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고마운 사람이 한국에서 마른 나물을 보내줬다. 취나물과 방풍나물이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이라 보내긴 하지만 혹시 요리하는 데 너무 번거롭지 않을까 걱정이 살짝 된다면서.

그래도 몸에 좋은 거니까 맛있게 먹고 부디 건강하라는 부탁과 함께.

나는 이런 나물들을 한국에서 먹어본 기억이 없다. 청소년 시절에 독일에 왔기 때문에 한국 음식이라곤 집반찬 밖에 모르는데, 당시 우리집 밥상에는 보편적 가정에서 대를 이어 전수되는 전통적인 반찬이 오르지 않았다. 정상적인 가정에서 자라지 못한 우리 엄마는 전통적인 요리를 보고 배울 기회가 없어서 그랬겠지만 자신이 개발한 멋진 신식요리를 상에 올렸다. 그래서 나는 빈대떡 등 여러 전통음식을 독일에 와서 독립한 후에 처음 알았다.

내가 취나물을 처음 알게 된 건 10년 전의 일이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알게된 친구가 나를 방문했을 때 나는 정성을 다해 상을 차렸다. 그 친구가 취나물을 좋아해서 이스라엘이고 어디고 세계 방방곡곡 그걸 들고 다니다가 대마초 아닌가 의심 받았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길래 나는 한국 식품점에 가서 말린 취나물을 한 봉지 사왔다. 대강 불려서 기름에 달달 볶다가 물을 부어 끓이다가 내 맘대로 대강 한 접시 만들어내긴 했는데 뻣뻣하고 줄기가 딱딱 씹히는 것이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먹어봤던 음식이 아니니 알 수가 없었다.

상을 차리면서 친구에게 나물 접시를 보여주며 “이거 아무래도 망친 것 같으니 정성만 먹어라”하고는 도로 싹 치웠다. 친구는 “잠깐!“하고 손으로 하나 집어먹어 보더니 맛있다고 죽는 시늉을 했다. 그럼 원래 이렇게 딱딱하게 먹는 음식인가 싶어서 다시 상에 내놨다. 친구 남편도 마치 장모님 나물처럼 맛있다며 마구마구 집어 먹어서 취나물 접시가 금방 비워졌다. 오홋, 소 발에 닭 잡았나? 역시 나는 요리에 천재인 게야.

멀리서 나물을 보내준 사람 성의도 고맙고 10년 전에 내 취나물을 맛있게 먹어준 친구 생각도 나서 이번에는 제대로 한번 도전해보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검색했더니 에그머니나 복잡도 하시지, 밤새도록 불렸다가 삶았다가 씻었다가 볶다가 또 다싯물을 부어서 끓이다가 자작하게 졸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는 도를 닦듯이 하라는 대로 정성껏 다 했다.

드디어 짜잔~ 어머나, 보들보들하게 입 안에서 녹는 내 취나물. 애고 불쌍한 신주야, 너 또 오면 내가 이렇게 맛있게 만들어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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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나물 접시에 젓가락도 안 댔다. 무슨 풀인지 나뭇잎인지 모르지만 인간이 잔인도 하지, 말렸다가 불렸다가 삶았다가 씻었다가 볶다가 또 끓였다가 졸인 이 음식에 비타민이고 뭐고 남아있겠냐는 거였다. 내가 오전 내내 부엌을 들나들며 수선을 떠는 거 보고 내심 떡 벌어진 잔칫상을 기대했다가 풀 한접시 나오니까 실망해서 심술이 나셨나? 나는 남편이 그러거나 말거나 보드라운 취나물과 방풍나물이 너무 맛있어서 두번 다시 권하지도 않고 혼자서 다 먹었다. 숨도 안 쉬고 밥 두 그릇을 뚝딱 비웠다.

비 오는 일요일, 점심을 그렇게 맛있게 먹고 남편이랑 나란히 앉아서 컴퓨터를 했다. 남편은 무슨 프로그래밍을 하고 나는 탈핵 관련 번역을 했다. 각자 헤드폰을 끼고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취나물 때문에 신주 생각이 나서 그랬는지 나는 심수봉 노래를 들었다. 신주는 심수봉 팬이다. 심수봉은 내가 한국을 뜬 후에 데뷰했기 때문에 난 신주를 알기 전에는 심수봉도 몰랐다.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백만 송이 장미, 무궁화… 목소리도 멜로디도 가사도 좋다. 감정이입이 되어 나도 모르게 노래를 따라 불렀나 보다. 남편이 옆에서 고개를 획 돌리더니 칙 째렸다. 왜 그러냐고 눈으로 물었더니 시끄럽다고 노래하려면 다른 방에 가서 하란다. 그런데 자기도 헤드폰을 끼고 있는 고로 목소리가 버럭 천둥을 친다.

아이 깜짝이야, 승질도 지롤이네. 아까 나물 나 혼자 다 먹어서 화났나? 한번 더 권해볼 걸 그랬나?

심수봉 노래 “무궁화” 함께 들어요.



백만송이 장미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