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네덜란드로 유학간 후 우리는 세 식구가 되었다. 어른 셋이 사니까 가사와 요리를 동등하게 분담하는 게 도리겠건만 25세 아들의 가사노동 기여도는 참말로 저조하다.

절대로 제가 알아서 하지는 않는다. 얼른 쫓아내야지.

남편이 어디 가고 우리 둘만 남은 어느날 저녁, 아들이 식사당번을 하겠다고 나섰다. 우이,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피자를 만든다고 장을 봐오고 반죽을 하더니 피자 위에 얹을 재료 다듬는 허드렛일을 좀 도와달란다. 부엌에 들어서는 순간 눈에 확 띄는 참치 통조림! 내 눈엔 마치 자동차 타이어처럼 크게 보였다.

“우와 참치!”
“엄마가 좋아하잖아?”

어이구, 내 아들 자상하기도 하지. 엄마를 위해서 지 아빠 없을 때 살짝 사왔네. 난 아들에게 참치를 다 쓰지 말고 좀 남겨달라고 부탁했다. 아들은 내게 참치 살코기를 한술 내밀었고 나는 한입에 낼름 삼켰다. 고소하고 비릿한 생선 맛. 고향의 맛.

“아, 맛있다. 그 통조림 좀 봐. 아까운데 내가 싹싹 긁어 먹게.”
“어, 안 돼. 그건 내가 긁어 먹으려고 일부러 좀 남겨둔 거야.”
“어머, 너도 참치 통조림 좋아하니?”
“그럼.”

난 꿈에도 몰랐다. 아들도 참치 통조림을 좋아하는 줄은. 우리집 식탁에서 “착하지 않은” 음식을 추방하기로 결정한 이후로 아들은 한번도 참치 먹고 싶단 소리를 하지 않았다. 나는 농담삼아 가끔 징징거리기라도 하지만 아들은 그런 나를 보며 귀엽다는 듯 빙긋이 웃기만 했다.

애그 불쌍한 것. 슈퍼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싸구려 참치 통조림도 못 먹이고 키웠네. 그나마 독일에 유통되는 참치 통조림은 대부분 친환경·윤리적 방식으로 잡아서 공급하는 “착한 참치”건만 우리 가족은 그것마저도 거부하고 있다. 우리는 바다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운송에 드는 에너지를 절약하기 위해서 내 고장, 제철음식을 고집하는 것 외에도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우리같은 내륙지방 사람들까지 생선에 맛을 들여 먹어대기 시작하면 바다의 물고기 씨가 마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작 생선에 의지해온 가난한 사람들의 먹거리를 빼앗아 먹는 일이기도 하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원래 어부였다. 먼 나라 원양어선들이 그들의 바다에서 물고기를 싹쓸이해 간 이후로 그들은 먹을 것이 없어 해적이 되었다. 그 해적들에게 해를 당한 무고한 선원들에게 측은지심을 느낀다면 원양어선이 싹쓸이해오는 참치가 어찌 목으로 넘어가랴?

하지만 난 가끔씩 반칙을 함으로써 남편의 빈축을 산다. 남편, 너도 자기가 어차피 별로 안 즐기는 음식에만 추상같은 잣대를 들이대잖니? 지가 먹고 자란 소세지엔 한없이 너그러운 그대. 그래도 괜찮다. 자기가 지키고 싶은 양심만 지키고 살아도 그게 어디냐? 서로 감시해주는 덕분에 양만 줄여도 그게 어디냐?

왕쫀쫀이 남편이 집에 없는 날, 양심에 찔리는 참치 통조림을 몰래 사먹는 재미가 고소하다. 아들과 둘이서 통조림 깡통을 긁으며 세상이 부럽지 않다. 어느 진수성찬인들 이보다 더 맛있으랴? 단돈 1유로에 호사를 누린다. 내 맘이다. 소비자는 왕이다. 나는 왕이다.


“착한 참치”란? 아래 글을 읽어보셔요.
한국에는 ‘착한 참치캔’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