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성과 건축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 우뚝 서서 천년 넘게 건재하는 서양 건축과 규모가 작고 수명이 짧은 동양건축을 비교하며 이를 민족성과 결부시키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러나 건축은 재료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으며 발전한다. 나무가 흔한 지방에선 목조건물이, 암석이 흔한 지방에선 석조건물이 지어졌다. 건물의 규모와 수명은 거기에 따르는 현상일 뿐이다.

같은 서양문화권이라도 암석을 구하기 어려운 지방에선 벽돌로 대신했는데, 그 또한 건축 양식에 영향을 미쳤다. 같은 고딕식 건물이지만 쾰른 성당의 탑은 커다란 암석을 다듬어 뾰족하게 하늘로 치솟았고, 벽돌 건물인 뮌헨 마리아 성당의 탑은 벽돌을 그렇게 높고 좁게 쌓아 올릴 수 없는 탓에 동그란 양파 모양의 지붕을 만들어 붙였다.

건축자재의 발달사 역시 건물의 구조에 영향을 미쳤다. 서양의 옛가옥은 단칸, 단층집으로서 집 한가운데 모닥불을 피워 요리를 하고 난방을 했다. 그러다가 불에 닿아도 타지 않고 녹지 않는 재질의 굴뚝이 개발되면서 건물의 층을 올릴 수 있게 되었고 그때까지는 단층이었던 서양 가옥이 고층건물로 변하는 계기가 되었다.

같은 재료라도 그를 다루는 방법이 새로이 개발되면 그에 따라 건축도 변화한다. 그 대표적인 예가 ‘‘목재'‘다. 서양에선 산업혁명 이후로 철재, 콘크리트 등의 새로운 건축자재가 속속 개발되었고, 그 결과 이전에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던 새로운 건축 양식들이 화려하게 등장했다. 인류 최초의 건축자재였던 나무는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골동품 정도로 취급받았다. 그러다가 20세기 말렵부터 나무가 첨단의 건축자재로서 화려한 부활을 시도하고 있는데, 그 이유와 과정을 한눈에 보여주는 전시회가 뮌헨의 현대미술관 (Pinakothek der Moderne)에서 열리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방만하게 엉킨 나무 뿌리가 눈앞을 가로막는다. 거기 붙은 통나무는 얼마나 굵고 길고 곧은지… 건축자재로서 나무의 역량이 한눈에 느껴진다.

Holzarchitektur\_pinakothek1 (c) Stephan Paul Stümer, Pinakothek der Moderne

건축 전시회답게 그 너머로 늘어선 정교한 모형들을 보면, 그간 지녔던 목재건축의 선입견이 한순간에 날아감을 느낄 수 있다. ‘‘나무로 지은 건물'‘이라고 하면 어딘지 인간의 크기와 정서에 가까운 건물이 떠오는 것이 보통인데, 전시된 모형들이 보여주는 독특하고 다양한 형태의 건축은 나무의 특성을 이용하는 새로운 공법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시사한다. (사례를 소개하는 코너에는 한국의 여주 골프장 클럽하우스도 포함되어 있으나 무슨 사연인지 모형이 빠졌다.)

Holzarchitektur2 일본 Odate Jukai Dome Park 모형 (c) 임혜지

Holzarchitektur3 독일 하노버 엑스포 지붕 모형 (c) 임혜지

이런 변화의 일등공신은 뭐니뭐니해도 건축 작업의 전산화다. 전통적으로 수작업으로 이루어지던 설계, 제도, 건설의 공정은 지난 20여년 동안 컴퓨터를 이용한 자동화로 대체되었다. 건축가가 사람의 손으로 계산하고 그릴 수 있는 구조로만 설계하고, 단순노동자인 건설노동자의 습성까지 감안하는 보수적인 공법을 선택하던 건축 작업은 이제 옛말이 되었다. 이제 건축가는 컴퓨터를 이용하여 매우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를 설계할 수 있고, 그 데이타는 공장의 컴퓨터에 입력되어 바로 제작으로 이어진다. 이런 방법에서는 유연한 나무의 특성이 다른 건축자재에 비해서 유리하다.

Holzarchitektur1 뮌헨공대 건축과 학생들의 작품. 컴퓨터를 이용하여 570개의 제각각 다른 형태의 나무판을 조합하여 만들었다. 설계부터 제작, 시공까지 전부 자동화했다. (c) 임혜지\

설계에서 제작까지 컴퓨터로 처리하는 첨단공법의 특징은 조립식이라는 데 있다. 소음과 먼지 등 건설로 인한 방해를 최대로 줄이고 짧은 시간에 지을 수 있어서 인구밀도 높은 도심에서 건물을 짓거나 증축할 때 최적이다. 뿐만 아니라 알프스 꼭대기처럼 접근이 불편한 곳에 건물을 지을 때도 편리한 공법이다.

Holzarchitektur\_pinakothek2 Neue Monte Rosa Hütte, Wallis, 스위스 (c) Tonatiuh Ambrosetti

목재건축 부활의 또하나의 숨은 공신은 1970년대 이후로 인식되기 시작한 지구온난화와 그 주범인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려는 노력이다. 환경보호 차원에서 목재의 가치가 인정된 것이다. 숲은 대기의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꾸어주는 고마운 존재다. 나무 1큐빅미터에는 1톤의 이산화탄소가 함유되어 있는데, 그것은 남독 뮌헨에서 북독 함부르그까지신형 자동차로 8번 달릴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과 맞먹는다.

뿐만 아니라 전 육지의 1/3 을 차지하는 숲은 세계적으로 16억 인구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막강한 일터다. 자동차강국 독일에서도 자동차업계에서 종사하는 사람의 숫자와 임업과 목재업에 종사하는 사람의 숫자가 같다. 숲이 많기로는 유럽에서도 독일이 으뜸이다. 독일에는 매년 2.9억 큐빅미터의 건물이 새로 지어지고 있는데, 이 모든 신축건물들을 전부 나무로 짓는다고 해도 매년 독일에서 생산되는 목재의 1/3밖에 소비되지 않는다.

나무는 자라서 목재로 소비되면 그 자리에 다시 새 나무를 심을 수 있는, 지속가능한 자원이다. 나무를 생산하는 숲은 지속적으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지구온난화를 억제한다. 화석에너지 고갈과 지구온난화는 우리 인간이 초래한 절대절명의 위기다. 국내산 나무를 이용한 목재건축의 부활은 문명의 쾌적함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이 위기를 극복하려는 슬기로움의 일환이다.

이런 지순한 메시지를 담은 전시회를 소개하는 나의 마음이 착잡하다. 독일의 하천전문가들이 세계적으로 유래없는 환경파괴라고 경고하는 사대강사업을 녹색성장이라 홍보하고, 후쿠시마의 원전 사고를 바로 옆에서 당하면서도 원자력발전을 안전한 청정에너지라 칭송하는 이명박 정부의 환경철학을 하루하루 견디는 국민으로서 내가 이런 전시회를 소개하는 일이 코끼리 지나다니는 길바닥에 꽃을 심는 일만큼이나 부질없이 느껴진다. 그러나 환경이 망가지면 인륜도 무너진다. 자손의 터전을 흥청망청 갉아먹으며 파티 벌이는 것을 묵인한 세대는 나중에 가난에 찌든 자식들이 고려장으로 내쳐도 할 말이 없다.


(이 글의 축약본이 풍경 1월호에 실렸습니다. ‘‘풍경'‘은 독일에서 발행되는 한글 월간문화신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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