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남 모르는 친구가 하나 있다. 가끔씩 그이가 뭘 하며 지내는지 궁금할 만하면 어김없이 어디선가 소식이 들려오곤 했다.

언젠가 한국에서 누가 내게 제일 가지고 싶은 것이 무엇이냐고 묻길래 신영복의 “엽서”와 김진숙의 “소금꽃나무”라고 대답했더니 소포로 보내줬다.

“엽서”는 너무나 농밀하여 하루에 한 쪽 이상 읽지 못한다. 감옥에서 길고도 먼 시간을 눌러눌러 쓴 글을 한꺼번에 휘리릭 읽는 것은 저자에 대한 예의가 아닌지라. 그러나 “소금꽃나무”는 앉은 자리에서 다 읽었다. 눈물을 뚝뚝 떨구면서. 이런 내용을 읽다가 접어두고 딴짓을 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소금꽃나무란 노동자의 땀에 절은 작업복 등짝에 허옇게 피어나던 소금 자국을 말하는 것이다.

내가 언제 처음으로 김진숙에 대해서 알았는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난 처음부터 그이를 그냥 내 친구려니 여기며 살아왔다. 그냥 우리가 비슷한 연배라는 사실에 난 눈물이 났다. 그이가 “일 주일동안 곱배기 철야를 하고나면 미싱바늘이 지 손가락을 박는 줄도” 모르는 열여덟 살을 보내고 “하루 스무 시간을 넘게 일하고 밤이면 옷을 홀딱 벗긴 채 알몸으로 검신을 당”하는 열아홉을 보내는 동안 나는 시험성적을 고민하고 삶의 의미를 사색하던 여학생이었다.

내가 건축과 실습 과정에서 남학생들 틈에 끼어서 재떨이를 용접하느라 호들갑을 떨고 있을 때 그이는 수십 미터 높이를 자기 몸무게만큼 무거운 작업공구를 들고 아슬아슬하게 사다리를 타거나 또는 유해가스가 자욱히 깔려 발끝이 보이지 않는 탱크 안에서 폭발의 위험을 무릅쓰고 얼굴에 불똥을 뒤집어쓰는 직업 용접공이었고, 그 후 내가 남자 동료들과 경쟁하며 여성의 위상을 지키느라 악착을 떠는 동안 그이는 노동자의 인권을 주장하다가 빨갱이로 몰려 고문도 받고 감옥에도 가고 그랬다.

중학생 시절에는 조카를 “궁뎅이”에 치렁치렁 매달고 등교해서아기를 철봉대에 기저귀기로 묶어놓고 교실에 들어갔다가 노는 시간에는 남이 볼까 부끄러워 차마 나와보지 못하고 공부시간에 화장실에 간다며 살짝 빠져나와 보러 가면, 아기는 온몸에 똥칠을 하고도 그래도 아는 얼굴이 왔다고 모래가 가득 든 입을 벌려 벌쭉벌쭉 웃었다고 한다. 남들이 고등학교에 다닐 나이에 공장에서 툭하면 따귀를 얻어맞고 쌍욕을 들어가며 철야노동을 했던 그이가 만약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면 아마 나보다는 공부를 잘했을 것이다.

사람의 능력은 다 거기서 거길 거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우리 둘의 인생이 처음부터 이렇게 갈리는 것을 팔자소관라고 말하는 사람은 인생을 경박하게 사는 사람이다. 자신의 능력이나 의지와 상관 없이 인생이 이렇게 갈리는 것을 여러가지로 표현할 수 있겠지만, 뭔가 잘못되었다는 뜻, 불의라는 뜻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고등학교 물리 시간에 에너지 보전의 법칙을 배웠을 때, 난 아무 것도 하지 않고도 많이 누릴 수 있게 태어난 사람들과 암만 일을 많이 해도 가지지 못하게 태어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세상의 법칙을 생각했다. 그 법칙은 아주 단순하다. 우리 모두 힘을 합쳐 떡을 한 판 쪘다고 봤을 때, 같은 수고를 하고도 떡을 못 먹은 사람이 있기에 내가 남보다 큰 떡조각을 먹을 수 있는 것 아닌가? 내가 그이의 존재를 알게 되었을 때 난 단지 우리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그이에게 떡을 빚진 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죄의식이라기보다는 연대의식었다. 우정이었다. 우리는 무언가를 주고 받은 사이, 그래서 앞으로도 무언가를 주고 받아야 할 사이.

그이의 생명이 요즘 바람 앞의 등잔불이다. 크레인에 홀로 올라 180일 넘게 버티며 시시각각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다. 마치 내 생명 지키듯 내 힘으로 지켜줘야 하는 생명이다. 그이도 남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걸었으니 그의 생명을 지키는 일은 우리 모두의 숙제다. 몸을 놀려 일하는 사람들도 돈을 굴려 일하는 사람들 못지 않게 사람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치가 지켜지지 않는 세상에선 나도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한다.

이 세상에는 핑계가 통하지 않는다. 나는 사대강사업을 막는 일에 기여하느라 시간이 없다는 핑계는 180일 넘게 크레인에 홀로 올라 시시각각 생명의 위협을 받는 그이를 지키는 일에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이를 살리려면 바쁜 사람, 멀리 있는 사람도 구체적으로 힘을 합쳐야 한다. 그 힘은 우리의 자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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