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외진 곳에 있는 나의 블로그를 꾸준히 찾아주시는 소수의 독자들께 제일 먼저 알려드리고 싶은 소식이 있다. ‘‘내게 말을 거는 공간들'‘이 한겨레출판사에서 내일 모레 2월 4일 출시될 예정이다.

내가 그간 전공서적이나 학술논문, 전공인 강연에서 발표했던 내용을 일반인들에게도 재미있게 읽히도록 정리한 글, 인터넷한겨레의 칼럼을 통해 발표한 글, 그리고 물론 이 책을 위해서 새로 쓴 글들로 구성되어 있다.

편집부에 꽤나 까다롭게 사진을 챙기시며 몇 번이나 더 찍어오라, 다시 한번 잘 찍어오라, 더 좋은 건 없는지 어디 가서 좀 구해오라고 나를 볶으시길래 그림책으로 만드실래나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컬러 사진이 많이 들어가고 디자인이 고급스러운 책으로 나왔다고 자랑하신다.나는 에세이라고 생각하고 재미있게 쓴다고 썼는데 출판사 편집부에서 이게 에세이냐 인문서적이냐 갑론을박을 벌이다가 결국 건축예술부문으로 정했다는 후문이 있다.

이 책은 나 혼자 자판을 두드려 썼지만 절대로 나 혼자서 쓴 책이 아니다. 그간 미숙한 글을 꼭 찾아서 읽어주시며, 표시가 나던표시가 안 나던 멀리서 고개를 끄덕여 내게 용기를 북돋아주신 독자들과 함께 쓴 책이다. 그런 분들이 없었다면 내가 이 짓을 왜하나 싶어서 중간에 좌절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분들을 마음 속 깊이 믿기에 ‘‘수지가 안 맞는 사업'‘을 진행하는 내내 마음이뿌듯했다. 그런 분들을 마음 속 깊이 믿기에 나는 이제 이 책의 외적인 성패에 초연할 것이다. 깊은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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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후기


독일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벌써 현지 생활 10년째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나는 ‘와, 대단하다. 그렇게 오래독일에서 살고도 아직 죽지 않았네.’ 하고 놀랐다. 그리고 내가 한국에서 보낸 시간의 꼭 두 배가 되는 세월이 독일에서 흘렀다.34년이 지난 지금,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

이제는 꿈도 독일 말로 꾸고, 욱하면 튀어나오는 욕도 독일 말이다. 남의 나라 건축사를 천직처럼 여기며 살았고, 고문서의 먼지냄새를 맡으며 꼬부랑글씨의 고문자를 해독하는 일에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 나는 내가 독일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은 꿈에도 없지만,내가 가정을 일군 독일 땅을 내 집이라 여기며 살고 있다. 몇 년에 한 번씩 한국에 나가면 너무 재미있어서 독일로 돌아가기 싫을때도 있지만, 그래도 난 “독일에 간다.”고 말하지 않고 “집에 돌아간다.”고 말한다.

나는 설계도를 그린 후에 거기에 따라 차곡차곡 벽돌을 쌓는 인생을 산 게 아니라 바람 부는 쪽으로 우장을 치며 적응하는 인생을살았다. 섬마을 학교의 국어 선생님이 되어 소설을 쓰고 싶었던 문학소녀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공대에 갔고, 글을 쓰긴썼지만 남의 나라 말로 이공계 전공서적을 썼다. 하지만 그것도 즐거웠다.

남의 나라 언어에 집중하는 사이에, 그러느라 한국 사람과의 교류가 뜸한 사이에 나는 모국어를 아예 잃어버렸다. 사고를 독일어로하는데다 일상적인 단어가 금방 생각나지 않아 말이 어눌하니 나 스스로 답답하고 창피해서 한국 사람과의 대화를 피하는 일도생겼다. 그러나 깊이 고민하지 않았다. 발등의 불끄기에 바쁜 인생을 사느라 당장 급하지 않은 일에 신경 쓸 새도 없었거니와,얻는 바가 있으면 잃는 바도 있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쩌다가 한국 책을 구하면 마지막 장을 읽기까지 절대로 손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어디서 포장지로 묻어온 한국 신문은광고까지 다 읽었다. 몇 년에 한 번씩 한국에 가면 하루에 소설을 서너 권씩 읽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인터넷으로 한국 신문읽는 법을 배웠다. 한국에서 비싸게 부쳐오지 않아도 독일에서 한글을 읽을 수 있다니, 내겐 기적 같은 선물이었다. 마침 독일어로씨름하던 일이 일단락 나서 내 마음에 여유가 생겼고, 아이들은 제 앞가림을 하기 시작했고, 내 나이는 사십대 중반이었다.

비바람 들이치는 쪽으로 우장을 두르며 열심히 집 짓는 나이가 지나, 햇볕 드는 쪽으로 우장에 구멍을 내는 나이가 되었던모양이다. 곧 이어 나는 인터넷을 통해 한국 친구들을 얻었다. 그들과 이런저런 테마로 대화하고 토론하는 사이, 나는 모국어를되찾았다. 말로 하라면 순발력이 떨어져서 여전히 어눌하지만,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쓰는 글로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정확히표현하게 되었다.

나는 한글로 글쓰기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원래 나의 것이지만 낯설어져버린 정서가 언어를 통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언어는 이미완성되어 있는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생각을 만들어가는 도구라는 말처럼, 독일어로는 잡아낼 수 없었던 생각들이 한글을거치는 과정에서 새로이 발견되었다.

『세계를 놀이터 삼아』와 『나는 튀기가 좋다』의 강신주 작가는 내가 인터넷을 통해 사귄 친구이다. 그의 칼럼이 좋아서인터넷한겨레를 기웃거리던 내가 그의 뒤를 이어 칼럼을 연재하게 되자 그는 나의 글을 빠짐없이, 세심하게 교정해주었다. 나는 그의교정본과 나의 원본을 꼼꼼히 대조하며 공부했고, 조사만 바꿔줘도 뉘앙스가 달라지거나 문맥이 매끄러워지는 것을 보며 나의 한글실력도 눈에 보이게 발전했다.

교정을 통해서 문체가 편안해지자 애초의 내 의도가 더욱 선명하게 노출돼, 새로운 생각이 꼬리를 물고 새끼를 치는 일도 종종있었다. 삐져나온 못을 뽑고 벽을 깔끔하게 미장한 후에는 그 벽에 걸고 싶은 그림이 저절로 떠오르는 것처럼. 그래서 교정을 받은후에 새로이 떠오르는 생각을 정리하다보면 애초에 단독주택으로 지으려던 집이 연립주택으로 완성되는 경우도 있었다. ‘뜨거운 굴뚝속의 아이들’은 그렇게 자라서 탄생했다.

나는 아무도 읽지 않을 책을, 그 사실을 처음부터 알면서 독일어로 쓴 적이 있다. 출간을 앞두고 내가 건축사 연구소 동료에게말했다. “100명이라도 이 책을 읽으면 다행이겠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동료의 얼굴에 ‘설마 그렇게 많이?’ 하는표정이 서렸다. “향후 500년 동안.”이라고 내가 말을 마치자, 동료는 “그럴 수도 있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책에는 독일어권에서 향후 500년간 통틀어 100명 정도 읽을 전공서적의 내용도 일부 들어 있고, 내가 학술논문이나 강연에서다룬 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연애소설을 읽으며 훌쩍훌쩍 우는 취향을 가진 나에게 흥미로운 전문지식은 다른 사람들에게도흥미로우리라는 믿음에서 혼자 간직하기 아까운 배움의 경험을 골고루 정리해 담았다.

건조한 전공서적과는 달리 이 책은 독자와의 소통을 염두에 두고 썼다. 나는 건축이 얼마나 일상적이고 상식적인 분야인지 말하고싶었다. 그래서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건전한 상식 안에서 학문의 깊이를 더하고, 일반인이라면 건전한 상식을 바탕으로전문가와 소통할 수 있음을 나누고 싶었다. 우리집 목욕탕에 관한 일이던, 나라의 물길에 관한 일이던 당당한 주인의식과 함께무거운 책임의식을 가지라고 넌지시 일깨워드리고 싶었다. 건축은 인생과 마찬가지로 그저 위대하거나 추상적인 일이 아니라, 담담히해답을 찾아가는 탐구과정이라는 걸 독자들과 함께 확인하고 싶었다.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태어났다. 글을 쓰는 내내 강신주 작가가 함께 호흡하며 독려해주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전공에대한 열등감을 극복하고 건축에 관한 글을 쓸 수 있게 해준 친구들이 있다. 평생 변함없는 열정으로 건축의 길을 감으로써 한눈파는나를 미안하고 부끄럽게 만들지만, 나를 우습게보지 않음으로써 늘 용기를 주시는 조인숙 소장과 이석정 교수에게 이 사실을 고백하고 사랑을 전한다.



좋은 컨셉으로 울타리를 쳐주시고 그 안에서 신뢰와 자극으로 내 역량의 최선을 이끌어내신 김수영 한겨레출판사 편집장님, 항상유쾌한 메일을 주고 받는 중에도 빈틈 없는 일처리와 수술흔적이 남지 않는 봉합기술로 프로의 무서움을 보여주신 조사라 편집인님,나의 소박한 글에 어울리면서도 귀티 나는 옷을 입혀주신 이석운 디자이너 선생님, 제수의 책 표지사진으로 귀중한 작품을 아낌없이 제공하신 사진작가 Tore Diestelhorst, 이 모든 분들은 나에게 책 만드는 작업이 참으로 신나고 즐거운 일이라는경험을 하게 해주셨다.

윗 문단은 편집부의 빨간 볼펜에 의해 삭제당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그냥 우겨볼 걸 하는 후회가 뒤늦게 든다.

선생님, 작가가 돈을 내서 책을 내는 경우가 아니면, 한국에서는 이렇게 편집부에 감사를 표하는 것은 조금 어색해서요. 이문단 전체를 편집하고자 하는데 어떠세요? 편집부에서 책을 만들어내는 것은 사실 그들의 직업이기 때문에 칭찬받거나 감사를 받을만한 과정은 아니어서요. 디자이너도 마찬가지고요. 조금 쑥스럽거나 책이 우습게 보일 수 있기 때문에요… 저희 마음 아시죠?



그리고 무엇보다 이 책을 낳은 산모인 나의 자기애가 있다. 나를 세상에 내세우고 싶은 자기애가 아니라, 세상이 뭐라 해도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어보고 더듬이를 내밀어 길을 두드려보는 자기애이다. 그리고 그런 나의 옆에는 사고를 재확인하고, 깨고, 다시 시작하도록 지속적인 도전과 자극을 주는 남편이 있다. 나와 다른 상식을 가지고, 나의 자기애에 도전과 자극의 양분을 준 남편에게 이야기하련다. 당신이 읽지 못하는 이 책은 내가 딴 데 가서 낳아온 자식이 아니라 당신의 자식이라고.

그간 미숙한 내 글을 굳이 찾아 읽어주시며 내가 자라는 과정에 동참해주신 인터넷한겨레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멀리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줌으로써 내가 글 쓰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독자들이야말로 이 책의 진정한 산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