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이맘때, 나는 본업인 건축을 접고 유치원 선생님이 될 거라고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다. 경쟁율이 치열한 사회교육대학 보육교사 속성코스에 원서를 내놓고 행여 떨어질새라 가슴 조이던 때가 바로 엊그게 같은데 어느새 이론 과정을 다 끝마쳤다.

지난 해 나는 낮에는 유치원이나 초등학생 방과 후 시설 호르트(Hort)에서 실습을 하고 저녁에는 학교에 가서 이론수업을 받았다. 나는 그 이론수업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모른다. 밤에는 한국의 4대강사업을 고발하는 글을 쓰고, 낮에는 하루종일 아이들을 상대로 일하느라고 몸이 피곤했지만 수업만 시작되면 눈이 반짝 떠지고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나는 수업시간에 손도 잘 들고 발표도 열심히 했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게 늘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막상 국가고시가 닥치자 나는 시험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작년 봄에 한국의 4대강사업은 마치 누구에게 쫓기기라도 하듯이 급하게 진행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속속 드러나는 시한폭탄을 경고하는 독일의 하천전문가를 한국에 소개하고 한국식 하천공사의 실패를 미리 겪은 독일의 공문서를 찾아서 번역하는 일에 매달리느라고 나는 밤잠을 설쳤다.

시험준비를 철저하게 하지 못한 나는 한국에서 학창시절에 갈고 닦은 당일치기, 분치기, 초치기 실력을 발휘해서 비장하게 국가고시를 치렀다. 그런 주제에 내가 좋아하는 수학·과학 시험에서는 내가 지금 시험보는 중이란 사실을 깜빡 잊어먹는 일까지 생겼다. 내용이 너무 재밌어서 첫 번째 문제를 신나게 답하느라고 시간을 다 보내고나니 두 번째 문제를 답할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급하게 휘갈겨서 요점이 되는 단어만 나열해놓고는 “1번에서 쓴 방법을 동일하게 적용함” “3페이지를 보시오” 등등 불친절한 대답을 써놓고 제출했다. 그러면서 “반은 맞았는데 설마 떨어지기야 하겠어? 이 나이에 성적이 대수냐?“하고 대범하게 생각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기분 좋게 집에 와서 남편에게 웃으면서 그 얘기를 했더니 같이 웃을 줄 알았던 남자가 뜻밖에도 눈을 세모로 뜨고 나를 막 야단치는 것이 아닌가? “제일 자신 있는 과목을 망치면 어떡해? 공학박사가 유치원 수학·과학에서 낙제점수 받으면 어떡하냐?” 어머나, 그런가? 남편의 말을 듣고 보니 그도 그럴 듯해서 나는 살짝 기가 죽었다.

구원은 엉뚱한 곳에서 왔다. 나와 함께 속성코스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대부분 실업학교만 나와서 보육시설의 보조교사로 잔뼈가 굵은 사람들로서 책상에 앉아서 하는 공부에는 약했지만 실기 경력이 단단했다. 그런데 가방끈만 길었지 실제 경험이 별로 없는 내가 음악, 미술, 체육, 현장실습의 실기시험에서 최고 점수를 받는 이변이 일어났고, 그 결과 이론에서 망친 점수를 만회했던 것이다.

게다가 평균을 낼 때 소숫점 두자리 아랫자리에서 턱걸이를 해서 괜찮은 최종점수가 성적표에 찍히는 운까지 따랐다. 나 공부 잘 하라고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하며 가슴 조이던 남편이 나를 구박했다.
“으이구, 나는 우리 딸이 누구를 닮아서 저렇게 날나리인가 궁금했는데 이제 봤더니 바로 당신을 닮은 거였어.”
“호호호, 그치, 그치? 내가 당신 딸이었으면 당신 걱정 많이 했겠지? 내가 당신 딸이 아니라 부인인 게 다행이지?”

우여곡절 끝에 국가고시를 무사히 치르고 나는 이제 유치원에 취직해서 마지막 과정인 직장실습 기간을 보내는 중이다. 1년 동안 보통 보육교사처럼 일하면서 2주일에 한번씩 학교에 가서 수업 받고, 리포트와 논문을 제출하고, 학교선생이 보육시설을 방문하여 현장에서 실기시험을 치르는 과정이다. 유치원에서 일하는 그 자체가 공부고 시험인 셈이어서 매일매일 신경 써서 준비해야 한다.

한 달 전에 나는 밤을 새워서 리포트를 하나 제출했다. 그 서문을 소개한다.

보육교사는 내가 오십 중반에 들어서 선택한 “소망의 직업”이다. 그런 결정을 내리는 데는 보육교사란 직업이 고도의 능력을 요하는 영예로운 일자리라는 사실도 작용했지만, 무엇보다도 결정적이었던 점은 아이들과 노는 일이 내게 많은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라는 확신과 어린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이 내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주리라는 기대감이었다.

나는 보육교사란 하나의 직업이라기보다 삶의 모습 그 자체여야 한다고 믿는다. 직업상 어린 아이들을 다루거나 가르치는 사람은 모름지기 진정성(진실성/솔직성, Echtheit)을 갖춰야 한다. 내가 아이들에게 어떤 가치관을 심어주고자 한다면 나부터 인생관을 걸고 진정으로 그 길을 추구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용기 있는 행동을 가르치고 싶은 나는 나 자신의 소심성과 비겁함을 먼저 극복해야 한다. 또한 폭력적인 목소리로 아이들에게 평화를 설파할 수 없다. 나 스스로 불안과 초조에 쫓겨서는 아이들에게 느긋한 자신감을 물려줄 수 없다. 물론 이때 나는 안 그러면서도 그런 척하고 연극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난 연극을 하려고 직업을 바꾼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의 평정을 위하여 꼭 필요한 덕목이기도 한 이 진성성을 나는 보육교사로서 내 교육 방침의 기본으로 삼기로 했다. 교육심리학자 타우쉬(Tausch & Tausch) 부부에 따르면 “대화적인 교육”과 “민주적 교육양식”의 바탕이 되고 또한 교사와 학생 사이에서 “긍정적인 감성적 관계”의 형성에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교사의 진정성이다. 교사의 진정성은 어린이가 모방하는 “긍정적인 모델”이 요구되는 모든 분야, 예를 들면 반두라(Bandura)의 사회학습이론, 어린이의 사회성 발달과 양심을 형성하는 인성교육 등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진정성은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이다. 그래서 나는 진정성 없이는 성공할 수 없는 두 가지 구체적인 사안을 관찰하는 것으로 진정성의 점검을 대신하기로 했다. 나와 아이들 사이에 “긍정적인 감성적 관계”가 성공적으로 형성되고 있는지, 그리고 내가 “긍정적인 모델”이 되어 아이들의 자발심을 성공적으로 유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이 두 가지 사안에서 나의 발전을 분석하는 일은 내가 나의 보육방침의 기본으로 삼은 진정성을 검토하는 일이 되겠다.

나는 이 보고서에서 내가 유치원에서 실험하고 관찰한 경험을 소개하고, 그것을 “보육 방침으로서의 진성성과 모델성”에 비추어 분석하고 평가해보기로 한다.

위 보고서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진정성의 확립은 이제 내 인생의 숙제가 되었다. 직장에서 뿐 아니라 인생 전반에서 이뤄야 하는 숙제인 것이다. 그래서 올해 나의 새해 소원은 “진정성 있는 행동”이 되겠다.

그러나 나처럼 한국에서 자라서 교육 받은 사람에게 진정성 있는 행동이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전체적 분위기와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도록 훈련 받은 사람이 그때그때 자기 자신의 내면을 먼저 들여다보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솔직하고 담담하게 표현하는 일이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도록 어려운 일이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순간적으로 알아채고, 그것을 이기적인 욕심과 구별하여 떳떳하게 표현하는 일은 엄청난 자신감과 자기애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또한 나 뿐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건강한 자신감과 자기애에 근거한 진정성의 능력이 있음을 믿어줘야만 가능한 일이다. 나를 비롯한 모든 사물에 대한 끊임 없는 성찰과 그 모든 대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요구된다. 법륜 스님이 스스로의 생활태도를 진단하신 “밥하면서도 늘 연구하는 태도”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나는 새해에는 진정성을 가지고 좀 더 솔직하고 용기 있는 글을 쓰겠다고 다짐한다. 삽시간에 표현의 자유 탄압국으로 전락한 이명박 정부의 협박에 지레 겁먹지 않겠다. 대한민국에만 존재하는, 사람 가려가며 적용되는 이상한 법에 저촉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 대로 글을 쓰겠다. 독일에서까지 민간인 사찰을 당하면서도 행여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다칠 새라 덮어주고 넘어가는 바보짓을 앞으로는 하지 않겠다. 90% 옳다고 생각되는 단체나 인물이 있다면 10% 모자란다고 망설이지 않고 화끈하게 밀어주겠다. 마치 내가 세상을 다 품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증을 벗어버리겠다. 완벽하게 일하고 싶은 결벽증과 지적허영심을 극복하고 가볍고 화끈하게 행동하겠다. 쫄지마 씨바. 문제는 진정성이야!


(이 글의 축약본이 풍경 1월호에 실렸습니다. “풍경”은 독일에서 발행되는 한글 월간문화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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