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륜 스님이 보시는 한반도 상황과 통일
매년 더위가 물러가고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난 맘이 설렌다. 법륜 스님의 해외순방 법회가 가까와 오기 때문이다. 올해는 특별히 더 기다려졌다.
오래 전부터 꼭 여쭙고 싶은 질문이 있어서였다. 어떻게 질문하면 내가 알고 싶은 걸 다 들을 수 있을까 며칠이나 연구하며 문장을 준비했다. 나 혼자만 궁금한 게 아니라 독일동포 커뮤니티 베를린리포트에도 그 사안에 대해 스님의 의견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기에 난 사명감마저 느꼈다.
2013년 10월 11일, 드디어 뮌헨 법회가 열렸다. 나는 맨 앞에 앉아서 제일 먼저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드렸다. “스님의 책을 읽은 후로 저는 지금의 한반도 상황을 구한말의 상황과 비교하게 됩니다. 미국, 중국, 일본의 세력구도는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 상황에 대처하기는커녕 우리끼리 당파싸움만 벌이고 있습니다. 통일의 노력은 고사하고 남북이 점점 더 사납게 대치하고 있습니다. 통일의 희망이 있을까요? 경술국치 같은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면 지금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국민들이, 특히 저희 같은 해외교포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스님은 장장 한 시간 이상 시간을 할애하여 정성껏 답해주셨다. 내 평생 최고의 명강의였다. 질문 신청자가 나 말고도 많았기에 나의 질문이 스님을 독점하는 듯해서 뒤통수가 따가웠지만 난 그럴수록 한 단어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집중해서 들었다. 나중에 스님께 삼배를 올리는데 감동과 감사의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앞으로 더욱 많은 이들이 법륜 스님의 강연장을 찾아 직접 경청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날 스님의 말씀을 요약, 정리한다. 내가 이해한 바를 나의 언어로 적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 적힌 글 속에는 스님의 표현이 아니라 나의 표현인 것도 있음을 미리 알려드린다. 말로 할 때 분위기와 느낌으로 전달되는 부분을 나중에 문자로 요약하는 과정에서 뉴앙스의 와전이 생길 수도 있다는 점에 양해를 구한다.
서론
우리는 100여년 전에 일본에 나라를 빼았겼습니다(1910년 경술국치/한일합방). 1905년 우리나라의 외교권을 박탈당하는 을사보호조약의 초석을 놓은 사건이 바로 1894년 동학혁명의 실패와 청일전쟁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20세기의 전반기를 남의 나라 식민지로 보냈고 후반기를 분단국가로 보냈습니다. 우리 힘이 아닌 남의 힘으로 독립을 함으로써 분단 상황을 자초했습니다. 단순한 분단 상황이 아니라 육이오 전쟁 이후 남북은 철천지원수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남북갈등은 밖에서 조장된 것이 아니라 우리 안의 분노입니다. 한때의 잘못으로 인해 전민족이 100년 동안 극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경술국치의 역사적 배경
경술국치의 역사적 배경을 국내외로 나누어 알아보겠습니다. 국내적으로 볼 때, 당시의 조선왕조는 무능하고 부패했습니다. 부정부패, 매관매직, 과다한 조세 수탈 등으로 백성은 착취에 시달렸습니다. 견디다 못해 1862년에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민중들이 한꺼번에 들고 일어났지만(삼도민란) 좌절되었습니다. 국외적으로는 서부열강들이 동아시아를 식민지로 만들려 눈독 들이던 위태로운 시점이었습니다. 이때 지배층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대원군은 안으로는 개혁정책, 밖으로는 반개방정책을 썼습니다. 반개방, 즉 쇄국은 시대에 부합하지 못한 선택이었습니다.
좀 더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구한말 시대의 조선은 청나라의 속국이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독립협회, 독립문 등이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을 뜻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청나라로부터의 독립을 뜻하는 것입니다. 1884년 청나라로부터의 독립과 개혁을 시도하는 쿠데타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바로 일본의 힘을 빌려 일어난 갑신정변입니다. 결국 청나라 군대의 진압으로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개혁이 실패하면 반개혁의 반동이 큰 법입니다. 갑신정변 이후 조선의 사대당 정부는 더욱 보수적이 되었고, 조선에서 청나라 세력이 강대해졌습니다. 따라서 청·일 두 나라의 조선 쟁탈전이 이때부터 더욱 격화되었습니다.
1894년 관리들의 수탈과 부패를 참다못한 민중들이 무장봉기한 동학혁명이 일어났습니다. 조정에서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이자 일본군도 함께 개입하여 진압하였고, 이는 청일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습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대만을 점령했습니다. 후에 일본은 러시아와도 전쟁을 일으켜 이겨서 사할린을 차지했습니다.
조선에선 일본이 지역 강국으로 부상하리란 것을 예상치 못했습니다. 그때는 아무도 청나라가 진다는 걸 상상할 수 없어습니다. 역사상 조선의 지배자들은 늘 국제 정세를 읽지 못해 나라를 망쳤습니다. 중국 정권이 명에서 청으로 넘어갈 무렵, 조선에선 습관적으로 명나라에 추종하다가 청나라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인조가 청 태종 앞에 무릎을 꿇고 항복하는 삼전도 굴욕을 당하고 청나라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구한말 지배자들도 변화하는 국제 정세를 읽지 못했기 때문에 조선이 청나라 속국에서 일본의 식민지로 넘어가게 된 겁니다.
오늘의 상황
오늘의 상황을 100년 전과 비교해 봅시다. 오늘날도 미국, 중국, 일본 사이에서 비슷한 세력교체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은 미국이 세계의 패권을 쥐고 있습니다. 1945년부터 한국은 미국을 부모국으로 섬겨왔습니다. 짧지 않은 세월입니다. 그래서 지금의 한국사람들은 미국의 힘을 절대적으로 믿고, “미제는 똥도 좋다"란 말이 나올 정도로 미국에 호의적입니다.
지난 20년 사이 중국이 뜨는 해로 새로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점차 세력을 잃어가며 지는 해이지만 그래도 아직은 미국의 힘이 중국보다 훨씬 더 셉니다.
두 대국 사이에 세력 교체가 일어날 때는 필연코 충돌이 생깁니다. 미국은 영향력을 포기하려 하지 않고, 중국은 영향력을 높이려고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미국이 꺼내든 카드가 바로 일본입니다. 미국은 일본 힘을 빌려 중국을 견제하려 합니다. 미국이 일본의 재무장을 인정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 국무·국방장관은 한국 대통령에게 ‘‘한미일 삼각군사동맹'‘을 받아들이라고 압력을 넣고 있습니다. 일본으로선 아주 반가운 일입니다. 패전국의 멍에를 벗고 자기 경제력에 맞는 영향력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까요. 그러나 한국의 입장은 어떻습니까? 중국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국과 일본 사이의 국민 감정이 점점 나빠지고 있습니다. 한국 국민들의 반일감정은 악화되고 일본 사회는 점점 우경화되어 갑니다. 한국 전 대통령의 일본 천황에 대한 거론 이래 일본에선 혐한현상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일본 국민들에게 천황은 신이나 다름 없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비판을 할 때, 교회를 비판하는 것과 하나님을 비판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는데 전 대통령의 천황에 대한 발언은 극우세력이 아닌 평범한 일본인들의 마음에까지 상처를 주어 우경화에 부채질하는 꼴이 되었습니다.
때마침 한반도 남북의 관계가 걷잡을 수 없이 관계가 악화됩니다. 그간 꽤 향상되었던 화해무드는 마치 역사를 뒤로 돌린 것 같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이 틈을 타서 일본의 재무장화 카드가 고개를 듭니다. 북한이 도발하면 일본이 한국을 도와줄 수 있다는 식으로 일본 재무장화의 허용을 유도합니다.
미국과 중국의 관계를 알아보겠습니다. 미국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질서 안으로 중국이 들어와서 협력하기를 희망합니다. 다른 말로 하자면,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적 테러 방지 및 핵확산 방지 정책에 중국이 참여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만약 중국이 북한의 비핵화에 기여한다면 미국은 그 댓가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권을 인정할 것입니다.
북한이 중국의 영향권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한반도의 영구분단을 뜻합니다. 한반도의 영구분단은 우리의 앞날에 여러가지 변화를 가져오겠지만 일단 남한의 경제적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한마디로 큰 타격이 올 것입니다.
첫째, 분단상황에선 방위비가 엄청나게 나갑니다. 미국은 남한에게 방위비 분담을 요구할 것이고, 우리는 신무기를 미국에서 수입하도록 끊임없이 압력을 받을 것입니다.
둘째, 한-중 경제교류를 보면 한-미의 두 배 정도로 규모가 큽니다. 만약에 여차해서 중국이 경제카드 빼들면 한국은 대단히 불리한 상황에 봉착하게 됩니다.
셋째, 분단 상태로는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이 불가능합니다. 지금 남한의 경제는 이미 성장기를 지나 둔화시기에 이르렀습니다. 전 정권에서 747공약을 내걸었지만 이루어진 게 있습니까? 원래 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남한의 크기와 인구수로는 더 이상 세계 무대에서 성장할 여지가 없습니다. 한반도가 다시 한번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 있다면, 그건 통일입니다. 그렇게 되면 노동력, 시장, 천연자원을 확장하게 되어 우리는 다시 한번 도약하여 정말로 세계 중심국가의 대열에 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북한에 친중정부가 들어서서 한반도가 영구적으로 분단된다면 반대의 상황이 벌어질 것입니다. 한반도는 미-중의 하위변수로 전락합니다. 미-중이 갈등하면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한반도의 영구분단은 앞으로 또 1세기 동안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지난 100년 못지않은 고통의 역사가 한반도에 되풀이될 것입니다.
앞으로의 전망
그런 사태를 막으려면? 신속한 통일만이 해답입니다. 통일, 그게 가능성 있는 일일까요? 그렇습니다. 가능성 있습니다. 아직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은 남한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있는 시기입니다. 미국은 최근 연방정부 셧다운에서 보여주듯이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국내외적으로 다른 신경 쓸 일이 많아서 남한에 대해 특별히 바라는 바가 없습니다. 우리가 행사를 안 해서 그렇지 남한의 자주권은 옛날보다 많이 나아졌습니다. 그에 비해 중국의 영향권 안에 들어갈 북한의 자주권은 점차 약화될 전망입니다.
지금 바로 이 시기, 미-중 사이의 세력교체의 틈바구니가 우리에게 절호의 기회입니다. 남한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북한이 중국의 영향권 아래 들어가기 이전인 10년 사이에 통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지난 정부가 5년을 까먹고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30년 후의 통일은 한반도 발전에 비전이 없습니다. 지금 한국이 여러 면에서 중국에 앞서 있을 때 통일이 되는 게 중요합니다. 미국과 중국의 힘이 52대 48로 비등할 때 우리의 10이 요긴하기 때문에 한국은 강대국의 경쟁에 중요한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 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평화도 가능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신속한 통일의 가능성은 있는 것일까요? 지금 제가 점치기로는 20대 80입니다. 희망이 20%이고 위기의 가능성이 80%입니다. 그러나 운동이란 게 뭡니까? 위기를 희망으로 살리는 게 바로 운동 아닙니까?
지금 현재, 남북 어느쪽 정부에도 희망을 걸기 어렵습니다. 지금 남한 정부는 북한에 대해 이념적으로 적대적이고, 북한 정부는 체제유지에만 급급합니다. 유일하게 희망을 걸 수 있는 것은 남한의 시민들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먹고 사는 일에 치중하느라 통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원래 성장 둔화시에는 극우세력이 등장하는 법입니다. 특히 한국 국민들은 국가에 대해 좋은 경험이 별로 없습니다. 지난 몇 세기에 걸쳐 나라가 민중들에게 보탬이 되어준 적도 없고요. 그래서 우리는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한 노력이 부족한 편입니다.
또한 북한은 우리에게 있어 유일한 통일 대상이자 최대의 적대국입니다. 이건 모순입니다. 이런 모순을 인정하고 미래의 이익을 위해 협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 안에서 살면 그런 것이 잘 안 보입니다.
독일에 사는 분들은 독일 통일의 경험을 통해서 잘 아실 겁니다. 독일 통일은 서독에서 준비하고 동독에서 결정 내려 이루어진 일입니다. 통일을 이룬 주체가 주민들이기 때문에 독일 통일을 놓고 외세가 간섭하기 어렵습니다. 유럽 다른 나라들이 독일이 통일하고 강대국이 되는 걸 암만 싫어하고 견제한다고 해도 독일 국민들이 주체가 되어 결정한 일은 간섭하기 힘듭니다.
우리도 북한이 통일을 결정하도록 하려면 남한에서 많이 퍼줘야 합니다. 남한 주민들이 주체가 되어 그걸 원해야 합니다. 통일에 드는 돈을 남에게 퍼주는 돈이라 생각하면 안 됩니다. 통일비용은 민족의 번영을 위한 투자비용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사실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는 독일 교포들은 한국의 통일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러분은 고국의 덕을 좀 보셨습니까? 국가에서 여러분 공부를 시켜줬나요, 아이를 길러줬나요? 국가 덕을 별로 못 봤다고요? 그럼 여러분은 고국을 안 도와주셔도 괜찮습니다. 국가가 국민을 안 도와줬는데 국민만 국가를 위해 헌신해야 하는 법은 없습니다. 더군다나 어디서든 통일운동을 하면 비난이 뒤따릅니다. 여러분들이 그런 비난까지 감수해가며 고국을 위해 헌신할 이유는 없습니다.
하지만 일제시대에 독립운동을 실지로 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연해주와 북간도에 살던 조선 동포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나라 덕을 보기는커녕 핍박을 피해 국외로 떠돌며 척박한 땅을 개척한 가난한 농민들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고국을 위해 독립자금 대고 독립군을 도와서 항일투쟁을 벌였습니다. 이들이 치룬 희생은 어마어마했습니다. 거사 후마다 한결같이 일본군에 의해 온동네가 몰살되고 초토화되었습니다. 그런 참혹한 상황에서도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통일운동 한다고 비난 받는 것에 비할 수 없는 희생이었습니다.
이들의 희생과 공로를 기리는 마음이 있는 분들은 고국의 통일운동에 힘을 보태주실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 독일 통일에 관한 정보와 사례를 전달해주셔도 좋을 것이고 여러분이 각자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을 것입니다. 그리고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