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기원전 만 년대인 구석기시대에도 춤을 추었다는 증거가 발자욱이나 동굴의 벽화로서 남아있다. 처음엔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따로 무리를 지어 춤을 추다가

약 5000년 전부터 남녀혼성의 단체춤이 생겨났다.

오늘의 사교춤은 12세기에 유럽에서추던 춤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쾌락을 억압하던 교회의 영향으로 중세시대에는 춤이 금지되기도 하였으나 그래도 사라지지않고 궁중무와 민속무로 갈려서 발전해왔다. 그후 시민계급이 새로이 생겨나면서 이성의 몸에 손을 대지 않고 점잖게 추는 궁중무와이성과 손을 잡고 흥겹게 몸을 흔드는 민속무의 요소가 서로 섞이게 되었다.

남녀가 쌍을 이루어 추는 사교춤의 형태는 19세기말부터 시작되었다. 사교춤을 오늘의 형태로 정리한 나라는 영국이다. 오늘날 사교춤의 메카로 통한다. 현재는 세계적으로 영국과 독일이 사교춤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20세기 초반에 경제공황을 맞아 유행하던 애절한 음악은 사교춤과 잘 맞아서 많은 독일인들이 사교춤을 즐겼다. 히틀러 정권은사교춤을 금하고 독일의 민속적인 요소로 이루어진 “독일춤”을 개발하여 장려하였으나 대중의 호응이 미미해서 실패로 돌아갔다.2차대전이 발발하자 남자가 전부 전장으로 끌려간 탓에 소진되었던 사교춤의 열기는 전쟁의 종말과 함께 다시 독일땅을 찾아왔다.

독일의 청소년들은 약 16세가 되면 3개월 정도 사교춤을 배운다. 본인들의 자의에서 하는 경우도 있지만, 전통과 문화 교육에 신경을 쓰는부모들에 의해서 댄스학원에 등록을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부모의 강요에 반발하여 코스가 끝나자마자 다시는 춤을 안 추는 사람도있지만, 대개는 스텝 몇 개 정도는 기억하여 기회가 있을 때마다 춤 추는 시늉이라도 할 줄은 안다. 그래서 그런지 독일의전통적인 결혼식 파티에서는 사교춤이 빠지지 않는다. (사교춤에 속하는 10가지 종류의 춤중에서 특히 비엔나 월츠가 결혼파티의 전통적인 춤으로 꼽힌다.) 독일의 젊은이들 중에는 친구나 친척의 결혼식을 앞두고 망신 당하지 않으려고사교춤을 다시 배우는 사람도 있고, 약혼한 남녀들이 나란히 춤을 배우러 다니기도 한다.

춤에 재미가 붙으면 교습소나 동호회에 가입하여 나이와 상관없이 꾸준히 배운다. 커플로 등록하여 늘 둘이서만 춤을 추는사람들도 있고 싱글들이 골고루 파트너를 바꾸어 가며 춤을 추기도 한다. 댄스학원의 성격도 천차만별이어서 바로크식 묵직한 쇼파에커튼을 드리운 학원에는 옷을 점잖게 입은 손님들이 드나들고, 현대적이고 남미풍으로 꾸민 학원에는 배꼽티나 청바지를 입은 손님들이드나든다.

독일사람들이 다 춤을 잘 추느냐 하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나는 독일인들이 노래를 전혀 부르지 않기 때문에 남녀불문하고 동작이뻣뻣한 거라고 생각한다.

전쟁 후의 독일인은 노래를 잃어버린불쌍한 세대이다. 나치 치하에서 목청 터지게 노래부르며 민족주의적인 감성을 길들여왔던 과거가 부끄러워서인지는 몰라도 독일인의모임에선 노래가 사라져버린지 오래이다. 노래가 몸에 배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로 몸을 유연하게 움직일 수 없다는 게 나의지론이다.

그러나 독일인인 나의 남편의 견해는 다르다. 그는 독일에선 아이들을 업어키우지 않아서 그럴 거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다. 엄마뱃속에서 늘 흔들리며 균형을 잡는 연습을 하던 아기를 태어나자 마자 침대에 눕혀놓기만 하면 운동감각의 지속적인 발달에 단절이온다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은 한국식으로 업어 키운 우리 아이들은 나중에 춤도 잘 출 거라고 미리 희망에 차있다.

당시 열여섯 살 난 우리 아들이 제 또래 중에서 저 혼자만 유일하게 사교춤을 배우지 않겠다고 선언했을 때 내가 남편을 위로하였다.업어 키운 아이는 운동감각이 충만하여 춤을 늦게 배워도 남보다 더 잘 춘다고.

우리 부부도 마흔 넘어서 사교춤을 배웠다. 언젠가 남편이 내게 큰 선물을 하나 해 주고 싶었던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갖고싶은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남편이 선물로서 나와 함께 사교춤을 배우겠다고 했을 때, 난 참 기쁘고 고마웠다.

처녀적에 어디 가서 춤이라면 제일 먼저 시작해서, 단 한 곡도 쉬지 않고, 제일 마지막까지 출 정도로 춤을 즐기던 나는 남편을사귀면서부터 춤에서 멀어졌다. 춤은 고사하고 춤 출 때 트는 음악부터 쿵짝거린다고 싫어하는 사람이어서, 함께 파티에 가면 이사람은 늘 심심했기 때문이었다. 아무려나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서로 맞추다 보니 어느덧 나도 춤에서 멀어진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배우고 보니 사교춤은 내가 즐기던 디스코춤이랑은 전혀 다른 종류의 오락이었다. 아니, 사교춤은 오락의 범주에 들기보다는 오히려 정교한 악기나 운동을 연마하는 축에 속했다. 우리가 평소에는 쓰지 않는, 뇌의 여러 부분이 한꺼번에 작동되고조율되는, 꽤나 “스트레스스러운” 훈련이었다. 요즘은 사교춤을 스포츠댄스라고도 부른다는데, 이는 참 정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팔, 다리, 몸통, 머리가 한꺼번에 동원되는 새로운 동작을 새로운 메모리로 만들어 두뇌에 저장하는 일을 배우기에는 우리의 나이가너무 많았다. 우리의 뇌는 이미 다른 메모리로 가득 차 있었고, 새로운 메모리와 잘 맞지 않는 기존 메모리의 시스템도 극복의 대상이었다. 아이들 같으면 그냥 흥이 나서 따라하면 되는 동작을 우리는 조각조각 분해해서 따로따로 훈련해서 다시 조합하는 식이었다.

쟁반에 칠이라도 한다하면 그 전에 페인트에 대한 이론적인 공부부터 시작해서,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고, 박사논문 정도는 써야 직성이 풀리는남편은 사교춤에 대한 여러가지 자료를 사 모으고, 자나깨나 예습 복습에,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더니 금새 사교춤이라면 이론의 대가가 되었다. 거기까지는 좋은데, 춤을 추면서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틀렸다 맞았다, 마치 운동경기 해설위원처럼 시시콜콜 해설을 해대는 것이 아닌가?

내가 누구냐? 다른 건 몰라도 춤이라면 어떻게 당신이 나를 가르쳐? 하지만 당신이 율동에 균형감각이 떨어지는 건 당신 죄가 아니지. (독일사람인데…) 몸 따로, 머리 따로 노니 본인인들 얼마나 답답하겠어? 귀여워서 가만 두었더니 급기야는 이 인간이(!) 나를 야단치기에이르렀다. 배경음악이 시끄럽다보니 목소리가 커지는데다, 우리 둘이 슬슬 가는귀가 먹기 시작하는 나이라 우리는 가끔 춤 추면서 큰소리로 다퉜다.

(좌회전 하며)
“그렇게 하지 말라니까? 왜 가르쳐 주는 말을 안 들어?”
“당신이 리드하는 게 틀려서 그렇단 말이야.”

(우회전 하며)
“춤이라면 나한테 그런 말 하지 마. 나는 틀리지 않아.”
“당신이야말로 춤이라면 나한테 그런 말 하지 마. 난 아기였을 때 엄마 등에 업혀서 자란 사람이야. 당신은 우리에 갇혀서 자란 사람이고. “

우리 댄스학원에서 춤 추다가 파트너를 야단치는 남자는 아마 우리 남편이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대부분이 싱글이라서 마땅한댄스파트너를 만나는 일이 쉽지 않은 까닭에 춤을 잘 추건 못 추건 모두 자기 파트너에게 깍듯하고 정중하게 대한다.

(빙글빙글 돌며)
아아, 왜 나만이런 불량파트너랑 춤을 추는 걸까?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볼까? 밖에서도 저러니 집에서는 저 여자 매 맞고 산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으으, 나는 이 댄스학원에서 유일한 동양여자. 순종형 동양여자? 너! 집에 가기만 해 봐라.

이때 멀리서 댄스 선생님이 마이크로 말했다.

“파트너를 째려보지 마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