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하천이었던 라인강이 배가 다니는 수로로 개발된지 100년이 넘은 오늘날, 라인강 중류에 사는 후손들은 여전히 홍수에 시달리고있다. 라인강과 샛강이 만나는지역의 홍수는 건설기술이 좋은 오늘날에도 막지 못하고 있다.

그 지역의 작은 마을에 사는 내 친구 말에 의하면 주민들은홍수경보가나면 모든 가구를 이층으로 옮기고 지하실과 1층을 아예 홍수에게 내주는 생활에 습관이 들었다고 한다.주민들과 자손들이 정기적으로 감수해야하는 피해는 수치로 계산할 수도 없을 것이다. 요즘들어 지구온난화에 따르는 이상기온으로홍수가유난히 잦아지니 앞으로 어찌 될지 막막하기만 하다.

홍수보다 더 큰 변화는 라인강 유역의 습지가 사라진 일이다. 습지였던 땅이 라인강 수로건설로 인해 일단은 농토나 주거지 등 인간에게 실용적인 땅으로변했지만(총 70km2) 그 반대급부로 습지에 서식하던 동식물의 종이 멸종했다. 100년 전 라인강변의 동식물 종에 대해서이제는 추측으로밖에 알 수 없을 정도로 생태계가 완전히 변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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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로건설 이후에 자투리로 남아 있는 옛 라인강변 습지의 숲

당대에는 습지가 농토로 변했으니 다행이라 여겼겠지만 문제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는 점이다. 라인강 주변의 대지는 계속해서 폭넓게 말라갔다. 이는 라인강변 땅밑에 고여 있는 지하수의 수면이 점차 낮아지면서 생기는 현상이다. 지하수의 수면이 낮아지는현상은 강의 수면이 계속해서 낮아지기 때문에 일어나고, 강의 수면이 계속해서 낮아지는 현상은 강바닥이 점점 깊게 패이면서 생기는일이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구불구불하던 라인강의 물길을 반듯하게 다듬은 결과, 해당 구간의 강의 길이가 3분의 2로 짧아지면서 상대적으로 강의 경사가 급해진꼴이 되었다. 경사가가파른 강물은 빠르고 힘차게 흐른다. 이때 물과 함께 쓸려내려오는 자갈들이 강바닥에서 통통 튈 정도로 물살이 빨라지면 강바닥이패이는 하방침식현상이 일어난다. 강바닥이 침식되어 낮아지니 자연히 강의 수면도 따라서 낮아지게 되고, 강변의 토양을 사이에 두고강과내밀하게 통정하는 사이인 지하수의 수면도 강의 수면에 맞춰 함께 낮아지는 것이다.

땅 밑에 있는 지하수의 수면이 낮아지면 나무들이 뿌리를 암만 깊이 뻗어도 수분을 섭취할 수 없다. 수분이 부족해 버석버석한토질은 경작지로 부적당하고, 지하수가 저만치 도망가버려서 우물을아주 깊게 파야 물이 나오니 농사를 짓기에도 나쁘다.

땅이 마르고 지하수가 깊이 숨어 있으니 비가와도 땅 속 지하수까지 도착하기 전에 흐지부지 스며 없어져버린다. 정기적으로 내리는 비도 지하수의 충당에 도움이 되지 못하므로지하수의 부족이란 악순환이거듭된다.

라인강 상류에 위치한 노이엔부르그(프라이부르그 행정권)의 강변숲을 조사한 바에 의하면 툴라의 공사(1817-1876)가 끝난지십년 만에 지하수면이 표토에서2m 아래로, 1900년 무렵에는 나무 뿌리가 닿지 못하는 깊이로 내려갔다. 자연의 생명력은 얼마나 끈질긴지 나무들은 그런상황에서도 30년이나 더 버티다 줄줄이 쓰러졌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현상이 라인강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 샛강으로 옮아간다는 것이다. 주강인 라인강의 속도가 빨라지니 그리로흘러들어가는 샛강물이 쑥쑥 빠지면서 덩달아 빨리 흐르게 되었다. 빠른 물살로인해 물 밑의 자갈이 통통 튀며 강바닥을 침식하는 현상이 라인강에 이어 여러 샛강들에도 일어났다. 샛강의 수면이 낮아지면서샛강변의 지하수의 수면도따라서 낮아졌다. 지하수 고갈 현상이 샛강을 따라 가지를 치며 넓은 범위로 일어났다.

툴라의 수로건설 이전에는 매년 0.4cm씩 침식되던 라인강의 바닥이 수로건설 이후에는 매년 7cm씩 패어나갔다. 라인강의 바닥은예전에 비해 6-8m 침식되었고 10m까지 깊게 파인 곳도 생겼다. 지하수의 수면도 그만큼 따라내려갔다.

라인강의 시련, 아니 강과 동거동락하는 강변 지하수의 시련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1차대전에 패한 독일은 승전국인 프랑스에게전쟁보상으로 라인강물의 사용권을 넘겨주어야했다. 1928년에 프랑스는 독일과 국경선을 이루는 라인강 옆으로 운하를 파는공사를 시작했다. 이것이 알자스 대운하이다 (독일어권에서는 “라인강옆 운하”라고 부른다). 인공 수로에 라인강물을끌어들여 최상의 뱃길을 만드는 동시에 8개의 수력발전소를 세워 전기를 생산하는 사업이었다. 공사비 전액 프랑스쪽 부담이었고,여기서생산되는 전기의 반은 독일에게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조건이었다.

알자스 대운하 사업이 2차대전으로 중단되었다가 1950년대에 40km까지 진척되었을 때 라인강 유역의 환경이 경종을 울리기시작했다. 이 지방의 지하수면이 2-3m 더감소되어 지하수 보유량이 30억 입방미터나 줄어들었다. 라인강 유역에 무성했던 숲은 거의 다 사라지고 농사도 잘 안 되어 메마른토양에서 자라는덩쿨만 무성하게 되었다. 밑에서 받쳐주던 지하수가 급속히 줄어드니 땅이 꺼지는 지반침하현상이 일어나 집이 기울거나 가라앉는일도 생겼다.

강물이 알자스 대운하를 통과한 후 라인강에 다시 유입되었으므로 누가 물을 빼돌린 것도 아닌데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강변지하수는 강물이 스며들음으로써 형성된다. 그런데 라인강물의 98%를 끌어들인 알자스 대운하의 콘크리트 벽과 바닥이 이를막았던것이다. 대운하옆으로 나란히 놓인 원래의 라인강은 물을 거의 다 빼앗기고 졸지에 개울물로 변해서 제구실을 하지 못했다.

운하의 건축주인 프랑스 전력주식회사(처음엔 국영이었다가 민영화됨)는 이런 사실에 개의치 않았다. 운하 건설비용을 혼자 부담하고독일에게 전력의 반을 내주더라도수지가 맞는 이 사업을 민간 사업체에서 포기할 리가없었다. 라인강 환경에 관한 프랑스 국민들의 위기의식도크지 않았다. 프랑스가 라인강에 접한 부분은 국경선 200km 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의 입장은 달랐다. 라인강의 대부분이 독일의 내부를 관통해 흐르고, 라인강의 영향권에 살고 있는 주민이 수천만이나되는 독일에선 라인강변의, 그것도 특히 상류 환경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라인강의 실지 주인으로서 여차하면 그 손해를자자손손 감수하게될 독일국민들은 각종 시민단체를 결성해서 대항했다. 양국 간의 끈질긴 협상 끝에 그 결과 프랑스 측에선 다음운하 구간의 계획을 수정했다. 1956년의 일이다.

그 다음부터 짓는 운하는 라인강을 일정한 간격으로 들락거리는 구조로 설계되었다. 즉 물이 라인강와 운하를 번갈아가며 흐르게되었다. 지하수면이 하락하는 것을 막기 위해 50%의 강물이 라인강에 남겨졌고, 저수지도 건설되었다. 그결과 지하수면의 급격한 하락은 일단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강의 급한 경사로 인해 강바닥이 패이는 현상은 막지 못하고 여전히숙제로 남았다. 지하수면이 내려가는 것은 또 시간문제가 되었다.

독일과 프랑스는 또다시 협상을 거듭한 결과 나머지 구간은 수력발전소의 추가 건설 이외에도 하방침식을 막는 것에 주력해서설계되었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었다. 1978년부터는 매년 17만 입방미터의 자갈을 강에 쏟아붓는 것으로 해결하고 있다.해마다 몇백만 유로를들이는 이 극약처방 덕분에 라인강의 바닥은 이제 매년 0.5-1cm씩밖에 침식되지 않는다.

프랑스 전력주식회사가 건설한 알자스 대운하 구간의 라인강은 2천톤짜리 화물선이 오가고 매년 70억 kWh의 전기를 생산하는산업체로거듭났다. 하지만 독일이 치뤄야하는 댓가는 컸다. 지하수의 감소에 이어 홍수의 위력도100년 전 툴라의 공사 후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거세졌다.

최상의 수로로 건설되어 선박의 아우토반이 된 알자스 대운하는 홍수물에게도 고속도로였다. 홍수물은 시멘트로 매끈하게 마감된 반듯한물길을 통해 거침없이 질주했다. 비가 많이 오거나 알프스의 눈이 녹아서 물이 불어나면 예전에 바젤에서 칼스루에까지 65시간 걸려내려오던 홍수물이 이제는 반듯하고 매끈한 고속도로를 타고 오느라고 시간이 절반도 걸리지 않았다.

그간 홍수가 나면 간혹 물이 넘치곤 하던 부실한 강변시설도 운하 덕분에 탄탄하게 보수되었으므로 이 구역은 홍수의 위험에서벗어났다.하지만 상류에서 적당한 범람으로 기세를 잃지 못한 홍수의 힘은 중류, 하류지방을 집중적으로 강타했다. 특히 샛강이 만나는지역에선 더욱 심했다. 샛강에서 불어난 물이 라인강을 통해 빠져나가기도 전에 라인강 상류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오는 홍수가덮쳤다.

운하건설의 후유증은 독일로 보자면 자자손손 막대한 국가적 손실이지만 제 돈 투자해서 운하를 건설하고도 이익을 반이나 독일에 뚝떼어준프랑스 전력주식회사에게는 계약상으로 책임이 없다. 전쟁을 일으킨 과보로 승전국에게 자연의 사용권을 넘겨주어야 했던 독일의입장에선 묵묵히 뒤처리를 할 따름이다.

20세기 초반의 라인강 수로공사에서 마지막 구간을 스위스와 합작해서 완성했다는 말을 지난 글에서언급했다. 스위스가 남의 나라 수로공사에 마지막 구간 총공사비용을 60%나 댔다. 내륙국인 스위스가 북해로 연결되는 경제적이익만챙길 뿐 훗날의 인과응보를 치를 필요가 없는 입장으로서는 절대로 손해 본 사업이 아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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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를 북해와 연결하는 라인강의 바젤 항구

독일이 어리석어서 이웃나라에게 당한 건 아니다. 도로와 철로가 빈약했던 그 당시엔 수로교통이 경제부흥의 첩경이었으므로 독일도톡톡이 이익을 봤다. 대안도 없었거니와 그 당시의 지식 수준으로는 앞날을 내다볼 수 없었다. 자연의 섭리, 경제구조의 변화,교통수단과에너지에 대한 동향 등을 미리 예측할 수 없었을 뿐이니 인간적인 시행착오를 한 셈이다.

우리 세대도 앞날을 예견하지 못해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앞날을 예견하지는 못하더라도 이미 지난 실수를되풀이하지는 말아야겠다. 세계화와 정보화의 시대를 맞아 세계 방방곡곡에서 쌓은 인류의 경험을 나의 사업에 활용하는 것은 당대에큰 이익이고 후대에큰 유산일 것이다.

경부운하에서 생땅을 파서 물길을 만드는 구간은 40km에 불과하다고 한다. 행여 실패하더라도 피해는 그 주변 지역에국한된다. 물론국민이 낸 세금이 복구작업으로 두고두고 날아갈 테지만 그래도 그건 돈일 뿐이다. 그러나 나머지 500km 구간인 낙동강와한강에서라인강같은 피해가 일어난다면 이는 대한민국의 총체적 위기가 될 것이다. 돈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

독일이 패전국으로서 강요당한 라인강의 수로건설을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삼았지 모델로 삼으면 안된다. 나는 지금 한반도 대운하를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독일처럼 되지 않을 비법이 있는지를 묻는 것이다. 나는 지금 정치적인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학자로서 정직한 토론을 바라는 것이다.

낙동강과 한강에 동력선을 띄우려면 당연히 독일처럼 강변여과 방식으로 지하수를 취수해야 한다. 경부운하를 계획하는 전문가들은 이를위한 추가 비용을 손익계산에 포함시켰을 것이다. 강과 지하수의 동반관계를 이해하는 국민들은 이들 전문가들에게 지하수의 양을조사해 봤는지, 하방침식과 지하수면의 하락을 막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 계획인지 물어야 하고 그 비용도 손익계산에 포함시켰는지감시해야한다. 수로건설와 홍수의 상관관계를 이해하는 국민들은 이들 전문가들에게 홍수에 대비해서 어떤 대책을 세웠는지 물어야 하고 그비용도 손익계산에 포함시켰는지 감시해야 한다. 그리고 갑문이나 댐으로 무조건 다 해결된다는 말에 만족하지 말고 원리를 묻고,용량을 묻고, 위치를 묻고, 추가비용을 묻고, 꼬치꼬치 캐물어야 한다. 주인이 철저히 알려고 들어야 일꾼들도 긴장해서 철저하게일한다.

주인도, 일꾼도, 그 누구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일을 무작정 시작할 수는 없다. 운하를계획하는 전문가들이 시원한 해결책과 납득할 만한 손익계산을 제시해야만 국민들이 대운하 건설을 화끈하게 밀어줄 수 있다. 선거로일꾼을뽑는 민주주의 국가에선 국민들이 칼자루를 쥐고 있다.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라인강의 시행착오를 만회하기 위해 현재 독일과 유럽에선 어떤 일을 하고 있으며 그비용은 얼마나 되는지알려드리겠습니다.)



참고 자료
링크: Flussbett, Wikipedia
링크: Der Rhein, Zeitschrift
링크: Als der Oberrhein noch 2.000 Inseln hatte
링크: Doubs-Wanderfahrt 1987
링크: Meyerslexicon
링크: Könler Stadtanzeiger
링크: Die Etappen der Rheinregulierung
링크:Der Rhein
링크:Baustellenbuch Rhein

사진출처
링크:Alter Rhein
링크:Rheinhafen Basel



이 글은 2008.2.18일자 인터넷 한겨레에 실렸습니다.
링크: 인터넷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