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년 이맘 때쯤이면 모교인 칼스루에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실측을 지도하는 일을 하러 간다. 학생들과 함께 1주일 동안 어느 경치 좋은 시골 동네에 가서

합숙하며 문화재 건물을 실측하는 실습을 하는데, 올해에는 프랑스 국경지역에 위치한 한 포도주 생산지 마을에 가서 바로크 시대의 교회 건물을 실측했다.

1764년에 육중한 돌로 단단하게 지어진 교회 건물은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포도밭 언덕 위에 서 있었다. 벽에 마치 건물을 둘로 가른 듯 깊은 균열이 생긴 이래 몇년 전부터 사람의 출입을 막고 있어서 폐허의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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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벽이 갈라진 원인은 “지하수 유실로 인한 지반 침하”에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건물을 받치고 있던 땅바닥이 밑으로 꺼지는 바람에 벽에 금이 가고 건물이 붕괴할 위험에 처한 것이다. 지반이 꺼진 이유는 땅속에 있던 지하수가 어느 세월엔가 빠져나가면서 나무 말뚝으로 된 기초도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

옛날에 독일에선 지하수 가까이 질척한 곳에 건물을 지을 때 참나무 말뚝을 박아 기초를 다졌고, 그 위에 주춧돌을 쌓았다. 물 속에선 목재가 부식하지 않기 때문에 나무 말뚝으로 된 기초는 몇백 년이 지나도록 건물을 지탱해줬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든 지하수가 빠져나가 사라져버리면 나무 말뚝이 흙에 직접 닿게되어 썩게 된다. 기초가 썩어서 사라지니 건물이 부분적으로 가라앉으면서 벽이 갈라지고 결국은 붕괴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중세시대에 세워진 뮌헨 최초의 성 “알터 호프(Alter Hof)“를 실측하면서 주춧돌 밑으로 뻥 뚤린 구멍을 본 적이 있다.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곽 둘레를 빙돌아 흐르던 물길을 없앤 이후에 나무 말뚝 기초가 부식되어서 생긴 일이다. 알터 호프의 경우에는 다행히 일찍 발견하여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포도밭 언덕 위에 있는 교회 건물 아래 있던 지하수는 왜 갑자기 사라졌을까? 나는 혹시 그 근방에서 하천공사를 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들었다. 작년 여름에 독일의 하천전문가가 한국의 4대강공사 현장을 조사하고 법정에 보고서를 제출했는데 거기에는 이런 문장이 들어 있었다.

“강물의 수위가 비정상적으로 낮아지면 주변의 토지에서 지하수가 강 양옆 기슭을 통해 강으로 빠져나가는 현상이 일어납니다.”
(낙동강 소송에 제출한 독일 전문가 감정서 보기)

실습이 끝난 후 나는 칼스루에 공대의 수리학과 교수를 찾아갔다. 우리가 실측한 교회 근처에 강이 있는지, 그 강에 하천공사를 한 일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며, 어쩌면 옛날에는 이 고장에 없었던 포도밭이 대거 조성되면서 농업용수의 수요가 늘어 지하수가 고갈되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옛날과 비교했을 때 무엇이 변했는지 검토해 보면 지하수가 변화하는 이유를 알아낼 수 있다고 했다.

건물도 마찬가지다. 멀쩡하던 건물이 갑자기 흔들리거나 붕괴 의심이 들면 처음에 비해서 무엇이 달라졌는지 조사해야 한다. 건물의 용도가 변경되어 하중이 커졌는지(무게가 무거워졌는지), 건물을 수리, 보수하는 와중에 역학적 구조가 변했는지, 최근의 주변 상황 중에서 건물을 받치는 지반에 변화를 일으킬 만한 어떤 일이 생겼는지.

그저께 서울 한강변에 있는 테크노마트 39층 건물이 지진도 없었는데 무려 10분 동안이나 아래위로 흔들려 안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런데 단 하루만에 안전점검을 마친 한국시설안전공단은 문제가 없다며 건물의 정상적인 사용을 허락했다. 건물이 흔들린 원인으로 11층에 있던 4디(D) 상영관과 12층의 휘트니스 센터를 지목했다고 한다.

군대처럼 수많은 인파가 한꺼번에 구령에 맞춰 연속적으로 발을 구르면 다리도 붕괴시킬 수 있는 공진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러나 12층의 휘트니스 센터에서 기계를 사용해서 각자 따로 움직이는 동작으론 건물을 흔들만한 파괴력을 가진 공진현상을 유발할 수 없다. 그날 17명의 손님들이 단체로 발을 구르거나 뛰는 체조를 해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라면, 에어로빅 강습이 열리는 건물은 수시로 그렇게 흔들린다는 말일까? 차라리 11층에 있는 4디(D) 상영관에서 많은 인파가 무거운 의자에 줄지어 앉아서 같은 순간 같은 방향으로 격렬하게 움직인다면 그런 공진현상이 올 수도 있겠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마침 그 시간에 영화가 상영되지 않았다니 누구 말이 맞는지 대체 종잡을 수 없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문제의 11층과 12층의 상황을 재연해보면 된다. 그래서 비슷한 공진현상이 다시 일어나고, 그 정도의 공진현상은 건물의 안전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면 누구나 다 안심하고 그 건물을 다시 드나들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건물이 흔들린 원인을 계속해서 찾아봐야 할 것이다. 아래위로 흔들리는 진동의 성격으로 미루어 대부분의 건축과 교수들은 원론적으로 지반 침하와 기초구조의 파손을 의심하고 있다고 들었다. 만약 지반 침하 쪽으로 무게가 실린다면 그 원인이 건물 내부에 있는 건지(예, 용도 변경에 의한 하중 증가) 아니면 건물 외부에 있는 건지(예, 주변 환경의 변화) 검사해야 한다.

권기혁 서울시립대 건축공학과 교수가 가능성을 타진했듯이 “폭우로 (강변) 뻘 지형에 물이 유입되어 지반에 문제가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그 지역 지하수위에 영향을 끼칠 만한 어떤 공사(예, 하천공사나 지하철 공사)가 근처에서 일어났는지 차근차근 조사해 봐야 한다.

왜냐면 지반에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이라면 테크노마트 건물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 주변에 빼곡하게 지어진 수많은 아파트에 사는 많은 인명과 그들의 소중한 재산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참고기사:
7월6일자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