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에도 나는 학생들과 1주일간 실측 실습을 다녀왔다. 건축과 학부 초년생들에게 고건축을 실측해서 도면으로 남기는 기술을가르치는 일이다.

평소 늘 혼자서 일하는 내게는 백여 명이 붐비는 이런 집단생활이 즐거운 자극이 되기도 하고 고역이되기도 한다.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눈을 반짝이며 내 입만 주시하는 학생들을 만나면 나는 세상에서 제일 보람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된다.그러나 열정도 호기심도 없이 학점만 따려는 젊은이들에게 뭐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고 애쓰다가 결국엔 점수를 들먹이며 협박하는상황이 오면 나 자신에게도 정나미가 떨어진다.

줄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이 걸리면 최악이다. 몇 백년 묵은 목재로 된 지붕 밑에서 연기를 내는 일은 엄중히 금하기 때문에 이들은작업하다 말고 툭하며 바깥으로 사라지거니와, 일할 때도 담배가 고파서 그런지 불평불만이 많다. 그래도 아직 단 한 번도 나는학생이 실내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다 들킨 사례를 접하지 못했다. 목재 고건물을 다루는 사람들은 이렇게 불을 무서워한다.

하지만 막상 건축사 연구를 할 때는 얼마나 화재의 이익을 많이 보는지 모른다. 만 년 전의 주거지를 발굴하면 돌을 가지런히 놓은납작한 기단만 남아 있다. 진흙이나 나무였을 벽과 지붕은 사라지고 없다. 그래도 그 시대의 건물이 어떻게 생겼는지 추정할 수있는 행운이 따를 때도 있는데, 화재로 건물이 파괴되었을 경우이다. 흙이나 나무가 불에 타면 그 자국이 남는다. 예를 들면지름 몇 센티미터짜리 갈대로 엮어서 진흙을 바른 벽이었다고 추정할 수 있을 정도이다. 생물학자도 불에 탄 곡물의 종을 조사해서 채집에서 농경으로넘어가는 시기였다는 걸 알아내기도 하고, 불에 탄 동물의 뼈를 조사해서 특정 동물의 새끼 뼈가 많이 나오면 사냥의 시기에서가축을 길들이는 시기로 넘어갔다는 걸 용하게도 알아맞춘다.

지난 여름에도 화재 덕분에 쾌거가 있었다. 학생들이 스스로 알아서 작업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을 때 나와 책임연구원은건물 구석구석을 돌며 조사에 들어갔다. 공출되는 곡물을 모으는 창고로 지어진 후 수없이 용도변경되고, 덧대어 증축되고, 보수됨으로써 연대와 양식이 복잡하기가이를 데 없는 문화재였다. 나는 처음 지어진 상태로 온전하게 보존된 문화재보다 이렇게 때우고 기운 문화재를 개인적으로 더좋아하는데, 첫째는 변천사를 통해 옛날의 실상을 후손에게 더욱 다양하게 보여주기 때문이고, 둘째는 조사하는입장에서 마치 탐정놀이를 하는 것처럼 머리를 굴리는 재미가 여간 아니라는 것이다.

bauaufn1.jpg

bauaufn3.jpg

처음에 봤을 때는 막막하기만 하던 것들이 탐정 둘이서 서로 검증하고 보완해가는 사이에 차례로 정리가 되었다. 그 건물은 이백 년전에 일부가 불에 탔기 때문에 곳곳에 그을음이 남아서 화재 이전과 화재 이후에 지어진 부분이 확실하게 구분되는 이점이 있었다.아무도 기술과 공정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는 않지만 화재에 대한 기록은 항상 문서로 남으므로 언제 어떤 기술과 디테일이 유행했는지알아내는 일에 도움이 많이 된다. 화재를 당한 당사자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겠고 행여 그렇다고 해도 위로가 되는 일도 아니겠지만,역사는 한 시대만 살고가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새옹지마의 연속이다.

오래간만에 인상 깊은 작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가족들에게 미주알고주알 할 말이 많았다. 특히 우리가 알아낸 성과에 대해서나는 신이 나서 떠들었다. 내가 몸이 작고 가벼운 덕분에 아슬아슬한 곳까지 타고 올라가서 조사해 얻은 성과에 대해 자랑을 하는데남편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고 나면 어떡하려고 거기까지 올라가? 사람이 그렇게 어리석어?”

자랑하다가 뻘쭘해진 나는 금방 토라졌다. 얼마 전에 한비야 님이 구호활동가가 봉사하다가 죽지 그럼 사우나에게 죽느냐고 말하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나서 나는 토라진 김에 안 해도 될 소리를 했다.

“건축사 학자가 건물 조사하다가 죽지 그럼 사우나에서 죽어?”

남편은 기가 막힌지 이번에는 눈까지 부라렸다.

“당신이 죽는 게 문제가 아니야. 그까짓 헛간 하나 조사하다가 불구가 되면 내가 당신 돌봐야 하는 게 한심해서 그래.”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강도 높은 설왕설래는 여기서 생략하기로 한다. 말년에 오래 아프셔서 맘고생 많이 하시고 돌아가신 친정어머니 생각도 났고, 돈은 못 벌망정 소중한 나의 직업을 그까짓 헛간이라고 단정짓는 남편에 대한 섭섭함은 오래오래 앙금으로남았다.

그런데 숭례문이 어이없이 타버린 사건 이후로 나는 남편 말이 자주 생각났다. 내가 남의 나라에서 그까짓 헛간 조사하느라고 소홀히한 우리나라 문화재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물론 현실감이 전혀 없는 막연한 미안함이었지만,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지고 남의아이들 돌보는 사이에 자기 아이가 사고를 당한 소아과 의사의 심정이랄까?

돈 안 되는 그까짓 헛간에 목숨을 거는 나같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도 많으리라는 생각이 들면서 내 마음은 차차 진정되기 시작했다.숭례문을 상세하게 기록한 도면이 지금 당장 문화재청에는 없더라도 그 누군가의 손으로 만들어져 어딘가에 보관돼 있지 않을까?사진으로는 보이지 않는 접합부분까지 점선으로 그리고, 목수의 공구 자국까지 세세히 기록한 실측도면이 어딘가엔 존재할지도 모른다.숭례문 전체는 아니더라도 기둥만이라도, 두공이나 서까래만이라도 누군가가 그 디테일에 미쳐서 연구하고 조사한 흔적이 어딘가엔 남아있을 것이다. 꼭 숭례문이 아니더라도 동시대 기술의 양상과 장인의 습관을 엿볼 수 있는 비슷한 자료가 어딘가엔 존재할 것이다.

건축물은 인간의 생활 속에 존재하므로 영원히 원형 그대로 보존될 수는 없다. 또한 꼭 원형으로 보존되어야만 일류는 아니다.역사의 흔적을 담는 증인으로서 흉터와 치료는 피치못할 일이기도 하고, 후세에게 역사의 진행과정을 보여주는 훈장이기도 하다.박물관의 박제가 아니라 사람이 사용하는 진정한 건물은 늘 부지런히 보수하고 수리해주어야만 길이 존재한다. 이때 어떻게보수하느냐에 따라 건물이 본래의 가치를 유지하기도 하고 퇴락하기도 한다. 보수하는 손길이 뛰어나서 본래의 가치를 오히려 높혀주는일도 문화재계에선 드물지 않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한 우물을 파온 한옥 전문가들은 우리의 숭례문이 일류 건축물로 복원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다.이들 전문가들이 실력 발휘 할 수 있는 시간을 주고 여건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이들을 조급하게 닥달하면 조악한 모조품밖에 나올것이 없다. 국민들이 이들을 믿고,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며 느긋이 기다려주는 한 정치권이나 행정부에서도 전시효과만을 노려 실적 위주로 덜렁대지 못한다. 지금 실수하면 숭례문은 영원히 그르치는 것이다.

숭례문은 전소되지 않았다. 무궁무진한 자료들이 아직 현장에 남아 있고, 까맣게 타버린 숯덩이 하나만 해도 많은 것을 알려줄소중한 증인이다. 가능한 한 현장을 보존해서 전문가들에게 넘겨주어 최선의 복원을 도모하는 한편 조사와 기록을 통해 후대에 정보를남겨야한다.

재능이 평범한 내가 건축사에 소수점만한 업적을 남겼다면 그것은 철거현장에서 사소한 것들을 꼼꼼하게 기록한 결과이다. 그것은하늘이 주신 기회였다. 문화재의 철거나 파괴를 두고 기회 운운하는 자체가 불경스럽지만, 해체된 상태의 디테일을 조사하고기록하는 것은 보존된 상태였을 때보다 훨씬 더 가능성이 다양하고 강도가 높다.

내가 건축사를 연구하며 늘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특별한 일만 기록할 뿐 당연한 일은 기록을 생략한다. 후세들은옛날에 당연했던 일들이 가장 절실하게 궁금한데, 또한 그것이 역사의 의미일진데 100년만 지나도 후대의 인간은 그를 알 길이없다. 연구하다 보면 가끔 그 당시의 당연하고 일상적인 사실들을 제 흥에 겨워 구구절절 늘어놓은 옛 글을 발견할 때가 있는데, 그런 글을 남긴사람들은 대부분 실속 없이 한 우물만 파느라고 당대에는 그다지 부각되지 못한 학자들이다. 그러나 그런 글들을 발견하는 일은연구의 횡재이고, 그런 사람들로 인해 인류의 문화는 계승되는 셈이다.

문화재의 주인은 과거, 현재, 미래의 인간이다. 미래의 인간들이 어떤 능력과 가능성을 가지고 어떤 일을 궁금해할지 현세의 우리는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다. 되도록 좋은 상태로 많이 남겨주도록 최선을 다할 뿐이다

문화재의 시계는 과거, 현재, 미래를 섭렵하느라고 느리게 간다. 우연히도 현재의 유행이 “빨리”와 “많이”라고 해서 현재를사는 인간의 일시적이고도 병적인 조급증을 잣대로 삼을 일이 아닌 것이다. 현시대의 몇 년을 줄이려다가 지나간 600년 더하기미래의 몇백 또는 몇천 년을 송두리째 잃을 수도 있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한평생 우직하게 한 우물을 파셨을 전문가들이 열과 성을 다할 수 있는 너르고 느린 무대가 마련되기를 간곡히 기원하며.

독일에서.

이 글은 2008.2.20일자 인터넷 한겨레에 실렸습니다.
링크: 인터넷 한겨레