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일이고 결혼기념일이고 도대체 날짜 따지는 것을 귀찮아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남이 눈치채지 않으면 나도 그냥 슬그머니지나가곤 하였다.

50번째 맞는 내 생일을 앞두고 남편이 이번만큼은 파티를 해야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법정스님의 말을 빌어 시간에 금이그어져 있는 것도 아닌데 몇 번째 생일이라는 게 뭐 그렇게 중요하냐고 웃고 말았다. 친구들이 음식을 차려 줄 테니 파티를 하자는것도 “나는 내 생일에 일하기 싫다”는 말로 거절했다.

그런데 생일이 다가올 수록 점점 50년이라는 숫자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이 깨달아졌다. 한 세기의 절반이라는 시간, 인류의역사로 보면 얼마나 많은 발전과 퇴보가 일어날 수 있는 시간인가? 그 시간 동안 다른 인연들과 주고 받은 미소와 한숨, 눈물과웃음은 또 얼마나 깊고 너른지?

나는 반세기라는 숫자가 자랑스러워서 기분이 점점 좋아졌다. 내가 참 대단한 일을 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50년이라는 세월동안크게 죄짓지 않고, 크게 타락하지 않고 이렇게 내 자리를 지켜왔다니. 엄청난 나의 수고에 엄청난 행운이 겹쳐진 결과가아니겠는가?

내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아둥바둥하였지만 내가 남의 것을 빼앗지는 않았고, 작은 이익을 구하려 잔머리는 굴렸지만 두고두고손가락질 받을 만큼양심의 빚은 지지 않았고, 여유는 없었어도 늘 주고 싶은 마음으로 살았으니 이만하면 스스로 큰 나무는 못 되었어도 든든한 풀밭을이루는 질긴 풀 한포기는 되지 않았을까? 이런 내가 얼마나 기특한가? 게다가 운도 좋아서 내가 노력한 만큼 댓가를받는다는, 지구상의극소수에게만 주어지는 특권을 누리며 살았다.

나는 나의 오십을 정말로 축하하고 싶어졌다. 생전 처음 남편에게 선물을 요구했더니 안 그래도 “저 공산당 마누라(호화상품싫어한다는 이유로)에게 뭘 선물하나”하고 고민스럽던 차에 얼씨구나 좋아했다.

나는 남편과 단둘이 떠나는 여행을 희망했다. 내 생일 하루 전날에 우리는 평소처럼 일을 하고, 저녁에는 댄스강습까지다녀온 후에 역으로 향했다. 부다페스트 행 밤기차를 타기 위해서였다.

환경보호를 위해서 대륙 내에서는 비행기를 타지 않는다는 남편의 원칙과 평생에 한번은 2인용 침대차를 타고 싶다는 나의 소망이겹쳐진 결정이었다. 늘 우리는 가격이 저렴한 남녀혼성 6인용 침대차를 이용해왔는데 그것도 사실 불편한 점은 없었다. 하지만 특별한 날을맞아 나는 남편과 단둘이 한 칸을 점령하는 호사를 누리고 싶었다. (왕복 318유로=약 40만원이나 했다, 깽!)

좁고 단단한 침대지만 시트도 깨끗했고, 무엇보다도 우리끼리 있으니까 옷을 갈아입을 수 있어서 편안했다. 기차가 흔들리는 게쾌적해서 쿨쿨 잠도 잘 잤다.

이튿날 승무원이 아침을 가져다 주었다. 침대에 나란히 걸쳐앉아 눅눅한 크로와쌍을 뜨거운 다방커피에 찍어먹으니 세상에 사는 어느왕비가 부럽지 않았다. 전날 아이들이 가방에 넣어준 생일선물을 풀어보며 내 생일을 축하했다.

부다페스트는고풍스런 유럽 대도시의 면모를 아낌 없이 갖추고 있었으며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려고 기지개를 켜는 중이었다. 공산치하의방치로 인한 거미줄이 아직도 다 걷히지 않은 상태의 고색창연한 도시를 만난 것은 나의 행복이었다. 공산주의도 문화파괴적이지만자본주의의 파괴력 또한 무시하지 못한다.

옛날에 건축과 학우가 내게 보낸 연애편지에는”세상에서 제일 위험한 짐승은 건축가이다”라고 쓰인 신문기사의 제목이 오려져 들어 있었는데, 그것을 동봉한 그의 의도를 나는 아직도 모르고 있지만, 살면서 그 문장이 생각나는 상황이 가끔 생긴다.

이번에 부다페스트의 힐튼호텔을 보았을 때도 그랬다. 전세계에 지어진 힐튼호텔 중에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라는 그 건물을 보는 순간 나는 기가 막혔다.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아름답고 경관 좋은 유적지에 1977년에 지어진 힐튼호텔은 공산독재와 자본주의가서로 손잡았을 때 어떤 파괴력으로 나타날 수 있는지를 보여 준 셈이다.

갑자기 힐튼가의 상속녀 패리스 힐튼이 생각났다. 그 아가씨 술 마시고 운전하다 유치장에 들락거리며 민폐나 끼치느니 건축사라도공부했으면 좀 좋아? 나같은 범인은 평생을 바쳐 연구한 결과 어느 소도시의 전통가옥 몇 채 구원했다고 주민에게서 감사편지 받는 걸로 눈물나게뿌듯한데, 힐튼가의 자녀라면 같은 실력으로 구원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아? 떽!

건축을 보며 역사와 사회상을 읽어나가는 내게 오늘의 부다페스트는 참으로 맛있게 차려진 식탁이었다. 내심 동양식과 서양식 음식이 알록달록 어우러진 뷔페를 연상하고 갔는데, 막상 가 보니 전형적인 서양식 고급요리로 격조 있게 꾸며진 장중한 상차림이 아직 은수저를 미처 다 닦지 못한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부다페스트의 건축에 대한 얘기는 하루종일 떠들어도 다 못할 만큼 많으므로 언제 날 잡아 제대로 정리하기로 하고…

이번 여행에서 우리는 생전 처음으로 휴가를 위해 별이 세 개나 붙은 호텔을 예약했다. (하루에 115유로씩 총 230유로=약 30만원 들었다, 깨갱!) 아침에 호텔식 뷔페를 대하면서 남편이 감격해서 내 손을 잡았다.

“우리 둘이 함께 호텔에 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
“그래, 이렇게 호강하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아이들하고도 한번 해 봤으면 좋겠어.”

무제한 제공하는 호텔의크로와쌍을 우리는 평생 유지해온 검약의 습관대로 둘이서 나눠먹었다. 물질이 넘쳐나는 오늘날 물질에 대해 감사와 기쁨을 느낀다는건 또하나의 재산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갑자기 호강을 하려니 몸이 흥분했나 보다. 밤에 남편이 자다 말고 내 코를 두 번이나 꼭 잡았다. 깨는 순간 내 목에서 “갸르릉”하는 소리가 나는 걸 나도 들었다. 이튿날 아침에 남편이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당신 이제 새로운 인생기에 돌입했다는 걸 나에게 과시하려는 거야?”

글쎄 말이야 어쩌구 맞장구를 치다 보니 약간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밤에 자는데 삭신이 좀 쑤시네, 요즘은 잠이 좀 편치 않네 하며 은근히 동정심을 유발했다. 남편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병원에 가 보라고 했다. 사람이 뭘 그런 일로 병원에 다 가느냐는 대꾸에 그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당신은 이젠 조심해야 하는 나이라니까?”
“자기는?”
“난 아직 사십대야. 아직 젊거든. “

너! 두고 보자. 삼 년 후에 보자구! 나는 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예전에는 드문드문한 새치가 비듬처럼 보였는데이제는 숫자가 늘어나 주류에 편승하니 오히려 보기가 좋았다. 젊어서는 새까만 단발이 좀 깍쟁이 같은 인상을 주었다는데 이제 색이바래서 부드럽게 보일 것이다. 머리를 늘 보송보송하게잘 감고 다녀야지. 순한 빛깔의 머리에 어울리게 마음씨도 순하게 써야지.

우리가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즐긴 것은 도나우(다뉴브) 강변의 경관이었다. 특히 야경이 아름다워서 우리는 밤마다 산책을 나갔다. 얼마 전에감명 깊게 본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배경이 되는 유서 깊은 다리를 걸어서 건너다니며 우리는 이 도시의 레스토랑이나 거리의악사들이 “글루미 선데이”를 연주하지 않는 것을 의아하게 생각했고, 아직도 금지곡인지 궁금해했다.

마지막 날 뮌헨으로 돌아가는 밤기차를 타기 전에 우리는 강변의 야외 레스토랑에서 맵고 뜨거운 헝가리 스프를 먹었다. 하늘이 점점붉게 물들어 강물을 적시고, 그 빛이 다 바래기도 전에 강 건너 언덕 위의 성과 교회와 유적들이 서서히 야광을 발하며 밤하늘로 떠오르기 시작했다.이어 강 위의 다리들도 점점이 찍힌 조명을 달고 찬란하게 빛났다. 나는 실눈을 뜨고 라슬로와 일로나와 안드라쉬가 섰던 자리를가늠해 보았다.

우리가 레스토랑을 떠나려는 순간 거짓말같은 일이 일어났다. 그때까지 재즈로 일관하던 3인조 밴드가 “글루미 선데이”를 연주하기 시작한것이다. 우리는 반짝이는 강물과 다리를 바라보며 음악을 들었다. 남아 있는 헝가리 돈을 탈탈 털어서 밴드에게주고 발길을 돌렸다. (부다페스트에 체류하는 동안 우리는 하루에 90유로씩, 사흘동안 약 30만원 지출했다, 깽깽깽!)

밤기차까지 쳐서 4박 3일의 여행에서 우리는 원없이 먹고, 보느라고 총경비 백만 원쯤 썼다. 3일 동안 쓴 걸로생각하면 참 큰 돈이지만 50년을 생각하면 용서받을 수 있는 금액 아닐까? 하지만 우리 쉼터에서 검정고시 준비하는 어떤 아이 반 년치 학원비는 되겠구만.일단 호강했으니까 앞으로 부지런히 돈 벌어서 갚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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