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무기는 쪽수
베를린리포트에서 토론하며 제가 쓴 글을 옮깁니다.
사고 위험이 높고 노동강도가 센 일을 하는데 저 정도 준다면 양아치라는 말씀이 딱 맞습니다.
외국인 이민자들을 불러들여 자국민보다 싼 값에 쓰겠다는 발상이 망국의 시초라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은 그로 인해 기업경쟁력이 높아지고 국민소득이 높아지는 줄 알고 있다가 발등 찍히는 거지요. 그게 결국 자국민의 임금을 서서히, 전반적으로 하향평준화시키는 것도 모르고… 극소수의 부자가 대다수의 빈자 위에 군림하는 체계가 형성되는 거지요. 세계를 무대삼아 자국민 외국인 할 것 없이 광범위한 노예계급을 형성하는 신자유경제의 신분사회가 이미 열리고 있습니다.
저를 비롯하여 이 글을 읽으시는 거의 모든 분들이 아마 중간층에 속해 있을 텐데요, 모든 것은 중간층의 각성에 달렸습니다. 중간층 사람들이 “나만 열심히 노력하면 행여 1%의 지배층에 속하게 되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지는 겁니다. 중간층 사람들이 이미 우리는 노예계급으로 전락하고 있는 중이란 걸 깨달아야 합니다. 이미 이 세상은 개인의 노력으로 신분상승이 어렵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막연히 위만 쳐다보고 서로 경쟁할 게 아니라 내 옆에 있는 사람들, 내 밑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손잡아야 합니다. 그들이 억울하게 수탈을 당했을 때 개인 탓을 하지 말고 현실이 지금 그렇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내 운명과 그들의 운명이 한통속으로 묶여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설령 내가 1%의 지배층에 속하게 되더라도 다수의 불행한 사람들 옆에서 나 혼자서는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양심이 찔려서 심적으로 불행한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나의 안위가 불안하게 되는 겁니다.
지금부터 정신 똑바로 차려야한다는 말씀에 밑줄 쫘악 긋습니다.
우리는 실천해야 합니다. 각자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루에 1분을 투자하더라도 뭔가를 꼭 해야 합니다. 저는 암만 바빠도 매일 김진숙과 김여진의 트위터를 들여다보며 한진중공업에서 고공농성하는 김진숙을 강제진압하려는지 감시합니다.
김진숙 트위터 (누구나 컴퓨터로 볼 수 있음) http://twitter.com/#!/jinsuk_85
김여진 트위터 (누구나 컴퓨터로 볼 수 있음) http://twitter.com/#!/yohjini
그 제는 김진숙이 있는 크레인을 바다 쪽으로 끌고가려는 준비를 한다고 하는 다급한 트윗을 읽었습니다. 저는 당장 거기 나와 있는 전화번호를 돌려서 한진중공업에 항의했습니다. 처음엔 독일에서 걱정이 되어서 전화한다고 점잖게 말하려고 하는데 거기서 이름을 대라고 고압적으로 나오길래 네 이름이나 대라고 악쓰며 싸웠습니다. 너는 사람이 죽는데 걱정도 되지 않느냐고 소리를 지르다가 생각해보니 그 사람도 말단직원일 텐데, 우리 둘 다 불쌍한 국민들끼리 무슨 짓을 하나 싶어서 사과하고, 김진숙을 잘 부탁한다고 하며 끊었습니다.
그리고 부산 영도 경찰서에 전화해서 이번에는 친절하면서도 느믈느믈한 경찰관이랑 입씨름을 했습니다. 지금 아무 일도 없는데 독일에서 무슨 사연으로 국제전화까지 하느냐길래 독일 뿐이냐, 미국, 호주, 아프리카, 중동에서도 지금 걱정하며 주시하고 있다고 으름짱을 놨습니다. 제발 부탁이니 회사에서 김진숙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하게 꼭 감시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지요.
그런데 그날 저녁에 신문에서 정말 강제진압을 시도하다 말았다는 소식을 듣고 기운이 다 빠져버렸습니다. 아까 전화할 때 그 노무 쉐이들에게 속았잖아….
그런데 이튿날은 제가 너무 가슴이 떨려서 신문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럴 수록 정신 바짝 차리고 악착같이 달려들어야 하는데… 권력을 쥔 쪽에서는 싸우기 쉽습니다. 부들부들 떨며 흥분하다가 이렇게 제풀에 나가떨어지는, 나같은 사람들 상대로 식은 죽 먹기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의 무기는 쪽수입니다. 주인의식을 가지는 사람의 숫자에 승패가 달렸습니다. (저는 지금 누구를 적으로 만들어서 싸우자는 게 아니라 공생할 수 있는 길을 같이 찾자는 거지요. 승리라면 우리 모두의 승리이고 패배라면 우리 모두의 패배입니다.)
저는 한국과 한국 국민에 대하여 매우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편입니다. 그런데 요즘 제가 한국의 미래를 생각할 때 드는 절망감은 전두환 정권 때랑 막상막하입니다.
자꾸 외부세력이라고 그러지 마십시오. 노동문제는 ‘‘우리의 일'‘입니다.
노동자와 기업이 싸우는데 어떻게 노동자들 보고 니네가 알아서 혼자 해결하라고 합니까? 그게 가능합니까? 최고학력을 가진 일류 변호사들이 운영하는 기업 법무팀을 고등교육 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어떻게 상대합니까? 솜털 보송보송할 나이 21세로 분신한 전태일은 일기에 이런 말을 썼습니다. 대학생 친구를 하나 가지는 게 소원이라고…. 어려운 노동법에 대해서 설명해줄 수 있는…. 이것이 그때 대학생이었던 사람들, 그 이후로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전태일의 친구가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다른 곳도 아닌 아프리카에서 백인들이 주인이 되어 흑인들을 차별하던 남아공을 기억하시나요? 흑인인 넬슨 만델라 혼자서 막강한 기득권층을 상대로 인종차별법을 종식시킬 수 있었을까요? 그 안에서 자신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하던 흑인들이 있었다면, 밖에서 그 호소를 듣고 연대한 외부세력이 있습니다. 외부세력이란 대부분 백인인 유럽의 주민들입니다. 그들이 대대적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남아공 농산품 불매운동'‘을 벌이지 않았다면 남아공에선 아직도 전근대적이고 천인공노할 인종차별법이 존재할 겁니다.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보이는 일에도 관심을 보이고 참견하는 것은 마음이 착해서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머리가 좋아서 그렇기도 합니다. 노동자의 인권이 무너지면 언젠가 나의 인권도 무너질 수 있다는 걸 파악해서 그런 겁니다. 먼 아프리카 대륙의 인종차별을 묵인하는 사람은 언젠가 유럽땅에서 인종차별이 일어날 때 남의 도움과 연대를 기대하지 못할 것이란 걸 알아서 그런 겁니다.
어떻게 더도 아니고 제 권리 주장하며 사람답게 살겠다고 도와달라는 호소를 무시하라는 말이 나옵니까? 학생들이 노동자들을 돕지 않으면 나중에 학생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누가 도와줍니까? 정치적인 선동이라뇨? 육이오 전쟁 났을 때 미국이 도와준 건 고맙고 우리끼리 서로 돕는 건 오버입니까?
희망버스를 타는 국민들은 지금 김진숙 씨의호소를 들어주고 있는 겁니다. 김진숙으로 대표되는 한국 노동계의 참현실이요. 한국 노동계에선 벌써 40년전부터 어린 노동자들이 목숨을 바쳐가며 국민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여태까지 먹고 사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묵살하던 국민들이 그 호소를 이제야 들어주는 겁니다.
한국의 대학생들이 등록금이 비싸다고 호소할 때도 국민들은 희망버스를 타고 와서 연대할 겁니다. 대학생 아닌 사람들이 그 시위에 몇 명이나 동참하는지 쪼잔스럽게 숫자 세어보고 외부세력 운운하며 폄훼하지 않습니다. 대학 문턱에도 못가는 노동자에 비하면 너희 대학생들의 요구는 호사스런 응석이라고 욕하는 사람 있으면 저는 혼신을 다하여 설득할 것입니다. 노동자의 자식들도 대학에 갈 수 있어야 한다고요. 대학 등록금의 현실이 국민 모두의 일이듯이 노동자의 인권도 국민 모두의 일입니다.
같은 배를 탄 사람들끼리 노조니 노동자니 가르고 쪼개서 분열하고 이간질하지 맙시다. 그리고 노조 얘기를 하시는데, 한국의 금속노조가 속해있는 국제금속노련(100개국 200여개 주요 금속노동조합 가입, 전세계 총 2천5백만 조합원)에서 한국 기업의 노동자 탄압을 ‘‘5대 시급과제'‘로 정해놓고 세계인들의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혹시 아시나요?
http://www.imfmetal.org/index.cfm?c=27008&l=2 (국제금속노련 홈페이지에 실린,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내는 항의 메일 양식. 한진중공업과 유성기업의 노동자 탄압을 중단하라는 내용이며 많은 세계시민의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한국의 열악한 노동인권은 세계에서도 소문났습니다. OECD 국가 중에서 꼴찌 수준입니다(30개국 중 28위). 이게 어떻게 남의 일입니까? 해고 노동자들 몇 명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