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블로그를 아직도 꾸준하게 찾아주시는 분들께.

정말 오래간만이지요? 걱정 많이 하셨지요?

그간 모르는 독자들에게서 여러가지 메일을 받았어요. 요즘 왜 이렇게 침묵하고 있느냐, 어디 아픈 건 아니냐, 협박을 받고 있느냐, 아니면 회유에 의해 저쪽으로 넘어갔느냐? (전 이 대목에서 배꼽을 잡고 웃었습니다.)

한 독자분의 메일을 소개할게요.

한 달이 지나도록 새 글이 올라오지 않아서 걱정이 됩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고 기운을 내고, 희망버스 성금도 내고, 토디의 소금꽃 불도 성원하고… 시댁살이도 편해졌는데, 선생님의 소식이 몹시 궁금합니다. 우리에게 실망하셔서 지치셨나요?

그늘에서 꽥 소리도 못내지만 선생님의 글에 머리에 번개가 치고, 이렇게 살아서는 정말 안되겠구나 싶어 나만이라도 변해보자 하고 하루하루를 성실히 보내려 노력하고 있어요.

선생님, 이젠 선생님은 선생님 개인이 아니세요. 건재하시다고, 잘 살고 있노라는 소식 한번 주세요. 늘 건강하시고 선생님 가족의 행운을 빕니다.

위의 메일을 받고나서도 한참 있다가 제가 아래와 같이 답장을 썼습니다.

안녕하세요. 고마운 메일을 받고 금방 좋은 글을 하나 써서 보답해야지 하고 벼르고만 있다가 결국 이렇게 메일로 답장을 드리게 되었네요. 님의 메일 받고 제가 많은 기운을 얻었습니다.

4대강사업 일로 남모르게 바쁜 일도 많았지만 유치원 선생님 되는 일이 많은 에너지를 요하는 일이라 시간을 많이 내지 못하고 있어요. 게다가 하도 어이없는 일이 쉴 새 없이 일어나는 한국 정세를 보면서 열통이 터져서 “이걸 어떻게 글로 복수를 하나”하며 칼을 가느라고 쉽고 편안한 글을 쓸 엄두를 못 낸 탓도 있습니다.

그러나 님의 메일을 보고 제가 많은 분들과 서로 위로하고 위로받는 사이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잘 써서 상대방에게 어떻게든 타격을 주려는 글을 쓸 생각보다는 우리끼리 용기를 북돋고 격려하고 위로하는 편안한 글을 써볼 궁리를 해야겠습니다.

기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제 마음에 크나큰 위로를 주셨습니다.


제가 위의 답장에 쓴 바과 같이 전 그간 많이 바빴어요. 보육교사 국가자격증 마지막 과정을 하고 있거든요. 즉 유치원에 취직해서 보통 보육교사처럼 일하면서 가끔 실기시험도 치르고 논문도 써내고 그러는 과정이어요. 일하는 과정 전체가 시험인 셈이라서 무척 고되요. 뜨아, 게다가 꼬마녀석들이 이쁘기는 한데 제가 어찌나 꼬마들 따라서 잔병치레를 많이 하는지. 노구께서 가로늦게 면역성을 기르느라 고생이십니다요.

한국의 4대강사업은 또 어땠게요. 한국에선 거창하게 준공식까지 마쳤지만 그렇다고 해서 뭐 하나 제대로 작동하는 게 없습니다. 보 여기저기서 물이 새고 근처 농지가 물에 잠기고, 서울에선 수돗물에서 악취가 난다고 하고, 정말이지 미래가 암울합니다. 독일 전문가들이 진작에 경고했던 일들이 강물을 막자마자 현실로 나타나는 모습을 보며 저는 많이 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와 번역연대 회원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간 일이 많았어요. 일일이 열거할 수도 없을 만큼. 독일의 하천 전문가들과 접촉을 하면 할수록 한국의 4대강사업이 얼마나 큰 재앙인지 확신이 깊어지는 고로 저희는 더욱 노력할 수밖에 없어요. 다행히 번역연대 회원들이 이제는 제가 했던 일의 몇배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전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글로 차분하게 표현할 수가 없어요. 요즘의 한국 정세를 보면 정신 제대로 박힌 국민으로서 할 말이 많은 게 당연한 일이겠지요.

저는 분노하고 있습니다. 상대의 심장을 겨누는 날카로운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이 가슴 깊은 곳에서 치고 올라와 도리어 제 숨통을 막습니다.

글을 잘 쓰자는 생각을 버려야겠습니다. 제가 위의 답장에서 썼듯이 상대방에게 타격을 줄 수 있도록 날카롭게 벼려진 글을 쓸 생각을 접고, 우리끼리 격려하고 위로하는 수더분한 글을 쓸 마음을 먹어봅니다. 그래야 제 숨통이 트이고 제가 다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오래 누워 있던 재활 환자가 걸음마 연습을 하는 기분으로 겸손하게 글을 쓰려고 합니다. 작은 보폭으로 한 발자국씩. 나의 소소한 일상을, 거대한 사건을 대하는 나 개인의 좁은 시각을, 일기처럼 수수한 문체로 솔직하게 털어놓겠습니다. 그 대신 자주 뵈올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