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녀의 바가지와 불친절한 스님
지난 번에 오래간만에 글을 올리며 앞으로는 좀 허술한 글이라도 자주 들고 들어오겠다고 약속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정말 재활환자가 걸음마 연습을 하듯이 치열하게 글을 썼다.
한줄 쓰고 한줄 지우고. 하루종일 두 문장 썼다가 단어 하나 남기고 또 다 지우고. 그렇게 생각을 쥐어짜면서 어렵게 쓰는 글이 결국 가장 논리정연하고 쉽게 잘 읽히는 글이 된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알지 못했으면 난 한국말로 글쓰기를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난 그간 한국말로 글이 잘 써지지 않는 이유가 내가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짐작했다. 한국에서 쉴새없이 터지는 부정부패와 비리 사건을 대하며 나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 날카롭고 논리정연하게 비판해야 할 강박증을 키웠는데, 글을 잘 써야 한다는 그 강박증이 도리어 나를 무기력해지게 만들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래서 앞으로는 글의 완성도가 떨어져도 좋으니 일기처럼 쉽게 글을 쓰자고 혼자 다짐했던 것이다. 세상에는 적을 효과적으로 공격해서 약하게 만드는 글만 필요한 게 아니라 나와 같이 상처받은 사람들에게 나도 아프노라고 고백함으로써 서로 위로하고 마음을 치료하여 우리편을 강하게 만드는 글도 소중한 것이란 걸 깨달았다.
그런데 지난 며칠, 그렇게 머리를 쥐어짜며 글을 쓰는 동안 내가 글을 쓰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선명해졌다. 글을 쓰지 못하게 내 발목을 잡고 있었던 것은 나의 독일 생활이었다. 그간 나는 보육교사라는 새로운 세계에 발을 들여 그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던 것이다. 유치원 선생이란 직업이 특별히 근사해서라기보다는 그것이 나에게 새로운 세계라는 점 또한 한몫하는 것도 사실이다. 새로운 세계가 궁금하고 거기에 적응하여 잘 살아남기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다 바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그 새로운 세계가 독일이고, 그 대상이 독일인들이다 보니 나의 사고체계는 슬슬 독일어를 통해 돌아가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나는 이 직업을 아직 배우는 도중이라 책과 인터넷을 통해 많은 간접경험을 쌓아야 한다. 그렇게 얻은 지식과 생각을 생각을 정리하여 리포트나 논문을 써야 하는데, 이 모든 사고와 정리의 과정이 독일어를 통해서 일어나게 된 것이다. 한동안 그렇게 살다가 다시 한국어로 글을 쓰자니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일단 언어감각을 다루는 사고체제가 달라져서 한국어 문장 하나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문제는 다시 한독사전을 찾아가며 한국어로 글을 쓰며 걸음마 연습을 하는 내 마음이 꽤나 불안한 것이다. 왜? 조금 있으면 크리스마스 휴가가 끝나고 나는 다시 유치원에 복귀해야 하는데, 그리고 양이 꽤 되는 졸업 논문을 독일어로 써야 되는데 나의 언어체계가 다시 한국어로 돌아가면 난 어떡하라고?
고민이 있을 때마다 내가 쪼르르 여쭙는 내 마음속의 법륜 스님이 대답을 툭 던지신다.
“너 욕심쟁이다? 어떻게 둘 다 잘 하려고 그러니? 어떻게 니가 갖고 싶은 거 다 차지하며 사냐고?"
“아, 욕심! 예, 알겠습니다. 그럼 저는 앞으로 어떤 세계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요?"
“동전 던져서 아무거나 선택하셔.”
마음속의 스님께 여쭐 때마다 나는 ‘‘아유, 스님 불친절하시긴? 만고에 도움 안 되시네.‘‘하고 불평하지만 내 마음은 금방 편해진다. 해결책을 찾아서가 아니라 해결할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아서다.
내가 독일 생활 잘하기를 포기하고 한국말로 글을 잘 써서 성공해도 잘 사는 인생이고, 내가 한국말을 다시 까맣게 잊어버리고 유치원에서 보람을 찾으며 나의 가족, 친구들과 유창한 독일어로 대화하며 활기차게 살아도 잘 사는 인생일 게다. 또한 내가 두 세계 중에서 하나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그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둘 다 좀 미숙하게 사는 것도 괜찮은 인생이다. 내가 정확하게 알고 판단한 것은 아니지만 은연중에 선택한 것은 아마도 이 세 번째 인생일 게다. 어쩌면 선택이란 말도 틀린 말일지도 모른다. 그냥 그 길이 내게 주어졌고 난 그 길을 걸어가는 것 뿐일지도 모른다.
한국에서 내 글을 기대하는 사람들은 나의 더딘 발전이 답답할 것이다. 또한, 나의 가족을 비롯하여 보육교사 코스의 학우들은 내가 한국사회를 상대로 글 쓰는 일에 발목 잡혀서 새로운 공부에 전념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나도 좀 억울하긴 하다. 글을 열심히 썼으면 그 사이에 책을 몇 권은 더 냈을 텐데… 보육교사 시험공부를 열심히 했으면 누구나 다 놀라는 성적을 냈을 텐데… 그런데 내 마음속의 법륜 스님 말씀의 의하면 그런 억울한 마음이야말로 도둑놈 심뽀가 아닐 수 없다. 어떻게 둘 다 가지려고 하냐고? 어떻게 세상 일이 내가 원하는 것로 다 이루어지기를 바라느냐고?
문득 이 대목에서 나무꾼과 선녀 생각이 났다. 나무꾼 마누라 선녀가 하늘에 아주 올라가지도 못하고 땅에 제대로 정착하지도 못한 채 공중에 붕붕 떠서 돌아다니며 오만 데 때만 데 다 참견하느라 바쁜 모습이 상상되어 나 혼자서 히죽 웃고 있다. 그 선녀는 땅 위의 일을 참견하느라고 바빠서 하늘나라에서 선녀대장으로 출세하지 못했다고 괜히 옥황상제께 눈을 흘기기도 하고, 땅 위에선 재태크를 열심히 못해서 아직 내 집 장만도 못했다고 애매한 사냥꾼에게 바가지를 긁기도 한다. 하하하 재밌어라.
한국어로 대단하게 각광받는 글을 못 써도, 한국에서 책을 많이 안 내도, 독일 생활을 착실히 하는 나의 경험이 녹아 있는 나의 어눌한 글도 쓸모 있는 데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성공신화를 만들어내지 못해서 눈에 안 뜨일 뿐이지. 또한, 내게 새로 막이 열리는 보육교사의 무대에 현란한 성적으로 화려하게 데뷰하지 못해도, 한국 사회와 끈질기게 소통하는 나의 이중문화성은 나의 유치원 일상을 분명히 윤택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런 능력은 눈에 보이지 않아서 직접적인 이익으로 이어지지 않을 뿐이지. 눈에 보이는 성공만 성공이 아니라는 걸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이미 증명해 보이고 있지 않은가?
지난 일주일 동안 나는 이렇게 고민하며 힘들게 글 두 편을 써서 ‘‘풍경'‘에 송고했다. ‘‘풍경'‘은 독일에서 발행되는 한글 월간문화신문이다. 나는 매달 적어도 글 한 편씩은 풍경에 기고하기로 했다. 인터넷을 하지 않는 독자들도 그런 식으로 내 발로 찾아가 뵙는 것이 내 글을 기꺼이 읽어주시는 분들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새해에는 풍경에 약속한 대로 적어도 열두 번은 정성 들여 글을 쓰게될 것이다. 풍경에 기고한 글은 신문 배송이 끝난 후에 내 블로그에 올릴 예정이다. 그 중간중간에는 쉽고 가볍게 글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겠다는 야무진 염원을 세워본다. 물론 가끔은 사대강사업 관련하여 쓰기도 어렵고 읽기도 어려운 글을 쓸 것이다.
기나긴 침묵기간에도 변함없이 나를 믿고 응원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새해 복 많이 받으셔서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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