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독일 통일과 우리의 조국 통일
내가 늘 들여다보는 재독한국인 포털사이트 베를린리포트에서 눈이 번쩍 뜨이게 좋은 글을 발견했다. 오래 전에 파독 광부로 와서 독일에 뿌리를 내리고
독일의 평범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분이 쓴 통일에 관한 단상인데, 독일 통일의 과정을 독일 내부에서 몸소 경험한 바에 견주어 한국의 통일 준비가 허술함을 걱정하는 글이다. 나 역시 근 40년을 독일에 살고 있지만, 독일 통일에 관하여 나는 여태까지 이보다 더 정확하게 간략하게 정리된 정보를 접한 적이 없다. 통일 전과정에 걸친 독일 정부의 정책과 이를 대하는 독일 국민의 정서를 제대로 전달하는 유익한 글이기에, 한국 국민과 치정자들에게도 많은 도움이 되리라 여겨 소개한다. 게재 허락해 주심에 감사드린다. 이 글이 부디 널리 퍼져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 -임혜지
[독일의 통일과 우리의 조국통일]
J회장님과 C사장님께 보내는 편지
(평범하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이 독일교민으로 살아가면서 느꼈던 통일에 대한 단상 - 황만섭)
요새는 자주 뵙지 못했습니다. 오늘은 저 혼자서 이것 저것 생각하다가 분단된 조국을 생각하면서 하도 답답해서 편지라도 써야 할 것 같아 제 생각을 정리해 봅니다. 혹 제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나 틀린 부분이 있으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J회장님! 우린 독일교민으로 살면서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그 날 얼마나 놀랬고 감격했으며 나 자신도 모르게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우리도 저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조국통일이 거짓말처럼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몇 날 몇 일을 밤잠을 설쳤었지요.
지금 와 생각해 보니 통일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고생하면서 만들어 가는 것 이었습니다. 어떤 일을 성사시키려면 정성과 성의가 있어야 하지요. 힘 들어도 쉬지 않는 노력과 고생을 감내해야만 이루어집니다. 감나무 밑에 누워서 홍시 떨어지길 기다린다면 그거 요원한 일이지요. 통일은 희망이고 희망은 행복이 됩니다. 분단은 갈등이고 갈등은 불행으로 연결됩니다.
C사장님! 독일통일의 과정을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교민의 눈으로 보았던 그리고 느꼈던 것들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패전국이 된 독일의 형편은 참담했으며 비참 그 자체였습니다. 연합국 쪽에 몸을 담은 쏘련도 승전국의 일원이 됩니다. 승전국이었던 영국, 프랑스, 미국은 서독을 차지하고 쏘련은 동독을 차지 하지요. 쏘련은 팽창주의를 꿈꾸었었고, 밀고 내려오는 쏘련을 막기 위해 미국은 거기에 맞서 ‘마셜 플랜’을 세우게 됩니다.
미국의 지원(마셔플랜) 아래 쉽게 힘을 추스른 서독은 동방정책을 세워 통일을 위한 첫걸음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그 첫 번째가 서독시민이 동독을 여행 할 때에 100마르크의 여행보조금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곤 동독여행 중에 쓴 영수증을 제시하면 세금으로 혜택을 주어서 될 수 있는 대로 동독 땅에 여행을 가서 많은 돈을 쓰고 오도록 권유했습니다,
성탄절 부활절 때에 동독에 있는 친척, 친지들에게 소포(선물)를 보내게 했고 그 영수증을 제시하면 역시 세금으로 혜택을 주었습니다. 또 편지왕래를 자유롭게 허락했지요, 아무래도 왕래가 잣다 보면 그 사이사이로 간첩사건 등 다른 여러 불법적인 크고 작은 사건들이 수없이 발생하게 되었지만 서독정부는 항상 큰 틀에서 슬기롭게 대처하면서 끈질지게 진행시킵니다. 통일에 대한 이들의 신념은 확고했고 철학은 뚜렸했습니다. 참기도 하고 기다리기도 하면서 일을 추진하는 걸 보면 태평양 같은 독일정치인들의 넓은 마음이 어디서 나오는가 놀라웠습니다. 단연 세계 최고 수준의 인품을 갖춘 정치인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그런 것들은 말 할 필요조차도 없는 사람 사는 세상의 상식에 속하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J회장님도 아시는 대로 서독정부에서 보니 동독 땅을 지나 육지의 섬 서베를린으로 가는 게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었지요. 그들(동독)은 가난해지면서 살기가 힘드니까 도로 보수나 정비를 전혀 하지 않았었고 새로운 도로건설은 꿈도 못 꾸는 못사는 나라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봐도 동독 자체의 힘으로 새로운 도로를 만들기 위해 그들이 자금을 투자한다는 것은 가망이 없어 보이자 서독은 동독에 제안을 하게 되었지요.
우리가 함부르크에서~서베를린간의 고속도로, 하노버에서~서베를린간의 고속도로, 그리고 뉘른베르크에서~서베를린간의 고속도로 이렇게 세 개의 고속도로를 만들어 주겠다고 동독에 제안하지만 동독은 “그래 고맙다. 역시 동족이 좋구나. 어서 만들어라” 이렇게 말하지 않았었고 “그래 우리 땅 사용하려면 사용료 내놔”라고 큰소리를 쳤지요. 상식에서 벗어나도 한참을 벗어난 일이지요. 원래 공산국가는 정상적인 대화상대가 아닙니다, 그들은 늘 억지를 부리지요.
이들(서독)은 그들(동독)이 요구하는 거액의 돈을 바보처럼 그대로 다 주었고 그들(동독)은 그걸로 첩보장비를 열심히 사들여 간첩육성에 열을 올리게 됩니다. 오직 해야 “한 때 서독시민 열명 중 네 명이 간첩이다. 아니야 다섯 명도 넘어”라는 말이 생겨났을까요. 그래도 서독 정부에서는 저간의 사정을 못 본 척, 못 들은 척 하면서 묵묵히 참으면서 한번 들어선 통일로 가는 길을 뚜벅뚜벅 걸어갔습니다. 애들이 잘 노니까 사탕 하나 주고, 우니까 다시 뺏고 그러질 않았습니다. 얼마 후엔 빌리부란트 수상의 비서까지 간첩사건에 연루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빌리 부란트 수상은 변명 없이 조용히 깨끗하게 물러나면서까지 통일정책은 쉼 없이 흔들림 없이 계속되었습니다. 결국은 장벽은 무너졌고 통일의 꿈은 이루어졌습니다.
공산주의 하라고 해도 안 할 걸 이들(서독정부 정치인들)은 다 알고 있었지요. 몇 사람 정도는 흔들릴 것까지도 다 알면서도 항상 큰 틀에서 생각하였다고 봅니다. 문제는 어디나 있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자본주의 민주주의가 공산주의 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좋다는 걸 세상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지요.
C사장님! 통일 전의 서독이 아무리 부자라지만 우리 보다 한 3~4배 정도의 부자였을 겁니다. 그런데 통일 전 서독은 동독에 매년 33억불씩 퍼부었고 우린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때에 매년 고작 1억불 정도(정부 차원 7천만 불, 민간 차원3천만 불)가 북한으로 지원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1억불 주고 퍼주었다고 난리인데 그렇다면 서독은 우리 보다 4배 정도 더 잘 사니까 1년에 4억불 정도 동독에 지원하면 우리가 주었던 수준하고 맞는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매년 33억불씩이나 퍼주었으니 서독정부관계자들은 능지처참의 형에 처한다 해도 부족한 엄청난 죄를 지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독일 반대당 정치인들은 한 사람도 퍼주었다고 따져 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린 세계11대 경제대국입니다. 1억불. 제 생각은 그 정도의 돈은 껌 값 정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퍼주었다고 난리입니다. 전쟁 나면 남한도 북한도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처지가 될 것을 우린 서로 다 잘 알고 있습니다. 잿더미…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끔직한 일입니다. 슬픈 일이 되어버리지요. 우리(남한)가 저들(북한)에게 준 돈은 속된 말로 새 발에 피지요. 우리가 그 정도의 정성도 들이지 않고 통일의 길을 시작하고 평화를 얻고 행복을 사오겠다고 한다면 이야기가 성립이 되질 않는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때 미국에서 나이 든 늙은이들이 하도 전쟁도 불사한다고 큰소리 치니까 챨리 채플린이 ”그래 앞으로 전쟁이 일어나면 노인들이 가장 먼저 전쟁터에 나가라”고 소리쳤습니다.
일본이나 중국은 한반도에서 전쟁 나길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사이 뭘 챙길 것 없는가 ‘하고 말입니다. 우린 참으로 고약한 이웃 나라들을 만났습니다. 패전국인 일본이 북일본 남일본 갈라져야 하는데 미국과 쏘련은 엉뚱하게 대한민국을 남북으로 갈라놓았습니다. 원통한 일입니다.
‘독일 통일은 백년대계가 아니라 천년대계’라는 생각이 듭니다. 독일사람들은 통일을 하게 되면 20년에서~25년 정도는 죽도록 고생을 해야 할 걸 다 알고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바보들이 아닙니다. 역사를 길게 보고, 멀리 생각한다면 천 년의 역사 속에서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 20년~25년 정도 고생하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지내 놓고 보면 그건 한 순간에 불과합니다.
이제 통일로 인한 독일인들의 고생은 2007년으로 17년 만에 확실 하게 졸업하게 됩니다. 생각보다는 고생이 빨리 끝났다고 선언한 독일은 부수상 겸 외무장관을 시켜 이웃나라를 돌면서 통일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다녀오도록 했지요. 이젠 사람이 살아가면서 일상적으로 생겨나는 크고 작은 일들을 해결하면서 전 독일인들이 평화로운 일상의 행복 속에서 국운을 드높이고, 넓게 확장해 가면서, 뿌리를 깊게 내려 활짝 펼쳐나가는 웅비만 남았습니다.
J회장님! 저의 생각은 수준이 나은 쪽에서 못한 쪽을 달래고 얼려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한번 시작한 정책은 조변석개 하지 말아야 하고 더욱이 소탐대실은 안됩니다. 그들의 자존심을 너무 상하지 않게 넉넉한 쪽에서 부족한 쪽에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요. 너무 속상하게 하면 주는 것도 받기 싫은 것이 세상 인심입니다. 곧 죽어도 말입니다. 똑같으면 똑같은 사람 됩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서독은 사민당이 시작한 정책, 정권이 바뀌어 기민당이 정권을 잡아도 바꾸지 않고 초지일관 밀고 나갔고 끝내 통일의 위업을 달성하고 말지요. 말이 쉽지 통일로 겪어야 하는 서독사람들의 고생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약값도 무료였는데 조금은 내어야 했었고, 입원비도 무료였는데 일정부분 부담이 생겨나고, 거기에다 통일세금 만들어 받지, 들어오는 연금까지도 액수가 적어집니다.
들어올 돈 줄어들면서 자기 포켓트에서 돈 더 나가는 일이 생겨나는데 좋아할 사람 이 세상에 어디에도 없습니다. 허나 독일인들은 고분고분한 국민성이 있습니다. 나라살림이 어려울 때에는 나라 살림을 생각해 가면서 따라주는 협조가 뒤따릅니다. 그것이 바로 공존의 상식이기 때문이지요. 집안 형편이 어려울 땐 온 가족이 허리띠 졸라 매면서 가난을 이겨내는 거와 같습니다.
‘천년대계’라는 말은 제가(황만섭 www.segye.de) 생각해낸 말입니다. 여러 가지 어려움 속에서도 이들이 통일 1주년 기념, 2주년 기념, 매년 계속되는 기념행사는 항상 축제, 축제의 연속이었고, 감동, 감동, 감동의 물결이었습니다. 난 독일에 살면서 그걸 해마다 보면서 살아 왔고, 최종 결론은 “아! 그렇구나! 이 사람들은 천년대계를 생각했구나. 그러니까 어려움 속에서도 저렇게나 마냥 즐거워하지”였습니다.
C 사장님! 북한은 우리 땅입니다. 그들은 우리 핏줄입니다. 5천 년의 역사를 그렇게 우린 서로 몸 부비면서 피 섞어가면서 살아왔습니다. 우리가 신경 끄면 북한은 중국의 식민지가 됩니다. 독도를 놓고 일본이 자꾸 우리 신경을 건드립니다. 우린 지금 남한 안에서도 끼리끼리 배가 터지게 해먹고 삽니다. 화합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내 배만 채우면 된다는 식입니다. 그러다가 우리 나라 어떻게 될지 저는 걱정 때문에 밤잠을 설칩니다.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독일은 준비 없이 서둘러 통일을 했고 후회한다더라’ 그 실상은 이렇습니다. 제가 독일에 살면서 느낀 대로 말씀을 드리자면 ‘통일 전 통일을 반대한 서독 사람들이 약10% 정도? 통일 후 통일을 후회한 사람들이 약5 % 정도?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통일을 후회한 사람들이 0,5%쯤 될 거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그걸 가지고 우리 나라 나쁜 신문들이 확대재생산 해서 소설을 써대고 있습니다.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겐 수오지심(羞惡之心)은 없고 교언영색(巧言令色)만 있습니다. 평생을 곡필아세를 하면서 일생을 보내는 망나니들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합니다. 이 사람이 이 말하면 그 말이 맞는 것 같고 저 사람이 저 말하면 또 저 말이 맞는 것 같고 도대체 백성들은 헷갈려 버립니다. 그래서 어떤 정치인은 그런 말을 하지요.
“일반 대중은 무식해서 판단의 사유가 부족하다. 잘 꾸며서 재미있게 꼬드기면 저들을 세뇌시키는 것은 문제 없다”라고, 그렇습니다. 그럴싸한 풍채를 가진 직책도 꽤나 높은 번드르르한 사람이 나와서 온갖 유식한 말 동원해서 이야기하면 일반대중은 긴가 민가 해버립니다.
동풍이 불면 서쪽으로 넘어지고 서풍이 불면 동쪽으로 흔들리면서 일반대중은 정신 없이 허우적거리면서 다수 편에 모여들고 강자의 편에 바짝 엎드려서 눈치 보면서 마냥 떨면서 살아가지요.
통일을 준비한다고 하는데 저는 그걸 모르겠습니다. 준비라는 것이 돈을 어느 곳에다가 따로 쌓아가면서 돈이 많이 모아지면 그때 “너희들 통일 마당으로 나와라 지금 통일하자!” 이렇게 소리치자는 이야기 일까요? 뭐가 뭔지 당최 감이 잡히질 않습니다. 자식을 낳는 것도 통일을 하는 것도 사랑으로 하는 거지 돈으로 하는 거 아닙니다. 행복은 돈 많다고 행복한 거 아닌 거와 같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얼마든지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나 부자 되면 남 도와 준다고 하는데 그거 거짓말입니다. 지금 형편에서 남 도우지 않는 사람은 나중에 부자 되어도 절대로 남 돕지 않습니다. 사랑은 아무나 하나? 사랑도 해 본 X이 합니다. ‘고기도 먹어본 X이 잘 먹는다’는 말이 있지요.
J회장님! 우리 먹을 것도 없는데 남 준다고 하는 사람들의 심뽀는 놀부심뽑니다. 어떤 재난에도 인터뷰하는 독일인들은 남의 이야기 하듯이 여유롭고 담담했었는데 이번 홍수(2013년 6월 홍수)에는 울면서 인터뷰 하는 독일인들을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엘베강이 넘치고 도나우강이 넘치는 이번 홍수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그 다음 뉴스가 시리아 난민 5000명을 받아들인다는 뉴스와 그 준비 과정에 관한 것 이었습니다.
살면서 보니까 부자(독일)도 통일을 하고 가난뱅이(예멘)도 통일을 하드라고요. 지금 당장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데 그래 나 준비(수영 배워서) 해서 너 건져 줄께…. 이거 코미딥니다. 한마디로 웃기는 청춘이지요.
C사장님! J회장님!
사람이 살면서 자식을 낳는 것은 희망입니다. 자식은 우리들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민족이 살면서 통일은 희망입니다. 그것이 우리 민족의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통일은 우리가 자식을 낳아 기르듯이 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누가 자식 낳으면서 이건 우유 값으로 얼마, 이건 유치원 갈 때 쓸 돈, 이건 대학등록금 이렇게 준비하고 나서 “자! 이제 애 낳자” 이러지 않습니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자식을 낳아 키웁니다. 찢어지게 가난했었는데도 이렇게 저렇게 고생하면서 몸부림치다 보니까 자식들 대학까지 가르치게 됩니다. 자식 낳은 거와 통일은 그렇게 마음으로 하는 겁니다.
통일도 그렇습니다. 우리 모두 맘 합해서 형편에 맞추어 가면서 고생과 노력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동강 난 조국을 자식들에게 주면서 후손들에게 “너희들 알아서 싸우고 욕하면서 저주하면서 불안해 떨면서 험한 세상 살아가거라. 우리도 그렇게 살아왔느니라. 그것이 한반도의 운명이란다, 사랑하는 자식들아 내 후손들아! 그냥 그렇게 서럽게 살아가거라” 이럴 순 없지 않습니까? “후손들아! 부디 훗날 멍청한 선조들, 못난 조상들이라고 우리들을 욕하지 말아라! 세상 살아보니까 맘대로 안 되는 것이 이 세상 일이더라” 이럴 순 없지 않습니까?
J회장님! C사장님! 어제(2013. 7. 5) 오마이뉴스 TV에 나와서 한 사람의 시민자격으로 이야기 하는 전 장관이었던 유시민씨의 강해를 들었습니다. 남북문제에 관한 그의 이야기는 논리 정연해서 명쾌하고 유쾌한 내용들이었으며 통쾌하면서도 상쾌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유시민씨에게 감사할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도 한 사람의 시민의 자격으로 이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만, 그와 제가 같은 시민의 자격으로 이야기 하고 있지만 유시민씨는 분명히 대시민이고 저는 소시민이라는 것이 확연하게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J회장님! C사장님! 이야기가 너무 길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황만섭 드림
출처: 베를린리포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