어디에서 여러분의 인생의 의미를 찾고 있습니까?

40년전에는 그랬지요. 먹고 사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서라도 오로지 먹고 사는 것에 이전투구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반만년 걸쳐 내려오던 가난을 벗어내겠다고, 어쩌면 우리들은 조국을 떠나 이역만리까지 일하려 나왔고 그렇게 4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돌아봅니다. 내가 이곳에 와서 했던 고생들, 서러움과 눈물들….

이것들의 의미를 우리는 어디에서 찾아야 하겠습니까?

정상적이라면 우리는 우리들이 이곳에서 흘린 땀방울을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들 안에서 찾을 것입니다. 정상적이라면 우리는 이런 고생들 때문에 내가 얼마나 더 큰사람이 될수 있었는지를 말할 것이고, 정상적이라면 우리는 이곳에 살았기에 더 너그럽고 선선할 수 있는 자유로움에 대하여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때 비로소 우리들이 한 모든 고생은 참된 가치를 누리게 되는 것이겠지요.

그래 이곳에 살았던 더분에 우리가 잃지 않아도 되었던 것들, 지독한 경쟁과 속도, 전쟁과도 같은 생존악투 속에 ‘의로움’보다는 ‘이로움’을 쫓고, ‘가치’보다는 ‘가격’을 쫓아, 안 되면 되게 하고, 돈이면 모든 것이 다 용서되는 ‘기형의 대한민국’에 살지 않기에 하루 10시간 죽도록 일하고 끼니는 계단 밑에서 웅크린채 해결해야하는 대학의 청소부 아줌마들이 시급 860원 더 올려달라고 하자 ‘지성의 상아탑’이라는 대학은 이들을 길바닥을 내쫓아버리는 현실을 두고 ‘참 저급하다’하며 과연 저런 곳이 이간의 사회인지에 대하여 진지하게 물을 줄 알게된 독일에서의 삶일진데, ‘인간이 인간에게 그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그리하면 안된다’라고 말하지 못하고, 그저 먹고 살게 해주신 그 하해와 같은신 은덕 덕분에 비로소 내 흘린 땀이 의미가 있고 내 젊은날의 청춘을 뿌듯해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그건 적잖이 서글프면서도 정상적인 일을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얼마 전 교포신문을 읽다 이런 서글픔에 한찬 먹먹했습니다. 파독광부들의 모임이라고 할 수 있는 ‘글릭아우프’회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동상을 이 독일땅에 세우겠다는 기사를 접하게 된 것입니다.

“이역만리 독일 땅에서 조국을 온 가슴에 안고 사는 파독산업전사들 앞에서 ’여러분과 우리는 잘 살 있다!‘고 눈물의 약속을 하였던 박 전 대통령이 일구셨던 번영을 기리고, 이곳에 와서 함께 울멱였던 기억을 보조하기 위하여 그분의 비문과 동상 건립을 하자는데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은 적극적인 지지와 찬동을 보였다,”고 전하고 있습니다.(교포신문 729호 1면)

 

뒤로 가도 앞으로는 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의 기억이라고 했던가요, 하지만 그 기억마저도 <일방적>일 수 밖에 없는 것이 또한 인간입니다. 저는 노구의 세월들께서 왜 박정희 동상을 세우자는 데에 결연한 의지를 다지시는지, 그것이 마치 당신들의 한풀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기시는지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경제발전을 이루었으니까! 이만큼 먹고살게 해주었으니까! 하지만 ‘그 기억’을 통해서만 나의 모든 고생과 수고를 다 보상받을수 있다고 한다면 이 땅에서의 우리네 삶이 너무 옹색해진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것보다 더 많은것들을 말할 수 있는 우리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인간에겐 먹고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은데 박정희는 우리에게 그것을 말하지 않았다고! 옳게 사는 것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고, 바르게 정당하게 사는 것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았으며, 불법을 합법으로, 안 되는 것을 되게 함으로서 편법과 속도가 판을 치는 세상을 만들어 옳은 것을 말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 죽거나 병신 되어 나와도 어디 하나 하소연할 데 없었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누구입니까?

박정희 덕에 배부르고 등 따수웠던 사람들이 그런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과연 박정희 때문에 배부르고 등 따수웠던 사람들입니까? 아닙니다. 반댑니다. 박정희가 여러분 때문에 등 따숩고 배부르게 산 겁니다! 박정희 동상이 아니라 차라리 파독광부, 간호사의 고생하던 모습을 동상으로 세우십시오.

그러면 저부터라도 돈 내겠습니다. 경제는 박정희가 살린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살린 것입니다. 파독광부, 간호사, 월남 파병가서죽도록 고생했던 사람들과 ‘산업전사’라는 이름으로 하루 열여섯 시간 노동을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가며 피고름까지 빨면서 미싱틀 앞에서, 신발공장 고무타는 냄새 온 종일 맡으며 고생했던 그 때 그 사람들! 경제를 살렸으면 그들이 살렸고, 나라를 일으켰으면 그들이 이르킨 것입니다.

 

그런데 왜 여러분들이 박정희 동상을 세웁니까? 그래야만 과연 여러분들의 노고와 수고가 ‘한풀이’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결코 제대로 푸는 일이 못됩니다. 그저 30년 전 박정희의 신민으로 돌아가는 것 뿐입니다. 어디가도 인정해 주는 사람도 없고, 이제는 더 잘 살게 된 한국에 가도 제대로 대접을 받을수 가 없으니 이곳에다 박정희 동상을 세우면 뭔가 대접받고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그렇습니다. 그것은 박정희 덕에 배불렀던 사람들에게나 할 기대입니다.

기억은 이토록 일방적입니다. 경제를 살리던 여러분 눈물을 흘렸던 어떻든지 간에 명백한 사실은 박정희는 <독재자>입니다. 독재의 방식과 폭력의 방식으로 민주주의를 짓밟았고, 민중을 신민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박정희가 좋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것까지 말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공개적으로 ‘찬양’하고자 할 때에는 일방적인 기억만으로는 곤란합니다.

박정희 덕에 무고하게 죽거나 다친 이들은 아직도 많이 있으니까요. 정말로 박정희 동상을 지으면서 찬양하고 싶은면 죽기 직전에 이르도록 고압전류로 손가락이 다 찢겨져 나가던 고통과 내장이 터져 나올 정도로 얻어맞아 그 시신조차 알아볼수 없어 판결 하루만에 사형을 집행하고 곧 바로 화장하여 남편 얼굴도 보지 못하고 떠나 보내야 했던 미망인들의 통곡과 10년이고, 15년이고, 아무 죄없이 옥살이 하면서 피눈물 흘려야 했던 수많은 이들의 기억에 대하여서도 여러분은 답해야 할 것입니다.

 

조영수, 정규명(동백림 사건 사망자), 김종태, 최영도, 김질락, 이문규, 윤상수, 정태욱, 정태상, 박종영(이상 통혁당 조작 사망자), 도예종, 여정남, 김용원, 이수병, 하재완, 서도원, 송산진, 우홍선(이상 인혁당 조작 사망자), 백옥광, 강종헌(간첩조작 사망자)외 조작 간첩 사건 사망자 29명, 최종길, 장준하, 김창수 등 의문사 위원회에 올라있는 82명의 원혼들과 그 가족들의 멍든 가슴에 대해서도 여러분은 답해야 할것입니다.

 

30년 후 우리의 아이들이 독일 땅에 세워져 있는 박정희 동상 앞에서 그를 누구라고 이야기 할 것 같습니까?

경제발전의 역군이라구요? 아닙니다. 경제 발전의 역군은 우리할아버지 할머니 셨다고 이야기 할 것이고, 이 사람은 한국에서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하고 18년간 폭력의 방식으로 내리누른 한국의 독재자 였다고 말할 것입니다.

박정희, 이것은 대한민국의 병입니다. 그리고 병은 치유와 극복의 대상입니다. 무엇으로 치유하고 극복할 수 있습니까? 진리와 자유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이 ‘경제’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는 분들이 아니기를 바랍니다. 인간은 그것 말고도 간직해야 할 것들이 참으로 많은 존재입니다.

….이하 중략….

 

신부님의 글에 대한 무신론자 빨간치마의 의견

아멘!

조영만 신부님 감사합니다. 글을 소개해주신 최정규님 감사합니다.

신부님이 말씀하셨듯이 조국의 번영에 초석을 놓고 독일에서 대한민국의 국격을 세워주신 분들은 바로 파독 광부, 간호사분들입니다. 이 분들의 성실함 덕분에 저처럼 나중에 온 사람들도 독일 사회에서 인정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된 것도 박정희 대통령이 잘해서가 아니라 파독광부, 간호사 분들을 비롯하여 직접 땀 흘린 무명의 산업역군들이 잘해서입니다. 동상을 세워받아도 모자랄 사람들이 왜 엉뚱하게 남의 동상을 세우겠다고 하는지 저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의 동상을 세우겠다는 발상이 위험한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지금 독일 교포들은 한국 공관의 보살핌과 대접을 잘 받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죠? 독일에 한국의 위상을 심고 후배들에게 터전을 마련해주느라고 이제는 머리가 허옇게 센 우리 교포 어르신들에게 나이가 아들뻘 되는 공관직원들이 전화 찍찍해서 이것저것 요구하고, 캐물어보고, 사대강반대 강연회에 참여하지 말아라, 거기 참여했을 때 네가 무슨 말을 했는지 나는 다 안다고 협박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관을 민보다 높이 쳐주는 정서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정서는 우리 교민들이 나서서 바꾸기 전에는 절대로 공관 쪽에서 알아서 바꿔주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데 어떻게 남이 알아서 존중해주기를 바라겠습니까?

백번 양보해서 우리 파독 광부분들께서 박정희 대통령의 동상을 세우겠다고 하시는 발상을 겸손의 미덕이라고 칩시다. 하지만 우리 후배 교민들이 나서서 말려야 합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이 땅에 살아갈 후배인 우리를 봐서라도 그러지 마십시오. 당신들이 박정희 대통령의 동상을 세우면 앞으로도 우리 교민들은 공관에 의해 존중받는 존재가 되기 어렵습니다. 주인공이면서도 하대 받는 악습은 당신의 자식들에게 대물림됩니다. 역사의 공로자는 당신들입니다. 우리가 당신들의 동상을 세우겠습니다. 허락해 주십시오.”

파독 광부, 간호사의 동상을 세운다면 저도 기쁜 마음으로 돈 냅니다.

PS
며칠 후에 열렸던 동상건립 공청회 소식입니다.
http://www.vop.co.kr/A0000041068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