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사시는 한인분들께!\

뮌헨에서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집회를 한다니까 혹시 반정부 데모를 하나 싶어서 참여를 망설이는 분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또한, 고국 소식을 별로 접하지 못하는 분들은 세월호가 무슨 잡지 이름이냐, 한국에서 무슨 사고가 났길래 외국에서 모이느냐고 묻기도 하신다고 합니다. 지금 월드컵 기간에 집회를 열어서 얻고자 하는 게 무엇이냐는 질문도 받았습니다. 뮌헨 집회의 성격과 취지를 미리 알려드리고 여러분을 초대하는 것이 예의라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지난 4월 16일 아침에 인천에서 제주도로 가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3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배에서 나오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대부분의 희생자들은 수학여행 가던 고등학생들이었지요. 희생자들은 안에서 기다리라는 안내방송만 믿고 질서있게 앉아서 기다리다가 죽었습니다.

그들만 속은 게 아니라 국민들도 속았습니다. 설마했습니다. 해군, 해경, 특공대가 군함, 경비정, 헬기를 수십대 동원해서 출동하고, 어선과 상선, 민간구조대들이 앞다투어 몰려왔다기에 승객 전원 구조는 시간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온 국민이 보고 있는 눈 앞에서 300명이 넘는 생명들이 배와 함께 물에 가라앉아버린 것입니다.

“저희 가족들이 견디지 못하는 이유는, 그 아침에 다 살릴 수 있는 아이들을 그냥 수장시켰기 때문입니다. 해경이 와서 다른 조치를 취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냥 소리만 한번 치면 되는 거였어요. “빨리 나와라, 바다로 뛰어들어라” 이 한마디만 외쳤어도 이 아이들은 살았습니다.” 고(故) 유예은 양 아버지 유경근 씨의 말입니다.

그 며칠 사이에 국민들은 대한민국의 안전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한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얼마나 무능하고 무책임한지 낱낱이 알게 되었습니다. 희생자들과 함께 속은 국민들은 희생자들의 부모가 된 마음으로 함께 슬퍼하고 분노했습니다.

해외 동포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국에서 대형 인명사고가 처음 나는 일이 아닌데도 이번 사고는 특별했습니다. 많은 교포, 유학생들이 시간만 나면 인터넷에 매달려 한국 소식을 찾아보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뮌헨에 사는 서너 명의 한인들이 어느날 저녁, 퇴근 후에 잠시 만난 것도 혼자서는 너무 슬퍼서 서로 위로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희는 울분을 토했습니다. 승객이 가득 찬 배를 버리고 제일 먼저 탈출한 선장에 대하여, 우왕좌왕 실수투성이 정부에 대해서, 폐기 직전의 낡은 일본 배를 개조해서 짐을 더 많이 실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한 전 정부에 대해서, 배의 안전점검을 뇌물로 때운 감독기관에 대해서, 구조 책임을 맡은 지휘 장교가 “사실 우리 해경은 능력이 없습니다. 방법을 모릅니다. 장비도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던 해경에 대해서, 민간구조원 8명이 구조작업을 하고 있는데도 555명을 투입했다고 거짓말하는 공무원들에 대해서, 정부에 유리하게 보도해서 국민을 속인 공영방송에 대해서.

그런데 화를 내고 욕을 할수록 마음이 후련해지기는커녕 더 무기력하고 답답해지는 거예요. 당연하지요. 어느 한두 사람의 잘못이 아니라 나라 전체가, 우리 모두가 오랜 세월 만들어온 잘못인데 거기다 대고 욕을 하자니 제 얼굴에 침 뱉기 아니겠습니까?

이때, 우리의 치부를 하나씩 드러내고 죽은 희생자들을 잊지 말아달라던 유가족들의 호소가 생각났습니다. 그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우리가 할 일이 있을까? 저희는 뭔가 의미 있고 도움되는 일을 찾기로 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이는 저희의 슬픔을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다른 한인들도 지금 저희처럼 슬퍼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그 분들과 함께 위로를 나누고 힘을 모을 수 있는 집회를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제를 지내고 희생자 가족분들께 우리는 멀리 있어도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 분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잊혀지는 것이라고 하니까요.

같은 독일이지만 뮌헨은 베를린과 성향이 다른 도시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뮌헨에 사는 한인들도 베를린에 비해 보수적이고 각자 따로 어울리는 편입니다. 베를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한인들의 집회를 저희는 뮌헨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뮌헨 사람이라고 생각이 없고 슬픔이 없겠습니까? 아무리 멀리 살아도 고국을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고, 모든 사람의 안전이 보장되는 나라"로 만들고 싶은 유가족들의 바램이 바로 저희 마음 아니겠습니까?

그날 밤 뮌헨 이자르 강변의 중국집에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태어났습니다. 집회 신고할 때 대표 이름을 써야 한다기에 아이 제일 많은 사람이 대표를 맡기로 했습니다. 아이들의 미래가 달린 일이니까요. 희생된 아이들과 앞으로 희생될 수 있는 아이들의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 이모, 삼촌의 순수한 마음으로 집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런 순수한 마음으로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뮌헨의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정부든 야당이든 그 누구든 아무 편도 들지 않고, 잘하는 일은 칭찬하고 못하는 일은 끈질기게 지적하며 개선을 요구할 것입니다. 월드컵 중에도 옥토버페스트 기간에도, 남이 관심을 갖건 말건 매달 꾸준히 집회를 열어서 어떻게 하면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 진지하게 의논할 것입니다.

철저한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천만인 서명운동을 유가족들이 시작했습니다. 재발을 방지하려면 꼭 거쳐야 할 과정이란 것을, 나치의 역사를 성공적으로 청산한 것이 독일의 미래를 결정한 커다란 국력이란 것을, 독일에 사는 사람들은 잘 알 것입니다. 뮌헨 집회에서도 서명 받아 천만인에 보태겠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을 맞아 공영방송은 엉터리 보도를 남발함으로써 언론의 구실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각 방송사 내부에서 젊은 기자들의 용기에 기대어 진통이 있다고 하니 과연 개선될지 무산될지 저희는 매섭게 지켜보겠습니다. 그와 반면에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려고 노력하는 독립언론사들을 칭찬하고 그들을 후원하는 모금을 할 계획입니다. 국민에게 신뢰받는 경쟁상대가 생긴다면 공영방송도 정신 차리고 공정하게 거듭날 수 있으리란 희망을 걸어봅니다.

뮌헨 집회에선 자유로운 정신에 입각하여 서명과 모금은 자발적으로 합니다. 서명과 모금의 취지에 반대하시는 분들은 그냥 안 하시면 됩니다. 희생자를 기리는 추모의 단과 향을 마련해 놓았으니 전통식으로 절을 하셔도 좋고, 기도나 묵념을 하셔도 좋습니다. 참여하시는 모든 분들의 정치적 성향과 이념이 똑같을 수 없기 때문에 주최측에선 그 어떤 정치적인 구호나 피켓도 마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누구든 자기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는 있습니다.

추모사는 한인회장님과 각 종교계의 어른들께 골고루 부탁드렸습니다. 기꺼이 승낙하신 현각 스님, 양미화 한인회장님께 깊은 감사 드립니다. 추모공연 해주시는 뮌헨 음대생들(바이올린 신재원, 민희주, 플륫 정현진, 클라리넷 김진선, 바순 이은호)께도 뜨거운 사랑 보냅니다. 뒤에서 안 보이게 도와주신 많은 분들, 특별히 감사합니다. 먼 길 달려와주신 분들에 대한 답례로 집회 후에는 행사장소 주변의 건축, 역 사, 문화를 소개하는 답사를 준비했습니다.

날씨가 어떻든 상관 없습니다. 비 오면 우산 받고 오시고 햇살이 뜨거우면 양산 받고 오세요. 날씨가 쾌적하면 편안해서 좋고, 날씨가 나쁘면 비장해서 좋습니다. 오는 토요일에 뮌헨에서 반갑게 뵈어요.

뮌헨에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