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라 안 그래도 빵집이 많은 우리 동네에 빵집이 또 하나 새로 생겼다. 점원의 손을 통해 빵이 오가는 기존의 빵집과는 달리

슈퍼마켓처럼 손님이 진열대에서 빵을 직접 쟁반에 담아 계산대에서 계산한 후 스스로 봉지에 넣어서 가는, 일명 디스카운트빵집이다. 인건비의 절약으로 가격이 다른 빵집보다 월등히 싸기도 하려니와 크로와쌍이 맛있어서 나는 곧 이 집의 단골이 되었다.(껍데기는 바삭바삭하고 속살은 촉촉한 크로와쌍 하나에 70센트, 다른 빵집에선 1유로 훨씬 넘는데 맛도 떨어짐.)

몇 번 다녀본 후 나는 또다른 이유에서 이 집을 좋아하게 되었다. 아침 6시 반경에 아직 잠이 덜 깨어 눈을 비비며 비척비척들어서는 나를 맞아주는 것은 진작에 잠에서 깨어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의 생동감이었다. 공기에 짙게 배인 커피향은 우유거품을만드는 카푸치노 기계의 날카로운 소음을 용서하게 만들고, 경박하게 눈부신 네온의 조명은 구석에 놓인 몇 개의 탁자에서 커피를마시는 사람들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비추었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두런두런 대화하는 사람들도 있고, 혼자 앉아서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허공을 응시하는 사람도 있었다. 하얀색,파란색 작업복을 입고 안전화를 신은 건설노동자들, 새벽일을 벌써 한바탕 뛰고 중간휴식을 취하는 주홍색 복장의 환경미화원들사이에는정장차림에 서류가방를 든 신사 숙녀도 앉아서 커피와 빵을 들며 하루를 계획하고 있었다.

싸구려 실내장식에 걸맞게 어수룩한 터키 여주인은 우아하거나 교태스럽지는 않아도 변덕 없이 늘 순해서 손님들의 마음을 편안하게했다. 주변에 빵집이 많다지만 새벽부터 문을 열어 커피를 제공하는 집은 적은 까닭에 곧 단골들이 생겼다. 같은 과 출신이라는이유로 나는 공사장 인부들에게 동병상련의 정을 느껴, 20가구가 사는 우리집 안팎에 공사가 있을 때마다 인부들에게 따뜻한커피를 대접하는 버릇이 있는데, 이때 알게된 페인트공도 이 빵집에서 자주 만났다. 내게 반가이인사하는 그의 활기찬 표정은 아직도 비몽사몽에서 헤메던 나에게서 잠이 확 달아나게 만들었다.

빵봉지를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나의 발걸음은 아까 같은 길을 걸었을 때에 비해서 한결 활기찼다.

나는 매일같이 이렇게 아침을 시작하는 빵집 여주인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묵묵히 일하러 가는 사람들의첫걸음에 향긋한 커피와 고소한 빵을 실어주는 일은 얼마나 보람이 있을까? 나도 이런 일을 하고 싶다. 나도 이 빵집에서 일하고싶다. 나는 손님들에게 환하게 웃어줄 거야. 그러면 우리 모두의 하루가 더욱 행복해질 거야. 언제 한번 물어봐야지. 새벽에만 아르바이트 할 사람이 필요하면 내가 하겠다고 해야지. 아, 꿈이란 건 실현되기 쉬운 거구나.

이런 저런 공상에서 퍼뜩 깨어났을 때 나는 어느새 우리집 대문 앞에 와 있었다. 손에는 빵집 쟁반을 들은 채로. 아뿔사!

나는 그 길로 허둥지둥 빵집으로 되돌아갔다. 쟁반을 돌려주며 미안하다고 했다. 빵집 주인은 내가 쟁반째로가지고 나가는 것을 자기도 보았다며 순하게 웃었다.

이 빵집에서 일하기는 이제 틀렸네. 이런 나를 어떻게 믿고 일을 시키랴?

몇 주 후에 그 빵집에서 아르바이트 할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가 붙었을 때 나는 차마 입이 안 떨어졌다. 아, 세상에 쉬운 일이 없구나. (요즘 그 집에선 내 대임으로 얼굴이 넙데데하고 눈이 부리부리한 터키 남자가 일하고 있다. 그래도 나는 그집에 빵 사러 가면 그 남자가 나보다 일을 잘 하는지 유심히 보기도 하고 공연히 주인의식이 발동하여 다른 손님들이 함부로 놓고 간 쟁반도 슬금슬금 치우고 흐트러진 빵봉지도 반듯하게정리하곤 한다.)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친구는 배꼽을 잡으며 웃었다. 내가 가끔 그런다는 것이었다. 한번은 내가 싸구려슈퍼의 카터에 일용할 양식을 잔뜩 담아서 밀고 가는 것을 보고 얘가 노숙자가 되었나 싶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고 하였다.그녀가 “너 어디 가니?” 물었더니 내가 “아참!” 하며 슈퍼로 다시 들어가더라다는 것이다. 그 친구 말을 들으니 내가 정말로그랬던 기억이 나서 나도 같이 배꼽을 잡았다.

내 또래의 친구들은 자신들에게 이런 일이 생기면 노인성 치매의 초기증상이 아닌가 하여 겁이 더럭 난다고 한다. 남편도 뭔가 자기기억에 자신이 없으면 오히려 화를 버럭버럭 내면서 우기는데, 그 이면에는 치매에 대한 불안감이 숨어 있다. 하지만 나는 내가워낙 이렇게 생긴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면 때문에 어려선 억울한 일도 더러 당했고, 상처로 남은 기억도 더러 있다.

내가 중학교에 다닐 때, 가사 시간에 일어난일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히스테리가 정상이 아니었던 여선생님은 한학생씩 앞으로 나오게 하여 그간 만든 작품을 검사하고, 성적이 무슨 비밀인양 수첩을 가리고 적은 후 “다음!“하고 외쳤다.

나는내 차례가 되어 앞으로 나가 선생님 앞에 선 것까지만 생각이 난다. 틈만 나면 딴생각 하기를 즐기는 나는 선생님이 작품을훑어보고 수첩에 기재하는 그 짧은 순간을 활용하여 공상의 나래를 펴고 훨훨 날았음이 분명하다.

잠시 후에 내가 정신이 들었을 때는 분위기가 여간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교실은 쥐죽은 듯 조용했고, 선생님은 착 깔린 목소리로나를 야단치고 있었다. 조금 시간이 지체하여 내가 간신히 알아들은 말은 “왜 봐?” 였다. 내가 선생님이 수첩에기재하는 내용을 훔쳐보려고 했다는 것이었다. 마주 보고 선 자세에서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으나 지금 생각해보니 아마 나의 시선은 수첩과 선생님의 머리를 관통하여 허공을 찌르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내가 상황을 파악했을 때는 변명을하기에도 너무 늦어버린 시점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 과목에서 낙제점수를 받았는지 어쨌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 후에도 간혹 비슷한 일이 있어났다. 아인슈타인인지 에디슨인지 생각에 골똘한 나머지 달걀 대신에 시계를 끓는 물에 넣었다는에피소드가 내게는 하나도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사람이 당연히 그럴 수도 있지, 그럼?

세상은 짧게 보면 혹독하지만 길게 보면 공정한 면도 있는지, 이렇게 어리버리한 나의 적성에 맞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나는그럭저럭 잘한다는 소리도 들으며 살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이런 어리버리 성향을 비범한 집중력 또는 창조적 상상력이라 미화하기를서슴치않는다.

얼마 전에 고등학생인 딸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더니 씨근씨근 화를 냈다.
“수학 선생님이 오늘 나 보고 뭐라 그런 줄 알아? 내가 공부시간에 눈 뜨고 꿈 꾼대. 사람을 이렇게 모함할 수가 있어?”
“어머, 그래? 그래서 너는 뭐라고 대답했는데?”
“아무 대답도 못 했어. 나는 그게 지금 제일 억울하다구.”
딸은 저 혼자 또 한바탕 화를 낸 후에 말을 이었다.
“나는 그 얘기를 수업이 끝난 다음에 친구한테서 들어서 알았거든. 그자리에서 알았다면 내가 가만 있었겠어?”

으흐흐, 대를 물리는 비범한 집중력… 창조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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