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번역연대에 대한 관심과 국내 언론의 인터뷰 요청이 부쩍 늘고 있다. 번역연대를 풀뿌리 민주주의 표본이라 일컫기도 하고 집단지성의 실례라 부르기도 한다. 번역연대는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나?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한국 정부가 4대강 사업을 추진하면서 독일 하천공사의 실상을 왜곡했다는 사실을. 인터넷 시대에 어쩌면 이렇게 눈가리고 아웅할 수 있는지 놀랍고 독일에 사는 한국인들을 눈 뜬 장님 취급하는 것이 억울해서, 나는 독일 하천공사의 실상이 담긴 정보를 번역해서 인터넷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내가 쓴 글들은 한국 기성 언론들에 외면당했지만 인터넷을 통해 꾸준히 퍼져나갔다. 4대강사업 국민소송이 시작되자 정부 측 증인들은 법정에서 더욱 대담한 거짓 증언을 했고, 그들을 상대로 나 혼자 진실을 밝히기에는 힘에 겨웠다. 나는 한국동포들이 가장 많이 찾는 독일 포털사이트에 “도와달라”는 글과 함께 번역할 장문의 독일어 글을 올렸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우르르 달려들어 단 이틀 만에 초벌 번역이 뚝딱 완성됐다. 독일어를 잘 하는 교민 뿐아니라 유학 온 지 얼마 안 되는 학생도 사전을 뒤져가며 힘을 보탰다. 중국과 미국에서까지 동참의 손길이 날아들었다. 그들은 내게 도리어 고맙다고 했다.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차에 이렇게 실천할 기회가 생겨서 행복하다고 했다. 나는 세상이 이렇게 밝고 건강하다는 사실에 감동했고 그동안 혼자 끙끙댔던 일이 억울해서 눈물이 났다.

2010년 6월 남편은 번역작업을 위한 사이트를 만들어줬다. 위키페디아와 같은 원리로 운영되는 공동 작업 시스템이다. 누군가 번역할 내용을 올리면 다른 누군가 각자 번역할 수 있을 만한 문장을 골라 초벌 번역을 하고 또 다른 누군가 고치고 다듬는다. 댓글을 통해 토론도 벌인다. 이렇게 완성된 결과물은 어느 한 사람이 아닌 공동의 작품이다.

번역연대가 발표하는 모든 자료는 사회의 공공재산으로 누구나 읽고 사용할 수 있게 했다. 독일어 공문서와 보고서를 번역해 발표하는 일 외에도 국민소송단에 참여할 독일 전문가에게 4대강사업 관련 자료를 독일어로 번역해 제공하거나 한국에서 오는 시민단체와 언론기관을 위해 통역하는 등, 번역연대는 그간 많은 일을 했다.

상징적인 성공담도 있다. 시사정보지 한겨레21은 “다양한 대중이 모여 새 지식을 만드는 집단지성 실험이 지식 민주화를 부른다”는 요지의 기사에서 번역연대를 소개하며 4대강사업을 옹호하는 수자원학회와 벌인 전문용어 논란을 언급했다.

“복잡한 기술용어로 문제를 덮으려 할 때 집단지성의 힘이 드러난다. 한국의 수자원학회 전문가의 손을 거친 “두부침식”이라는 말보다 번역연대가 주장한 역행침식이라는 말이 지금은 더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다. 4대강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좀더 정확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는 집단지성이 개인 전문가를 이긴 사례로 두고두고 남을 것이다.” (한겨레21, 제899호, “변화 짓는 즐거운 지성 품앗이”에서)

이런 활동상을 보면 번역연대가 대단한 조직을 갖춘 단체처럼 느껴질 수 있다. 실은 세계 각국에 흩어져 사는 이름모를 이들이 낮에는 생업에 종사하고 밤에는 번역에 참여하며 느슨하게 운영된다. 대개 너댓 명이 한 문장에 달라붙어 토론해가며 번역하고 다듬는다. 잘하는 분야가 제각각이어서 환상적인 보완이 가능하다. 번역연대 안내문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저희 번역연대에서는 남의 글을 고쳐주는 일을 망설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회에 봉사하려는 목적으로 여기 모인 것이 틀림없지만, 개인의 발전 또한 중요히 여깁니다. 개인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 모임만이 길게 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남이 해놓은 번역이 꼭 틀려서가 아니라 이렇게 쓸 수도 있다는 것을 서로 알려주는 것은 함께 공부하며 개인의 발전을 도모하려는 사람들 사이의 예의입니다.”

번역연대에서 새로운 협동과 창조의 세계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서로 키워주며 함께 발전했다. 그리고 서로에게 의지했다. 번역이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지구 저편에 함께 작업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희망의 등불이었다. 내가 머리를 쥐어짜다 포기한 엉성한 문장이 다음 날 아침 누군가의 손으로 깔끔하게 완성되어 있는 것을 볼 때 생기는 구원의 감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그래서 번역하다 말고 난데없는 사랑 고백이 튀어나오는가 하면 서로에 대한 칭찬으로 깨가 쏟아지기도 한다.

서로 이렇게 애틋한 감정을 키우면서도 우리는 서로가 누구인지 모른다. 실명과 나이는 물론 성별까지. 애써 알려 하지 않는다. 운영자인 내게도 이들의 신상정보가 없다. 세월이 하 수상해서 일부러 그렇게 하고 있다.

한국의 방문단을 맞아 통역 봉사를 한다거나 우리가 번역한 동영상을 더빙할 일이 있어 어쩌다 실지로 만나게 되면 우린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면서도 “어머, 이렇게 가냘프게 생긴 사람이었어?” “앗, 덜렁마님, 미인이잖아?“하며 쑥스러움을 감추지 못한다. 분만 후, 나와 한몸이기도 하고 낯선 사람이기도 한 간난아기를 첫대면 했을 때처럼 쑥스럽고 정겹다.

나는 번역연대에서 타인의 발전을 통한 나의 발전을 경험했다. 그리고 발전을 공유하는 환경에서는 자연스럽게 사랑이 싹튼다는 사실을 깨우쳤다.

****(월간문화지 “풍경” 5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