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이 꼭 남의 일만이 아니라는 건 가까운 주변의 자기 가족들만 돌아보아도 알 수 있지요.”
“가족까지 돌아볼 필요가 뭐 있나요? 나 하나만 봐도 알지요.”

예전에 남편의 일 때문에 만난 손님이 무슨 이야기 끝에 한 말에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톡 튀어나온 대답이다. 초면으로 서로 어려운 사이였던 그는 나를 멍하니 쳐다보는 걸로 반응했지만 나는 그가 내 말에 100% 수긍했으리라믿는다.

사람은 누구나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산다. 특히 나는 여자로서 우울증과 관계가 밀착하다

어려서 어머니의 주기적이고 이유 모를 신경질을 경험하며 나는 그것이 생리와 상관이 있으려니 막연히 감지했다. 그러나 나도 그럴수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평소에는 성격이 무던한 내가 가끔씩 시한폭탄으로 변해서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폭발하는 것을 것을 두고 나는 “깊이 숨어 있는나의 위선”이라 믿어왔다. 나의 주기적인 시한폭탄이 어머니의 신경질과 같은 종류라는 것을 수많은 반복을 통해 자연스럽게 깨치게된 후에도 나는 나에게 너그럽지 않았다. 나의 의지로 이를 극복하려고 노력했고, 실패할 때마다 나의 “의지박약”을 한탄했다.남자들과 경쟁해온 나로서는 여성의 핸디캡을 극복하는 것이 생존의 법칙이었으니까.

그러다가 나는 우울증이 “내 탓”이 아니라 화학작용 탓으로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내가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의일이다. 원래 그랬던 것처럼 혈압만 좀 낮을 뿐, 매우 양호하고 행복한 임신기를 보내고 있는 나에게 하루는 의사가 저혈압 약을처방해 주었다. 태아에게 충분한 혈액공급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우려해서였다. 태아의 안녕을 우선하는 산모로서 나는 기꺼이의사의 말을 따랐다.

갑자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남편이 하루아침에 파렴치한으로 변한 것이다. 공연히 나를 무시하고, 말을 해도 비꼬아서 했다.임신한 나를 부려먹으려고 들었다. 적어도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가만 있을 내가 아니지. 내가 이제 발목 잡혔다고 유세하는 거야? 임신 아니라 임신 할아비래도 내가 너한테 호락호락 당할 성싶으냐? 나는 악을 쓰며 덤벼들었다. 그런데 뱃속의 아기까지 합세했는지 악다구니의 위력이 가히 폭발적이었다.

남편이 움찔했다. 나도 움찔했다. 남편보다 내가 더 놀랐다. 내가 알던 내가 아니었다.

더욱 무서운 일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게 아닌데 싶으면서도 나는 난리를 멈출수가 없었다. 남편이 당황하여 도망가 버린 후에 나는 분을 참지 못하고 가위를 집어 들었다. 손에 들린 가위를 잠깐 바라보다가나는 생각났다는 듯이 내 머리털을 움켜쥐었다. 싹둑싹둑 소리에 소름이 끼쳤다. 나의 의지가 내 몸을 떠나 내 머리 위에서 나를내려다보며 “너 왜 그러니?“하고 묻고 있었다.

그것은 지옥이었다.

나는 기운이 빠져 침대에 누웠다. 누워서 내 처지에 대한 연민과 남편에 대한 원망을 부풀리고 되새겼다. 그렇지만 내 마음 한 구석에서나오는 “너 왜 그러니?“하는 소리를 막을 수는 없었다.

정말 너 왜 그러니? 어제에 비해서 뭐가 달라졌는데?

약! 약이다. 저혈압 약!

나는 후들후들 떨리는 손으로 그날 아침에 복용한 약의 설명서를 꺼냈다. 약을 먹기 전에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거기엔 신경증에대한 아무런 경고도 쓰여 있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나의 증세가 절대로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신했다.약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미쳐 날뛰는 엄마의 혈액이 태아에게 활발하게 공급되는 일이 오히려 두려운 상황이었다.

약의 위력이 떨어진 다음 날 나는 거짓말처럼 정상으로 돌아왔다. 정신이 버쩍 드는 경험이었다.

그 후에 찾아온 산후우울증. 그런 게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지만 나는 “잘난” 사람이니까 그런 구질구질한 것들을 안 겪을 거라고막연히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호르몬의 농간 앞에 잘나고 못난 사람이 어디 있다고…

일련의 사건 이후로 나는 몸의 화학작용과 호르몬의 위력 앞에 겸손하게 되었다. 매달 나를 찾아오는 화증과 우울증을 나의 의지로이겨내려고 자학하는 것 대신 사람이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였다. 나의 무능을 탓하지 않고 오히려 당연한 일로 드러내어 널리선전하고 이해를 구했다.

“나 생리라서 지금 성질 사나워. 단순한 호르몬 작용이니까 상처 받지 마.”

누가 아주 밉게느껴지거나, 회의적인 상황이 닥치면 “참, 나 지금 생리 중이지? 그거 끝난 다음에 다시 한번 보자”하며 나의 판단능력을 궂이믿지 않고슬슬 다루며 시간을 벌었다.

다른 여성들의 도발적인 언동도 같은 이유에서 너그럽게 보아줄 수 있었다. “저 여자 지금 생리중인가 보다. 생리가 끝나서정상으로 돌아오면지금 일을 후회할 거야”

그 대신 남성들에게는 좀 가혹했다. 생리도 안 하는 것들이 성질이 고약하기는? 떽! 또는, 너희는모른다, 이 깊은 심연을…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 기분을… 아무 것도 모르면서 오만하기는? 쳇!

나는 지금 완경을 치루는 중으로 가끔씩 우울증을 경험한다. 사소한 일에 마음이 섭섭하고 공연히 울적할 때가 있다. 이럴 때 내가 진작에 생리 우울증과 친구가 된 것은 내게 큰 도움이된다. 이게 다 호르몬의 작용일 뿐, 내가 특별히 못나서 그런 게 아니려니… 타협적인 체념은 나를 편안하게 해준다. 힘이소진되는 인생기에 심술궂은 늙은이가 되지 않는 비결은 편안한 마음이 아닐까?

필연적으로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고 남은 시간을 상상해 보는 완경의 시기를 맞아 나는 무기력증을 동반하는 우울증의 포로가 되지않는 방법을 궁리하게 되었다. 우울증을 내 몸의 현상으로 인정한다는, 수동적인 체념을 넘어 적극적으로 나의 우울증을 관찰해보았다. 언제 나의 우울증이 도지는가?

내가 세속의 잣대로 내 가치를 잴 때 열등감과 함께 우울증이 왈칵 밀려오는 것을 발견했다. 세속의 잣대를 들이댈 때 이 세상에서패배자가 아닌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속의 잣대란 위아래로 끝이 없는 층계여서, 아무리 성공한 사람에게도 항상 “더 높은”이라는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속의 잣대를 생각한다는 그 자체가 자학이고,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병의 증세이다.

그러나 엄정하게 살펴 보면, 만국공통의 세속의 잣대라는 물건은 없다. 사람은 누구나 남이 납득할 수 없는, 엉뚱한 열등감을가지고 있는데, 각자 이 열등감의 깊이를 들여다 보며 세속의 잣대라 칭하는 것은 아닐까? 누가 뭐라지도 않는데 괜히 저 혼자주눅이 들어 세속 탓을 하는 건 아닐까?

나는 나의 이런 마음병을, 내가 특별한 존재로서 남보다 잘 살았단 소리를 들으려는 허영심을 버림으로써 고쳤다. 내가있으나없으나 이 세상에는 별로 차이가 없고, 나는 들풀같이 미미한 존재로서 오늘 하루를 남과 더불어 잘 보내면 성공이라는 마음을 가지니까우월감이 먼저 사라지면서 열등감까지 데리고 갔다. 우열과 귀천을 따지지 않으니 하고 싶은 일이 많이 보였고, 내 배짱대로 그 일을 감행할의욕이 솟았다. (나 혼자서 도 닦아서 깨친 게 아니라 정토회 법륜스님의 법문을 듣고 깨쳤다.그리고 지금도 늘 되는 건 아니고 아직도 상황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방황하며 산다. 하지만 어느쪽에 등대가 있는 줄은 안다.)

또한 나는 나와 내 가족의 안녕에만 신경을 쓰면 마음이 좁아지고 우울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작은 손익에 신경을곤두세우는, 이기적인 마음가짐이 세상을 싸움터로, 이웃을 경쟁상대로 보게끔 만드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럴 때는 이웃이나 사회를위해 뭔가 이타적인 일을 하고 나면 우울증이 스르르 사라진다. 세상과 내가 적대관계가 아니라 한몸이라는 걸 느껴서 정서적으로안도감이 드는 걸까?

신체와 정신의 균형이 깨져도 나는 우울하다. 주로 앉아서 일하는 나는 그런 이유에서 노가다를 좋아했고, 그런 이유에서 요즘 장애아이 모모를 봐 주러 유치원에다니는 일이 좋다. 노가다를 뛰던, 청소를하던, 자전거를 타고 유치원에 가서 모모를 안고 뛰던, 아뭏든 책상 앞에 앉는 시간을 줄이는 것은 몸에만 좋은 게 아니라마음에도 좋다.

또 나는 사소한 일이 밀리면 인생이 벅차게 느껴져 무기력하고 우울해진다. 불편한 전화, 어려운 편지, 귀찮은 업무,막연한 약속, 내가 스스로 내 준 숙제, 청소, 빨래, 설거지 등등 아주 사소한 일도 밀리면 겁난다. 해결책은? 나도 모른다,해치우는수밖에.

일이 밀리지 않는 비법을 아는 사람 있으면 부디 한수 가르쳐 주시기 바란다. 이때 모모를 줄이고 그 시간에 밀린 일을 하라고조언하지 마시라. 내가 모모을 통해 버는 돈은 우스운 금액이지만 그 덕분에 굳는 운동비와 심리치료비를 따지자면 내가 얼마나 큰이익을 보는지 모른다. 고물고물한 유치원 아기들을 보고 있자면 내 몸 안에서 엔돌핀이 퐁퐁 솟는 게 느껴진다. 그 엔돌핀은 일이밀려서 오는 우울증을 해소하는 데 꼭 필요하다.

다람쥐 쳇바퀴 돌기라고?

나는 인생이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단한 항해를 계획하여 좋은 배를 만들겠다고 설계도만 만지작거릴 게 아니라, 조각배라도우선 띄워 놓고이리저리 땜질해가며 파도를 타다 보면 어느새 갈매기도 만나고 노을도 만나고 별빛도 만나고, 그것이 바로 항해 아니겠는가?얼마나 멀리, 어디까지 가서 죽었는지, 그 자국이 물에 남을 것도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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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이자 강의 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