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씨가 화창한 어느 주말, 우리나라 식으로 치면 고등학교 2학년짜리 아들 학급의 학부모 친목모임이 이자 강변의 한 음식점에서열렸다. 우리 부부는 그날 저녁에 달리 갈 데가 있어서 참석을 망설이다가

좀 늦게 도착하였다. 자리가 거의 다 차서 나는 남편과떨어져서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들 곁에 앉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아들의 학급에는 폭력이나 왕따 등 부모들이 함께 알고해결해야할 별 문제거리가 없었다. 그래서 교직원의 부족으로 수업이 자주 빠지는 현상에 대한 일반적인 성토에 이어 곧 개별적인잡담의 순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때 운이 나쁘려니 내 옆에 앉은 사람들이 서로 은근히 돈자랑을 하기 시작하였다. 한 엄마는 자기 아들을 무슨무슨 백작 부인이주관하는 몇 백 유로짜리 사교춤 코스에 등록했다고 자랑하였다. 주파수가 맞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남이 거드름 피우는소리를 들어주는 일에 짜증이 나 있던 내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아이에게 묻지도 않고 그랬다고요? 아이가 싫다 그러면어쩌시려고?”
“싫어도 할 수 없지요. 그 비싼 강습비를 이미 냈는걸요. “
나는 참지 못하고 “하하하, 돈을 아이가 냈나요?자기 돈이 깨지는 것도 아닌데 싫은 걸 왜 억지로 한담?” 하고 웃어버렸다.

대화는 사교춤에 관해서 이어졌다. 모두들 앞을 다투어 사교춤이 얼마나 품위있고 필수적인 오락인가에 대해서 역설하였다. 독일에서수준있는 사회생활을 하려면 사교춤을 출 줄 알아야 하는 거라고, 3개월만 배우면 되는 거라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이 외국인인 내게가르쳐 주듯 말했다.

이때 떨어져 앉아서 다른 사람들과 얘기하던 남편이 내게로 오더니 오늘 춤추러 가려면 지금 일어나야 하는데 어떻게 하겠느냐고물었다. 다른 사람들이 놀래서 내게 와글와글 묻기 시작했다.

“어머, 사교춤을 추러 가요? 얼마나 배우셨어요?”
“2년이요.나도 3개월이면 될 줄 알고 시작했는데 3개월 지나고 보니 어림도 없어서 계속 배우고 있어요.”

부러움과 존경의 감탄사를 듣자나는 괜히 결벽증이 동해서 얼른 덧붙였다.
“아아, 우리는 사교를 위해서가 아니라 중년의 위기를 극복하려고 시작했어요.”
“오오!”

그날 저녁에 친한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학부모 모임에서 서로 멀리 떨어져 앉아서 할 말을 못했다며 의논할 게 있다고 했다.우리 아이들이 슬슬 사교춤을 배워야할 나이가 되었는데 녀석들이 아직 철이 없어서 싫다고만 하니 어떡하겠느냐, 단체로 등록을 해놓으면 친구들이랑 노는 맛에 그래도 배우지 않겠느냐는 거였다. 이 엄마도 내게 사교춤은 아이들이 나중에 상류사회로 진출하려면필수라는 말을 하였다. 나는 웃음을 누르며 아이에게 물어보겠다고만 하였다.

저녁을 먹으면서 아들에게 물어보았다.
“내가 너를 사교춤 코스에 등록한다면?”
“엄마 돈만 깨지는 거.”
“네 친구들이 너만빼고 전부 사교춤을 배우러 다닌다면?”
“나만 시간 낭비를 안 하는 거.”
“네가 사교춤을 안 배워서 출세에 지장이 있다면?”
“나는 춤이 아니라 실력으로 출세해.”
“출세를 하더라도 사교춤을 못 춰서 상류사회에 진출하는데 지장이 있다면?”
“나는 억지로춤춰야 하는 사회에는 오라 그래도 안 가.”

아들보다 세 살 어린 딸아이가 내 바톤을 이었다.
“오빠가 사교춤 못 춘다고 여자들이 싫어하면?”
“나도 그런 여자들 싫어.”
“나중에 춤추고 싶어하는 애인을 사귀게 되면?”
“그때 가서 같이 배우면 돼, 엄마 아빠처럼.”

나는 남편이랑 눈을 맞추고 웃었다. 우리의 표정에서 아들을 대견해하는 눈치를 알아챈 딸아이가 얼른 쐐기를 박았다.
“나는오빠처럼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평범한 사람이야. 그래서 나는 열 여섯 살이 되면 사교춤을 배울 거라구. 댄스파티에 갈 때는어깨에 끈이 달린 까만 드레스를 입을 거야. 드레스는 내가 저금해서 살 테니까 구두는 엄마 아빠가 사 주실 수 있을까? “


(2005년 4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