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격리일기 1일째
2020.3.13. 금요일
(독일내 감염자 수 오전에 2700 명, 오후에 3100명.)
보통 금요일은 초과근무 까먹으며 쉬는 날인데 오늘은 동료가 아파서 내가 대신 일하러 나갔다. 어제부터 사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부모들에게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워츠앱으로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아침 9시경에 벌써 소식이 왔다. 다음주부터 2주일간 유치원과 학교 문을 닫는다고 한다. 주말에 결정나지 않고 오늘 결정났기에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작별인사 할 시간이 있어서 다행으로 생각했다.
아이들이 불안할까봐 마치 방학을 시작하는 듯 담담하게 즐겁게 이 사안을 설명해줬다. 손으로 악수하지 않고 팔꿈치 부딪히는 새로운 인사를 돌아가며 연습하며 유쾌한 작별파티를 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숙제 두 가지를 내줬다. 하나는 집에서도 유치원에서와 같이 스스로 옷 입고 벗기. 둘째는 집에서도 유치원에서와 같이 아기 언어가 아닌 어린이 언어로 얘기하기. 아기 언어는 떼쓰고 우는 것이고, 어린이 언어는 눈 똑바로 뜨고 따박따박 얘기하는 것을 뜻한다. 부모들은 자기 아이들이 유치원에 얼마나 똑똑하게 잘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아직도 아기처럼 대한다. 아이들의 땡깡에 늘 속아넘어간다.
집에 와서 새로운 소식을 받았다. 우리 유치원 아이의 엄마가 방금 확진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아이들을 비롯하여 그 집 식구들은 오늘 검사를 받아서 며칠 후에 결과가 나온다고 일단 모두 자발적 격리모드에 들어가서 보건소의 연락을 기다리라고 했다. 아이가 확진판정을 받기 전에는 우리는 밀착접촉자에 들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어느 정도로 격리해야 하는지 잘 몰라서 우왕좌왕했다. 보건소에서 곧 연락해서 알려주겠지…
저녁에 댄스학원 가는 것을 포기했다. 안 그래도 사람 많이 모이는 곳에 가는 일이 좀 찝찝했는데 이제는 가지 않을 확실한 이유와 핑계가 있어서 댄스학원에 덜 미안했다.
이제 자가격리에 들어가니 집에 생필품이 충분한지 점검해봤다. 나는 유치원에서 일하고 남편도 큰 회사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므로 직장에서 언제 누가 감염될지 모르므로 여차하면 당장 2주일은 밖에 안 나가도 사는 데 불편이 없도록 우리는 이미 준비를 다 마쳐 놓았다. 일주일 전부터 사재기한다는 의심을 받지 않을 정도의 양으로 야금야금 사들였다. 점검하다가 남편이 나 몰래 더 사서 그릇 사이사이에 꾸겨박아 숨겨놓은 통조림, 파스타, 밀가루를 발견했다.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남편이 귀여워서인지 아니면 비축해놓은 생필품이 넉넉한 게 안심이 돼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다. 앞으로 다가오는 미지의 생활에 대해 모험심도 느껴졌다. 마치 전쟁놀이 하는 철없는 아이들 같이…
나는 그간 늘 시간에 쫓기고 건강을 조금씩 해쳐가며 무리하게 살았다. 이제 푹 자며 미뤄두었던 일을 하나씩 차근차근 해치우자 생각하니 이 상황이 싫지만은 않다. 곧 지나갈 일이니 이 기회를 부저런히 잘 활용해서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어야겠다.
아침수행 일기: 바깥 세상이 어수선하고 어지러운 오늘을 마음을 맑히는 정진으로 시작했다. 오늘 하루 어떤 일이 일어나도 잠시 흔들렸다 제자리에 서는 오뚜기처럼 굳건히 살 것이다. 오뚜기추처럼 내 안에 내장된 수행력을 믿으면 가볍고 명랑하게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